소수운정에 대한 기문〔小水雲亭記〕
오경삼(吳景參)이 처자식을 이끌고 하루아침에 단양(丹陽)의 산골짜기로 들어가 수운정(水雲亭)을 중수하여 살면서 나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내가 웃으며 이렇게 응답하였다.
“천하에 한순간도 쉬거나 멈추지 않는 것으로는 물만 한 것이 없으며, 사방을 떠돌기를 좋아하는 것으로는 구름만 한 것이 없다. 군이 이 정자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이 거의 여기서 조짐이 보이지 않는가. 군의 뛰어난 재주와 학문으로 성군(聖君)께서 위에 계신 시절을 만났으니,물고기와 물이 투합하고바람과 구름이 회합하는일이 요컨대 조만간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군이 비록 물과 구름을 길이 소유하고자 하나 물과 구름이 그것을 받아들일까? 정자에서조차 오래 머물 수 없거늘 기문을 써서 어디에 쓰겠는가.”
얼마 안 있어 경삼이 괴과(魁科)에 급제하고 성상께 지우(知遇)를 입어대성(臺省)과 옥서(玉署)사이에서 명성을 날렸으니, 나의 말이 적중한 것이다. 가만히 생각건대, 경삼이 수운정을 잊은 것은통발과 올가미가 쓸 곳이 없어진 것과 같다.
금상 1년(1777, 정조1) 여름 경삼이 덕천(德川)의 수령이 되어 나갔다. 덕천은 관서(關西)의 산골짜기 고을이다. 그가 대령(大嶺)을 넘을 때는 별을 부여잡고 부임하였는데, 둘러싸인 협곡과 겹겹한 관문은 모두 관리가 자취를 남길 수 없는 험준한 곳이었다. 고을에 이르자 훤히 들판이 트이고 긴 강은 밝은 모래사장을 띠었고 민가는 점점이 바둑알처럼 펼쳐져 있었다. 구름과 이내가 낮에 피어오르니 관사(官舍)의 주렴과 안석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완연히 무릉도원을 그린 병풍이었다.
이에 앞서 화재가 나서 덕천의 관아가 불타 버렸다. 경삼이 부임하여 완전히 새로 지었는데, 남은 자재로 작은 정자 한 채를 지었다. 그러고는 조석(朝夕)으로 그 안에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으며 ‘소수운정(小水雲亭)’이라고 편액을 걸었다. 이것으로 보자면 경삼은 평소의 뜻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모두 물과 구름뿐이다. 사람이 만약 사물을 잘 관찰한다면 물을 보고 자신의 지조를 깨끗이 하고 구름을 보고 다투지 않음을 배울 것이다. 저 넘실대며 성대히 흐르는 물과 가벼이 밝게 떠가는 구름은 어디서든 내가 취해 완상(玩賞)할 수 있는 사물이니, 어찌 꼭 정자에 이름을 붙인 뒤에야 비로소 가두어 소유할 수 있는 것이겠으며, 또한 어찌 꼭 단양과 덕천이 물과 구름이 귀착하는 곳이 되겠는가. 그리고 천하의 물과 구름은 하나이니, 어찌 방향과 처소(處所), 큼과 작음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경삼은 절박하게 그 사이에 구별을 두어 비교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또한 하나의 망녕된 짓이다. 내 생각으로는 저 물과 구름이라는 것이 경삼의 견해가 편협하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듯하다. 더구나 객사(客舍)에 거처하는 관리로서 경삼은 허리에 찬부죽(符竹)조차 오래 지닐 수 없는 처지인데도 우연히 서로 만난 외물을 취해 자신의 소유로 삼았다. 그리고 정자는 반드시 이름을 붙일 가치가 충분하지도 않으며, 이름은 기문을 지어 꾸미기에도 충분하지 않다. 경삼이 본디 이토록 사리에 어둡단 말인가.
나는 늙었다. 조정의 벼슬살이에 지쳐명덕산(明德山)산속에 작은 정자를 사서 흐르는 물을 악기로 삼고 흰 구름을 병풍으로 삼았으니, 비록 나를 ‘수운주인(水雲主人)’이라 불러도 내가 사양하지 않는 바이다. 경삼이 만약 뜻이 있다면 마땅히화산(華山)의 반을 아끼지 않고 떼어 주어그와 함께 그곳에서 노년을 마치리라. 그런 뒤에야 비로소 참된 수운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D001] 소수운정(小水雲亭):
오대익(吳大益, 1729~?)이 1777년(정조1) 덕천 군수(德川郡守)로 부임하여 지은 정자이다. 오대익의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경삼(景參)이다.
[주-D002] 물고기와 물이 투합하고:
임금과 신하가 서로 뜻이 맞음을 뜻한다.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을 처음 만나서 곧 친밀해지자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불평하였다. 이에 유비가 말하기를 “내가 공명(孔明)을 얻은 것은 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으니, 자네들은 다시 말하지 말게.”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三國志 蜀書 諸葛亮傳》
[주-D003] 바람과 구름이 회합하는:
명군(明君)과 충신(忠臣)이 만남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 대성(臺省)과 옥서(玉署):
대성은 대간(臺諫)과 같은 말로, 사헌부와 사간원의 벼슬을 통틀어 이른다. 옥서는 홍문관의 별칭이다. 대성과 옥서는 모두 청요직(淸要職)이다.
[주-D005] 통발과 …… 것:
《장자》 〈외물(外物)〉의 “통발은 고기를 잡는 것인데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고, 올가미는 토끼를 잡는 것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어버리는 것이다.”라는 구절에 나온다. 올가미나 통발은 곧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나 방편의 뜻으로, 목적을 달성한 다음에 버려야 할 것을 의미한다.
[주-D006] 부죽(符竹):
한(漢)나라 때 한 지방을 맡아 다스리는 지방관에게 내려 주었던 부절인 죽사부(竹使符)를 가리킨다. 지방관이 부임할 때 동호부(銅虎符)와 죽사부를 둘로 나눈 다음 오른쪽은 경사(京師)에 두고 왼쪽은 지방관에게 주었는데, 군사를 출동하는 데에는 동호부를 쓰고 그 나머지 일에는 죽사부를 써서 신표(信表)로 삼았다. 《漢書 文帝紀》 여기서는 지방관의 직책을 의미한다.
[주-D007] 명덕산(明德山):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북구 번동 인근에 있던 산 이름으로 추정된다. 번암이 60세 무렵부터 이 산의 계곡인 번계(樊溪) 가에 연명헌(戀明軒), 춘성당(春星堂), 적취정(積翠亭) 등의 건물을 지어 별업(別業)을 조성하고, 여기에 자주 머무르며 도성을 왕래하였다. 번암이라는 호도 이곳의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8] 화산(華山)의 …… 주어:
송(宋)나라 명신 장영(張詠)이 젊었을 때 벼슬을 단념하고 지금의 섬서(陝西) 화음시(華陰市) 남쪽 화산에 은거하던 당대의 명사 진단(陳摶)을 흠모하여 화산의 반쪽을 나누어 그와 함께 머무르기를 원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澠水燕談錄 卷2 名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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