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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층위 활용, 두 배의 감동전략
Double track, double touch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시와 수필의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문학에 살고, 문학에 죽는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살고 있는 나는 독자들이 어떨 때 문학작품을 읽고 동을 받는지, 무엇이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지가 늘 궁금했다.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감동은 마음의 반응이다. 흔히 ‘감동은 연출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미스터 프레지던트>의 저자 탁현민은 “감동은 대상에 대한 애정과 디테일이 만났을 때 가능하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당신이 모시는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이 함께 일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썼다. 여기서 사람을 문학으로 바꾸어보자. 과연 문학을 사랑한다고 감동을 줄 수 있는가. 아니다. 물론 대상에 대한 애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애정’은 충분조건이지 문학에 필수조건이나 절대조건이 될 수가 없다.
더 중요한 건 디테일이다. 본 특강은 어떻게 하면 감동을 주는 글을 쓸 수 있는지에 포커스를 둔다. 디테일을 위해서는 기본 전제로 독자는 인간의 인지시스템을 알아야 하고, 감동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하고, 문학의 개념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국문과에서 또는 국어시간에 우리는 인간의 인지시스템에 대해서도, 감동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했다. 문학의 개념은 엉터리로 배웠다. 가치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을 사실개념으로 대충 이해했다. 이를테면 ‘문학이란 사상과 감정을 글로 나타낸 것’이란 정도의 문학에 대한 포괄적 개념을 문학의 정의로 알았다. 글쓰기에서 <글짓기> 정도로 나아갔지, <글그리기>로 나아가지 못했다.
아쉽고 부족한 것이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문학이 어쩌고 저쩌고 했지, 문학을 상위개념인 예술의 바운드리 안에서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있다. 관련 학문인 뇌과학이나 생물학, 언어학, 인지과학도 문학을 교육하는 학과 교육과정에 없었다. 도대체 이런 식으로 가르쳐주고, 어떻게 글을 써서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단 말인가. 감동의 메커니즘도 모르고, 그 원리와 효과도 모른 채 그냥 글만 잘 쓰면 감동을 준다고 두리뭉실 배웠다.
먼저 감동의 메커니즘부터 알아보자. 무엇이 어떻게 감동을 주는가. 감동이 어떻게 오는지 모르고 감동을 줄 수도 기대할 수도 없다. 탁현민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거나 감동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목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글을 쓰는 목적이 감동이 되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모두를 설득시키고 이해시킬 수 없다고 하는 건, 개개인의 기호나 취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고, 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안목 자체가 달라 디테일 자체가 감동을 주는 데 영향을 못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감동메커니즘에 의한 디테일한 감동전략은 심미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감동메커니즘은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감동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감동전략을 짜서 독자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다. 감동전략이 바로 디테일이며, “이중층위 활용, 두 배의 감동전략”(Double track, double touch)이다.
Ⅱ. 감동은 무엇이며 어떻게 오는가
바슐라르는 연상과 상상의 통로를 거쳐야만 감동의 고지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미의식의 핵심코드가 연상과 상상이다. 문학에서 묘사와 구체어 활용을 기본으로 꼽는 이유다. 어떻게 독자를 연상과 상상의 통로로 안내하느냐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도 수필도 문학이고 예술이기에 궁극적으로는 미의식으로 독자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연상과 상상을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시나 수필텍스트는 철학적 인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미적 향수의 대상이다. 미학적으로 전자와 후자가 조화롭게 융화될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의식의 창조가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시나 수필은 단순히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미적 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인간과 자연, 시대의 이야기를 통찰하는 미적 사유의 예술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미의식은 텍스트의 총체적 구성요소의 합일과 통합에 의해 유기적으로 생성되는 보편적인 미감이다.
작품 속에서 미의식은 이야기 속에서 형상화되는 인물과 사건, 주제, 구조, 철학, 서술방식 등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총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유기적 창조물이다. 아무리 주제와 구조가 튼실해도 예술적 울림을 생성하도록 형상화하지 못하면 작품은 생명력을 잃는다. 문학적 울림은 이야기의 감동을 구조화하는 방법과 그러한 이야기 구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서술전략이 긴밀한 상호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그만큼 글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찍이 소설가 최명희는 “남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글을 쓰는 동안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글을 쓰는 작가는 작품을 쓸 때마다 산고의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아니 된다.
1. 울림통
소재의 철학적 통찰, 이야기의 미적 구조화, 호소력있는 수사법의 탐구는 시와 수필의 미학성과 철학성을 결정짓는 창작의 핵심과제다. 철학적 깊이와 미학적 울림이 약하다는 것은 오랫동안 고질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문학작품은 텍스트를 매체로 작가와 독자 간의 대화를 통해 창조되는 것이고, 문학작품의 수용은 작가가 조직한 텍스트의 구조와 독자의 심미구조 간의 대화에 의해 생성된다. 일본 열대를 울렸던 구료이헤이의 <우동 한 그릇>, 한반도를 울렸던 피천득의 <인연> 등의 수필은 둘 다 일본과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작품들은 나중에 완전 허구로 밝혀졌다. 많은 독자들이 배신감에 사로잡혔음은 물론이다. 미적 울림이란 실제 독자를 감정이입과 공감의 상황에 빠뜨리거나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하는 예술적 감동의 힘이다. 텍스트의 미적 구조와 실제 독자의 상상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적 대화의 결과라 하겠다.
2. 울림의 위계와 존재방식
미적 울림이란 텍스트의 전체 구조와 그 구성요소들이 만들어 내는 감동의 힘이다. 독자의 심미안에 미적 충격을 안겨주는 공감의 힘은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문학적 상상력을 활성화시켜 승화와 초월의 감동을 생성한다. 1998년 안동 야산 택지지구에서 발견된 편지 한 통, “자네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자네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자네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은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라고 쓴 <원이 엄마의 사랑편지>, <동백꽃>의 무대인 춘천의 김유정문학촌 스토리, 김영한 보살이 1천 억대 재산을 법정 스님에게 넘기면서 “나의 이 재산은 백석 시인의 시구 한 줄만도 못하다.”고 한 말은 문학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증명한다고 하겠다. 감동의 다른 말로 설득, 공감, 동감, 반향, 공명, 혼의 울림 등이 있다. 특히 가장 큰 감동이라고 볼 수 있는 영혼의 울림이란 공명 진동을 궁극성의 경지까지 승화, 보편적 가치에 대한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어 올리는 힘을 말한다. 시나 수필작품에서 작가의 상상력과 텍스트의 상상력, 독자의 상상력이 하나되어 역동적 초월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나의 소리 아닌 우리의 소리
3. 미적 울림의 창조방법
글쓰기는 선비정신을 계승하는 작업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리하여 문인은 마땅히 옛날의 선비와 같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며, 높은 경지에 홀로 서서 자기의 줏대를 굳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을 써서 활자화하는 것은 사회 재산의 낭비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독자에게 아무 울림도 줄 수 없는 글은 발표해서는 안 된다. 독자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것은 큰 죄다. 옛날에는 세 가지 삼상의 문학이 존재했다. 침상의 문학은 철학하는 사색의 글이고, 우상의 문학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는 글이고, 측상의 문학은 배설의 욕구를 언어로 쓴 글이다. 그러나 현대는 문학창작 과정에서 미적 울림을 창조하는 데 활용 가능한 원리와 방법에 일곱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구조의 조직방식에 따라 미적 울림통의 규모와 기능이 달라진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감동전략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번 특강에서는 이중 층위를 활용한 두 배의 감동전략에 대해 알아보겠다.
1) 이중구조와 변용기법
요즘 양자역학이 공중부양되고 있다. 양자역학이론을 문학의 이중구조화에 응용해 보면, 어떨까싶다. 고전역학의 핵심이 미래예측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면,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양자역학만 알아도 차원이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다. 문학의 주이야기, 글감 하나로 글을 쓰면 단순구조라서 복잡성을 갖지 못하고, 스토리 정도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예술성이란 복잡한 구성에서 나온다.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쓴 문학이 감동을 견인하는 문학성을 가지려면 하나의 이야기를 덧씌워 이야기를 이중구조로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적으로 이야기하면, 하나의 이야기가 입자라면, 여기에 파동을 덧씌워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물질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빛은 알갱이면서 파동이다. 빛의 이중성을 문학 글의 구조에 적용시켜 보자는 것이다. 즉 문학의 이중성이란 원자와 전자의 관계이거나, 입자이면서 파동으로 이해된다.
진정한 울림을 주려고 한다면,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방법을 써서 감동을 창출해야 한다. 질 좋은 작품은 독자의 상상력을 촉발시키고 그의 정서와 사상을 고양시킨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문학적 상상력은 물질적 상상력→역동적 상상력→원형적 상상력 순으로 발생한다. 독자의 문학적 상상력은 소재로부터 발생한 기본적인 이미지의 울림, 그것을 미지의 세계로 도약시키는 역동적 이미지의 울림, 그 역동적 이미지를 궁극적 보편적 가치의 세계로 이끄는 초월적 이미지의 울림으로 위계화되는 것이다. 장 피아제에 의하면, 구조라는 것은 전체성과 변형성, 자기 조정성을 본성으로 갖는 구성요소로, 상호간의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방식이라 할 수 있다. 시나 수필 텍스트가 주는 감동은 그 구조로부터 나오는 미적 울림이라는 점에서, 이야기의 구조화 작업과 미적 울림의 창조원리는 일치한다. 이야기의 구조화 방법으로부터 미적 울림을 창조하는 원리 ->이야기의 메커니즘을 구축해주는 미적 배열의 핵심원리는 스토리를 이중 층위로 변형시키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스토리는 작가가 자신의 체험 속에서 선택한 글감으로써 아직 미적으로 변형되지 않은 원소재를 가리킨다.
문학의 원리는 메타포의 원리다. 변용, 전이 치환의 미학은 감동의 바로미터다. 중층구조를 갖는 문학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표층차원에서 작가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심층차원에서 획득한 제재의 성찰결과를 감동적인 이야기질서로 이중구조화하는 일이다. 한국현대문학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문제는 제재의 통찰 결과를 미적인 이야기로 이중구조화, x축과 y축으로 이원화하는 이야기 배열작업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야기의 미적 구조화에 대한 경시결과는 곧 작품의 미학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작가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미적 배열은 독자를 감동의 세계로 이끄는 의미구조의 생성원리일 뿐만 아니라, 주제를 형상화하는 미적 원리라는 점에서 창작의 핵심 부분을 차지한다.
① invisible ->visible
예) 송명화의 <악질군사>
그들에게 살아갈 힘이 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삶을 내던지듯 살아온 삵이 죽음에 이르러 마지막에 보고 싶어 한 것은 고향의 붉은 산이었다. 삵이 악착스레 싸움을 일삼은 것도, 마음에 조금의 너그러움조차 품지 못한 것도 분노와 절망, 그리고 향수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에게도 정신은 살아있었다. “노래를 해 주세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죽어 가는 삵을 들여다보며 둘러선 동포들이 숭엄하게 애국가를 불렀다. 황량한 만주벌판으로 퍼져나가는 눈물 젖은 노래 소리가 그들을 한 덩어리로 묶었다. 철수도 우리에게 당부하였다. “부디 나라를 잘 보전하고 더 발전시켜 주십시오.”라는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버스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철수는 ‘악질군사’였다. 예전에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모님이 한국에서 가지고 온 선물로 치장하고, 새벽부터 학교 문 앞에 앉아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귀여운 조선동이였다. 지금 이 순간 철수는 편리만을 추구하는 비겁한 사내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를 살려야 한다고 목울대가 아프도록 우리를 설득하는 든든한 배달의 후손이었다. 그에게서 소수민족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삵이 듣고 싶어 했던 노래를 그에게 불러주고 싶었다. ‘악질군사’, 삶의 품위를 지켜준 자랑스러운 별명이 아니겠는가.
X축/ 한민족의 자존심을 가지고 중국사람들의 조롱과 업신여김에 저항하며 살아가 는 조선족 가이드의 삶
Y축/김동인의 <붉은 산>의 “삵”을 통해 의미화/삵, 자랑스러운 별명
② 체험 ->상상
예) 송명화의 <순장소녀>
“수필의 문학성이란 한편의 작품을 문학적으로 만들어 가는 구조적인 형상화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마음속에 투영된 감정이나 정서가 세련되게 문학적 방식에 의해 표현될 때 가능하다. 그래서 문학성은 구조에서 나온다고 한다. 순장된 소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 소녀를 지금의 현실에 데리고 와서 대화를 하고, 거기에서 어떤 주제를 만들어 내야 한다.「순장소녀」는 구조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한 가지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인 수필의 구조에서 볼 수 없는 시나리오적 요소가 수필의 구조 속으로 들어 온 것이다.”
- 권대근 <송명화의 수필세계>
송현: (눈물을 흘리며) 그렇지만 부모님도 주군을 잘 모시는 게 저의 임무며 운명이라고 하셨는걸요. 아, 무덤 속은 얼마나 어두울까.
송현: 내가 도망을 친다면 부모님은 어떻게〮....... 이제, 호위무사가 독배를 가지고 올 테고.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무서워요. 언니, 무서워요....... (멀리서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진다).
송현: 이제 말하고 싶어요. 얼마나 싫었는지, 두려웠는지, 또 서러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살고 싶었는지!
나 : 알아. 네 마음을. 너의 부활로 비사벌의 비극은 햇살 아래 섰다. 이젠 웃으렴.
X축/ 핏빛 옷을 입은 소녀, 오른손을 내밀고 있다
Y축/ 역사 저편 이야기 작가와 대화(시나리오기법)
③ 비가시성 ->가시성
예) 최수연의 <지지대>
이제 우리 내외 건강하고 아들네 가족 화목하면 더 바랄 게 없다면서도 도움을 줄 게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데 문득 텃밭 덩굴식물의 지지대가 떠올랐다. 해마다 우리집 텃밭에는 오이, 참외 등이 자란다. 처음에는 농사를 어떤 식으로 지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남들이 하는 걸 보고 지지대를 세워주었더니 그대로 두는 것과 결실이 달랐다. 식물이 지주를 어떻게 감지하는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앙팡지게 붙잡고 안정감 있게 꽃을 피우는가 싶었는데 금방 열매를 매달았다. 그걸 보면서 나도 아들과 며느리에게 지지대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금처럼 알아서 잘 살아가겠지만, 부족한 대로 육십 년 넘게 풍파를 경험하면서 얻은 생활의 지지대를 세워주면 그 또한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다 나약해져서 내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아들과 며느리가 나의 지지대가 되어주지 않을까,
X축/아들과 며느리 생활의 지지대
Y축/덩굴식물의 지지대
④ 일반적 ->지배적 정황
예) 송명화의 <차마>
측은지심은 살아있었다. ‘미라 할아버지’나 ‘감금된 노모’ 두 방송으로 인터넷은 한동안 뜨겁게 달구어졌다. 피를 토하듯 격렬한 한탄과 걱정, 분노의 댓글들을 살펴보며 그들도 나처럼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으리라 짐작되었다. 사회의 현상을 반영하듯 옛날처럼 효자, 효부의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고 불효자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는 한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배우고 자란 끈끈한 家 개념이 살아 있는 증거가 아닐까 싶어 얼마간 안심이 된다.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내 안에 온전히 잘 있는가. 모두들 宀 아래 모인 가족이 豕처럼 고운 획들로 잘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해 봄이 어떨는지.
X축/미라할아버지, 감금된 노모
Y축/한자 집 가家의 의미
➄ 자연 -> 사람(정신)
예) 고수부의 <둑>
그러기에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보를 만들고 댐과 둑을 설치하는 것처럼 마음의 강에도 인격의 댐과 수양의 둑을 높게 쌓아 마음 그릇을 크게 해야 한다. 그러기에 사람도 인격과 수양이 잘 된 사람을 그릇이 크다고 비유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X축)자연의 둑을 쌓기 위해서는 모래, 자갈, 시멘트가 재료로 들어가지만 Y축)마음의 둑을 쌓기 위해선 문학, 철학, 신앙 등 인문학이 재료가 되어야 한다.
➅ 육체 ->사유
예) 조경숙의 <산책>
외곽으로 난 X축)둘레길을 두 바퀴 돈다. 빗물과 함께 땅속으로 스며들었나, 생각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텅 빈 듯 멍하다. 오늘처럼 Y축)사유의 뜰을 거닐 듯 산책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비 그치고 마음 따라 몸이 일어났고 산책하며 은둔 거사 도연명을 흉내 내어본다.
➆ 살아난 감나무 ->병에서 회복한 손녀
예) 최수연의 <꿈꾸는 감나무>
감나무는 그 해충도 피했다. 잎이 무성해도 건드리면 지장을 줄까 봐 가지치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니 가지를 옆으로 뻗어가서 안정감이 든다. 이대로라면 내년에는 열매도 달리지 않겠는가.
죽은 듯이 보였던 감나무가 움을 틔운 것처럼 손녀가 어렵다는 병을 이겨내고 퇴원하여 내 생일 날 우리집에 왔다. 할머니 생일 축하한다며 종이로 만든 사각 봉지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어린이 반지와 머리띠, 캐릭터 사진과 토마토소스까지 들어 있었다. 손녀가 평소 아끼던 물건들이다. 할머니도 좋아할 것이라 여기고 특별히 선물한 것이리라. 나는 손녀를 꼬옥 끌어안고는 공기가 잔뜩 든 포장재처럼 둥실둥실 떠다녔다.
➇ 꽃과 여치 ->어머니와 아버지
예) 송정자의 <족두리꽃>
수시로 꽃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여치들은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며 꽃잎의 살점을 파먹고 있다. 그러나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보면 수난을 당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청초하기 이를 데 없는 한 폭의 그림이다. 꼿꼿하게 수형을 가다듬고 의연하게 서 있는 자세가 젊었을 때의 엄마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온갖 풍상을 겪은 족두리꽃 그 안에 엄마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생때같은 큰 아들을 잃고 그때부터 수족이 잘린 듯한 고통을 엄마에게 모두 푸셨다. 밤이면 짐승이 되어 울부짖었다. 막걸리에 절어 끅끅대던 쉰 소리는 담벼락을 타고 넘어갔다. 전봇대를 휘돌던 밤바람에 오도카니 갇혀 메아리처럼 골목을 맴돌았다. 창살에 부딪혀 웅웅거리던 바람소리와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합쳐지면 무겁게 가라앉은 장송곡처럼 들렸다. 엄마와 나는 한겨울에도 동이 틀 때까지 밖에서 오돌오돌 떨었다. 여름에는 모기에 뜯기며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폭풍이 지나간 아침이면 엄마도 나도 한마디의 말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➈ 달콤제빵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예) 송정자의 <갓 구운 새벽>
유달은 정신장애의 약을 싫어했는데 그 약을 먹기 시작했다며,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라는 명대사를 탄생시킨다. 밤을 뒤척이다가 결국 그녀의 집 벨을 누른다. 캐롤은 새벽 네 시에 용건이 뭐냐고 묻는다. 유달은 머뭇거리며 “빵집이 곧 문을 열어요. 따듯한 빵 좋아하잖아요.”라며 하얀 치아를 드러낸다. 어스름한 새벽에 두 사람은 보도블록의 선을 마구 밟고서 불빛이 환한 빵집으로 들어가 따듯한 빵을 고르는 장면이 이 영화의 엔딩씬이다. 새벽녘의 빵이 저물어가고 있는 삶의 횡단길에 청사초롱의 불을 밝혀 준 셈이다.
‘달콤 제빵소’의 문을 열었다. 빵의 천국이 따로 없다. 홍수처럼 넘쳐나는 아침의 빵이 진열장에서 각색의 치장을 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세 살배기 아기가 먹을 크로아상 한쪽을 담아본다. 어릴 적 할머니의 제상에 한 가지 맛의 빵만 올렸던 내가, 지금은 할미가 되어 손녀에게 먹일 눈꽃 같은 빵을 고르는 중이다. 샛별 같은 아가의 입안에서 쌀알처럼 뽀얀 젖니가 오물오물거릴 때, 한쪽 손에는 금세 넣어줄 빵조각을 쥔 채 무릎을 구부리고 있다. 할머니도 하루에 수십 번이나 진달래 꽃잎이라도 따서 내 입속에 넣어주고 싶었을 것을.
➉ 운탄고도 ->승무
예) 송정자의 <외씨버선길>
이제 외씨버선길은 더 이상 폭신하지도 유연하지도 않은 고행길로 치닫는다. 남한강을 첩첩이 휘감고 있는 산길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다 쉼 없이 휘어진 구간이 한참동안 계속된다. 조망도 없는 급경사 길을 따라 ‘각동리 돌널무덤’을 올라갈 때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헉헉거리는 소리가 숲속을 뒤흔들고 있었다. 마치 자진모리와 당악장단에 맞추어 관객을 몰아지경으로 이끌어가는 북의 연타처럼, 거칠고 빠른 숨소리가 박자를 맞춘다. 외씨버선이 법고 앞에서 버선코를 뾰족이 치켜 올린 채, 북채를 쉼 없이 두들기며 마지막 고지임을 알려주는 신호일 게다. 장삼을 뿌리고 제치며 뒤엎는 사위는, 인간이 갈구하는 끝없는 욕망을 나타내는 몸짓이 아니던가. 하얀 버선코 끝으로 표출되는 몸놀림의 가냘픈 모습. 치마 끝에서 살짝 가려진 버선코의 나비 같은 합장은, 숨길 수 없는 인간의 고뇌를 담은 춤사위다.
⑪ 인간_>기계
예) 권위상의 시 <오실로스코프>
사내가 왔다가 갔다 낯선 사내가 왔다가 두리번거리다 돌아갔다 비스듬한 얼굴과 일자형 뒷머리를 한 아랍형 사내 그가 오지 않으면 모든 역사는 종료된다 슬픈 음악과 슬픔이 가득 찬 행위가 시작되리라 오실로스코프
엎어져 이마를 찧을 듯, 어머니의 굽은 등 같은 펄스가 걸어나온다 해를 본 적이 없는 어머니는 입관해서야 비로소 등을 폈다 우두둑 인고의 파형을 깨뜨리는 펄스
⑫사무치는 그리움 ->놀아주지 않는 손톱달
예) 공광규의 시 <손톱달>
오래된 소나무와 전나무가 푸른 계곡에 별장이 들어선 지붕 위로 별똥별이 쏟아지는 산등성이 창밖에 음력 초닷새 손톱달이 떠 있다 예쁜 손톱을 가졌던 먼저 별이 된 사람을 생각하다가 그만 둔다 그는 죽어서도 나를 할퀴고 있다 바위와 고개가 많은 이곳 계곡에는 하늘다람쥐와 오색딱따구리도 있고 고라니와 꽃사슴도 있다는데 그가 없는 밤이니 어제도 오늘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다
⑬추상적(분노) -> 끼니 외면, 눈 감음
예) 김승종의 시 <반달>
눈썹 사이 주름 같은 그 길로 다시 이른 자리 해병 이병처럼 각지게 머리 깎여 미용사 출신 원장 옆에서 한 번 웃다가 엎드리고 막무가내로 끼니를 외면한다 그가 앉히려다 식욕 같은 힘에 물러서고 아내가 아무리 애원해도 눈뜨지 않는다 누구에게 분노하는 건가 혹 자신에겐가 알 수 없다 그는 알 수 없지 태평동 붉은 창문 닫힌 여인숙 골목 고개 숙이고 그는 아내를 따라가 눈 감고 분노하는 장인을 뵈어야 한다
⑭ 탈북자 ->먼지만 봄볕에 얼굴
임윤의 시 <압록강에는 섬이 많다>
잡목이 앙상하게 날리는 모래언덕 단동에서 평양 오가는 조선족 보따리장수 이레쯤 돌아온다는 소식만 남겼다 조선 한국 민속 거리 숨죽이던 탈북자들은 어디서 섬이 되었나 가슴 뚫린 벽돌집 유리창 케케묵은 먼지만 봄볕에 얼굴을 내민다 바싹 마른 손가락 비벼대는 옥수숫대 그 사이로 빠져나가는 살가운 바람
⑮ 아우성 ->낭떠러지
함진원의 시 <코드블루>
모두 아우성 깃발 높이 들고 앞으로 앞으로 이번에는 낭떠러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낭떠러지 자본이여, 자본님이시여, 굽어살피소서 간절하게 외치지만 발바닥 닳아지게 쳇바퀴를 돌려도 찢어진 깃발만 팔랑팔랑 자본 앞에서 내일 꿰매며 버틴 세월 한가득
⑯ 젖은 길 -> 꾸부정한 등
예) 최재선의 시 <아버지의 등>
간밤 멎었던 비 이른 아침 일찍 또 출렁 흐드러진다 방에 계실 줄 알았던 아버지 산책길에 뜬금없이 뵈었다 사막 같은 생애 꾸부정하게 걸어오신 아버지 등 위로 비 풍(風) 영락없이 뒤집힌다 팔십 생애 청명한 날이라곤 비 온 날 잠시 낮잠 들 때뿐 온몸으로 비 맞고 살아오신 삶 깡마르고 차라리 더 가벼워져 아버지 손에 들려있는 우산 되레 무거운 이골이었으리 비 손가락 꺾는 소리 내며 우산에 뒤엉켜 몸 녹이고 아버지께서 다녀오신 젖은 길 연어처럼 거슬러 올랐다
⑰ 어머니의 헌신 -> 무덤새
예) 김옥진의 시 <무덤새>
살아 있다고 손톱 발톱이 자란다 여자라고 달거리가 달마다 온다 종일 엎드려만 있어도 때 되면 배가 고프다 일주일분 창자가 찼다고 어머니 손가락은 똥구멍을 후벼판다 살에 박힌 삽날을 뽑아 훨훨 34도에 묻는다.
⑱ 정치판 언론판 ->고름바다
예)이기형의 시 <무통증 중환자>
정치판은 헛말의 향연, 이전투구로 한 해를 지새운다 언론판은 정작 보도할 것, 비판할 것엔 입을 다물고 목표를 잃은 채 헛소리로 싸움만 부추겼다 광장엔 허깨비놀음이 벌어지고 진실의 함성은 뒷마당에서 몸부림쳤다 정치판도 언론판도 무통증 중환자 고름바다에서 희희낙락한다
우리 정치판이 자주의 광장으로 꿋꿋이 돌아서고 우리 언론판이 진정 사회의 목탁으로 거듭날 때 겨레의 앞길엔 훈풍이 일어 통일의 함성이 평화의 노래가 삼천리에 은은하리라
⑲ 아버지 어머니의 삶 ->ㅅ 字, ㄱ 字
예) 최재선의 시 <몸詩>
시집(屋)에 사는 언어 詩로만 알았는데 ㅅ 字로 꺾이어서 제비꽃 이마쯤인 울 엄니 간당간당한 허리춤도 詩인 걸
오뉴월 가문 날에 뼈 풀린 풀잎같이 ㄱ 字로 돌아 굽어 휘어진 아버지 등 세월로 일필휘지한 표절 불가 詩인 걸
⑳ 어머니의 집 -> 못 집, 한숨 한 채
예) 최재선의 시 <어머니의 집>
어머니 집은 대못으로 박혀 있는 한 채의 못 집. 모래재 눈발 성질 급하게 쌓일 때, 이불 밑으로 손 깊숙이 넣으시곤, 방은 따신지 모르것다. 쉰다섯 아들의 겨울을 한숨 기둥으로 세우시곤. 밤낮과 낮밤 구별하지 못하고 만날 소리치고 때리는 스물다섯 손자, 한 곳도 성한 곳 없으니. 하나님의 뜻이 무언지 여쭈시곤. 무릎 꿇은 자세로 한숨의 기둥 수시로 무너뜨리시건만, 어머니 집은 녹슬 줄 모르는 대못에 박혀 늘 완연한 한숨 한 채.
Ⅲ. 선덕대왕신종 같은
신라 혜공왕 7년 서기 771년에 제작된 성덕대왕신종은 세계의 범종 전문가들이 “이 세상에서 겨룰만한 것이 없는 가장 아름다운 명종”이라고 극찬했던 에밀레종의 주조원리와 방법은 문학작법의 객관적 상관물로서 적격이다. 이 종의 종교철학적 이념과 아름다운 구조미학의 합일 속에서 창조되는 울림은 곧, 철학성과 미학성의 완벽한 통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한마디로 철학성과 미학성의 유기적 통일을 지향하는 문학작법과 다르지 않다. 현대의 세련된 독자들은 영혼을 울리는 성덕대왕신종과 같은 종소리를 원한다.
권대근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동아대). 명예철학박사(대신대학원대)
88년 월간 <동양문학> 등단 후, <경북신문>,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및 수필 당선
2000년 중국연변대 초청 수필특강(중국 연변)
2016년 국제pen한국본부 토론토지부 초청 문학특강(캐나다 토론토)
2016년 미국 중앙일보 주최 문학특강(미국 달라스)
2018년 한국문협 해외한국문학학술강연(영국 런던)
2018년 미주 중앙일보 주최 문학특강(미국 달라스)
2019년 한국문협 인니지부 초청 문학특강(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021년 미주 LA한국문인협회 초청 문학특강
2023년 한국문협 수필분과 동경심포지엄(일본 도쿄)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 위원장
현)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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