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정착한 유럽 음악가들 유럽에서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매력적인 음악활동의 중심지가 되어갔다. 유럽의 작곡가들에게 미국은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와 스트라빈스키,헝가리의 바르토크, 독일의 힌데미트와 바일(Weill), 오스트리아의 쇤베르크와 코른골트(Korngold), 영국의 브리튼은 미국에 정착했다. 이즈음에 미국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음악문화가 전개되고 있었다. 특히 대중음악 분야가 더욱 그러했다.미국은 래그타임(Ragtime),스콧 조플린(Scott Joplin),가스펠송(Godspelsong)의 고향이었다. 또한 블루스(Blues)와 재즈(Jazz)의 나라였다. ◆ 미국의 국민 작곡가:조지 거슈인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1898~1937)은 재즈의 요소를 동시대 작곡가들의 교향곡,특히 유럽 예술음악의 선율에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즉 표현력과 리듬감이 강렬한 음향적 결합을 시도하면서20세기 전반기의 가장 미국적인 성격과 수법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는 작곡가로 부상하게 된다.
1923년의 유럽 여행으로부터 돌아온 거슈윈은 당시‘재즈의 왕’으로 불리면서,정상급 재즈 밴드의 리더였던 폴 화이트맨(Paul Whiteman)과 공동작업으로 재즈 콘서트를 계획했고,이 연주에서 피아노 협주곡〈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는다. 이 곡은 심포닉 재즈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막상 거슈윈 자신은 ‘재즈 밴드와 피아노(Jazz Band and Piano)’라 불렀다. 이 곡은 블루스 화성의 활용과 거슈윈의 개성에 힘입어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되고 있다. 1937년, 불과39세의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한 거슈윈의 최 걸작으로는 단연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1935)를 꼽을 수 있다. 이 오페라는 흑인의 양식으로 작곡된 음악극으로서 오늘날 세계 모든 사람들에 의해 애창되고 있으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발군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 미국에 정착한 유럽 음악가들의 활동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많은 저명 작곡가들은 미국으로 망명의 길을 택했지만,미국은 이들에게 적절한 대우를 하지 못했고, 라흐마니노프와 코른골트만이 미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위대한 작곡가 바르토크는 끝내 미국의 음악계와 화해를 이룰 수 없었고,쿠세비츠키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한 그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1943) 역시 프로그램으로서의 오랜 수명을 갖지 못했다.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부인을 위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역시 같은 운명이었다.
할리우드에서의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뉴욕에서의 바일(Weill)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새로운 음악에 대한 그 어떤 욕구도 감지되지 못했다. 새로운 음악은 재즈,대중음악과의 합일점을 거의 가질 수 없었다. 새로운 음악이 그 수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청중들을 필요로 했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났을 때, 바르토크와 베베른은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었다. 새로운 음악을 위한 광범위한 청중들의 확보는 그 어떤 시기보다도 요원한 일이었다. <출처:서양음악사100장면(2).pp.399~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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