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가의 추체험과 추창조 연주가에게도 창조의 역할이 있는가? 기교만으로 연주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연주가는 창조자이고 예술가이기 때문에 더 높은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연주가가 음악가로서,예술가로서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다. 연주는 일차적으로 음의 현실화이긴 하지만,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의 표현행위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연주가는 음악이 성립해가는 과정으로 볼 때 일차적으로 작곡가와 소비자(청중)사이에서 음악을 현실화해주는 매개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주행위 자체가 창조의 측면이 있고 또 향수(享受)의 측면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연주자는 자기가 연주할 작품에 대하여 연주하기 전까지는 향수자(享受者)의 입장에 서 있지만, 그 작품을 연주해 보일 청중의 앞에서는 창조자의 입장이 된다. 연주자는 작품을 연주하기 이전에 먼저 깊은 감동으로 그 작품을 체험하는 향수자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원 창조자인 작곡가의 체험을 뒤따라가기 때문에 그러한 입장을 추체험(追體驗)이라고 한다. 또,연주자가 청중의 앞에서 행하는 연주는 작곡자의 원 창조를 뒤따라가는2차적인 창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추창조(追體造)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결국 연주자는 추체험의 결과를 추창조로 펼쳐 보이는 양면적인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독특한 존재 방식을 갖고 있는 입장이다. 이렇게 음악의 연주행위에는 추체험과 추창조라는 두 측면이 동시에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 측면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체험은 수동적이고,받아들이는 것이고,공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는 능동적이고,주장하는 것이며,설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올바른 연주란 정 반대의 입장으로 대립되는 이 두 가지 측면이 조화되는 곳에 존재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그러나 실제로 인간이 하는 연주에서는 그중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연주자는 작곡가의 원 창조를 적극적으로 존중하고,단지 추체험자의 입장에서 자기의 감동을 전달하는 입장으로 연주가 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자기의 추체험을 바탕으로 자기의 창조적인 음악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추창조의 입장에 중점을 두는 연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음악의 연주에는 두 개의 특성을 지닌 두 유형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생기게 된다’ 라는 말은 음악 역사의 변천 과정에서 자연히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출처:김승일,‘클래식의 오해와 편견’,pp.19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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