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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6일 수요일
성동구청 신우회 예배 설교
제목: 인생의 날줄과 씨줄
https://www.youtube.com/watch?v=l5AAxADWP8A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9~10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본을 따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울 때 우리는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이 압축된 주기도문을 주목합니다. 사실 주기도문은 마태복음에서 산상수훈이라는 더 큰 교훈집 안에 실려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가르침을 산 위에서 가르치신 교훈이라고 하여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주기도문이 산상수훈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석 장으로 이루어진 본문을 차분히 읽는 가운데 주기도문을 읽는다면 우리는 주기도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주기도문 중에서 앞부분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종합하고 압축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저도 설교자로서 몇 년을 가르치다 보니 가장 중요한 교훈이 무엇인지 명료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인사말에 담아서 정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저는 누가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기도문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만든 기도문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주님 앞에 있습니다!’ 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매일 매순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 것을 다짐하는 기도문입니다.
이처럼 어떤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핵심 가치를 하나의 문장에 담아서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핵심 가르침을 압축하여 기도문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는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삶이 압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주기도문의 앞부분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멀리할 것입니다. 그런 일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본격적인 간청이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아마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복종하는 것을 나타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편 103편을 보면 천군 천사에 대하여 이런 묘사가 나옵니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편 103:20~21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수종하며 그의 뜻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의 뜻을 저버리기도 하고 아예 듣지도 않을 때가 있는 곳, 그곳이 지금 이 땅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땅이 어지럽고 혼란스럽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도 천군과 천사들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행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를 드린다면 그 사람들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않고 순종하겠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의 순종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펼쳐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이야기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사도행전 26:19~20
사도 바울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않고 따랐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하늘에서 보이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마 사도 바울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는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은 하늘에 그 일에 대한 청사진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 청사진을 하나님이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그때 사람은 그 하늘의 청사진을 보고 자신이 그 뜻을 따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분부에 순종했더니 결국 하늘에 새겨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비는 기도에는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의 천군 천사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비는 기도이며 다짐이면서 동시에 하늘에 이미 그려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바라는 기도이며 동시에 그것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다짐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문은 바람과 다짐의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들려줍니다. 그 중에 두 사람 고낼료와 베드로가 어떻게 하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데 동참했는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께서는 승천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일부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분부대로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며 그들이 능력을 받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그들이 수행하게 될 복음전파의 영역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심을 보고 나서 마가의 집에 모여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를 드린 지 열흘만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이고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때 흩어진 사람들은 온 유대 땅으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렇게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려면 결국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누군가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꺼려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방인들을 만나는 것을 율법과 전통이 금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기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사마리아까지는 복음을 전했지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두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로마의 장교 백부장 고넬료입니다. 그 백부장 고넬료는 비록 로마인으로서 유대인이 보기에는 이방인이었지만 그는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경건한 유대인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감화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입교자 또는 개종자(proselyte)라고 부릅니다. 그는 기도하고 구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욥바에서 기도하는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고 하늘의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기도하는 가운데 본 것입니다. 그 환상은 하늘에서 큰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그 안에는 율법에서 금한 짐승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상 가운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잡아먹으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율법이 부정하다고 정하고 금한 짐승을 잡아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다시 음성이 들리기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고 합니다. 그런 일이 세번 있은 후에 그 보자기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나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사람들을 따라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고넬료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가 설교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감격했는데 바로 그것과 동일한 일이 이방인의 집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유대인들과 같이 받으신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 후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비록 그 전까지는 유대인은 이방인과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통과 관습 속에 살았지만 이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도 함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가 새롭게 깨달은 하늘의 뜻이며 본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베드로는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방인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만나는 것을 꺼리지 말라고 권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제 유대인의 장벽을 넘어서 온 세상 사람을 구원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먼저 하늘의 뜻이 사람들에게 계시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하늘에 그려진 하나님의 청사진이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베틀에 걸쳐진 날줄과 같습니다.
그것은 창조에서 새 창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날줄에 자신의 삶을 투신하는 씨줄이 있습니다. 이 씨줄은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와 고넬료가 이 씨줄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날줄에 믿음과 순종으로 동참했더니 한 폭의 장면이 완성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방인 선교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문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인생을 나름대로 정의합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에게 인생이란 어떤 것입니까?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인생이란, 즉 하나님의 백성에게 인생이란 하늘에 그려진 하나님의 청사진이 나에게 비쳐올 때 그것을 믿고 나의 삶을 드려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늘의 뜻은 나의 순종을 통해서 이 땅에 실현됩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날줄에 믿음의 순종이라는 씨줄이 합쳐져서 한폭의 멋진 그림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인생이란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날줄에 씨줄로서 동참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베드로와 고넬료처럼 다 서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로로 여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이 모임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의 이 자리와 이 모임은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믿음으로 순종하면 우리들은 그것으로 이곳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날줄과 씨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배우고 깨달은 하늘의 뜻을 우리 각자 삶의 현장에서 순종한다면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경륜에 동참하는 현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곳에서 베드로를 만난 고넬료처럼, 그리고 고넬료를 만난 베드로처럼 기뻐하고 감격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고백을 고넬료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사도행전 10:33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는 고넬료의 고백을 보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지난 주에 드린 바로 그 기도문이 아닙니까?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주님 앞에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