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민요 「쌍금쌍금 쌍가락지」 누이를 오해한 데에 대한 원망을 읊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민요 「쌍금쌍금 쌍가락지(雙鑞環)」는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오빠가 누이를 모함한 데 대한 항변으로 이어지는 사설을 담은 노래다.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불러진 유행 민요이자, 짤막한 이야기를 낭송조로 읊조리는 서사민요이다. 민요 「쌍금쌍금 쌍가락지」 노래를 한시(漢詩)에서는 「쌍랍환(雙鑞環)」으로 의역해 전한다.[아래 글에서 소개함]
거제시 「쌍금쌍금 쌍가락지(雙鑞環)」는 여동생이 자는 방에 바람이 불어 문풍지가 떠는 소리를 오해하여, 오빠가 여동생을 의심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민요를 부른 여성 가창자들은 자신들을 오해한 오빠에 대한 원망을 노래하고 있다. 현재 거제지방에 구전되는 <쌍금쌍금 쌍까락지> 민요는 '삼삼기' '모내기' 등을 하면서 부른 부녀 노동요이다. 이러한 민요들이 대부분 4․4조 4음보율이 기본을 이루듯, 쌍가락지 노래 또한 그러하다.
○ 서사민요 「쌍금쌍금 쌍가락지(雙鑞環)」에서 ‘호작질’은 낙서를 하는 등의 손으로 조금씩 무엇을 하는 행위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쌍가락지로 인해 오빠에게 의심 받는다는 민요로, 처녀의 순결과 정조를 생명보다 가치있게 여겼던 조선조의 정절 의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 노래는 전문 소리꾼이 부른 노래가 아니라 실제로는 노동행위를 하면서 일상적으로 불렀던 노동요다. 그런데 거제도에서는 노래 마지막에다가 "야아래다 반바당에 / 알쑹달쑹 갈복쟁이 / 아리담쑥 집어먹고 / 꽃과 같은 임오품에 / 자는듯이도 죽고지야.“라고 덧붙여 불렀다. 이는 '마을 아래 가까운 바다에 나가 황복어 잡아먹고 자는 듯이 죽어, 먼저 간 임 곁으로 가련다'라는 결백과 지조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쌍금쌍금 쌍가락지(雙鑞環)」 소리는 영남권 전역에서 활발히 전승되는 소리이자, 부녀자들이 가장 많이 선호한 통속 민요 중의 하나였다. 거제시 「쌍금쌍금 쌍가락지」 구연자가 말하길, 멍석을 편 마당에서나 방에 3, 4명 혹은 5, 6명 모여서 삼을 삼을 삼으면서 지루하고 무료하여 불렀다고 한다. 또한 모심기 노래로 불리기도 하다보니 모심기 노래와 비슷한 가락으로 불렀다고 일러 줬다.
○ 참고로, 「쌍금쌍금 쌍가락지(雙鑞環)」는 다른 거제민요와 마찬가지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전국 구비문학자료 조사집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 8-1권과 8-2권에 수록되어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79년 7월 27일과 8월 7일에 정상박, 최미호, 홍기섭 조사원이 직접 방문해 거제도에서 채록한 것이다. 거제도의 「쌍금쌍금 쌍가락지(雙鑞環)」 구연자(口演者)는 거제시 상문동 배천수(여, 58세), 일운면 망치 제명순(여, 60세)이다.
● 다음 거제민요 「쌍금쌍금 쌍가락지(雙鑞環)」는 오빠가 누이를 모함한 데 대한 항변으로 이어지는 사설을 담아서 부르는 유행민요다. 경남 유배인 이학규(李學逵 1770~1835) 선생이 거제도를 2차례나 방문해 거제민요 <기성마고사(歧城蘑菰詞) '거제표고버섯찬가'>를 7언 한시로, <쌍랍환(雙鑞環) '쌍금쌍금 쌍까락지'>를 5언 한시로 옮겨 놓았다. '쌍금쌍금 쌍까락지'는 대개 4․4조 4음보율로 구성되어 있고, 여동생이 자는 방에 바람이 불어 문풍지가 떠는 소리를 오해하곤, 오빠가 여동생을 의심하자, 이를 항변하는 여동생의 대꾸가 이어지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한편 거제도 민요에선 사랑하는 임의 품에서 자는 듯이 죽고 싶다는 여운을 남긴 것이 특징이다.
(1) 「쌍금쌍금 쌍가락지(雙鑞環)」 / 배천수, 제명순
"쌍금쌍금 쌍가락지 / 호적질로 딱아 내어 / 먼데보니 달이로세 / 젓태(곁에) 보니 처자로세.
처자애기 자는 방에 / 숨소리가 둘이로세 / 천대(천도) 복숭 울오랍씨(수중한 우리 오빠) / 거짓 말씀 말아주소.
꾀꼬리가 기린 방에 / 참새같이 내 누었네 / 동남풍이 디리 불어 / 풍지(문풍지) 떠는 소리라요.“
*거제도는 150 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결백을 주장하는 위 민요에다가 지조를 강조한 사설을 덧붙이게 된다. '마을아래 가까운 바다에 나가 황복어 잡아먹고 자는 듯이 죽어, 먼저 간 임 곁으로 가련다'라는 내용인데, 독이 든 갈복쟁이는 바닷가 거제도의 특징을 담아내고 있다.
"야아래다 반바당에 / 알쑹달쑹 갈복쟁이 / 아리담쑥 집어먹고 / 꽃과 같은 임오품에 / 자는 듯이도 죽고지야.“
(2) 한시(漢詩) 「쌍랍환(雙鑞環)」 쌍가락지 노래 / 이학규(李學逵 1770~1835)
纖纖雙鑞環(섬섬쌍랍환) 쌍금쌍금 쌍가락지
摩挲五指於(마사오지어) 호작질로 닦아내어
在遠人是月(재원인시월) 먼 데 보니 달이로세
至近云是渠(지근운시거) 젙에 보니 처자로세
家兄好口輔(가형호구보) 오랍 오랍 울 오랍씨
言語太輕疎(언어태경소) 거짓말씀 말아주소
謂言儂寢所(위언농침소) 처자애기 자는 방에
鼾息䉶吹如(한식쌍취여) 숨소리도 둘이로세
儂實黃花子(농실황화자) 나야 본디 국화씨라
生小愼興居(생소신흥거) 애리서로 단정했소
昨夜南風惡(작야남풍악) 동남풍이 디리 불어
窓紙鳴噓噓(창지명허허) 풍지 떠는 소리라요.
◉ 조선후기에 이르러 사대부 사이에서도 민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고, 백성으로부터 애민의식이 점철된 동력이 생겨나, 현실주의적 문학세계에 공감했고, 민중들의 생활양상과 감정을 나타낸 민요를 한시로 수용하기에 이른다. 유몽인 홍만종 최성대 이사질 이유원 홍양호 정약용 이양연 이학규 등은 이에 긴요한 역할을 한 분들이다. 민요에 대한 근대적인 의미로는 민중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의의가 있다. 민요 한시야말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문학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민요를 한시로 옮길 때, 운율에 맞추고자 하는 방법은 그리 간단치 않다. 박제가는 "번역을 하면 말이 비슷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정황을 그려낼 수 없다"고 실토했다. 독자가 한시를 읽으면서 민요의 흥취를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 쌍랍환(雙鑞環)의 저자, 이학규는 민요의 중요성을 정약용과 함께 인식해, 민요시로 옮겨놓은 <앙가오장>을 지었다. 이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설시조와 비슷한 점이 많아 당시에 민요와 사설시조가 서로 넘나드는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 경상남도 거제시 지역의 논농사 민요는 1980년대에 이르러 서서히 소멸 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모여 민요를 부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농업노동요 「쌍금쌍금 쌍가락지(雙鑞環)」는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니다. 주민들이 모여 품앗이 모내기를 하며 노동요를 부르던 풍경은 1990년대에 이르러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라졌다. 그래서 실제 인력으로 농사를 지으며 불렀던 「쌍금쌍금 쌍가락지(雙鑞環)」 노래는 이때 사실상 명맥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