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7장 교육과 학술이 올바른 인간을 만든다
6. 소련과 중국 청년들을 교육시키다
1990년 4월 11일 문선명은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했다. 크렘린 궁을 나오면서 문선명은 소련 붕괴 이후 청년들을 교육시킬 책임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공산주의 교육을 받아온 소련의 청년들, 특히 대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이념과 하나님의 가치에 대해 당장 교육을 하지 않으면 훗날 대혼란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소련 학생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교육시킬 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1990년 5월5일에 창립한 국제교육재단(International Educational Foundation:IEF)은 처음에는 그 이유로 만들어졌지만 후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청년들의 교류와 교육을 실시하는 국제적 기관으로 발돋움했다.
국제교육재단은 윤리도덕 교육을 통한 세계평화 실현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를 조화롭게 통일한 윤리 도덕을 전 세계에 전파하며, 그 목적은 4가지로 요약된다.
ㅡ동양적 가치와 서양적 가치, 영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 전통적 가치와 현시대적 가치에서 최선의 내용들을 통합하고 균형적인 교육을 통해 심정과 인격을 함양한다.
ㅡ인격 개발에 있어 심정이 바탕이 된 교육과 순결한 사랑에 초점을 맞춘 윤리적 가르침으로 금욕 교육 및 약물 남용 방지 등과 같은 청년 이슈들을 해결한다.
ㅡ선의 온상이며 사랑의 학교인 가정을 옹호하는 결혼 교육과 부모 교육을 통해 가정을 강화시킨다.
ㅡ인종, 종교, 민족, 국적 등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갈등 해결법을 가르치고 봉사정신을 장려해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고취시키고 평화의 문화를 조성한다.
소련이 아직 공산주의 국가일 때 그곳의 청년들을 미국으로 불러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소련 당국과의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1990년 7월 1일부터 1991년 10월까지 4차례에 걸쳐 소련 대학생들을 미국으로 불러올 수 있었다. 미국 원리련구회(US-CARP)와 협력하여 대학생국제지도자세미나(International Leadership Seminars)를 순차적으로 열었다. 뉴욕과 워싱턴DC 등지에서 열린 세미나에는 모두 3,500명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대거 참석해 이후 소련 역사와 세계 역사를 바꾸는 데도 일조했다.
이후 소련연방이 해체되면서 러시아 당국은 이런저런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그 근본 이론도 함께 사라지자 교육과 사회를 지탱해온 사상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러자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폭력과 범죄, 마약, 10대들의 임신과 성병 등 사회문제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러시아 당국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고 청년들에게 새로운 윤리를 가르쳐야 했다.
국제교육재단이 과거 소련식의 주입식 교육방법이 아니라 현대에 맞는 교육방법으로 청년들을 가르칠 교재를 개발하겠다고 제안하자 즉시 찬성했다. 통일교 원로 지도자가 국제교육재단의 회장을 맡아 교육연구팀을 구성했으며 뉴욕에 사무실을 열었고 모스크바에도 사무소를 개설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교재가 「나의 세계와 나(My world and I)」이다. 소련 학생들이 이전에 받았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한 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 교과서였다. 재단은 이 교재를 사용해 1992년 11월 크림반도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러시아 89개 지역에서 온 교육자들을 교육시켰다. 국제교육재단이 만든 교육자료들은 이후 70여 나라에서 세미나와 강좌, 커리큘럼에 활용되었고 여러 나라에서 교과서로 채택되기도 했다.
199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중국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6년 동안 정신문명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중국 정부와 비정부기구들과 협력해 각 성・ 자치구・직할시 전역에 걸쳐 120여 차례의 세미나를 열었다. 참사랑축복축전, 순결서약식 등 다양한 활동에 학자, 학생, 언론인, 보건 교육 전문가, 사법전문가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사람이 참가했다. 동・서양의 문화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에서 도덕 교육자와 사법전문가를 대상으로 국제학술세미나도 열었다.
1999년 5월에는 중국과학기술개발재단 산하 까오스치재단위원회와 함께 인민대회당에서 '21세기의 정신문명・건강한 가정・소양교육 및 국제교육재단 중국 활동 5주년 기념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는 중국의 정신문명 건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한학자 총재가 참석해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사회 각 영역의 지도자 700여 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인생이 가야 할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2000년에는 중국, 러시아, 미국, 한국, 일본 등 5개국 대학생과 교육자들을 초청해 '영원한 사랑, 영원한 평화'라는 주제로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를 순회하며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21세기의 중요한 시기에 열린 이 심포지엄은 청년들과 지도자들에게 화해와 우정의 정신으로 가정의 가치를 바로 세워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데 앞장서도록 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
국제교육재단에서 세미나를 받은 소련 학생들은 역사를 변혁시킨 엄청난 일을 했다. 고르바초프가 소련을 개혁시키기 위한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자 국민들은 대환영을 했으나 군부와 일부 공산주의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1991년 8월 고르바초프가 크림반도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때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들은 과거의 공산주의로 돌아가기를 꿈꾸었다. 탱크를 앞세운 쿠데타 군이 모스크바로 진입하자 가장 먼저 반대의 횃불을 올린 청년들이 바로 IEF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시민들을 이끌고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을 펼쳤고 반대가 거세지자 쿠데타 세력은 3일 만에 손을 들고 말았다. 이른바 소련 군부의 3일 천하가 끝난 것이다. 이후 소련은 완전히 해체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꼭 IEF의 역할은 아니었지만 소련 해체와 공산주의 몰락에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