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D16)-23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들
Mahāparinibbāna Sutta(D16)
암시와 빛
3.5. 두 번째로...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고,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고, 삿땀바까 탑묘도 아름답고, 바후뿟따 탑묘(다자 탑)도 아름답고, 사란다다 탑묘도 아름답고,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구나.
아난다여, 누구든지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은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아난다여, 여래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았다. 여래는 원하기만 하면 일 겁을 머물 수도 있고 겁이 다 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분명한 암시를 주시고 분명한 빛을 드러내셨는데도 아난다 존자는 그 [뜻]을 꿰뚫어 보지 못했으니, 그의 마음은 마라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세존께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라고 간청하지 않았다.
3.6.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는 좀 떨어져 있어라. 이제 그럴 시간이 된 것 같구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떤 나무 아래 앉았다.
마라의 간청
3.7. 그러자 마라 빠삐만233)이 아난다 존자가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마라 빠삐만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般涅槃)234)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비구 제자들이 235)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236), 많이 배우고[多聞]237), 법을 잘 호지(護持)하고238),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239), 합당하게 도를 닦고240), 법을 따라 행하며241),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242)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243)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
233) "중생들에게 불행을 불러일으켜 죽게 한다고 해서 마라라고 한다.(satte anatthe niyojento māretīti māro) 빠삐만(pāpiman)이란 그의 별명이다. 그는 참으로 사악한 법(pāpa-dhamma)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빠삐만(사악한 자)이라 부른다. 깐하(Kaṇha, 검은 자), 안따까(Antaka, 끝을 내는 자), 나무찌(Namuci), 방일함의 친척(pamatta-bhandu)이라는 다른 이름들도 그는 가지고 있다." (Ibid)
234) 반열반(般涅槃)은 parinibbāna의 음역이다. 무여열반을 반열반이라 부른다. 무여열반과 유여열반에 대해서는 본경 §3.20의 주해를 참조할 것.
235) 마라가 인용하는 세존의 이런 말씀을 통해서 세존께서 바라는 참된 비구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주석서의 설명을 통해서 이 각각의 의미를 살펴본다.
236) "입지가 굳고(viyattā)'란 도에 의해서 입지가 굳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도에 의해서 오염원들을 잘라 버리는] 수행이 되고(vinīta), 이와 같이 [성스러운 도에 의해서 스승의 교법에서] 출중하다(visārada)는 말이다."(DA.ii.556)
237) “삼장(三藏, tepiṭaka)에 대해서 많이 배운 자들이라고 해서 많이 배운 자들(bahussutā)이다."(Ibid)
238) "법을 호지한다고 해서 법을 호지하는 자들(dhammadharā)이다. 혹은 교학(pariyatti)을 많이 배우고 통찰(pațivedha)을 많이 배웠다는 뜻이다. 교학과 통찰의 법들을 호지하기 때문에 법을 호지하는 자들이라고 알아야 한다."(Ibid)
239)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로 옮긴 원어는 dhamma-anu- dhamma-paṭipanno이다. 먼저 몇몇 주석서들의 설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홉 가지 출세간법(lokuttara-dhamma)을 따르는 법을 닦는 것이다." (DA.ii.578)
"출세간법을 따르는 법이 되는 그 이전의 도닦음을 닦는 것이다."(DA.iii.1020)
"출세간인 열반의 법을 따르는 법인 [그 이전의] 도닦음을 닦는 것이다." (SA.ii.34)
"여기서 '그 이전의 도닦음'이란 위빠사나에 몰두하는 것(vipassan-ānuyoga) 이다."(DAT.iii..307) 그래서 『장부 주석서』의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에는 "성스러운 법(ariya-dhamma)에 이르게 하는 법인 위빳사나의 법을 닦는 것이다."(DA.ii.556)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아홉 가지 출 세간법'이란 예류도·예류과부터 아라한도·아라한과까지의 여덟 성자(四雙八輩]와 열반을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dhamma-anudhamma를 "법과 따르는 법(dhammañca anudhammañca)" (DA.iii.929)으로 병렬복합어로 이해한 곳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출세간]법과 [그것에] 이르게 하는 법'이라는 뜻이다.
240) "합당하게 도를 닦음(sāmīci-ppațipannā)이란 적당한(anucchavika) 도를 닦는 것이다."(Ibid)
241) “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anudhammacārino)이란 법을 따라 행하는 습성(sīla)을 가진 자들이다."(Ibid)
242) "여기서 '법으로(sahadhammena)'라는 것은 원인을 갖추고(sahetuka) 이유를 갖춘(sakāraṇa) 말(vacana)로 제압한다는 [뜻이다.]" (Ibid)
243)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sappāțihāriya)'이란 [해탈의] 출구 (niyyānika, 벗어남, D13.§11의 주해 참조)를 만든 뒤에 법을 설하는 것 이다."(Ibid)
여기에 대해서 복주서는 "아홉 가지의 출세간법을 깨닫게 할 것이라는 뜻 이다."(DAT.ii.195)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홉 가지 출세간법이란 예류도 와 예류과부터 아라한도와 아라한과까지의 8가지와 열반을 말한다.
한편 본서에 pāțihāriya는 iddhi-pāțihāriya(신통의 기적)로 나타나며 이것은 신통변화(iddhividha, 신족통)와 동의어로 쓰인다. 그래서 여기서 도sa-pāțihāriya를 '기적을 갖춘'이라고 옮겼다. 사실 범부를 성자로 만들고, 범부로 하여금 최상의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만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중생들이 욕계 천상을 벗어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마라가 부처님의 출현에 안절부절 못하여 빨리 반열반에 드시라고 권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출처 - 초기불전연구원]
Ciraṁ tiṭṭhatu lokasmiṁ sammāsambuddhasāsanaṁ.
(이 세상에 부처님 교법이 오래 오래 머물기를!)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Sadhu Sadhu Sadhu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