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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는 가짜가 너무 많습니다. / 2022년 12월 18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누가복음 11:37-52
비싸다고 진짜라는 법은 없지만 가짜는 싼 값으로 속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넷에서도 가격을 비교하는 사이트가 있는데 다른 곳보다 월등하게 싼 최저가로 제품을 올리고 돈만 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거나 이상한 것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마트에서 아보카드를 샀는데 시간이 지난 것을 아주 싼 값에 파는 것이었습니다. 마트에서 볼 때는 괜찮아 보였지만 집에 와서 보니 속은 다 썩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도 먹을 만한 게 없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을 싼 값에 팔고 산 것입니다.
아주 저렴하게 싼 값에 팔면 사람의 마음은 흔들립니다. 정상가격에서 50%싼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90%도 합니다. 물론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들이고 신선도 떨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래도 가격에 비해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사는 것입니다.
가성비가 뛰어나 횡재했다 싶을 때도 있지만 돈만 버릴 때도 있습니다. 제 값이 아니고 그보다 싼 값에 물건이 나오면 사람의 마음은 요동하며 미혹을 받는 겁니다. 그만큼 속을 가능도 많은 것입니다.
믿음은 그렇지 않을까요? 성도들도 온전한 믿음이 아닌 저렴하고 싼 적당한 믿음을 지불하고 구원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는데 적은 돈을 내고 산 것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잘 못된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해 정상적인 가격보다 훨씬 적게 지불했다면 온전한 것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대폭 할인된 제품을 살 때에는 그것을 감수하고 사는 겁니다. 50%할인 된 물건을 사고는 정상적인 품질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할인 된 복음을 아주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이마트에 갔을 때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제가 마트에 간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았던 같습니다. 실내에 주차할 데가 없어 옥상까지 올라갔습니다. 뭘 할인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교회와 성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죄인을 구원하는 온전한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으로 할인하여 전해야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고 몰려들지 않을까요? 십자가를 쏙 빼버린 복음 말입니다. 죄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라 부담 없이 듣고 믿을 수 있는 대폭 할인 된 세일하는 다른 복음, 가짜 복음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부인과 희생과 순종 없이 저렴하고 싼 믿음으로도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다고 못을 박은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과 나도 그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을 박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라가야 하는 즉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십자가의 그 믿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싼 값에 팔고 그 가짜 복음을 싼 값에 산 그 가짜 믿음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은 나도 그 십자가에 나를 못을 박고 나와 내 죄와 싸워가며 말씀에 순종하는 그 십자가의 믿음으로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고 순종하는 십자가의 믿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가짜 복음을 가짜 믿음으로 산 자들은 진짜 믿음이 아닌 짝퉁 믿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순종과 행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자신을 십자가에 부인한 진짜 믿음과 순종이 아니라 십자가가 없이 그 육체의 열심과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와 영광이 아닌 자기 의와 자기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영광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볼 때는 같은 예배와 헌금과 기도와 구제와 충성과 헌신 같아 보이지만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정상가격의 아보카드나 대폭 할인 된 아보카드나 그게 그것 같지만 속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람이 속을 볼 수 있다면 아무리 싸도 썩은 것을 돈 주고 사겠습니까? 할인하여 싼 가격에 파는 것을 싼 값에 산 아보카드는 속이 다 썩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제대로 된 온전한 복음을 제 값에 사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찔러 듣기 싫어도 그 복음이 내 영혼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복음인 겁니다. 내 불의와 죄에는 눈을 감고 그저 평안과 칭찬과 위로만 받기만 원한다면 가짜 복음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의 그 복음은 십자가의 믿음으로만 사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입니다.
마귀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는 가짜 복음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마귀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마귀가 어떻게 십자가에 부인하고 순종하겠습니까? 마귀는 십자가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내려오라고 미혹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교회여도 그 안에서 십자가가 없는 가짜 다른 복음을 파는 곳도 너무 많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십자가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세속주의에 할인 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성도들은 인본주의로 싼 값에 사서 구원을 받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절대로 구원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귀가 십자가를 원치 않는 자들의 그 마음을 파고드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과 죄와 회개와 십자가와 순종을 외치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겁니다. 그냥 다 천국 간다고 해라! 평안할 거라고 해라! 잘 될 거라고 해라! 그저 교회에 붙어 바쁘고 일이 있으면 못 나와도 일 없을 때 나와서 헌금 내고 가면 좀 믿음이 있고 구원을 받을 거라고 해달라는 겁니다.
저는 절대로 못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와야 한다고 말입니다. 나를 부인하는 십자가 없이 어떻게 내 죄를, 내 자아숭배를 대속해주신 주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까?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마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속을, 그 속사람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앞에서 비추어 봐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놓는 그 별스럽지도 않는 행위를 의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자 이상히 여겼다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정결함을 지키기 위해 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꼭 손을 씻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감리교는 목사안수를 받으려면 진급시험이 있고 자격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사오년 한 것 같은데 자격심사장에 들어가면 수십 명의 선배 목사님들이 이런 저런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도 자격심사를 받던 기억이 났습니다.
정말 거의 다 쓸데없는 것에 시비를 걸고 의미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왜 셔츠를 색깔 있는 것으로 입느냐? 어디 성경에 색깔 있는 옷은 입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까? 저는 흰색도, 보라색도, 분홍색도 좋아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논문 심사를 하면서 오자가 있다고 지적을 하는데 왜 살지다고 했냐는 겁니다. 살찌다고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제가 거기서 목사님 살지다는 살찌다의 형용사입니다 라고 말하면 그 목사님의 무식이 드러나고 기분 나쁠 것 같아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죄송하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것은 무엇이냐면 그 많은 목사님들 중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전도사님은 교회에서 어떤 복음을 전하십니까? 어떤 말씀을 전하고 그 준비는 어떻게 하십니까? 하루에 기도는 얼마나 하십니까? 성경은 얼마나 읽고 있습니까? 얼마 전에 기도하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왜 한 사람도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본 사람이 없었을까 말입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닌 가 말입니다.
진짜 이런 질문은 사오년 심사를 받으면서 그 많은 목사님들 중에서 한 분에게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셔츠를 왜 컬러 있는 것 입었느냐? 왜 살지다고 했느냐?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왜 당신은 손을 씻지 않고 먹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엎드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 안에 죄가 없어지지 않으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내놓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누구를 심사하는 자리에 서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선배 목회자로 서야 한다면 당신은 교회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죄와 회개와 십자가를 선포하고 있습니까? 순종하는 십자가의 믿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십자가 앞에 엎드려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루에 말씀을 얼마나 붙들고 있습니까? 죄와 싸우고 있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습니까? 이런 것을 물어볼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종교적인 율법주의에 빠져 그 육체의 열심과 행위로 자신을 의롭게 여기며 그 의로 하나님의 아들마저 정죄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가 하나님마저도 판단하는 아주 교만한 영적인 소경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화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고통만 있는 지옥인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교회에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가짜였던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회자의 자녀로 살면서 교회에서 정말 희한한 일들을 많이 본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면 싸우고 소리 지르고 멱살을 잡고 이런 것들을 보며 어린 나이에 하나님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저렇게 하겠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은 없구나. 다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는 다녔지만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교회에 형식적으로 다니던 것마저도 그만두고 서른아홉 살까지 살았답니다. 그런데 죽을병이 든 겁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죠. 그 죽을 병 때문에 혹시 하나님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주님 앞으로 나온 겁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좀 한 번 만나 달라고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겁니다. 병이 나은 겁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겁니다. 그때 이 목사님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하나님께 궁금한 것이 자기가 어렸을 때 교회에 나와 그렇게 싸우던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인지, 그 사람들은 예배며 기도며 헌금이며 직분이며 다 열심을 내던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어냐고 물었답니다. 얼마나 궁금했으면 물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없다면 그 사람이 이해가 가는데 자기가 하나님을 만나보니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었던 겁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다 가짜란다. 가짜가 교회에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목회자들 중에 가짜는 없겠습니까? 두렵고 조심스럽지만 구원받지 못할 가짜 종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가짜들이 하나님을 모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모릅니까? 성령님을 모릅니까? 직분이 없습니까? 예배며 기도며 십일조가 없겠습니까? 가짜들이 없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그 마음의 주인의 자리에 하나님이 안 계신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으로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죄를 그 주인 됨을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만나 마음과 영으로 회개하고 거듭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여 주여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주인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지 못한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는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겁니다. 주인노릇 하는 교만한 내가 죽고 내 안에 겸손하고 온유하고 거룩하고 정결하신 예수님이 주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회개하고 속사람이 거듭난 사람들은 반드시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고 나오는 순종이라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그게 없으면 가짜다! 하나님의 가족이 아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들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고 하셨고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죄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진짜 복음인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가 순종해야 할 십자가의 믿음인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복음밖에 없습니다. 나도 그 십자가에 날마다 나를 못을 박으며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 자들이 심판대 앞에 서자 가짜로 드러났습니다. 불법을 행한 자였던 겁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있을 때 자신도 다른 사람들도 영락이 없이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짜였습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부자 청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철저하게 지켰지만 주님 앞에 서자 여전히 부족한 자였습니다. 십자가에 앞에 회개하고 거듭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짜로 드러난 사람들보다 더 큰 능력과 열심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구해야 할 능력은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은혜이며 열심은 그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며 죄와 싸우며 순종하며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안일하게 교회에 다니며 구원의 소망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어떤 길을 가는지 늘 확인하고 내 죄를 대속해주신 그 십자가에 나를 날마다 못을 박으며 죄와 싸우며 순종하는 그 좁은 길만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을 진짜로 믿어야 합니다. 교회에 교인들은 많아도 진짜는 많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진짜인지 십자가에 앞에서 늘 확인하면서 십자가의 좁은 길만을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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