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봄에 시작한 스킨스쿠버다이빙은 저에게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어릴 적 외숙부님으로부터 스노클링을 배웠던 터라 아르바이트로 장비 구입비와 여행비를 벌기가 힘들었지 부모님으로부터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었죠.
혼자서 할 수는 없었으니 학우들을 살살 꼬드겨 서클도 만들어 훈련도 하고 정식으로 오픈워터(Openwater) 과정도 이수했었죠.
하지만 선배도 없는 다이빙 서클 학생들 주머니 사정이 어련했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학교 다이빙 서클 부원들이 선배들의 지원을 받아 즐기는 보트 다이빙이 너무 부러워 흉내라도 내보려고 동대문시장을 찾아가 수소문해서 미 해군에서 쓰던 군용 구명보트를 구입해서 강이며 바다며 막 다녔는데, 그 중에서 팔당댐에서 출발해서 그걸 타고 내려오면서 부원들끼리 번갈아 가며 핀 수영 훈련도 하고 급류도 타면서 신나게 놀다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광나루에 도착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당시엔 덕소와 암사동 앞 한강의 급류가 굉장히 길었거든요, ^&^
당시에 사용한 구명보트는 얇은 고무 재질에 대략 8명 정도가 탈 수 있는 크기였는데, 바닥은 지금의 래프트(Raft)처럼 튜브로 된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재질의 고무 시트로 밀폐된 버킷(Bucket)형태였죠.
하도 이곳저곳 메고 다니며 탔으니 여기저기 구멍이 나면 본드로 때워 쓰다 보니 7~8년 정도 쓰고 나니 거의 누더기가 되어 결국은 폐기해버렸습니다.
졸업 후, 창업한 카누학교에서 모집한 카누·카약 초보자들을 태워 강 투어를 할 요량으로 PVC 재질의 래프트를 3척 구입해서 썼는데, 그 래프트는 바닥이 튜브로 되어 있어 예전의 구명보트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훨씬 좋았죠.
하지만 여전히 버킷 타입이라 래프트 안으로 물이 넘쳐 들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바가지(Bucket)로 열심히 물을 퍼내야 했기 때문에 철물점에서 구멍 뚫는 공구를 사다가 바닥 튜브 주변 공간을 따라 구멍을 여러 개 내서 썼습니다.
그때가 1980년대 후반이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국내에 본격적인 래프팅 상업 투어까지 발전하게 되었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1984년 미국에서 최초로 자동 배수 래프트(Self-Bailing Raft)가 나왔는데, 말 그대로 래프트 내부로 넘쳐 든 물이 저절로 밖으로 배출되도록 만들어진 래프트입니다.
래프트에서 물이 저절로 배출되는 원리는 (연결된)한 공간에 있는 물은 항상 수평을 유지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간단한 원리에서 착안 된 것입니다. ^^
이 자동 배수 시스템(Self-Bailing System)은 지금은 전세계 모든 급류용 래프트를 만드는 제조사들이 적용할 만큼 표준화 된 시스템으로 래프트에 적용되자마자 곧바로 더키에도 적용 되었는데요.
더키란 것이 주로 오지를 탐험하고 여행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그런 환경들이 대부분 더키 위로 물이 넘쳐들 정도로 험한 수상환경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자동 배수형 더키로 전국의 강 중에서도 주로 급류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녔고 특히 동강은 셀 수 없이 많은 투어를 조직해서 다녔는데 아마 최소 100번은 넘게 갔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여러분이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 더키의 구조(Structure), 특히 자동 배수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살펴봐도 그 더키의 용도나 성능의 수준을 쉽게 알 수 있으니, 그 점을 잘 알고 적절하게 사용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자동 배수 시스템의 장단점
장점 | 순간적으로 완전 침수 수준까지 되었더라도 순식간에 빠져나가므로 침수 우려가 없다. 따라서 조종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으므로 그만큼 물 위에서 기동성과 반응성을 기대할 수 있다. 사용 후 모래를 씻어내는 등 청소하기가 참 좋다. |
단점 | 조금이라도 과적을 하게 되면 배수구로 물이 올라와 반신욕 상태가 될 수 있다. 수온이 낮은 계절에는 방수복에 보온 내의를 입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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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동 배수 시스템에도 단점이 있다 보니 주로 잔잔한 물에서 물놀이 용으로 사용하는 더키는 아예 자동 배수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동 배수 시스템이 없는 더키로 급류가 있는 강이나 파도가 이는 바다나 호수에서 탈 생각이라면 무조건 펌프나 물푸개를 싣고 타야 합니다.
아니면 빨리 강가로 나가서 더키를 완전히 뒤집어 물을 빼던가요.
그런데 이게 그리 말처럼 쉽지도 않고 체력 손실도 크죠.
물이 가득한 더키는 과적 트럭처럼 굼뜨고 침수 면적이 크다 보니 물살에 더 잘 휩쓸리고 균형 잡기도 힘들죠.
어찌해서 강가까지 나갔다 해도 행여 짐을 많이 실었다면 혼자서 뒤집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물 무게를 절대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자동 배수 시스템의 설계 문제
앞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바닥 튜브가 선체 바깥을 두르고 있는 메인 튜브의 바닥면보다 적정한 수준까지 위쪽에 접합 또는 연결되어 있어 적정 인원이 탑승했을 때 흘수선이 바닥 튜브의 윗면(좌석)까지 올라오지 않게 설계되어 있어야 정상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진짜 욕조에 들어가 앉아 더키를 타는 시간 내내 반신욕을 하게 됩니다.
물론 바닥 튜브도 완전히 팽팽하게 공기가 주입 된 상태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바닥 튜브 전체 테두리와 메인 튜브가 끈으로 이어 붙이는 레이스 연결 방식이 가장 신속한 배수가 되고, 테이프 본딩 방식의 경우에는 배수구의 크기와 갯수도 적정한 수준으로 설계되어야 신속한 배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설계상의 문제들은 실제 한번 타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위 그림을 보면 각각의 튜브가 어떤 위치에, 어떤 형태로 접합 되어 있는지 잘 이해가 될 것인데, 실망스럽게도 적지 않은 더키(래프트)의 바닥 튜브와 메인 튜브의 접합 위치가 너무 낮게 설계된 그야말로 자동 배수 시스템을 흉내만 낸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배수구가 너무 낮으면 자동 배수가 아니라 자동 침수가 되겠죠? ㅋㅋㅋ
바닥 튜브 제조 공법
I-Beam 공법:
바닥 튜브의 상하 원단 사이에 I자 형태로 원단을 접합해 놓은 것으로 공기를 주입해서 튜브를 팽창 시키면 길이 방향으로 여러 개의 길죽한 모양의 공기 블럭이 볼록하게 솟아 오릅니다.
오래 사용하다 보면 이 내부 접합 원단이 떨어져 두 개 이상의 블럭이 합체하면서 마치 배불뚝이처럼 되기도 합니다.
특히 내부까지 물이 침수된 이력이 있는 경우에 이런 현상이 잦으며, 제조 과정에서 세심하지 못한 접합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합니다.
Drop Stitch 공법:
흔히 고압지 또는 공간지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것은 바닥 튜브의 상하 원단 내부에 수천~수만 개의 폴리에스터 실이 상하로 접합 되어있어 공기를 주입해서 튜브를 팽창 시켰을 때 거의 평평하게 부풀어 오르게 만든 것입니다.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서 웬만해선 잘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만큼 비쌉니다.
튜브 표면이 평평하게 형성되므로 주로 바닥 매트리스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걸 선체 메인 튜브로까지 쓴 더키도 있더군요. ^^
과압방지밸브
자동 배수 시스템과 함께 공기주입식 카약에 중요한 것이 과압 방지 밸브(Pressure Relief Valve)입니다.
이것은 주로 바닥 튜브에 공기 주입 밸브(Inflation Valve)와 함께 나란히 붙어 있는 것으로 더키에서 가장 압력이 많이 가해지는 바닥 튜브가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압력 이상이 되면 자동으로 공기가 배출되도록 만들어진 밸브입니다.
더키에 자동 배수 시스템이 적용된 것이 좋냐 그렇지 않냐에 대한 논쟁은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실제 더키 사용자들은 자신이 애써 구매한 더키가 어떤 강이나 호수, 바다에서도 투자한 만큼 좋은 성능을 발휘해주기를 바라며, 자신의 더키가 애초에 그런 용도로 만들어졌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원하는 물(water)로 타고 가길 원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딱 이렇게 정리하고 마치죠.
○ 여러분이 만약 파도가 치는 바다나 2급 수준 내외의 급류에서 더키를 타고 싶다면 당연히 자동 배수 시스템이 장착된 더키를 사용하시는 것이 안전하고 기분 좋은 투어를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단단히 각오하고 타시기 바랍니다.
○ 자동 배수 시스템이 잘 만들어진 더키는 2급은 물론 3급의 급류에서도 놀라운 성능을 발휘합니다.
이런 더키는 여러분이 더키를 난생 처음 탄다고 해도 1급 급류를, 1스타 수준(초보)이라도 2급 급류도, 2스타 수준(초급)이라도 3급 급류까지 탈 수 있게 해주는 정말 관용성이 탁월한 더키라는 것을 알아주시길...
○ Drop Stitch 공법으로 만들어진 튜브는 평평한 바닥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빠르고 쾌적한 내부 공간을 제공하지만 더키의 좌우 균형과 안정성에 큰 도움을 주진 못한다는 점과 이런 공법의 바닥 튜브라도 자동 배수 시스템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점은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