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현 칼럼] 공약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과의 계약이다
- "당선만 되면 끝인가… 공약 파기는 시민 배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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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현 칼럼] 공약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과의 계약이다
- "당선만 되면 끝인가… 공약 파기는 시민 배신이다" -
7월 1일, 민선 지방정부가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지방선거를 통해 선택받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과 기초의원들은 취임식을 마치고 본격적인 임기를 시작했다. 선거 기간 동안 이들은 시민 앞에서 수없이 많은 약속을 했다.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했고, 청년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했으며, 어르신 복지와 장애인 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임기가 시작된 지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소식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재정이 어렵다”, “전임자가 곳간을 비워놨다”, “공약을 재검토하겠다”, “현실적으로 추진이 어렵다”는 말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공약은 폐기하거나 축소하겠다는 발표까지 나온다. 선거 때는 반드시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사업들이 취임 후에는 하루아침에 검토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두고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식의 관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시민들은 더 이상 정치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언론도, 시민사회도, SNS도 모두 지켜보고 있다.
공약은 선거용 광고 문구가 아니다. 공약은 국민과 맺는 계약이다. 한자를 보면 공약(公約)은 ‘공적인 약속’이다. 결코 ‘빌 공(空)’ 자를 써서 비어 있는 약속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공약이 마치 빈 약속처럼 취급되는 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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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 없는 공약이라면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예산도 검토하지 않고, 법률도 따져보지 않고, 실현 가능성도 확인하지 않은 채 표를 얻기 위해 남발하는 공약은 결국 시민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다. 세계적으로도 공약을 지키려는 노력은 정치의 신뢰를 좌우한다.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은 선거가 끝나면 공약 이행 계획과 재원 조달 방안을 공개하고 임기 내내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 영국 역시 정부가 출범하면 공약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국민에게 설명한다.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약 이행을 평가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시민이 체감하는 실천이다.
공약을 모두 완벽하게 지키기는 어려울 수 있다.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나 세수 감소, 정부 정책 변화 등으로 계획이 수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시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왜 어려운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언제까지 추진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인의 책임이다. “못 하겠다”, “없던 일로 하겠다”는 한마디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더 답답한 것은 공약을 잊은 정치인들의 태도다. 지역 행사마다 맨 앞줄 귀빈석에 앉아 축사를 하고, 꽃을 달고 박수를 받으며 마치 벼슬을 얻은 사람처럼 어깨에 힘을 주는 모습을 시민들은 매일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자리는 권력이 아니라 봉사의 자리다. 꽃은 시민이 달아준 것이고, 명함은 시민이 만들어 준 것이다. 그 자리는 약속을 지키라는 명령과 함께 주어진 자리이지, 특권을 누리라고 준 자리가 아니다.
정치는 신뢰다. 신뢰는 약속을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 작은 약속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큰 정책을 성공시킬 수 있을 리 없다. 말 한마디의 무게를 아는 정치인이 진정한 지도자다.
불과 20여 일 만에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남은 4년이 걱정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치는 쇼가 아니며, 선거는 이벤트가 아니다. 공약은 당선을 위한 미끼가 아니라 임기 내내 책임져야 할 의무다.
시민은 권력을 준 것이 아니라 일을 맡긴 것이다. 그 권한은 시민의 삶을 바꾸라는 명령과 함께 위임된 것이다. 지방자치의 성공 여부는 화려한 취임식도, 보여주기식 행사도 아닌 공약 이행에서 결정된다.
부디 초심을 잃지 말기를 바란다. 한 번 한 말은 끝까지 책임지는 정치, 어려우면 시민에게 먼저 이해를 구하는 정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정치가 지금 우리 지방자치에 가장 절실하다.
공약은 정치인의 생명이다. 직을 걸고, 신의를 걸고, 시민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