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冬至) 겨울의 기억
'이번 주 시문학 동아리 시 주제인 "동지"를 시가 아닌 중언부언으로 한번 펼쳐 보겠습니다'
동지(冬至)
[낮이 가장 짧은 날인 건 맞지만 해가 가장 늦게 뜨는 날도, 가장 일찍 지는 날도 아니다.
낮이 가장 짧은 날이라 동지에 일출이 가장 늦고 일몰이 가장 이르다는 오해를 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울 기준으로 일출시각은 1월 초순이 동지보다 늦고 일몰시각은 12월 초순이 동지보다 이른데, 이는 일출몰 시각에 지구 공전궤도 뿐만 아니라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와 위도 모두 작용하는 균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동지가 일출시각이 가장 늦고 일몰시각이 가장 이른 날은 아니지만, 일출시각의 변화와 일몰시각의 변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동지가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은 맞다.
마찬가지로 하지도 낮이 가장 긴 날일 뿐, 해가 가장 일찍 뜨는 날도, 가장 늦게 지는 날도 아니다]
출처 [나무위키]
애동지(兒冬至)
동짓달 초순에 든 동지를 일컫는 말.
동지는 양력 12월 21일 또는 22일로 그 날짜가 고정되어 있지만 음력 날짜는 유동적이다.
동지는 보통 음력 동짓달에 드는데 음력으로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라 하고, 동짓달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라 하며, 동짓달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애동지 (한국세시풍속사전)
& 음력은 정확하지 않다???
이것도 정확하지 않은 말이다.
음력은 날짜가 들쭉날쭉 하는 것 같다. 몇 년에 한 번씩 윤달이 있어 통째로 한달이 더 생기기도 한다.
음력으로 윤년이면 1년이 열 두달이 아니고 열 세달이 된다.
황당하지 아니한가?
양력으로 윤년이면 4년에 한 번 2월달에 단 하루가 추가 되는 것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긴 날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다 보면 양력 날짜로는 이달 저달 왔다리 갔다리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음력이 황당무계 정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양력날짜로 셈하다보면 같은 날짜라도 작년은 벚꽃이 활짝 피었는데 올해는 벚나무에 망울이 겨우 맺혀 있는 경우도 많다.
정확하다는 서양력이라고 해도 계절의 변화까지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
옛날 이야기...
나이를 먹다보니 고져 할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 뿐
동지가 지나고 나면 곧 연말 연시 한해가 끝나고 새해가 온다.
예전에는 양력설 음력설 엄격하게 구분했었다.
지금은 양력 새해는 그냥 새해고 음력 새해는 설날이라고 민족 고유의 명절이라고 한다.
전에는 용어도 딱딱하게 신정(新正) 구정(舊正)하고 엄격하게 나누었다.
세계화 시대에 발 맞추어 이중과세를 막는다고 음력설은 설이 아니라고 강변(强辯)
양력설은 연초 1.2.3일을 연휴로 쉬고 음력설은 아예 공휴일이 아닌 그냥 평일이었다.
남들은 집에서 설 차례 지내고 떡국먹고 갈비 먹고 하는데 공무원이나 공공기업 종사자는 바쁘게 차례지내고 출근해야 했다
민간에서는 설이라고 민족대이동 귀성전쟁이 벌어지고 시장도 다 철수 고향에 내려간 시민이 많아 서울시내가 썰렁하였지만.....
정부에서는 시침 뻑까고 모른척 그야말로 까라면 까야 하는 권위주의적인 시절이었다.
민주주의
민주정신이 발현해서라기보다는 선거에서 이길 표를 얻겠다는 심산(心算)의 발로였을 것이다.
정부와 민간의 양력설과 음력설의 괴리(乖離)를 보다못한 정부에서 민심도 얻을 겸 겸사겸사해서
양력설은 1월1일 하루만 쉬고 음력설과 추석은 명절 당일 앞뒤로 하루씩 쉬는 날로 정해서 음력설과 추석이 3일 연휴가 되었다.
어찌 되었든 대통령 간선제가 끝나고 직선제 이후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시작된 1989년부터 설날 명절이 3일 연휴가 되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85년부터 음력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하였고, 1989년부터 민속의 날을 '설날'로 이름을 바꾸고 설날을 3일 연휴(음력 12월 30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로 하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음력 1월 1일 음력설을 전통적인 명절로 간주하고, 묵은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한 해의 첫날이라는 새해 첫날의 의미는 양력 1월 1일인 양력설이 더 강하다.
[출처- 위키백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설
북한은 양력 1월 1일을 설날로 간주하며 중요한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다만, 전통을 중시하기 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67년부터 음력설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북한은 음력 1월 1일을 단지 휴식일로 간주하고, 새해의 첫 날이라는 의미는 양력 1월 1일에 두고 있다.
양력 1월 1일 새해 첫날을 북한에서는 설날이라 부르며 더 중시하고 있다. (짜식들 주체사상을 내다버렸나??)
[출처- 위키백과]
기나긴 겨울밤
내가 서울로 이사하기(1970년) 전까지 살았던 시골마을은 아주 아주 깊고 깊은 산골짜기도 아니었지만
문화혜택은 거의 받지 못하는 아주 애매모호한 시골동네였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당연히 텔레비전은 언감생심
건전지를 사용하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도 동네에 몇 집 없었다.
긴긴 겨울밤이면 라디오 있는 집으로 라디오 들으러 마실도 가고 했었다.
그때 들었던 라디오 드라마가 '섬마을 선생님' '남궁동자' ..... 등등이 기억 난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쌀 소비좀 해달라고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애걸복걸하고
농촌에서는 농토에 쌀나무를 심지 않으면 휴경지원금(休耕支援金)까지 준다고 한다.
농사 안짓고 논다고 돈을 준다니 예전 생각하면 이거야 말로 파천황(破天荒)
농촌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지금이고 옛날은 옛날
옛날 그 시절은 쌀이 참 귀했다.
쌀밥은 고사하고 잡곡밥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동지 그러니까 겨울의 날씨 특성을 식량절약에 이용했다.
당시 시골에서는 시계가 없었고 시계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여름엔 바쁘니까 해가 뜨기전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잠을 잤다.
삼태성(오리온 별자리)이 등성이에 걸리면 어느 때 쯤인가하고 짐작을 했었고
가까이 있던 충북선에 첫 기차가 지나가면 이제 일어나야지 하고 시간 계산을 했었다.
겨울이면~~
농한기라 한가하니 해 뜨면 느긋하게 아침 먹고 해가 뉘엿뉘엿하면 일찌감치 저녁밥을 먹었다.
점심은??
'점심은 없다' 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해가 짧으니 아침은 느긋하게 먹고 저녁은 일찌감치 먹고 저녁에 배고프기 전에 잠자리에 든다는....
낮이 짧아졌다고 하루 24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예전 시골에서 겨울날 저녁 8시는 그야말로 깊은 한밤중이었다.
아이들이야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지만 어른들은 아니었다.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며 다가 올 농사철을 대비하기도 하고
골방에 모여 술빵치기 묵빵치기라는 화투놀이도 하였다.
그게 뭐 대단한 노름판까지는 아니겠지만 긴긴 겨울밤 시장끼를 달래는 일종의 심심풀이였다.
술빵치기는 막걸리 내기 화투판이요 묵빵치기는 요즘으로 치면 묵밥 묵사발 내기 화투치기였다
가혹하던 시골마을에서 서울로 이사오니 서울의 겨울밤은 달랐다.
겨울이면 골목마다
" 메밀 무욱 사려~~~ 찹쌀 떠~~억 "
그래서인가 모두들 무작정 상경해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21세기의 찹쌀떠~억 세련되기도 해라~~
첫댓글 박학다식...
잘 읽었습니다
배우는게 많네요
누구나~
기나긴 겨울밤 기억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