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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선배부부와 이스마일 사마일 영묘로 간다. 지도를 참고해 20여 분 걸어가니 공원 한가운데 이스마일 사마일 영묘가 보인다. 영묘 앞엔 손, 발, 얼굴을 씻는 물을 가둬 두는 연못, 즉 하우즈(hauz)가 있는데, 하우즈의 물은 위생적인 이유 때문인지 모두 빼서 마른 연못 바닥이 드러나 있다.
이스마일 사마일 묘(Ismoil Somoniy maqbarasi)는 892년에서 943년 사이에 지어진 중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벽돌의 독특한 모양들이 내 눈길을 끈다. 묘 내부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새벽이라 관리인도 없어 무료로 구경한다. 이 건물은 부하라를 수도로 삼았던 이슬람왕조인 사만제국의 왕이었던 이스마일 이븐 아흐마드의 영묘이다. 본래 선친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으나 그가 죽은 후 그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까지도 이곳에 묻혀 사실상 샤마니 왕족의 묘당이 되었다. 몽골군의 침략에 의해 부하라는 무참히 파괴되었으나 다행히 이 묘당은 화를 면했는데 이 무덤이 몽골의 침략으로 파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파괴를 피하기 위해 모래로 묻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1934년 소련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2년에 걸쳐 발굴되었는데, 건축양식은 고대 이슬람형식과 그 당시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한 배화교도의 인구가 많아 배화교 양식과 소그드인들의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양식이라 한다. 특히 이슬람의 건축양식인 돔이 있는 사원은 이 지역 불교 탑에서 유래되었는데, 탑의 복발은 이중구조로 되어 그 복발 안에서 수행하며 걷도록 되어있으나 이 지역이 더워서(여름엔 50도까지 상승) 복발이 점차 작아지고 중생을 상징하는 기단부가 커지면서 기단부에서 수행하며 기도하는 장소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묘의 배치는 다소 단순해 가로·세로가 각 9m고 벽 두께가 1.8m에 달하는 정방형 건물로 벽돌로 벽을 세우고 반구형 돔형 지붕을 얹었는데 외벽은 내측으로 약간 구부러졌다. 외벽 네 면은 동일한 모양이며, 섬세한 빛을 발산하는 독특한 문양을 가지고 있다. 사용된 벽돌은 수 천년을 견딜 수 있도록 낙타 젖을 섞어 반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흙과 낙타 젖을 섞은 벽돌은 단단한 비스킷 같은 느낌이다. 벽돌을 요철 모양으로 쌓아 명암을 나타내고, 4개의 문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내부의 색조를 드러낸다. 묘당 안의 물기는 수로를 파 조절했다. 묘당 안 바닥은 네모반듯한 사각형이고 천장인 돔은 둥글다. 이건 땅은 네모지고 하늘(우주)는 둥글다는 중국 베이징 천단(天壇)이나 우리나라 석굴암 등에서도 볼 수 있는 동양적인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 우주관인 것 같다.
건물은 한 칸 크기로 크지 않은 규모이며 반구형 돔 지붕 형태를 한 단순한 구조지만 벽돌을 쌓아 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벽면은 다양한 문양의 벽돌로 여러 가지 모양을 보여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건물의 규모와 형식은 매우 단순하지만, 외벽 문양은 매우 화려하다. 단순함과 화려함, 이 상반된 두 미감이 매우 조화로우면서도 묘하게 잘 어울리는 느낌을 준다. 내부 역시 벽돌로 여러 가지 문양과 장식을 돋보이게 만들었으며, 출입문 외에 나머지 3면의 문은 벽돌로 문양을 내어 쌓았는데, 바깥 빛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매우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슬람은 화려한 무덤 건축을 금지했기 때문에, 이 묘는 초기 이슬람건축양식이 중앙아시아 지역의 전통 건축과 결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스마일 사마니 묘는 그 당시 이슬람법에 어긋나는 묘비 건축이었지만, 사마니드 왕조는 이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과 유산을 과시하고자 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스마일 사마니는 죽은 후에도 40년 이상 이곳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해 왔다고 한다. 그 한 예로 주민들이 어떤 판단을 원할 때, 그의 묘에 와 기도하고 자문을 구하면, 그 다음날 대답을 받고 즉시 그들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현지인들은 숨을 참고 묘를 두 바퀴 돈 후 소원을 빌면 반드시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실제 숨을 쉬지 않고 두 바퀴 도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차슈마 아유브 묘(Chashma Ayub Mausoleum)다. 차슈마 아유브(Chashma Ayub)는 페르시아어로 욥의 샘(Job's Well/Spring)을 의미하며, 아유브(Ayub)는 이슬람에서 구약성경의 "예언자 욥(Job)"을 칭하는 이름인데, 욥의 샘(Chashma-Ayub Mausoleum)은 구약성서의 욥기에 나오는 욥이 이곳을 지나다 가뭄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지팡이를 내려쳐서 물을 나오게 했다는 곳이다. 지팡이로 땅을 쳐서 물을 나오게 하는 것은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에 모세가 애굽(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목말라 하는 백성을 보고, 바위를 돌로 쳐서 물이 나오게 하여 백성을 먹였다고 하는 내용과 비슷하다. 욥의 샘은 지금도 챠슈마 아유브 묘 내부에 있다. 부하라의 다른 건축물들이 대부분 반구형 돔을 가진 것과 달리, 차슈마 아유브 묘는 원뿔형 이중 돔 지붕이 특징인데, 이 양식은 티무르가 정복했던 호레즘(Khwarezm)지역의 건축양식(유목민 텐트 구조에서 유래)을 부하라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직사각형 구조로 시대를 달리해 지어진 4개의 방이 동서축으로 배치돼 있으며, 각 방 위에 모양이 다른 돔들이 얹혀 있다. 이곳에는 현재도 예언자 욥과 치유의 샘물에 대한 믿음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 물을 한 모금씩 먹고 간다고 하지만, 혹시 배탈이 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물은 먹지 않고 구경만 한다. 이곳은 단순한 욥의 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즈베키스탄의 물과 관련한 내용들이 전시돼 있는데, 아랄 해의 물이 말라서 사막화가 되어 가는 과정과 현재의 아랄 해의 모습들이 사진으로 비교 전시되어 있는데 인간들이 아랄 해로 들어가는 물길을 막아서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욥의 샘 앞에는 부하리기념관이 있는데 그가 편집한 ‘하디스’를 상징하는 책을 형상화해 놓았다. 부하리의 본명은 무하마드 이븐 이스마일 알 주아피이나 부하리는 부하라 출신이란 뜻으로, 무슬림들은 출신지를 강조해 출신지를 이름으로 대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810년 부하라에서 태어나 11살 때부터 성훈학(마호메트의 언행을 연구하는 학문)을 배웠고 16살에 가족들과 함께 메카로 순례를 갔다가 대부분을 그곳에서 머물면서 600,000개 이상의 마호메트의 언행을 수집해 그 중에서 인증된 7,300여 개의 언행을 엄선해 97권의 책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자연인인 마호메트의 언행으로서 절대신 알라의 계시인 코란과 동일시 할 수 없어 경전으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코란에 버금가는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말년에 그가 태어난 부하라에서 살기를 원했지만 그를 시기한 부하라의 왕에 의해 추방당해 사마르칸트에 머물다 60세가 되던 해인 870년에 사마르칸트에서 죽어서 그곳에 묻혔으며 그의 영묘는 지금 사마르칸트에 있다고 한다.
차슈마 아유브 묘 구경을 마치고 아르크 성으로 가는 길에 Bolo havuz masjid가 있는데 이 모스크는 1712년 당시 통치자 아부 파유드 칸(Abu Fayud Khan)이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는데‘연못 옆 모스크’란 뜻이다. 볼로 하우즈 모스크는 부하라의 역사적 건축물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목조 기둥과 연못에 비친 모스크의 모습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이 모스크는 다른 이름은 금요일의 모스크(Friday Mosque)로 Ark 성채 맞은편에 지어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이다. 이 모스크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화려하게 장식된 20개의 나무 기둥이 지탱하는 거대한 아이반(Iwan, 정문 홀/베란다)이다. 기둥마다 우즈베키스탄 전통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색도 칠해져 있어서 낡은 느낌은 있지만 무척 화려했다. 연못에 비친 기둥의 모습은 모스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현지인들은 기둥이 40개라고 하는데, 연못에 비친 기둥까지 합해서 세면 그렇다는 것이다. 왕이 기도하던 곳이라 왕의 모스크로도 불리며, 지금도 예배가 진행된다고 한다. 나무 기둥 상단부 무카르나 장식은 모하메드가 종유석으로 가득 찬 동굴에서 신으로부터 코란을 받은 것을 상징하는 입체 디자인으로 건물의 장식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모스크나 마드라사에서 볼 수 있다. 이슬람 도시에는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 이슬람교도 전원이 예배할 만한 규모의 모스크가 하나씩 있는데, 금요일의 모스크란 바로 그런 모스크를 의미하는데, 이 모스크는 부하라에서 상당히 규모도 크고 종교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던 모스크였을 것이다. 이 모스크에는 연못이 있는데 부하라에 남은 3개의 연못 가운데 하나로, 옛날에 부하라에는 이런 연못이 많이 있어 모스크나 마드라사 근처에 위치한 연못은 무슬림이 예배를 드리기 전에 손, 얼굴, 발 등을 씻어 정결하게 하는 의식인 Wudu에 사용되었고 부하라의 상수원으로도 쓰였는데, 오랫동안 물의 순환이 잘되지 않아 위생 문제를 일으켰고, 콜레라를 전파하는 온상이 되기도 하여, 1920년대에는 대부분의 하우즈가 매립되었고 지금은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 얼굴을 씻는 별도의 "재계실 Ablution Room"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볼로 하우즈에서 길을 건너면 아르크성(Ark of Bukjara)이 나오는데 아르크성은 7세기 호자 하우톤 여왕이 아랍과 전투를 했다는 가장 오랜 기록이 남아있고 오랜 기간 동안 전투로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였으며 현재 성의 모습은 제1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것을 1980년도에 복원한 모습이라고 한다.
아르크성(Ark of Bukjara)은 5세기경 건설되어 부하라의 칸(Khan)과 에미르(Emir)들이 거주하던 궁전으로, 그들의 권력과 위엄을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칸은 몽골제국과 중앙아시아의 여러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사용된 칭호로, 주로 부족 지도자나 왕을 의미하며, 에미르는 이슬람세계에서 사용된 칭호로 왕자나 지배자를 의미하며, 술탄 휘하의 군사·행정 지도자로 특정 지역이나 국가를 통치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칸과 에미르 두 가지 칭호는 각각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다른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그 만큼 부하라는 지리적으로 페르시아와 가깝고 지정학적으로 실크로드의 중요한 교역지로 외세의 침략을 받아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부침을 겪었다.
페르시아어로 ‘성채’라는 뜻의 사암으로 지어진 아르크성은 고대 부하라의 발상지로서, 둘레 780m의 성곽에 42,000㎡의 면적을 가진 큰 성채로 벽 높이는 16~20m이며 성의 모습은 북두칠성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고 궁전에는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7개 기둥이 있다고 한다. 7세기 훗다하우튼 여왕이 이 성에서 이슬람군의 침략에 대항했으며, 13세기 몽골군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살육당한 현장이란다. 1920년 러시아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왕들이 살았던 성이며,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하며 지금의 건축 양식은 18세기 부하라 칸국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성문은 굳게 닫혀 있어 오후에 구경하기로 하고 성 외곽 모습만 보고 발길을 돌린다.
성 뒤를 돌아서 칼란 모스크로 가는 길엔 유적지 발굴현장이 있다. 안내판에는 이곳이 “Archaeological site of Shahriston으로 BC 3세기에서 16세기까지의 유물이 지하에 묻혀 있다”라고 적혀 있다. 2,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 부하라이니 중세가 아닌 기원전의 역사이므로 아직도 발굴이 진행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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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러한 역사적인 유적과 가록이기 넘아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네요. 사진도 생생하게 잘 찍으셨고 설명도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입니다. 애 많이 쓰셨고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