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3년 어느 가을날, 아프리카를 떠나 자메이카로 향하던 영국 국적 한 노예선에서 잔인한 사건이 발생했다. 항해 도중 배의 갑판 아래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 와중에 선적된 노예들이 하나둘 죽어간 것이 그 발단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승무원들은 공포에 휩싸여 있던 흑인 노예들 가운데 병들고 지친 이들을 골라 차디찬 바다 속에 수장시켜버렸다. 노예들은 살아 있는 재산에 지나지 않았고, 따라서 자연사한 노예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험금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짐을 온전히 운송하는 것만이 목적이었던 선장은 노예를 죽임으로써 보험금을 수령하려 했다. '유실된 짐'에 대한 금전적 배상만을 기대했던 것이다.
터너의 '노예선'은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붉은 빛과 노란 빛의 강렬한 변주, 잿빛 바다와 하얀색 하늘이라는 원색의 대조, 그리고 물결치듯 덧칠한 현란한 붓질을 통해, 터너는 이 비인간적인 사건을 고발하고 있다. 터너는 대기나 물 또는 불과 같은 요소들의 대립으로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또 폭풍우나 화재 같은 거대한 자연현상을 강렬한 색채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풍경화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낭만주의 화가였다. 거센 풍랑에 휩쓸리는 난파선을 현란한 색채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노예선 역시 이러한 화풍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사실을 소재로 당대 사회를 통렬하게 고발했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소위 '역사화'와 같은 감동을 선사한다.
그림 좌측 가운데에는 노예들을 바다에 버리고 폭풍우 속으로 나아가는 범선의 모습이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우측 하단에는 그들이 버리고 간 노예들이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 떠다니고 있다. 여전히 쇠사슬에 묶여 있는 노예들의 팔다리 주위에 몰려든 물고기와 갈매기 떼만이 이 사건을 무심히 기록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터너가 과도한 원색의 대조를 통해 표현하려 했던 것이 비단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힘뿐이었을까. 오히려 그보다 더 광폭한 반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지난 11월 초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된 지 1년이 지났다. 바닷바람이 더욱 매섭게 느껴지는 겨울의 초입, 이 그림이 떠오른 것은 바로 진도 앞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교묘한 기시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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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철 신라대 역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