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소
아! 저는 작지만, 예언자나 학자들처럼 다른 이들의 영혼을 비추고 싶습니다. 저는 사도가 될 성소를 갖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당신의 이름을 퍼뜨려, 당신의 영광스러운 십자가를 외방에 꽂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 지극히 사랑하는 하느님! 저는 한 가지 사명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복음을 세계 방방곡곡, 가장 멀리 떨어진 섬에 이르기까지 전하고 싶습니다. 단지 몇 해 동안만 선교 사제의 일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세상이 시작한 때부터 이 세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하고 싶습니다..... 오, 지극히 사랑하는 그리스도님, 무엇보다도 당신을 위해 제 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고 싶습니다. ‘순교’, 이것이 제 어릴 적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가르멜 수녀원의 생활 속에서 점점 커져 갔습니다.....
그러나 곧 이 꿈이 어리석은 것임을 느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종류의 순교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모든 순교를 다 당해야만 겨우 만족할 것입니다..... 공경하는 예수님, 저도 당신처럼 매를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싶습니다..... 바르톨로메오 성인처럼 가죽이 벗겨져서 죽고 싶습니다..... 요한 성인처럼 끓는 기름 가마에 잠기고도 싶습니다. 순교자들이 받은 모든 형벌을 다 받고 싶습니다.....
아녜스 성녀와 체칠리아 성녀처럼 칼 아래 목을 들이밀고 싶고, 사랑하는 잔 다르크 성녀처럼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서 “오, 예수님!”하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적들’시대에 교우들이 받을 형벌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그 형벌에 제 몫이 남아 있었으면 합니다..... 예수님, 제 모든 소원을 쓰려면, 모든 성인들의 행실이 적혀 있는 ‘당신의 생명의 책’을 빌려야만 할 것입니다. 그 책에는 모든 성인들의 행적이 적혀 있는데, 저는 당신을 위해 그 행적들을 모두 행하고 싶습니다.
오, 예수님! 이런 제 어리석은 생각에 어떤 대답을 주시겠습니까.....? 제 영혼보다 더 작고 힘없는 영혼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제가 이렇게 약함을 아시고 당신께서는 제 ‘작고 어린’ 소원을 채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보다도 더 큰 다른 소원도 채워 주려 하십니다.
교회의 심장에서
이 간절한 소원은 묵상할 때 순교만큼의 고통으로 바뀌어서, 무슨 대답이라도 얻고 싶은 마음에 바오로 사도의 서간집을 폈습니다. ‘코린토 1서’12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사도와 예언자’와 교사 등 여러 가지가 동시에 될 수 없다는 것, 교회는 여러 지체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눈이 동시에 손이 될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분명한 대답이기는 했지만, 제 소망이 채워진 것도 평화가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텅 빈 무덤가에서 줄곧 울던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가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그녀가 찾던 것을 발견했던 것처럼, 저도 제 허무의 깊은 속까지 저를 낮춤으로써 오히려 높이 올라가 제 목적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십자가의 성 요한의 탈혼에 대한 제2의 찬가)
저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 읽어 나가다가 이 구절에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그리고 사도께서는 어째서 아무리 완전한 특별한 은사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지를 설명하셨고..... ‘하느님께 확실히 가기 위해서는 사랑이 가장 훌륭한’길이라는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마침내 저는 안정을 찾았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신비체를 살펴보니, 바오로 사도께서 설명하신 지체의 어떤 곳에서도 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모든 지체에서 저를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사랑’이 제‘성소’에 대한 답을 주었습니다. 만일 교회가 여러 지체로 이루어진 몸이라면, 모든 기관 중에 가장 필요하고 가장 귀한 것이 교회에 있을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교회에는 심장이 있고, 이 심장에는 사랑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교회의 모든 지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과, 사랑의 불이 꺼진다면 사도들은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이며, 순교자들은 피를 흘리려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사랑은 모든 성소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과 모든 것도 포함한다는 것..... 즉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미칠 듯한 기쁨에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오, 제 사랑이신 예수님..... 제 성소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제 자리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이 자리를 제게 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마음’속에서 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저의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가 왜 미칠 듯한 기쁨이라고 말했을까요? 이 표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항구로 안내하는 등대를 바라보는 항해자의 고요하고 맑은 평화라고 할 것입니다..... 오, 사랑으로 빛나는 ‘등대’여! 어떻게 해야 당신께 도달할 수 있는지 저는 압니다. 당신의 불꽃을 차지할 수 있는 비밀을 찾았습니다.
저는 힘없고 약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제가 ‘당신 사랑의 희생으로’저를 드릴 용기를 내는 것은, 제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깨끗하고 흠없는 제물만을 ‘강하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받아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완전한 희생이 필요했지만, ‘두려움의 법’을 ‘사랑의 법 ’이 물려받았고, 사랑은 약하고 불완전한 피조물인 저를 제물로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사랑할 만한’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사랑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허무까지 내려가, 허무를 ‘불’로 바꾸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 예수님, 사랑은 사랑으로밖에 갚지 못한다는 것(성 요한<영적 찬가>제9노래)을 저는 압니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을 ‘사랑’으로 갚아, 제 마음을 위로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주님, 이것이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세속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영리하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주신 교훈이었습니다. 빛의 아이인 저는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그리고 ‘모든 성소를 차지하고자 하는’제 소원이 저를 불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소원들을 ‘제 벗을 만드는 데’ 썼습니다.....
엘리사가 그의 스승 엘리야 예언자에게 ‘두 가지 능력’을 청할 때 드린 기도를 생각하고, 천사들과 성인들 앞에 나아가 말했습니다. “저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작은 자입니다. 저는 제 비천함과 약함을 압니다. 그러나 높고 너그러우신 분들이 은혜 베풀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도 압니다. 그러니 하늘나라의 ‘복되신’ 분들이여, ‘저를 양녀로 받아들여 주시기를’청합니다. 제게 주실 영광은 오직 당신들께로만 돌아갈 것입니다. 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제 기도가 합당치 못한 것을 알지만, 감히 ‘당신들의 두 가지’ 사랑을 제게 주시기를 청합니다.”
첫댓글 사랑의 성소...이것은 주님께서 모두에게 주신 성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주님의 사랑을 받고 감사함의 정도는 다른 정말 무디고 완악한 이 마음에 온전히 주님의 사랑을 모든 것에서 느끼고 성녀님처럼 언제나 주님께 달려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아멘!
사랑의 성소...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서 가진 것 하나 없고 너무나 불완전하며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가 드릴 것은 사랑밖에 없음을 일깨워주신 성녀님...부족한 저도 예수님께 받은 무한한 사랑을 사랑으로 갚아야 하겠다는 행복한 부채감(?)을 마음껏 누리며 그 길을 열심히 가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