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태어난 엠마누엘
-이태석 신부(살레시오회)
좀 지난 얘기지만, 5년 전 이곳 톤즈에 와서 처음으로 맞이했던 성탄절을 기억해본다. 캐롤송도, 크리스마스트리나 구유 장식도, 선물교환도 없이 사순절 같은 조용한 크리스마스였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어느 해보다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은혜로운 성탄절이었다.... 성탄절이 되기 3~4주 전부터 이곳 사람들은 그날 입을 깨끗한 옷 한 벌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들을 한다. 고작 한두 벌씩만 옷을 가지고 있는 이곳 사람들이기에 그런 것일까? 새 옷을 사기 위해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와우’ 라는 마을까지 일주일 동안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탄전야인 24일까지도 옷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도 마지막 희망은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수도원이다. 성탄절 이틀 전부터 수도원은 아침부터 새 옷을 얻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외국에서 들어온 구호물자로 쾌쾌한 냄새가 나는 헌 옷이지만 그들에게는 아기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고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기 위해 꼭 필요하고 소중한 새 옷이다.
기백만 원하는 어떤 유명 브랜드의 옷들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순수한 기쁨을 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앟아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마음에 드는 색깔과 무늬의 옷을 들고 몸에 대고 재보고 돌려보고 입어보며 기뻐하는 이들의 밝은 얼굴에서 어느 새 아기 예수님이 오셨음을 느낄 수가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정미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성당 안에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들은 삶의 예술가들이다. 온 정성을 다해 최대한 꾸며 입고 온 옷들은 더 이상 구호물자도 쾌쾌한 냄새가 나는 헌 옷이 아니다. 머리는 어떻게 그리 예술적으로 딸 수 있는지, 반나절 이상은 걸림직한 예쁜 헤어스타일도 많다.
180센티미터 이상의 늘씬늘씬한 선남 선녀들!(딩카족은 세상에서 제일 키가 큰 부족이다.) 머리는 작은데 다리는 왜 그렇게 긴지. 옷 가게도 화장품 가게도 미장원도 없는 곳이지만 파리의 유명한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전기가 없는 곳이기에 작은 자가 발전기를 돌려 형광등을 켰는데 생전 처음 보는 전등 빛이어서인지 미사 중에 형광등만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개개인이 들고 온 생전 처음보는 신기한 악기들은 음악으로 아기 예수님을 찬미하는데 충분했다. 여러 형태 여러 크기의 북들, 엽전 같은 것을 철사에 엮어 흔들면 찰랑찰랑 소리나는 악기들, 미국 국기가 그려진 식용유 깡통을 자르고 구부려 아주 얇은 필통처럼 만들고 안에 옥수수 낟알들을 넣어 두 손으로 잡고 춤을 추듯이 흔들며 ‘싹 사사 싸악’하고 자연스럽고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대는 강냉이 필통, 고장 난 자전거 페달에서 빼낸 작고 동그란 두 중심축 (서로 두드리면 아주 맑고 고운 종소리가 난다), 거기에다 가늘고 높고 까랑까랑한 그네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들까지 합쳐졌다.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그 창조의 주인공이셨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미사 내내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전쟁의 상처와 아픔이 있는 곳, 처절한 가난이 있는 곳, 세상 어느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소외받는 이곳, 그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셨네요! 감사합니다.’ 미사 중에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끓어 넘쳐흘렀다.
다음 날 아침 성탄 미사는 45킬로미터 떨어진 공소에서 드리게 되었는데 아직 건물이 없어 큰 나무 밑에서 미사를 드리지만 거의 천명 이상의 많은 신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와 기다리고 있었다. 막 도착했을 땐 그날 그곳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날, 미사를 드리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쿵’ 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곳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더 이상 미사를 진행할 수가 없어 중단하고 그곳으로 가보았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여자는 다름아닌 만삭의 임산부였다. 미사 도중이었지만 산고가 너무 심해 흙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황당했다.
입던 제의를 벗고 아기를 받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거기서 아기가 태어나면 안될 것 같아 일단은 조금 떨어진 다른 나무 밑으로 여인을 옮기고 그 주위로 열명의 아주머니들이 둘러싸 인간 커튼을 만들게 한 뒤 계속 미사를 진행했다.
강론 후 한참 세례를 주고 있는데 갑자기 박수소리가 들리더니 눈 앞에 포대기에 싸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기가 세례를 받기 위해 나타났다. 방금 나무 밑에서 출산 된 아기였다. ‘에그머니나! 성탄절 미사 중에 그것도 성당 안에서 웬 출산이람! 태어난 지 5분도 채 안됐는데 식기 전에 세례를?!’
전날 자정미사 전에 ‘간단하게라도 구유를 만들어 놓을 걸’ 하고 후회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마구간보다 더 초라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이곳이 바로 예수님이 기뻐할 구유이거늘 무슨 또 다른 구유가 필요한 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곳의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 속에 예수님의 구유는 이미 녹아 들어 있고 이곳이 제일 처음으로 찾아야 할 참된 구유라는 것을 예수님도 미리 알고 계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사 중에 나무 밑에서 한 아기를 태어나게 하셨다. 혹시 그 아기가 진짜 예수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그 아기의 이름을 ‘엠마누엘’ 이라고 지었다.
스스로 선택하시어 가장 가난하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그런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매년 준비 하는 화려하고 비싼 크리스마스 장식과 구유 그리고 꽃꽂이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화려하고 값비싼 구유에 편안하게 누워 계실 마음이 생기실까?
교회가 가난한 이웃의 모습으로 숨어 계시는 예수님은 외면한 채, 예수님께서 누우실 구유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수십 번 성탄절을 맞이했지만 내 생애에 가장 의미 있던 성탄절은 이억 만리 떨어진 이곳 아프리카에서 맞은 사순절 같은 성탄절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성탄절을 기억하며 가난한 곳 어딘가에서 계속 태어나고 계실 예수님을 우리가 몰라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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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맘이 따뜻하면서 뭉클해집니다.
감사요~~~
어제도 이태석 신부님 얘기를 나눴었는데~~~
많이 그리워지네요~~~
저는 '가톨릭 인터넷 선교회'에서
10년을 넘게 선교 콘텐츠 작업을 할때
이태석 신부님의 모든 자료를 모아 콘텐츠 작업을 했었어요
그때 모은 자료 중 하나예요
신부님의 생은 말로 다 못할 감동이지요
성인품에 오르실 분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