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46
사이비 스포츠 해설
세계인의 스포츠축제인 월드컵대회가 끝났다. 남미축구와 유럽축구의 대결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6년 만의 남미귀환이다. 한국은 16강 진출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만족하고 더 큰 욕심은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조직력과 투지에 있어서 최선을 다한 성적이다. 죽을힘으로 뛰어준 선수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가장 주목받은 팀은 모로코다. 아프리카 최초로 4강에 오른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4천만이 안 되는 인구에 프로축구 구단이 없는 국가가 거둔 성적이라면 평가할 만하다. 물론 유럽의 프로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대다수다.
아프리카 축구의 우수한 실력은 모로코만이 아니다. 객관적인 전력을 보면 아프리카 축구가 아시아권 국가들보다 앞서 있다. 세네갈과 카메룬 그리고 가나는 진즉 월드컵 축구 역사에 8강의 이름을 올렸다. 세계 인구의 60%가 사는 아시아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그친 것은 아프리카보다 한 수 아래라는 사실을 반증했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 축구가 아프리카 수준에 못 미치는 이유를 타고난 체형에서 찾는 이도 있다. 아시아인들은 태생부터가 발재간의 유연성에 적합한 신체구조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신장에 비해 상체가 길고 다리가 짧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무게중심이 위에 있어 방향전환이 느릴 뿐만 아니라 안정감이 떨어져 넘어지기 쉽다. 물론 달리기가 기본인 축구에서 다리가 짧다는 것은 큰 핸디캡이다.
아프리카인들은 오랫동안 수렵 생활을 해왔다. 야생동물을 잡거나 맹수를 피하려면 쏜살같이 달려야 한다. 사람보다 빠른 동물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야 하므로 지구력도 중요하다. 오늘날 마라톤을 비롯한 육상경기에 흑인들이 유독 좋은 성적을 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의 체형은 식생활과 기후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경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곡류 위주의 섭식을 통해 영양을 흡수하기 때문에 장이 길다. 영양분이 적고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소화하여 에너지를 만들려면 자연히 장의 길이가 길어야 한다. 반면 육류 위주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장의 길이가 짧아 상체가 길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상체보다 하체가 긴 이유다.
육식을 주로 하면서도 하체가 짧은 사람들이 있다. 에스키모처럼 추운 지방 사는 사람들이다. 인체는 구형에 가까울수록 신체 표면적이 줄어들어 체온을 유지하기에 유리하다. 이런 기후순화성 논리는 유달리 다리가 짧은 펭귄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아시아인들이 축구를 잘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이주할 수는 없다. 신체의 무게중심을 낮추고 다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육식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방편이다. 문제는 고기 생산이다.
오늘날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1/3가량이 축산용으로 쓰인다. 가축에 따라 다르지만 고기 1kg을 얻기 위해 곡물 사료를 많게는 20kg까지 소비해야 한다. 여기에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 정도가 축산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3배나 크게 지구 온실효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발생량의 37%가 축산에서 나온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환경론자들이 얼마나 채식하는지는 알 수 없다. 모두가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데 아시아 인들의 육류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아이들의 체형 또한 서구형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한다. 축구발전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변화다. 다만 한 인종의 체형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 고민이다.
고기를 밥으로 알고 먹어도 몇 세대를 거쳐야 장이 짧아진다면 낭패다. 아무래도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조차 평생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볼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4차산업혁명이 본격화하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면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지나친 기우다. 더 많은 사람이 예술에 탐닉하고 스포츠를 즐기며 여행을 다니게 될 것이다. 이미 몇몇 대학에서는 스포츠마케팅학과가 생겼다.
엘리트 스포츠가 생활체육을 견인하고 스포츠의 저변확대는 다시 스포츠 영웅을 만들어낸다. 박세리라는 가속페달이 골프의 대중화를 앞당겼고 박태환이 있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도 수영을 가르친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한 것도 따지고 보면 엘리트 체육육성에 주력한 결과다. 사실 기업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TV 앞에서 환호할 일은 지금처럼 많지 않았을 것이다.
아시안 게임 승마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대학교 입시와 학사관리에 특혜를 받았다는 이유로 수사 끝에 중졸이 되었다. 대학 총장과 교수들은 물론 말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대기업 총수까지 구속했다. 정의와 공정이란 이름으로 그동안의 관례를 범죄로 규정한 셈이다.
정의를 실현할 때면 속이 시원하다. 하지만 수능성적이 우수하여 대학에 입학한 체육특기생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들 중에 일반 학생처럼 학사규정에 따라 학점을 이수하면서 메달을 딴 선수가 누구인지 물으면 대답이 궁하다. 어딘지 모르게 공정이란 단어가 입안에서 설컹거린다.
2024년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소리를 얼마나 듣게 될지 의문이다. 스포츠에서조차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