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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문화(茶文化)의 정신
차정신은 차생활을 하던 그 시대의 사상가(思想家)들이나 종교인들에 의해서 거의 완성 되었다. 우리 나라의 차정신은 차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정립된 것으로 그 시대를 지배하던 사상과 철학
내지는 종교 정신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다.
그러면 그 당시 차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삼국 시대는 대부분이 승려들에 의해서 차생활이 유지되었으며 일부 귀족들과 화랑도,
그리고 선(仙)사상을 가진 선인(仙人)들과 도교의 사상가들이었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는 왕족과 귀족계급의 유학자들과 선승들 사이에 유행했으며 일부
도가(道家)의 사상을 가진 은거인이 차생활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가 쇠퇴해가면서 유학자가 득세 하게 되어 관인계급에서 다례(茶禮)를 행했으며, 은거인이나 처사들 사이에서 차생활이 이어졌고, 산중으로 밀려난 승려들 사이에 차 생활이 유지되었다.
이처럼 우리 나라의 차생활은 불교의 승려들과 유교의 유생들과 도교의 도학자들 사이에 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차생활을 즐기면서 자기들의 종교 사상이나 철학으로 차정신을 확립시켰으며 법도와 체계를 세워 놓았다.
사원의 승려들은 선(禪)사상에 차를 끌어들여 같은 경지로 승화시켰으며, 유가의 유학자들은 그들의 윤리의식에 차를 유입하여 다례의식(茶禮儀式)을 제정하였으며, 도가(道家)의 사상가들은 자연과 합일하려는 신선사상(神仙思想)에 의하여 풍류(風流)의 정신세계를 완성하였다.
이를 알기 쉽게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차정신 개념도(槪念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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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 敎(유교) |
禮(예) |
節介(歲寒, 貞節)(절개) |
聖人(君子)성인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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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敎(불교) |
禪(선) |
茶禪一味(다선일미) |
道人(成佛)도인성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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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 敎(도교) |
風流(풍류) |
詩歌(시가) |
神仙(眞人)신선진인 |
그러면 다음은 사원의 승려들이 어떻게 차를 선(禪)의 경지에까지 승화시켰는가와 유교의 유학자들이 어떻게 다례의식(茶禮儀式)을 정립했는가 또 도가(道家)의 사상가들이 완성한 풍류(風流)의 시가(詩歌)와 멋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차는 선(禪)이다.
선(禪)이란 특수한 수행(修行)의 길이다. 사원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용어로써 진리(眞理)를 체득하고자 하는데 드는 방편의 문으로 범어(梵語)로는 드야나(dahyana)라고 하며, 한역하여 선나(禪那)라고 한다. 이를 줄여서 [禪]이라고 하는데, 고요히 생각한다고 하는 정려(靜廬) 또는 생각하여 닦는다는 사유수(思惟修) 혹은 적멸(寂滅), 한 마음의 극치(極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일심불란(一心不亂)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선(禪)인 것이다. 모두가 선(禪)이다. 그래서 행주좌와(行住座臥) 어묵동정(語黙動靜)이 모두 선(禪)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적 의식이 있는 곳에는 선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차가 선과 같다는 말은, 선(禪)의 삼매경(三昧境)에 들어 대오각성(大悟覺醒)하는 길과 차의 삼매에 들어 묘경(妙境)을 깨닫는 것이 한 가지라는 뜻이다(禪茶一如).
초의선사는 이처럼 바라밀에 이르는 길에서 모든 법이 불이하고, 고로 차와 선이 불이하니 모든 법이 일여(一如)하다고 했다. 이런 사상은 추사 김정희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어 추사는 초의선사께 '명선(茗禪)' '선탑다연(禪榻茶烟)' '정좌처다반향초(靜座處茶半香初)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 라는 글을 써서 보내게 되었다.
이러한 글귀들은 모두가 '禪茶一如'의 경지를 천명(闡明)한 것이다.
2) 차는 멋(風流)이다.
멋이란 인간의 사고(思考)와 언행(言行)이 이상(理想)의 경지에 이르러 품위가 있고 운치가 있어 속되지 않고 사려깊은 것을 말한다. 멋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재화를 들여 멋있게 살고 싶어 집안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고상한 취미를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사람인 맨 처음 움직이면 배고픔을 면하는 일이요, 그 다음은 안일과 행복을 찾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많은 취미생활을 만들어 냈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차생활이다. 이러한 차생활은 사람들의 정서생활에 많은 이로움을 주었고 또 정신영역을 한없이 넓혀주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사색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무한한 세계를 개척했고 시공(時空)을 초월한
자기 완성을 통해서 영원히 사는 비법을 터득했고, 또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 우주의 일부분으로 완전한 자유를 얻었으며, 정신적 자기구현을 통해 두려움이 없는 마음의 편안을 얻은 것이다.
태초부터 청정한 이 마음에는 한 점 바람도 일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욕망의 폭풍을 맞고 서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길을 잃었다.
이처럼 길을 잃은 인간들이 차 한잔의 여백을 통해서 진실을 깨닫고 자기의 잃어버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다인(茶人)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화묵객(書畵墨客)들이나 시객(詩客)들이 명승지를 찾아 즐기고(風流),
불승(佛僧)들이 자연 속에 묻혀 백운(白雲) 청산(靑山)을 마주하고 깊은 사색에 잠시는 것이(禪定) 다 뜻이 있는 일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풍류를 아는 민족이었다. 그래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이나 명승지에는 으레 자그마한 정자(亭子)를 세우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뜻이 있는 선비들과 끽다(喫茶) 음주(飮酒)로 함께 즐기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웠다.
또 가재(家財)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집안에 정원과 연지(蓮池)를 만들고 기화이초(奇花異草)를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지지 않도록 하였으며, 축대를 쌓고 누대(樓臺)를 만들어 좋은 벗을 청해 다주시화(茶酒詩畵)로 정신적 편안과 육체적 안락을 함께 도모하였으니, 이것은 아름다움의 극치요,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풍미이다.
이러한 멋의 생활이 차의 생활이요, 이를 얻고자 하는 정신이 차의 정신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옛 사람이 '밤에 앉아서 차를 달인다' 라는 시 한 수를 음미해 보자.
야좌전다(夜座煎茶) 정희량(鄭 希 良)
밤이 얼마쯤 되었나 눈이 오려 하는데
청등고옥(靑燈古屋)에 추워서 잠 안오네
상머리에 이끼 돋은 낡은 병을 가져다가
푸른 바다 같은 맑은 샘물을 쏟아넣고
문무화력(文武火力)을 알맞게 피우니
벽 위에 달 떠오르고 연기 폴폴 생기네
솔바람이 우수수 빈 골짝에 울리는 듯
폭포수가 쫙쫙 긴 내에서 떨어지는 듯
뇌성 번개 한참 우르릉 땅땅 하더니
급히 가던 수레가 덜거덕 넘어지는 듯
이윽고 구름이 걷히고
바람이 자니 물결이 일지 않고
맑고 잔잔하네
바가지에 쏟아 놓으니 눈 같은 흰 빛
간담이 휑 뚫리어 신선과도 통함직
천천히 마시며 혼돈 구멍을 뚫어내고
홀로 신마(神馬)를 타고 선천(先天)세계 노니네
돌아보니 예전 마음 속의 자갈밭
요마(妖魔)와 속념(俗念)이 모두 망연해지고
마음 근원이 활짝 트이어 만물을 초월하여
하늘밖에 노니는 듯
점차로 가경(佳境)을 떠났네
내 들으니 상계(上界)의 진인(眞人)은 깨끗함을 좋아하여
이슬을 마시며 똥오줌도 안 누어
놀먹고 옥(玉)먹고 장생(長生)을 하며
골수를 씻고 털을 베어 백년 동안(童顔)이라지
나도 세상에서 이러하거늘
어찌 고목(枯木)과 오래 살기로 다투리
그대는 안 보았는가
노동(盧仝)은 배고프면 차 삼백 조각을 희 롱한 것을
도덕경 오천언(五千言)은 부질없는 한만(汗漫)은 문자로다
3) 차는 절개(節介)다
절개란 선비의 굳은 충절이나 부녀자의 정절(貞節) 또는 예의범절을 말함이다.
차가 선비의 굳은 충절과 같다는 말은 차나무가 상록수로서 겨울의 눈보라를 능히 이겨내고 봄을 맞는 세한(歲寒)의 정신이 있듯이, 선비가 굶주림과 출세의 유혹을 물리치고 절의와 기개를 지키는 꿋꿋한 정신이 서로 같은 뜻이 있기 때문이며,
부녀자의 정절과 같다는 말은 여자가 한 번 출가를 해서 한 남편을 섬기는 것이 차나무가 태어난 땅을 옮겨가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니, 차나무는 옮겨 심으면 잘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부터 선비 집안에 차가 있었으며, 선비의 제례상에는 차를 올리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옛날에는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것을 '다례(茶禮)' 지낸다고 하였는데, 이는 혼례식상에
차를 올렸기 때문이며, 혼례를 마친 여인이 시댁 사당에 가서 시댁 조상님들께 폐백을 드리는데,
이것을 '묘견(廟見)' 이라고 한다.
이 묘견례 때에 반드시 차를 올렸다. 차를 올리는 까닭은 차나무처럼 옮겨가지 않고 이 집안에 뼈를 묻을 때까지 이 가문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무언의 약조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 다례는 신라 시대에는 헌다의식(獻茶儀式)이라고 해서 궁중과 사원이 중심이 되어 행해졌는데 궁중에서는 사직단과 오악삼신(五岳三神)에 제사했으며 사원에서는 불전(佛殿)에 헌다하거나 역대조사를 제사할 때 주로 행했다.
이 의식이 고려 시대에는 진다의식(進茶儀式)으로 발전했는데, 진다의식은 길례(吉禮) 흉례(凶禮) 빈례(賓禮) 가례(嘉禮) 때에 모두 행했으며, 국가의 대소행사에 모두 이 의식을 치렀다.
불전을 향하여 임금이 직접 차를 달여 공덕재를 지내야만 했고 모든 문무백관이 참여해야만 했다. 이 의식은 복잡하고 장황하여 다방(茶房)이라는 관청부서를 설치해 두고 관리 감독하도록 했으며 이 다방에서 모든 진다의식을 관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려 때 진다의식은 대단히 발달해 왕묘제(王廟祭), 사신권다(使臣權茶), 책봉의식(冊封儀式)과 공주가 시집갈 때 또는 연등회 같은 국가의 모든 행사에 이 의식을 행했다.
그리고 사대부 집안에서는 관혼상제(冠婚喪祭) 등의 의식에 다의(茶儀)를 갖추었으며, 이 진다의식이 조선시대에서는 다례의식(茶禮儀式)으로 바뀌었다.
다례란 본시 '행다례(行茶禮)'라는 말로써 '차로써 예를 행한다' 는 뜻이다.
이 다례는 궁중다례와 사원다례 그리고 민간다례로 구별한다.
궁중에서는 사신접대와 다시(茶詩) 그리고 종묘제 때에 상다(尙茶)라는 정3품의 관원을 내시부에 소속시켜 두고 다례를 행하도록 했다.
사원에서는 불전헌다와 조사제 및 대소행사에 다례를 행했으며 민간에서는 관혼상제 때에 모두 다례를 행했으며 원조(元祖), 상원(上元), 삼월(三月), 단오(端午), 유두, 칠석, 중양, 동지, 납월(臘月)과 삭망 때에도 다례를 지냈다.
이 다례는 한글이 창제 반포된 후에 '차례'라고 했으며 명절 등에 행하는 조상제사를 차례하고 하나 이는 변질된 의식이며 본시 다례이다.
4) 기타(其他)
차는 '불기(不器)' 라고 한다. 불기란 공자님 말씀에 '군자는 불기이다' 라는 말이 있다.
군자가 그릇(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릇이란 크거나 작거나 둥글거나 모진 모양을 갖추고 있다. 만약 군자의 마음이 작고 크고 둥글고 모진 형태, 즉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한계 내에서만 쓰여질 뿐 다르게 이용될 수 없으며 크게 쓰여질 수 없게 된다.
차 또한 이와 같아서 한계와 차별이 없어야 한다. 이처럼 군자나 차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된다.
초의선사의 시구에 '고래현성구애다(古來賢聖俱愛茶) 다여군자성무사(茶如君子性無邪)' 라는 말이 있다. 이는 옛부터 성현이 다 차를 사랑했는데 차가 군자와 같아서 성품이 사악하지 않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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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차에 대한 오묘한 진리를 알아가게 됩니다.... 선, 멋, 절개, 불기.... 멋이란 인간의 사고(思考)와 언행(言行)이 이상(理想)의 경지에 이르러 품위가 있고 운치가 있어 속되지 않고 사려깊은 것을 말한다... 이런 뜻이 있었군요.... 차를 마시게 되면 꼭 한번... 떠올려 행하여 봐야할 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