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漢字)와 한문(漢文)
한자는 무엇이고 한문은 무엇인가.
우리가 보통 한자(漢字)를 보고 한문(漢文)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한자가 한문이고 한문이 한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문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즉 한문은 ‘한자로 이루어진 문장’이란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한자와 한문을 굳이 구분하자면, 둘을 구분할 수도 있다. 한자(漢字)는 고대부터 중국에서 쓰이는 문자이다. 한자는 대략 은(殷)나라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 알려진 한자는 수만 자이나, 실제 쓰이는 한자는 만자 이내이고, 상용자 천자 이내가 90% 이상의 빈도로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중국에서는 많은 한자가 간략하게 한 간체자가 쓰이고 있고, 기존의 한자는 번체(繁體)라고 하고 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통상 말하는 한문(漢文)은 중국의 지금의 현대문(現代文)이 아니고 예전에 쓰이던 고문(古文)을 말한다. 그런데 고문이 어느 시점을 말하는지 애매하기는 한데, 고문은 대략 춘추전국 시대와 진(秦)ㆍ한(漢) 시대가 근간이 되는 듯하다. 시대가 후대일수록 어휘와 문법에서 이 고문과는 차이가 심해져, 그래서 지금의 중국인들도 한문을 잘 몰라, 이를 공부해야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한자 빨리 익히는 방법
한자는 국어에 쓰이는 한자어의 이해를 위해서나 한문 공부를 위해서나 알아두면 모르는 것보다는 이로움이 많다. 수많은 한자를 다 알 수는 없고, 기본적으로 최소한 교육부에서 선정한 1800 한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듯하다.
그런데 한자를 빨리 익힐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뾰족한 수는 없다. 꾸준한 반복 학습이 최고의 방법이다. 그러나 한자가 구성되거나 만들어진 원리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도 약간 한자를 암기함에 조금 득이 될 듯도 하다. 그리고 한자를 공부하는 데 요령을 부리자면, 가장 기본적인 한자부터 익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른 한자를 배우기가 그냥 마구 한자를 익히는 것보다는 쉽게 한자를 암기할 수도 있다. 왜인고 하니 한자의 8, 90 퍼센트는 형성자(形聲字), 회의자(會意字) 같은 기존의 있던 한자나 그 일부가 합하여 이루어진 합성자(合成字)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수가 아니어도 가령 呵, 哥, 柯, 訶, 軻, 何, 河 자는 ‘可’자가 공통으로 일부로 쓰였고, 假, 暇, 瑕, 蝦, 遐, 鰕 자는 ‘叚(가)’자가 공통으로 쓰이는데, 이렇게 여러 한자에 부분으로 적잖게 쓰이는 한자가 있다. 이런 한자와 부수 같은 것이 기본적인 한자가 된다. 부수는 총 214 자인데, 처음부터 이 214 자를 다 익히려 하는 것은 무리이다. 쓰이는 빈도가 높거나 쉬운 水(氵), 木 같은 부수부터 먼저 익혀 간다. 부수 214 자 중에서 대충 절반 정도는 익히기가 쉬운 한자이고, 나머지 반은 생소하여 어려운 편이다. 부수는 주로 한자에서 뜻 역할을 하므로 음(音)보다는 뜻 위주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부수 말고 여러 한자에 부분으로 쓰이는 한자는 대개 형성자에서 음의 역할을 하므로, 음 위주로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형성자 중에서 일부는 음이 변형된다. 가령 瓜자는 음이 ‘과’인데, 弧ㆍ狐에서 瓜자가 음 역할을 하지만, 弧ㆍ狐의 음은 ‘과’가 아니라 ‘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주의하기 바란다. 또 高-下나 强-弱 같이 서로 의미가 반대되는 한자나, 成-就, 恩-惠처럼 비슷한 개념의 한자 끼리 서로 연관되어 학습하는 것도 그냥 한자를 따로 하나하나 배우는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한자를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한자만 많이 알면 한문을 알 수 있을까.
한자는 본인이 직접 알고 있지 않아도, 옥편이나 ‘한글’ 같은 문서(워드) 프로그램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대부분의 한자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자를 잘 모르는 이도, 한자를 잘 알고 있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본인의 실제의 실력이든 옥편에 의존하든지, 한자를 많이 알면, 한문을 알 수 있을까. 한자(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면, 이를 토대로 대충 문장도 해석을 할 수 있는 듯하나, 이는 거의 어렵다고 보면 된다. 그 이유는 한문의 문법이나 특성이 우리말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래를 보라.
1) 舜, 堯之壻也.(순임금은 요임금의 사위이다.)
春來, 則燕復歸.(봄이 오면,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
2) 金氏讀論語.(김씨는 논어를 읽었다.)
小人敏於利.(소인은 이익에 민첩하다)
2-a) 金氏讀論語.(김씨가 읽은 논어.)
小人敏於利.(소인은 민첩하고 이익에서)
3) 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고요하자고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
3-a) 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고요하자고 해서,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
예문 1처럼 한문 문장이 해석 순서가 우리말과 비슷하게 되는 경우엔, 한자만 알아도 대강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러나 예2처럼 어순이 우리말 해석과 다르면, 생초보라면 2-a 같이 어색한 해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한문의 문법을 알아야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예3처럼 한자(단어)만 알아서는 안 되고 문맥을 잘 판단해야 제대로 된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엔 예시 3-a처럼 다소 엉뚱한 해석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한자만 알아서는 한문 문장을 해석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단어(한자)가 모여 문장을 이루니, 문장을 해석하려면 단어를 많이 알면 쉽게 문장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된다. 단어가 모여 문장을 이룬다기보다는 문장이라는 틀 안에 단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먼저 문장에 많이 익숙해져야 단어를 쉽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자 자체를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한문 문장을 해석하는 것이 목표라면, 한자 단어 공부보다는 문장 공부에 주력해야 한다.
문법만 알면 한문을 알 수 있을까
문법을 독해의 지름길로 알고, 문법을 잘 알면 한문을 쉽게 빨리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한문에 관한 문법 공부를 많이 한 자가 어렵지 않은 한문 문장 하나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경우를 간혹 본다. 그런데 한문을 제법 잘 해석할 줄 아는 자 중에는 한문 문법 공부를 거의 하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문법에 능통한 것이 한문 공부에 핵심적인 요소가 되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한문의 문법을 알면 한문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먼저 문법을 알고 한문을 알 수도 있지만, 거꾸로 먼저 한문을 아니까 문법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문법 공부를 하여 문장 구조를 파악하는 것하고, 문장 읽기를 많이 하여 자연스레 여러 문장 구조에 익숙해지는 것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한문을 문법을 통해 분석적으로 아는 것보다 우리말처럼 익숙함에 의해 조건반사적으로 아는 것이 훨씬 빠르고 능률적으로 독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문법적으로 따지고 이해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런 것을 싫어하는 이에겐 문법을 공부하는 자체가 고역일 수가 있다. 문법을 싫어하거나 배우고 싶지 않다면, 꼭 문법을 깊게 공부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래서 한문을 배움에 있어 문법 공부는 개인의 취향대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문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고, 문법 위주로 공부하는 것이 편하다면, 문법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고, 문법을 한문 공부에 참고 사항 정도로 여긴다면 문법을 대충 공부하거나 등한시해도 해도 된다.
한문 빨리 배우는 방법
한자를 금방 익힐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한문을 금방 터득할 요령은 더욱 더 없다. 그래도 한문을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자면, 문장 위주로 공부하라는 것이다. 문장 위주로 배운다는 것은 즉 논어나 맹자 같은 경전을 공부함을 의미한다. 우선 한자를 많이 알고, 또 한문 문법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난 뒤에 문장 공부를 해야 되지 않나 생각하는 이도 많다. 기본적으로 한자를 많이 알고 문법을 자세히 알면, 문장 공부함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 됨은 사실이나, 한자를 많이 알고 문법을 자세히 알기가 쉽지 않은 일이고, 또 이러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아쉬운 대로 기초적인 한자만 알고 기본적인 문법 지식만을 알고 있어도, 문장 공부함에 크게 지장이 없으니, 과감히 문장 학습에 착수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한문 문장을 공부하면서, 한자나 문법을 병용하여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어(한자)를 따로 떼어 그것만을 외울 때보다 단어를 문장을 통해 익히는 것이 더 효율적인 학습 방법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장 공부를 안 하고 문법서를 읽을 때엔 이해되지 않던 것이, 문장 공부를 많이 하고 문법서를 공부하면 확실히 그 전보다 이해가 잘 됨을 실감할 것이다. 문제는 초학자가 처음부터 문장 단위로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아, 문장을 한 번에 읽어내기도 벅찰 것이다. 그러나 한문을 빨리 정복하려면, 문장이나 구절 단위로 빨리 해석이 되어야지, 난해한 문장도 아닌데, 한자(단어) 하나하나씩을 따로 떼어가지고 천천히 해석을 해서는 한문 해석은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또 하나 문제가 초학자가 문장 공부하기에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텍스트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기초 교재로 소학, 사자소학, 명심보감 등이 주로 쓰이는데, 저 개인적으론 여씨춘추, 열녀전, 설원, 한시외전, 전국책, 열자, 삼국사기 열전 등도 기본 교재 삼아 읽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대개 글의 단락이 짧고 글의 내용도 주로 구체적인 서사 위주로 이루어져, 초보가 공부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흥미를 가질 것 같다. 더러 해석하기가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이런 부분은 과감히 그냥 건너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초학자에겐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보다는 여러 문형이나 한문 표현 수법에 익숙해지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