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성보문화재 50選] <19>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불교중앙박물관 팀장
“진리 계승…화엄종 사찰 화엄사 상징적 유물”
고려대장경보다 앞서 조성 주목
통일신라 불교연구 귀중한 자료
불경ㆍ서체 등 학술적으로 중요
변상도는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양식
명필 서예가, 뛰어난 각수 솜씨
지극한 신심이 이루어낸 성보
‘전통사경연구원’ 활동 관심 커
보물 제1040호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華嚴石經). 임진왜란 때 훼손돼 각황전 주변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수습됐다. 현존하는 석경편은 1만4000점, 200여 상자에 나뉘어 화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일부 변상도의 부분.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를 통해 불교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오늘로 면면히 이어질 수 있었다. 부처님의 열반과 함께 설하신 법마저 현세에서 사라졌다면, 현재의 불교가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부처님 말씀, 즉 법보(法寶)신앙을 대표하는 성보 가운데 하나가 화엄사 ‘화엄석경’이다.
화엄종 사찰의 상징 ‘화엄석경’
부처님의 열반 이후 제자들이 모여서 서로 전해 들었던 부처님 말씀을 모으고 검증한 뒤, 암송으로 후대에 전했다. 후에 부처님의 말씀을 문자화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된 것은 획기적인 문명의 전환점이 됐다. 불교국가에서는 경전을 모으고, 베껴 쓰고(筆寫), 번역하고(譯經), 새겨서(彫版)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진리를 계승하는 것에 매진했다.
한국에서도 경전을 모으고 새기는 일을 소중히 했다. 고려시대에는 전란을 겪으면서도 세계적으로 훌륭한 대장경을 조성한 저력이 있다. 이전 시대부터 이러한 불법(佛法)을 널리 유포시키고 외호하고자 하는 경전에 대한 존숭사상이 발전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화엄사 ‘화엄석경’이다. 이 ‘화엄석경’은 우리나라 화엄종 사찰의 상징적 유물일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불경(佛經)·서체(書體) 등 학술적으로 중요한 유물이다.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의 화엄사상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화엄사는 750년 무렵 불교계의 새로운 흐름인 화엄사상을 선양하는 중심사찰이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화엄석경’이다. 석경(石經)이란 경전의 원문을 돌판에 새긴 것으로, <화엄경>을 돌에 새긴 것이 ‘화엄석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주 창림사지(昌林寺址) 부근에서 출토된 ‘법화석경(法華石經)’과 경주 칠불암 ‘금강석경(金剛石經)’, 그리고 최근에 발견된 ‘영국사지(도봉선원터) 법화석경’이 전부인 희귀한 문화재이다.
중국의 석경으로는 ‘방산석경(房山石經)’과 ‘석경산(石經山)’이 잘 알려져 있다. 북경 인근 운거사의 방산석경은 1만4278개의 돌에 경전을 새긴 방대한 양으로 탑 속에서 출토됐다. 또 운거사에서 1.5km 떨어진 곳의 석경산은 수나라부터 명나라 시기까지 1000년 동안 스님들이 석굴에 경전을 새긴 것으로 유명하다. 산 전체에 대장경을 새겼다는 의미에서 석경산이라 하였다. ‘방산석경’과 ‘석경산’의 석경은 불교 탄압으로 불법이 끊어질 것을 대비한 것이다.
불전장엄…화엄사 상징성 부여
이와 달리 ‘화엄석경’은 법보로서 불전을 장엄하고 화엄사의 사격에 걸맞은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과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의 광대한 공덕에 대해 설한 경전이다.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화엄십찰(華嚴十刹)을 정하고 그 가운데 하나인 화엄사를 중창했다. 장육전(丈六殿, 현 각황전)을 건립하고 주위에 석각(石刻)의 <화엄경>을 둘렀다는 <봉성지(鳳城誌)>에 ‘화엄석경’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석경의 제작연대는 통일신라 말로 추정된다. 이는 황룡사 연기(緣起)조사가 간행한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755)>과 서체와 변상도가 유사하고, 해서체(楷書體)로 쓰인 글씨체 또한 최치원(崔致遠)이 쓴 하동 쌍계사 진감국사비문(眞鑑國師碑文)과 닮았기 때문이다. ‘화엄석경’에 새겨진 <화엄경>은 60화엄경으로 이는 의상대사 생존 이후에 한역(漢譯)된 것이다. 의상대사가 조성한 것과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화엄사는 사찰명에서 나타나듯이 화엄의 도량으로서 위상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1593년(선조 26년) 화엄사가 왜병들에 의해 병화를 입게 되고, 이때 장육전을 두르고 있는 석경도 산산조각이 났다. 조선 1702년(숙종 28년)에 장육전 건물을 다시 지어 ‘각황전(覺皇殿)’이라고 하였으며, 숙종이 직접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화엄석경’은 각황전 주변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수습되었다. 현존하는 석경편은 1만4000점에 달하고 있다. 지금은 200여 상자에 나뉘어 화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다.
한국 最古 변상도 있는 ‘화엄석경’
사경은 대체로 표지(表紙)·변상(變相)·경문(經文)·사성기(寫成記)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표지에는 경(經)의 제목이 들어간다. 경전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변상도는 표지 바로 뒤 즉, 경문의 맨 앞에 하나만 있는 경우도 있고, 경문의 중간에 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경문의 중간에 들어가더라도 한 권에 여러 품(品)이 있는 경우에는 주로 품이 시작하는 품수제(品首題)의 앞부분에 변상이 들어가게 된다.
‘화엄석경’은 가로 65cm, 세로 52cm의 크기이다. 글씨 위쪽에 가로로 그은 천두선(天頭線)과 아래쪽에 가로로 그은 지각선(地脚線)을 새겼다. 세로로 행간을 구획하는 계선(界線)을 긋고, 그 안에 경전의 내용을 새겼다. 권을 구분하지 않고 품으로 구분했다. 품의 시작에는 품수제를 서사했다. 세로의 한행에는 28자를 일정하게 새겼다. 품과 품 사이에 변상도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변상도의 위치는 1품의 시작 전으로부터 설법장소가 바뀌는 위치에 있었으며 모두 8곳에 존재한다.
‘화엄석경’의 변상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변상도인 연기법사가 간행한 국보 제196호인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755)의 문양과 양식이 유사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변상도라고 여겨진다.
‘화엄석경’은 장육전의 벽면을 둘렀다고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벽체에 무거운 석경을 고정시켰을까. ‘화엄석경’을 자세히 보면 벽면에 석경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와 관련된 구멍과 홈들이 있다. 이 화엄석경판을 연구한 결과 동그란 구멍이 뚫린 편들은 ‘화엄석경’을 배치할 때 맨 윗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네모난 홈들이 있는 석경은 중간 부분에 위치하여 위아래 석경판들을 연결하는 고정 장치가 있었던 흔적으로 보인다.
아마도 위의 석판과 아래 석판을 연결하는데 나무를 이용해 나비장이음과 같은 짜맞춤공법을 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엄석경’은 (그림과 같이) 석경에 홈을 파서 위아래로 연결하고 옆으로 또 이와 같은 작업을 반복해서 완성했으리라 짐작된다.
‘화엄석경’이 장육전에 어떠한 형태로 둘러졌는지, 위치가 외벽인지, 혹은 후불벽인지, 내벽인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화엄사는 ‘화엄석경’을 보존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간 유물정리와 함께 <화엄경>의 내용, 구조, 그리고 배치에 관하여 학자들이 모여 논의하고 있다. 또한 어떻게 복원하여 활용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화엄석경’이 제대로 복원되고 보존될 것이라 사료된다.
‘화엄석경’은 화엄종찰인 화엄사의 상징적인 유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의미가 무엇일까. 아마도 노력과 공력이 드는 꽤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화엄경>을 돌에 새기기 위해서는 먼저 경전을 베껴 쓰는 것이 필요하다.
<화엄경>의 서체는 이미 전통사경의 모본이 될 정도로 뛰어난 서예가의 솜씨로 평가된다. 뛰어난 서예가의 명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를 잘 새기는 각수의 기법 또한 중요하다. 뛰어난 명필의 서예와 이를 제대로 새기는 각수의 솜씨가 어우러지고, 여기에 지극한 신심이 합이 되어 이루어낸 것이 ‘화엄석경’이라 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화엄사에는 사경과 새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경원’이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방대한 작업이 가능하려면 전문 인력이 모일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 받아 화엄사에서는 ‘화엄석경연구소’를 두어 ‘화엄석경’을 보존 관리하고 활용하여, 화엄학을 연구하는 중심에 서고자 노력하고 있다. 전통사경연구원을 두어 일반인들에게 전통사경을 가르치고, 이를 통해 수행하는 것을 돕고 있는 것도 이런 사업의 일환일 것이다.
[불교신문3671호/2021년6월22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