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6-7절)
이번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출 23: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매년 세 번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셨는데, 곧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신 16장에 보면 이 세 절기 모두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지키도록 말씀하십니다.
특히 맥추절을 지킬 때에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 대로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릴 것을 말씀하십니다.
지난 주일에 진정한 맥추절의 영적 의미를 알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맥추감사주일예배를 함께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말씀드렸습니다.
비록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구원해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함으로 맥추절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맥추절에 드리는 예배는 구원의 은혜를 감사해서 드리는 화목제입니다.
오늘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할까요?
행복은 누가 더 많은 것을 가졌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자신의 모습에 감사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닐까요?.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받고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았기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이 넘치게 하라.”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7;17절)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삶의 가치 기준이 세상의 기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준입니다.
주님의 밀씀이 기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면 믿음의 사람다워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 점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고 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이 넘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인이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모든 삶의 정황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할 수도 있는 것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장미를 보고서 한 사람은 꽃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가시를 보고서 장미는 가시 때문에 틀렸다고 불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 10:10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불평한 것과 같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엡 5:4절에도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은혜를 받은 자 중에도 감사하는 자는 실로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눅 17:11-19절에 보면, 열 문둥이가 모두 병 고침을 받았지만 그 중 주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불평 원망은 쉽고 감사란 어려운 것입니다.
구약 민 14:1-25절에 보면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보고를 하는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적으로 많은 10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한다고 해서 원망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눈을 떠서 보고자 하면 불평과 원망보다는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존 밀턴은 한참 일할 나이인 44세에 완전 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께서 내 육신의 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볼 수 있도록 영안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하며 살 때 실락원과 복락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찬송가 279장(통 337장)<인애하신 구세주여 내말 들으사>의 작시자는 화니 크로스비 여사입니다.
그녀는 어려서 눈을 실명하고는 앞을 보지 못했고 부친을 일찍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준다 해도 나는 받지 않으련다. 하늘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시는데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하늘에 가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9천여 편에 이르는 찬송시를 썼다고 합니다.
나는 도저히 감사의 형편이 아니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는 감사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요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감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미국에 한 감사 집사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늘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 때나 감사를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은 늘 원고대로만 설교하는 분이었는데 늘 설교하다가는 “감사합니다!”라는 감사 집사의 큰 소리에 그만 설교의 줄거리를 잃고 당황할 때가 많아 고민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지방의 주지사와 경찰서장이 교회를 방문한다는 이야기에 목사님은 전도의 좋은 기회라고 기뻐하였는데 감사 집사의 큰소리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집사를 불러다가 사무실을 지키라고 지시하고는 감사의 제목이 제일 없는 지리책을 주었습니다.
설교시간이 되어서 조용한 가운데 목사님은 열심히 설교를 읽어나가는데 갑자기 사무실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려와 목사님은 또 설교 대목을 잊었고 허겁지겁 예배가 마쳐졌는데 예배 후에 목사님이 도대체 왜 큰 소리로 감사를 했느냐고 물으니 “지리책을 보노라니 바다 속의 제일 깊은 해구가 필리핀 근처의 해구인데 10000M가 넘는다는 글을 읽으면서 문득 성경의 ”너희의 죄를 저 깊은 바다 속에 던지리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내 죄가 저렇게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았으니 다시는 떠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느라고 그랬다고 고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만 있으면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아멘!
독실한 크리스쳔인 한 농부가 지방의 유명인사들과 향께 초청을 받아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농부는 으레 하던 대로 음식을 앞에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한 유명인사가 하는 말이 “허허, 구식이군요, 요즈음 교육 받은 사람은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지 않아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농부는 “저는 기도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늘 감사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 농장에도 식사 전에 기도드리지 않는 이들이 있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유명 인사는 “아, 그래요, 그것 참 지각 있고 품위 있는 사람이겠군요.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묻자, 농부는 “죄송합니다. 우리 집에서 기르는 돼지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짐승과 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맺는말>
성도 여러분, 풍성한 감사생활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감사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행하며 그분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고 교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가 넘쳐날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