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는 천성적인 우울증과 극심한 과로라는 인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인디언 선교를 향해 뜨겁게 타올랐던 한 젊은 사역자의 치열하고도 순결한 영적 투쟁의 기록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진솔하게 쏟아낸 그의 사적인 일기는, 열광주의적 거짓 신앙과 참된 성경적 경건을 날카롭게 분별해 내며 오늘날 우리에게 생명력 있는 헌신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의 서문을 보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는 연약함과 불완전함 속에서도 탁월한 분별력으로 참된 신앙을 추구한 한 사역자의 순결한 영적 기록이자 위대한 경건의 모범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의 서문
브레이너드의 생애에 서쉽게 분간해 낼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이 있는데, 바로 그가 천성적으로 우울증과 낙망의 상태에 쉽게 빠지는 정서를 지녔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두고서 그의 신앙과 헌신에 대한 놀라운 증거들을 뒤집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신앙이란 모두가 우울한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체험이라 불리는 것은 뇌를 괴롭히고 열광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것으로 우울증과 거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의기소침해지는 성향을 지닌 브레이너드의 정서나 기질을 근거로, 그의 놀라운 헌신이 그저 열광적인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의기소침에 빠지는 성향이 있었으나, 그는 보통 풍부한 상상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그는 사물을 꿰뚫어 보는 천재성과 선명한 사고와 면밀한 추리와 매우 정확한 판단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위대한 통찰을 지녔으며, 또한 전반적으로 사리 분별이 매우 밝은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신학적인 판단과 지식에서도 뛰어났고, 특히 체험적인 신앙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는 참된 견고한 경건과 열광적인 상태를, 빛과 판단에 기초를 둔 이성적이며 성경적인 감정들과 또한 변덕스런 욕심이나 상상에 근거한 강한 감동과 동물적인 격렬한 감정 따위에 기초하는 감정들을 서로 정말 정확하게 구별하였다. 그는 인간이 이런 것들에 노출되어 있음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인간을 사로잡았으며, 얼마나 많은 무리가 그것들에게 속임을 당하였으며, 그것들의 사악한 결과들과 또한 그것들이 기독교 세계에 끼친 무시무시한 해악을 놀랍게 지각한 것이다. 그는 그런 식의 신앙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고, 살든지 죽든지 그것에 대해 반대하여 풍성하게 증언하였고, 무엇이든 그런 성격을 지닌 현상이 일어나면 제아무리 멋지고 그럴듯하게 위장하고 나타날지라도 그 시초부터 그것을 분별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처럼 상상에 근거한 열광적인 신앙의 갖가지 현상들을 묘사하여 그 그릇됨과 헛됨을 드러내며, 또한 이런 신앙과 참된 영적인 헌신의 크나큰 차이를 입증하는 데에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영민함은 다른 이들의 체험들을 분별하는 데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의 갖가지 활동들을 분별하는 면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자신의 내면적인 활동 가운데 우울증에서 비롯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간하는 면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우울한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이것이 그의 특유한 판단력 덕분이었음은 물론이다. 우울증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질병을 지각하며 또한 자기에게서 나타나는 이런저런 현상들이 그 질병에 기인하며 또한 그 순전한 작용의 결과물들이라는 것임을 납득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희귀한 일이니 말이다. 독자들이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생애에서 보게 되겠지만, 브레이너드가 단번에 그 정도의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고, 점차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의 신앙적인 여정의 전반부에서는 마음이 침울해지는 현상의 상당 부분을 자신의 영적인 침체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으나, 후반부에 가서는 그것이 우울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주 풍부하게 지각하였고, 그리하여 그러한 사실을 그의 일기에서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대화중에 그는 우울증과 경건한 근심의 차이에 대해, 참된 겸손과 영적인 침체의 차이에 대해, 그리고 이 둘을 서로 착각할 때에 생기는 큰 위험과 또한 큰 상처를 주는 우울증의 본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였고, 그것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갖고 있었고, 자기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영민하게 논하였음은 물론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브레이너드의 생애의 기록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에게서 나타나는 또 다른 불완전한 면은 바로 지나친 과로(過勞)였다. 체력과 피로를 적절히 조절하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사실, 섭리의 부르심을 받고서 자신의 체력에 지나치도록 수고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로서는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 그의 처지와 인디언들 중에서 행한 그의 선교 사역 자체가 굉장한 피로와 고통을 불가피하게 수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이 문제에서 실수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 더 철저하게 조심하여야 했고 건강을 해칠 정도로 과로하고자 하는 유혹들을 더욱 의연하게 물리쳤어야 옳았다는 것을 수긍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이어 그의 선교 사역을 담당하게 된 그의 동생에게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다.
이미 언급한 불완전한 면들 외에 다른 불완전한 요소들도 그의 모든 신앙적 정서와 신앙 활동에 뒤섞여서 그의 생애 전반에서 나타났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한다. 이 세상의 아무리 훌륭한 성도라도 언제나 그렇듯이 본성적인 것이 영적인 것과 뒤섞여 나타난 것이다. 천성적인 기질이 브레이너드의 신앙 활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점은 경건한 다윗이나 사도 베드로, 요한, 바울에게서도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참된 경건한 근심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겸손이 우울증의 요인과 뒤섞이고, 천성적인 청년의 불 같은 정열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거룩한 열정이 뒤섞이고, 본성의 원리의 영향이 갖가지 다른 면에서 은혜와 뒤섞여 나타난 경우가 매우 많았던 것도 분명하다. 성도들이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그랬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어쩌면 브레이너드의 불완전한 요소들에 대해 가장 깊이 지각한 것은, 혹은 천성적인 요소와 영적인 요소를 가장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을 것이다. 사려 깊은 독자라면 그가 나이가 들수록 그의 은혜가 무르익었고, 그 마음의 신앙적인 활동이 더욱 순결해졌고, 그의 판단이 더욱 예리해졌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를 가르치고 순결하게 해 주는 요소가 많았고, 그는 이를 놓치지 않고 거기서 유익을 얻은 것이다.
이런 모든 불완전한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경건하고 사려 깊은 독자라면 여기 제시되어 있는 이 전기야말로 마음에서와 실천에서 참된 훌륭한 경건의 놀라운 모범으로서 생명력 있는 신앙의 실체와 경건의 능력을 크게 확증해주는 것이요, 이것이야말로 그대로 본받을 만한 귀한 가치가 있으며 또한 여러 가지 면에서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이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도록 계산된 것임을 기꺼이 인정하게 될 것이다.
독자는 브레이너드가 그의 일기에 기록한 내용이 —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생애의 전기는 주로 이 일기에서 취한 것이다 — 세상에서 존귀와 박수를 받기 위한 것도 아니요 혹은 그의 생전에나 그의 사망 이후 세상이 그것을 보도록 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쓴 것도 아니요, 그 스스로 사사로이 사용하기 위하여 기록한 것이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다만, 그가 죽어가는 상태에서 쓴 몇 가지 내용은, 그의 사사로운 기록들을 완전히 감추어 두지는 말라는 권고에 어렵사리 동의하여 공개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망 이후 그의 일기의 한 부분이라도 출간하여 공개하는 일에 대해 거의 어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반대하였다. 그리고 보스턴에서 자신이 죽어가는 처지가 되었을 때도 지극히 철저하고도 결연하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거기 몇몇 친지들이 그렇게 철저하고도 절대적인 금지는 철회해 줄 것을 옆에서 간곡히 권면하여, 마침내 다음과 같은 단서를 달아서 공개할 것을 기쁘게 허락하였다. 곧, “그가 남긴 글들이 내 손에 주어져서 내가 하나님의 영광과 신앙의 유익을 위하여 최선이라고 여기는 대로 그것들을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 편,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저, 원광연 역,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크리스천다이제스트).
첫댓글 위 책의 저자, 소개와 구입 안내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sam/E000003096624?tabType=SAM
전자 책이라면가격 부담도 적네요. 좋습니다.
@장코뱅 공감합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책 전체 내용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천성적인 우울증과 낙망에 취약한 기질을 지녔으나 탁월한 이성과 선명한 판단력으로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변덕스러운 감정이나 열광주의적 거짓 신앙에 속지 않고 오직 이성과 성경에 기초한 참된 영적 헌신을 명확하게 분별해 냈습니다
선교 사역 중 몸을 돌보지 않고 극심하게 과로했던 실수를 겸손히 인정하며 천성적인 한계와 신앙적 은혜가 뒤섞인 인간의 불완전함을 성숙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의 명예를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살피기 위해 작성한 그의 진솔한 비밀 일기는 참된 경건의 능력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이 책은 비록 약점과 한계가 가득할지라도 나이가 들수록 은혜가 무르익으며 순결한 성숙을 이루어낸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생명력 있는 신앙의 모범을 제시합니다
공감합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인물 소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18세기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 선교사이자 영적 대각성 운동의 중심에서 뜨거운 신앙의 불꽃을 피워낸 인물입니다
천성적인 우울증과 폐결핵이라는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원주민들을 향한 눈물의 기도와 헌신적인 사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기까지 오직 하나님 앞에서의 성찰을 기록한 그의 일기는 참된 성경적 경건이 무엇인지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
사후 그의 일기가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해 편집 및 출간되면서 전 세계 수많은 그리스도인과 선교사들에게 거룩한 영적 감화를 주는 신앙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관계
조나단 에드워즈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비범한 지성과 순결한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영적 동역자이자 아들처럼 아끼고 존경했습니다
브레이너드가 폐결핵으로 투병할 때 에드워즈는 자신의 집으로 그를 흔쾌히 받아들여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주었습니다
에드워즈의 딸 제루샤는 브레이너드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며 영적인 교제를 나누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몇 달 뒤에 같은 병으로 숨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브레이너드가 세상을 떠난 후 에드워즈는 그가 남긴 사적인 비밀 일기들을 유언에 따라 직접 편집하고 보완하여 책으로 세상에 출간했습니다
이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선후배 사역자를 넘어 서로의 신앙에 깊은 영감을 불어넣고 기독교 역사에 위대한 경건의 유산을 남긴 영적 결속이었습니다
기독교 사역의 동역자였군요. 알겠습니다.
저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적 경향성
조나단 에드워즈는 칼빈주의 신학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영광을 모든 피조 세계와 구원의 역사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로 선포했습니다
미국 대각성 운동의 주역으로서 인간의 전적 타락을 경고하는 한편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말미암는 심령의 변화와 체험적 영성을 강하게 논증했습니다
인간의 지성을 마비시키는 맹목적 열광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성경적 진리에 기반을 둔 뜨거운 종교적 감정인 신앙 감정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정립했습니다
자연 세계와 역사의 모든 현상을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뜻을 계시하는 모형으로 바라보며 신학의 전 영역을 정밀한 철학적 논리로 변증해 냈습니다
그의 신학은 청교도적 경건주의와 치밀한 합리적 지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결실로 이후 미국 복음주의 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청교도 개혁주의가 미국 장소,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 토착화를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칼빈과 조나단 에드워즈의 차이점
장 칼뱅은 교회의 제도적 개혁과 체계적인 기독교 강요 수립을 통해 개혁주의 신학의 단단한 골격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칼뱅주의 기초 위에서 뉴턴 물리학과 로크의 철학을 흡수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우주적 아름다움과 과학적 논리로 변증했습니다
또한 에드워즈는 대각성 운동을 거치며 참된 거듭남의 증거로서 인간의 심령에 부어지는 뜨거운 신앙 감정과 체험적 영성을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켰습니다
차이점을 부각시키면 아래 댓글처럼 칼빈주의에서 배제하고자 할 것 같습니다.
일부자들이 에두워즈를 칼빈주의에서 배제하려는 의도
일부 보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에드워즈를 로크 철학과 뉴턴 과학을 수용한 현대주의적 인물로 규정하면서, 전통적인 정통 개혁주의 신학 체계에서 그를 고의로 밀어내려 합니다.
또한 신앙 감정론을 앞세운 그의 체험적이고 심리적인 영성 강조를 정통 칼빈주의의 객관적 교리 중심주의를 약화시킨 일종의 변질로 깎아내리려는 견해도 있습니다.
경건생활에 도전과 유익을 주는 좋은 책인 것 같네요. 소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칼뱅주의의 견고한 교리적 기초 위에 지성과 감성의 완벽한 균형을 이뤄낸 에드워즈의 신학적 통찰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영적 울림을 줍니다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맹목적 열광주의를 분별해 내는 철저한 성경적 기준이야말로 참된 경건의 정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우주적 아름다움을 치밀한 논리로 증명해 낸 그의 유산은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영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최고의 이정표입니다
질병과 우울증이라는 육체적, 정신적 한계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만을 구했던 브레이너드의 순결한 열정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소서.
세상의 명예나 사람의 박수를 구하지 않고, 가장 낮고 소외된 곳에서 오직 주님과 동행하며 눈물로 참된 경건의 씨앗을 뿌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아멘!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겸손히 인정하면서도, 오직 성령에 사로잡혀 복음의 불꽃을 피워냈던 브레이너드처럼 우리도 매순간 은혜 안에서 무르익어가게 하시고.
거짓된 감정과 열광주의에 흔들리지 않는 선명한 영적 분별력을 주시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이성 위에 바로 선 참된 신앙 감정을 품게 하시며.
남이 보지 않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오직 주님 앞에서만 진솔하게 자신을 살피며, 삶의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거룩한 헌신을 멈추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안녕하세요 여러분 😊
저는 새로 가입한 회원이며, 이렇게 멋진 커뮤니티에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모두와 좋은 우정을 만들어 가길 기대합니다. 따뜻하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