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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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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Ⅱ. 남도정신의 물질적 바탕-황토, 대, 뻘 1. 신화적 의미 - 황토 2. 역사․문화적 의미 - 대〔竹〕 3. 지형학적 의미 - 뻘 Ⅲ. 남도의 정신 혹은, 정서 - 곡즉전(曲 卽全)의 삶, 그늘 Ⅳ. 나가며 |
| ▫국문 초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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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남도의 대표적인 향토시인, 또는 남도시인으로 평가되는 송수권 시의 중심적인 상징이 지닌 의미를 분석한 것이다. 송수권의 시는 그 자신이 태어난 고장의 자연환경과 그 속에서 어우러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흔히 ‘남도’로 지칭되는 전라도의 자연,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의 삶이 송수권 시의 본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송수권의 시에서 남도 정신은 남도의 대표적인 자연풍광을 이루는 자연사물을 통해서 표현된다. 황토, 대, 뻘이 그것으로, 이 사물들은 각기 남도의 환경과 특징적인 풍광을 구성할 뿐 아니라, 수 만년 동안 남도인의 삶과 깊은 관련을 맺어 왔다. 송수권의 시에서는 이 사물들과 그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환경이나 풍광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그리고 남도의 독특한 자연 환경과 풍광에 이지적 분위기를 더해주는 그늘 또한 황토, 대, 뻘의 사물과 함께 송수권 시의 중심적 상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송수권 시의 중심 상징-황토, 대, 뻘, 그리고 그늘-이 지닌 의미를 분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송수권의 이러한 시적 상징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명확하게 이루어진 적이 없고, 그 결과 그의 시 세계와 시 정신에 대한 논의 역시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물론 송수권은 자신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세 가지 상징물이 지닌 의미를 ‘물둑정신’ ‘개땅쇠 정신’ 그리고 ‘안땅 정신’ 등으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설명 역시 대단히 모호하고 의미들이 중첩되는 불투명한 것이어서 송수권의 시적 상징물이 지닌 상징성을 이해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남도의 풍광과 자연물, 그리고 그것들이 남도인의 삶 속에서 발휘되는 의미에 대해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 논문에서는 송수권 시의 핵심 상징인 황토, 대, 뻘을 각각 신화적, 역사․문화적, 지형학적 문맥에 비추어 이해하고자 했다. 그 결과, 황토의 상징적 의미는 ‘삶의 정화와 치유능력’을, 대는 ‘강인한 저항정신과 유려한 성품’을, 뻘은 ’생의 포용력과 생명력‘을, 그리고 그늘은 이 세 상징과 두루 관련되거나 포용하는 것으로서 ’은근함과 유유자적 에둘러갈 줄 아는 지혜로운 삶’을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상징적 의미는 각각의 사물이 지닌 물질적 속성 그리고, 사물이 남도인의 삶과 역사에서 차지해온 역할과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적 상징에 대한 연구는 송수권이 표현한 남도정서 혹은, 남도정신이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남도의 환경적 특성, 남도인의 삶과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통찰에 근거한 것임을 이해하고 그것들이 각각의 시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주제어: 상징물, 정체성, 남도인, 전통, 기질, 정서, 황토, 대[竹], 뻘, 그늘, 곡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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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송수권 시인은 남도에서 태어나 남도에 살면서, 남도의 정서와 문화에 뿌리를 두고, 지역과 자신의 정체성 규명을 위하여 40여 년 시력(詩歷)을 오직 한길로 관통해 온 시인이다. 그러한 정체성은 그의 문학을 일관되게 뒷받침하고 있는 ‘고향에 대한 깊은 사랑’이며, 이는 다시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그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송수권 시인은 “향토적 삶에 대한 애정, 자연과 국토에 대한 사랑, 민중에 대한 뚜렷한 역사와 문화의식”을 지닌 “전통 시인이자 자연파 시인이며, 민족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송수권이 지닌 투철한 역사와 문화의식이 그의 시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의식 하에 송수권의 "서정 미학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시적 리얼리티를 획득"하게 되었다.
송수권의 시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온 민중의 삶, 특히 그들의 삶이 만들어낸 서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가 발견한 민중은 무엇보다 자신의 삶이 비롯되고 지탱된 남도의 땅과 거기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 즉 남도사람들이다. 물론 그것은 “남도에 국한되지 않고 다시 한반도 전체로 확장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것”들이지만, 일단 그가 태어나서 자라고 돌아가 묻힌 남도와 남도사람의 삶과 문화는 송수권의 시를 근본에서 규정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송수권 스스로도 자신을 남도시인으로, 그리고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을 남도의 서정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그에게 흔히 부여되는 남도 시인이라는 평가, 그리고 그의 시가 남도의 서정, 남도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라는 평가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기존의 평가나 송수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상징물들이 내포하는 남도의 서정이나 정신은 대단히 모호하다. 이 상징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서로 다른 양상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것들이 남도 사람들의 삶과 정서에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관하여는 시인 자신의 은유적인 설명 이외에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송수권 시의 독자나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그의 문학에 대한 이해와 감상, 그리고 연구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는 송수권의 시에 내포된 핵심적인 상징물—황토, 대, 뻘, 그리고 그늘-을 중심으로 송수권이 말하는 남도정신이나 남도서정을 명확히 규정해보고자 한다. 이는 송수권을 남도시인으로 규정할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이들 소재의 다양한 활용과 변주를 통해서 송수권은 한국문단에서 누구도 넘보기 힘든 그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인의 시적 진술은 실질적인 삶의 체험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나 시대의 역사적 사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이러한 시인의 체험이나 역사적 사실을 시적 진술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주체는 보이는 사실의 울타리 밖에서 사물을 인지하고 그 사물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언어라는 매개체로 볼 수 있도록 환원시켜내야 한다. 그래야만이 독자는 시인이 의도하는 의미를 시뮬라르크(simulacre)적 방법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이 연구는 기존의 연구 성과와, 송수권 자신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러한 상징인식에 천착하여 송수권 시의 핵심적인 소재이자 상징인 황토, 대, 뻘, 그리고 그늘이 지닌 의미와, 이것들이 남도인의 삶이나 정서와 맺는 관계를 심층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단순히 수사적인 차원에서 언급되곤 하던 남도정서, 남도정신의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Ⅱ. 남도정신의 물질적 바탕-황토, 대, 뻘
송수권은 일찍이 남도인의 기질, 그리고 그것과 자신의 문학과의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남도인의 기질은 ①대[竹]의 정신 ②뻘의 정신(개+t+땅+쇠) ③황토의 정신으로 요약된다. 본론에서 취급된 나의 모든 작품들은 이에서 한 치 반치도 벗어남이 없다. 또한 나의 언어는 남도 토속 언어들이며 시적 상징 기호는 곡선과 느림의 상법相法으로 요약된다. (중략) 위에 든 3대 정신에서 벌여진 나의 시나 학문 역사, 즉 인문학을 일컬어 ‘호남학’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위의 글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뻘의 정신,” “뻘의 정신을 탐구하는......”, “뻘의 정신이 곰삭아 가면서......” 등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송수권 스스로도 남도정신을 규정하는 물질적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사물들의 의미,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남도의 정서나 정신과 연관되는지에 관해서는 분명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 부분은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서 인용되고 송수권 시 분석의 기본 틀로 응용되어오면서도 대개 막연하고 불명확하였다.
가령, 송수권 시에서 ‘토속적 풍물을 통한 역사의식’을 강조한 박호영,이나, ‘원초적 삶에 대한 꿈꾸기’를 지적한 김준오, ‘설화적 세계와 샤머니즘적 상상력’에 주목한 최동호, ‘대지를 딛고 서서 하늘과 땅을 생명의식으로, 사람과 시간을 역사의식으로 통일’시켜 왔음을 강조한 김재홍, 그리고 남도인으로서, ‘남도의 3대 정신을 중심’으로 한 「송수권의 詩論 정립을 위한 試論」과, 「송수권 시의 가락」을 연구한 김선태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 역시 송수권의 상징어를 원형에 가깝게 옮겨 두루뭉수리하게 사용함으로써, 이들 상징물이 내포한 남도정신이나 정서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이밖에도 “송수권은 남도의 향토적 자연과 질박한 토속어를 섬세하게 활용해 남도의 정서를 아름답게 형상화하였으며, 남도 탯말의 시적 가능성 또한 드높였다”거나, 남도의 ‘눙치는’ 토속어로 남도의 정서를 아름답게 형상화시켜 시적 정서를 상화, 백석, 미당, 육사, 박재삼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서정시산맥의 또 다른 남성(男聲)으로서, 삶에서 묻어난 질퍽한 정서 및, 남도 사람들의 풍성한 음식문화를 맛깔스런 우리 탯말로 육화시켜냈다고 평가한 기존의 연구 성과는 남도정서나 정신의 핵심에 일정부분 근접하였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좀 더 구체화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송수권의 시적 변모 과정을 3기로 나누고 각 시기별로 대표되는 작품의 특색을 고전, 역사, 민담, 민속, 향토, 샤머니즘으로 분류한 오세영의 연구는 그중 눈여겨 볼만하다. 오세영은 송수권의 시 세계를 제1기는 자연과 사고와 감정이 영통(靈通)하는 원시적 사유의 ‘애니미즘 세계’, 제2기는 현실과 투쟁하는 생명탐구의 ‘생활공간’, 제3기는 생명탐구 대상으로서의 ‘생명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분류는 송수권 시의 시적 변모과정에 관한 연구로, 상징물과 연계된 연구로부터는 비켜갔지만, 송수권이 유년시절 황톳길에서 꿈꾸었던 「꿈꾸는 섬」이나, 죽창을 들고 황토현을 오르던「남도의 밤 식탁」 혹은, 『아도』와 같이 현실과 투쟁하는 민중들의 ‘생명탐구 의식’,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비워내는 개펄 위에서 ‘생명 그 자체’를 영위하는 남도인의 삶을 짚어냄으로써 이들 상징물의 의미에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송수권의 시에서 남도정서나 남도정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송수권 자신이 말한 ‘삼합론(三合論)’일 것이다. 한 연구자는 이를 토대로 송수권 시의 언어, 가락, 정신을 분석하고, 송수권의 시 정신을 ‘남도정신’이라고 논하며, 황토의 정신(“유년기에 겪은 토속적인 정취와 서정”), 대〔竹〕의 정신(“동학농민혁명의 정신”), 뻘의 정신(“개척정신-갯땅쇠의 정신”)으로 요약한다. 본문에서는 이 논의와,「송수권의 詩論 정립을 위한 試論」, 그리고 송수권의 ‘삼합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남도서정이나 남도정신의 물질적 바탕이 되는 사물 황토, 대, 뻘 이외에, 이 세 가지 상징물들이 신화적, 역사․문화적, 지형학적 관계망 속에서 곰삭아, 남도인의 삶과 가락으로 육화된 송수권 시의 또 하나 상징물, ‘그늘’을 추가하여 살피고자 한다.
1. 신화적 의미 - 황토
송수권이 말하는 남도 정서는 남도의 처처에 깔린 붉은 ‘황토’다. 예로부터 황토는 벽사적(辟邪的) 요소를 지닌 것으로 액운을 막고, 황토수는 치료수로 사용되었다. 이는 동양의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과 관련된 것으로 영적 치유와 육신의 치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황토는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정화와 생명의 치유능력’을 상징한다할 것이다. 이러한 상징성은 송수권의 시에서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산문에 기대어」)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되고, 뻐꾹새 한 마리가 울어, 온 산등성이를 뿌리째 뒤흔들고 “오래 남은 추스림 끝에” 섬진강을 열어놓는 힘(「智異山 뻐꾹새」)이 되기도 한다. 그 힘은 “콩꽃 속에 숨어 있고/오동나무 잎사귀/들밥 속에 있고/냉수 사발 맑은 물속에 숨어 있고/형벌처럼 타오르는 황토밭길 잔등에 있다/”(「아그라 마을에 가서 2」). 그래서 고향마을의 황톳길은 정화의 신이고, 치유의 신이며, “황토밭 잔등에 서 있는” 어머니 같은 기다림의 신으로 그의 시에서 부활한다.
송수권에게 이 길은 따뜻한 ‘신화와 신비가 넘치는 길’이다. 반면에, 그에게 이 길은 형벌의 길이기도 했다. 7년 병상의 지린 냄새로만 기억되는 어머니와, 제대한 지 3일 만에 어머니 무덤가에서 자살한 동생 수종으로 인해 그는 평생 가슴에 돌을 얹고 살았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이런 상처를 “서늘한 아름다움의 슬픈 역설”로 형상화 한다. 그래서 “비장미 넘치는 애절함이 이 황톳길 위에서는 신화로 벌어져” 부활하는 곳이 되는 것이다.
시인은 유년기에 새벽밥을 먹고 20리 길을 동생을 데리고 걸어 읍내 중학교까지 통학했다. “그 길은 어두웠지만 언제나 신선하게 열려있었고, 무한대의 시간이 출렁이며, 원초적인 생명력이 넘치고 있었다. (중략) 그래서 이 길, 이 공간은 내 유년에 해당하는 공간이며 따뜻한 신화의 불빛에 젖은 황토를 떠올리게 한다”고 시인은 회상한다. 이 말을 근거로 시인의 황토정신을 단순히 “남도의 원초적 생명정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너무 포괄적인 접근으로 상징물의 일부 의미만을 건드린 것이다.
“이틀이나 사흘쯤 낯선 곳 낯선 풍경을 달리다 보면/이리도 흙 냄새 그리운 거/징검돌 하나라도 이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거//”(「정든 땅 정든 언덕 위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검게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한 사나흘쯤 걷다보면 어머니의 체취 같은 흙냄새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황토는 생명이 나고 자라는 근원이라는 점에서 어머니와도 닮았다."고 한다. 이런 황토의 정서를 송수권은 ‘안땅 정신’이라고 정의한다.
안땅은 고향에 대한 시인의 유비적 언어다. 시인의 고향은 두원반도 중간쯤에 위치한 사구시(분청사기골)마을이다. 교사로서 근무지를 좇아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던 송수권에게, 고향의 황토빛은 “변산반도 노을에 미치지 않고서는 달리 견딜 방법이 없었다”던 노을빛으로 육화된다. 그는 “다만 이 시대에 와서 그 황톳길이 없어졌다고 해도 그 길은 우리들의 정신이자 고향이며 따뜻한 신화의 불빛이”요, “이 길 위에서 묻어나는 정서가 민족의 정서이며 민족혼”으로, 여기서 우리 민족의 힘을 본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길로 뻗쳐있는 전라도 말 가락도 이 지방의 산세와 같이 치렁치렁 흘러간다”고 말한 것이다.
시인은 이 핏빛 황톳길에서, ‘인내천(人乃天)’의 깃발을 치켜세우고 황토현을 넘던 민족정화의 ‘동맥’을 발견하였다. 시인은 짓밟힌 민초들의 억울함을 해소시키고 민족을 이끌 수 있는 광야에 우뚝 선 ‘유태신이나 알라신’ 또는 힌두신 같은 그런 힘 있는 신을 기다린다.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고 돌멩이처럼 발길에 차이는 그런 신이 아니라, 대낮에 마른번개를 때리고, 불칼로 불순자를 내치며, 민족 집단성원의 개개인을 올가미로 씌워놓고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드는 신, 그런 ‘힘센 신’의 부활을 애타게 기다리며 신화를 꿈꾼다. 그런 신은 정의를 실현하는 신이요, 정의를 실현코자하는 사람들의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그 피는 황토에 스며들어 짓밟힌 자들의 분노를 삭이고 정화시킬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그들의 피가 스민 황토는 불의를 소멸하고, 정의로운 생명을 소생시키는 ‘신화적 힘’을 갖는다.
오늘 밤 꿈 속에서는/날개 달린 아기 장수 하나가/갈기 성성한 흑말 타고/펑펑 쏟아지는 흰 눈을 밟아/백성 민(民)자 쥬인쥬(主)자 푸른 깃발 날리며/무등산 잣고개를 또 넘어 오겠구나./이제 우리 새벽 피를 더 흘려서는 안 된다./날이 샐 무렵은 저 새벽 능선들 보자/오래도록 긴 밤이 가고 어떤 성스러운 빛이 와서/우리 새벽 힘차구나. -『새야새야 파랑새야』대미
그러나 시인이 기다리는, 흑말을 타고 흰 눈을 밟으며 오는 신화속의 신은 아직 바윗덩이 속에서 천지개벽의 날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다. 꿈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부단히 흘러가는 자연적 시간을,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로, 모두 기억 속에 나란히 병치시켜 놓음으로써, 크로노스의 무참한 파괴성을 극복하고 저마다의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 화자는 무참한 현실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성스러운 새벽을 기다리는 것이다.
“아 이 독약보다 무서운 울음 앞에/오늘 나는 다 망해버린 낯짝을 쳐들고 와서/아버지 논의 질서를 바로 세우며/둥둥 떠다니는 뒷모를 꽂는다/”(「뒷모」). 뒷모란 모내기에서 잘못 심겨져 수면에 뜬 벼모종을 다시 심는 일이다. 화자는 “이 독약보다 무서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며,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벼모종을 모아 무논에 정식(定植)함으로써 다시금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 이 질서는 백성이 주인이 되고,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는 당연한 질서이지만 이 당연한 질서가 무너진 현실 앞에서 시인은 재창조적 신화를 파종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시인의 씨알은 희망이다.
밝은 햇빛 떨어진 황토길/통나무 같은 지렁이 한 마리가 고딕체로 넘어져 있다/농사는 갈수록 힘들고/경제대국은 어려워요/소와 마부가 깍깍 한낮의 정적을 씹어 놓고 갔을/두 줄의 선명한 수레 발자국/ -「環村.5」부분
이 시는 그런 민초들의 희망을 노래한다. 한여름 불볕의 황톳길에 지렁이 한 마리가 죽어 말라붙어 있다. 그 죽음이 화자의 눈에는 ‘고딕체’로 누운 통나무처럼 굵다. 무기력하고 보잘 것 없는 미물의 죽음은 화자가 보는 민초들이며, 그들 삶의 전부다. 그들에게 희망과 현실은 수레의 두 바퀴자국처럼 봉합될 수 없다. 그러나 소를 모는 마부는 그 절망을 깍깍(꼭꼭의 남도 사투리) 씹으면서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밝은 햇살 쏟아지는 황톳길을 걷는 것이다.
사는 일은 무엇일까?/공동묘지의 벌겋게 까진 잔등이 비에 얼룩지고/비명처럼 황토흙의 빛깔들이 새어 나왔다/외짝 신발을 하나 묻고 봉분을 짓고/(오매 오매 날 무얼라고 맹글었는고 짚방석이나 맹글 일이제......)/흐렁흐렁 울음 속에서도 황토흙처럼 불거져 나온/저 전라도의 간투사間投詞들/ -「묵호항」부분
이제 희망을 지닌 화자는 삶에 대한 정화와 절망으로부터 소생을 갈망한다. 송수권은 불교를 신봉하지 않았지만, ‘삼합론’에서 밝힘과 같이 그의 많은 작품에서 불교적 사유, 즉 윤회사상이 짙은 시작 방법을 구사했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경계의 문턱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불교적 세계관을 끌어들여 환생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우리 “전통 서정시를 노래하는 시인들에게는 지극히 흔한 일”이다. 위의 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비 내리는 날 고모와 함께 찾은 고모부 산소의 황토빛깔은 화자의 가슴에 묻은 동생 수종의 환영으로 환생한다. 화자는 봉분이 뭉개져 벌겋게 까진 절망 가운데서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신발을 한 짝만 묻고 남은 한 짝은 시인의 몫으로 묻지 않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런 시인의 시적 메타포는 그의 등단 시 「산문에 기대어」에서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와 맥을 같이 한다. “푸른 제대복 위에 찔레꽃처럼” 흩어진 수면제 낱알들을 떠올리며, 평생 그 아우를 가슴에 품고 죽음을 죽음으로 인식하지 않는 시인의 의식 전환은, 스스로를 비하하는 고모의 입심을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흐렁흐렁 울음 속에서도” 죽음을 뛰어넘어 “황토흙처럼 불거져 나”오기(부활하기)를 바라거나,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 같이/그렇게 만나는 것을(「산문에 기대어」)” 희망하는 ‘소생 지향적 심상’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바램은 앞의 시 「환촌.5」에서 소와 마부가 바라보는 시선과도 일치하고 있다.
이런 송수권의 황토정신을, 토속적인 성격을 띤 생명존중사상이라거나 우리 것에 대한 애착, 민중들에 대한 삶, 우리 민족 혹은 남도인의 서러운 한을 표출한 ‘정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의 황토 정신은 한의 정서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나아가 불의를 소멸하여 정화시키고, 민초들에게 희망을 안겨줌으로써, 생명을 소생시키는 힘을 소유한다. 그래서 송수권의 황토정신은 신화속의 아기장수를 기다리고, “절망을 깍깍 씹으며” 밝은 햇빛 떨어진 황톳길을 걸어 고향의 무논에 아버지와 함께 흩어진 뜬모를 정식(定植)하여 질서를 바로잡고자 한다. 이러한 시인의 시도는 유심론적(唯心論的) 세계관의 발로라고 할 수 있고, 무덤 앞에서 다시 살아 만날 것을 기다리는 불이정신(不二精神)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의 황톳길은 ‘삶의 정화와 치유능력’을 지닌 따뜻한 신화의 불빛으로 뜬다.
2. 역사․문화적 의미 - 대〔竹〕
송수권은 남도정신이란 무엇인가고 자문하고, 그 정신은 “수 틀리면 죽창을 깎아 외적을 막아내고, 태평세월엔 그 대가 대금, 중금, 소금, 피리소리로 뜨는 가락의 정신”이라고 답하며, 남도의 처처에 청청하게 어우러져 그의 고향집 뒤란까지 뒤덮은 대를 또 하나의 상징물로 내세운다. 대는 그 품성이 올곧고 사철 푸르다. 그 뿌리는 어둠을 뚫고 뻗어나가 생을 개척하며 때가되면 당당하게 몸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억압과 불의에 항거하는 민초들의 무기로 돌변하는 강인한 특성을 내재하는 상징물이다.
무엇이냐. 胡敵들의 꽹과리 속에서/무너져오는 저 불빛은/짚신 감발에 대패행이를 쓴 놈들이 죽창을 들고/무에라 떠들며 오는 소리/운봉 새재 아흔아홉 굽이에도 실리고//무엇이냐/소리도 없이 밤하늘에 잠든 旗처럼/우리들의 가슴속에 고여 뜨거운 핏줄을 밝히는 것은/이 상놈의 피는/ -「燈盞」부문
이 시에서 “남한산성으로도 뛰고/강화도로도 뛰고 의주로도 뛰는/어둑한 산하/”가 시인이 보는 현장성이다. 난이 일어나자, 왕이나 고관대작들은 제 살길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민초들은 바람이 일면 날개를 펼치는 깃발처럼 떨치고 일어나 외세에 대항해 죽기로 싸웠다. 이렇게 역사 속의 죽창을 움켜쥔 민중, 혹은 남도 사람들의 의기(義氣)를 시인은 남도에 지천으로 깔린 대숲에서 본 것이다.
머리에 흰 수건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징소리 꽹과리 소리들/......//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에는/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타는 내음/ -「대숲바람소리」부문
시 속에 등장하는 대숲바람 소리는 밀려드는 외세의 바람과 남도사람들의 애환을 상징하는 중의적 의미의 바람소리로, 몽당빗자루, 개터럭, 보리숭년, 알개빗, 쇠그릇 등으로 상징화하여 민중 또는 남도인의 곤궁한 삶으로 치환되고 있다. 외세에 맞서는 사람들은 평시에 거들먹거리던 양반들이 아니다. “짚신 감발에 대패행이를 쓴 놈들”이거나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이다. 이는 “이 상놈의 피”가 흠뻑 젖은 민중들의 역사와 생활문화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잔바람에도 비틀거리며 이어내린 남도와 남도사람, 더 나아가, 이 나라 이 백성의 유전인자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이러한 송수권의 역사인식과 민중의식은 우리 전통서정시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
어느 고샅길에 자꾸만 대를 휘며/눈이 온다//그러니 오려거든 삼동三冬을 다 넘겨서 오라/대밭에 죽순이 총총할 무렵에 오라/손에 부채를 들면 너는 남도 한량/죽부인竹夫人을 껴안고 오면 너는 남도 잡놈이란다/댓가지를 흔들고 오면 남도 무당이지/올 때는 대도롱태를 굴리고 오너라/그러면 너는 남도의 어린애지//그러니 올 때는/저 대밭머리 연鳶을 날리며 오너라/네가 자란 다음 죽창을 들면 남도 의병義兵/붓을 들면 그때 너는 남도 시인詩人이란다/대숲 마을 해 어스름 녘/저 휘어드는 저녁연기 보아라/오래 잊힌 진양조 설움 한 가락/저기 피었구나/시장기에 젖은 남도의 밤 식탁/낯선 거집이 지나는지 동네 개/컹컹 짖고/그새 함박눈도 쌓였구나//그러니 올 때는/남도 산천에 눈이 녹고 참꽃 피면 오라/불발기 창 아래 너와 곁두리 소반상을 들면/아 맵고도 지린 홍어의 맛/그처럼 밤도 깊은 남도의 식탁//어느 고샅길에 자꾸만 대를 휘며/눈이 온다// -「남도의 밤 식탁」전문
이 시는 남도의 문화인식을 보여주는 시로, 화자의 시각, 청각, 미각, 심지어 후각까지 동원하여 시인이 의식하는 남도사람들의 기질과 대비되는 대의 상징성을 선연히 그리고 있다. 대〔竹〕의 이미지는 ‘유연성(柔軟性)’이다. 외형적으로는 미풍에도 감응하는 감성을 갖고, 여린 눈송이에도 허리를 굽히는 유순함이다. 이러한 대의 근성은 평화로운 남도의 문화와 유려한 남도 사람들의 성품으로 전이된다. 시인은 삼동(三冬)을 넘겨, 연을 날리며, 대도롱태를 굴리고 “남도의 산천에 눈이 녹고 참꽃이 피면 오라”고 한다. 그렇게 만나 “불발기 창 아래” “곁두리 소반상”을 차려놓고 “홍어의 지린 맛”을 나누며, 한(恨)과 증오를 곰삭이는 사람들이 남도 사람이고 남도인의 숨소리라고 한다. 이는 제도적 모순과 폭압에 쓰러진 민중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시선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다.
주지하듯이 남도인의 정서를 얘기할 때 ”대문에 들면 대가 있는데 방안에 들면 어찌 난초 한 폭이 없겠는가“라고 한다. 더불어, ”남도 기생집은 대숲 바람이 불어야 멋이고, 서울 기생집은 인왕산 바위 그늘에 가려야 멋이다“란 말도 있다. 이러한 깊은 여백의 내면에 육화된 풍광이 시인이 대숲을 통해 바라보는 남도 사람들의 ‘유려한 성품’이다. 이 또한 시인이 남도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빚어낸 대의 상징성으로 남도인의 역사․문화적 정서로서 자리매김 한다.
대의 또 다른 이미지는 ‘가변성(可變性)’이다. 대숲의 바람소리, 눈 내리는 소리는 청정하고 적막하기까지 하지만, 그 소리는 자연현상에서 들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역사적 삶의 현장으로 민중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현실은 “자꾸만 대를 휘이며 눈이 온다.” 민초들은 양반들의 횡포와 외세에 등이 휜다. 그들은 침묵하며 참고 견디다가도 바람만 일면 소리 없이 날개를 펼치는 깃발처럼 분연히 들고 일어서 질서를 바로잡고 희망의 깃발을 꽂는다. “대들이 휘인다/휘이면서 소리한다/연사흘 밤낮 내리는 흰 눈발 속에서/우듬지들은 흰 눈을 털면서 소리하지만/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다/어떤 대들은 맑은 가락을 地上에 그려내지만/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다/”(「눈 내리는 대숲 가에서」). 이 시는 남도의 역사성을 그렸다. 민초들의 비명소리가 하늘에 사무치지만, 권력과 자신의 안위에 귀멀고 눈먼 양반들은 알아듣지를 못한다. “대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삼베 옷 검은 두건을 들친 백제 젊은 修士들이 지나고”, “한밤중 암수 무당들이 댓가지를 흔드는 붉은 쾌자자락들이 보이고/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넘는/미친 불개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화자가 가만히 들여다본다는 양상은 화자의 경험과 상상을 부르는 모습이다. 화자는 여기서 패망한 백제의 역사를 보고, 의분에 넘친 불개들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희망을 찾으려는 시인의 의지는 화자를 통해 내일을 부르는 무당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시인이 보는 대의 이미지는 불의를 보면 의기에 넘쳐 미친 불개처럼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지고, 붉은 깃발을 치켜들고 황토현을 넘는 남도 사람들의 역동적인 역사로 의식되는 것이다.
송수권은 이를 남도 정신으로 단정하고 “수 틀리면 죽창을 깎아 왜적을 막아내고, 태평세월에는 그 대가 대금, 중금, 소금소리로 뜨는 가락의 정신”이라고 한다. 이렇게 대나무의 성정을 피력하는 말에는 남도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가 함축되어 있다. 대나무는 깊이 휠수록 탄력성이 비례한다. 민초들의 유순한 삶 또한 짓밟힐수록 생명력이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다. 대나무가 담고 있는 이러한 강․온의 상징성은 상처 입은 땅과 그 땅위에 사는 민중들의 헐벗은 삶으로 치환될 수 있고, 억압받은 삶은 ‘강인한 저항정신’이 담긴 동학혁명정신의 시원(始原)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송수권의 '대의 정신'을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인이 달리 지적하는 ‘평화로운 시절에 피리소리로 뜨는’ 대의 유려(流麗)함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민중의식은 삶의 자연스러운 발현을 무엇보다 고귀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정신이다. 대도롱태를 굴리며 놀던 아이가 자라 “죽창을 들면 남도 의병”이요, 붓대롱을 들면 “남도 시인”이며, 그러한 남도에서는 저녁 짓는 굴뚝에서 오르는 연기도 “진양조 설움 한 가락”을 안고 산다고, 시인은 역사 속에 묻힌 남도의 정신을 규정하고 있다.
“송수권 시에 구현된 대나무의 정신이라 함은 지조와 절개보다 남도민의 풍류의식이나 역사의식을 상징하는 정신을 말한다.”라고도 한다. 이 또한 너무 개괄적인 분석이다. 작품에 내포된 남도 사람들의 정신은 “현실과 투쟁하는 생명탐구의 생활공간”으로, 그들 자존의 방식이다. 시인은 무너져내린 고향집을 찾아 무성해진 뒤란의 대나무를 쳐내며, “이제 고향집은 떠났지만 이 대숲마을의 풍경은 무덤까지도 가지고 가고 싶다”고 하였다. 시인이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었던 것이 어찌 눈에 보이는 대숲의 풍경뿐이겠는가. 수 틀리면 바로 죽창으로 돌변하지만, 평화로울 땐 피리소리로 뜨고, 붓으로 모정(茅亭)의 선비 손에서 사랑받는 성정을 지닌, 대나무의 ‘강인한 저항정신과 유려한 성품’이 바로, 시인이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었던 남도의 대숲풍광은 아니었을까.
3. 지형학적 의미 - 뻘
송수권의 또 다른 상징물은 뻘(펄의 남도 탯말)이다. 지질학적으로 뻘은 침적토, 점토, 육지나 바다생물의 분해물이 오랜 세월 쌓여 만들어진 부영양화의 진흙층을 말한다. 이런 갯벌은 바다와 육지의 중간부분에 위치해서 바다를 정화시키고, 많은 바다생물의 삶터가 된다. 지형학적으로 리아스식 해안선을 끼고 잘 발달된 남해와 서해의 갯벌은 기름지고 드넓은 호남, 김제, 나주평야의 부영양화 된 담수를 끊임없이 공급받음으로써, 먹이가 풍부해 수산물이 다양하고 풍성하다. 이러한 기수역(汽水域)의 해산물과, 황토성분을 머금고 자란 농작물은 옛날부터 남도인의 생활과 식문화에 깊숙이 자리하였으며, “생활의 풍족함이 주는 여유로움은 자연과 함께 남도인의 정서 형성 과정과 깊은 연관을 맺어왔다.”
송수권은 남도 사람들의 정서와 관련된 세 번째 상징물로 이런 뻘을 꼽고 있다. 그가 말한 뻘의 정신은 “개+ㅅ+땅+쇠 정신”이다. 시인은 이를 다른 말로 “물둑의 고향 정신이요, 남택(南澤)의 정신”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개펄을 막아 ‘안땅’을 간척하여 대동단결을 이루고, 그런 환경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길러낸 남도인의 기질이 바로 시인이 말하는 ‘물둑 정신’이다. 더러는, 송수권의 ‘뻘의 정신’을 “남도의 질펀한 개척정신으로 요약된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의 물둑정신은 남도 특유의 ‘품앗이’ 정서와 긴밀히 연결되어 “인간에 대한 순수성의 회복과 토속적 삶의 귀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척정신”은 삶의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잃어버린 원형적 삶에 대한 회복과 질펀한 갯벌위에서 벌어지는 개개인의 ‘생에 대한 포용과 생명력’이 시인이 보는 뻘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시를 보자.
더러는 비워놓고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물이 갯물을 비우듯이/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밀물을 쳐보내듯이/(중략)/또는 바삐바삐 서녘 하늘을 깨워가는/갈바람소리에/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마지막 이 바닷가에서/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적막한 바닷가」부분
갯벌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갯벌이 갯물을 비우고 또 채워가듯이, 일정하게 반복되는 일들을 지칠 줄 모르고 비우고 채워가며 자신도 모르는 그리움과 적막감에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워가며 산다. 그래서 송수권이 말하는 ‘뻘의 정신’이란 생명을 포용하는 끈기와 상처로 가득 찬 ‘는지럭거리는’ 민초들의 ‘생에 대한 귀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고난한 삶의 체험을 송수권은, “나는 지금 이처럼 영혼적으로는 쪽빛을 갈구하며, 극기와 내면의 풍경을 떠올리기 위해 캄캄한 뻘내음에 코를 박고 있다”고 한다. 시인이 말하는 쪽빛은 생에 대한 구원과 희망이다. 절망의 수렁에 발을 딛고 살지만, 이 쪽빛은 범종소리로, 쇠북소리로, 혹은 경전으로 그들 앞에 펼쳐져 그 양태를 달리해가며, 종국에는 시인이 추구하는 희망과 토속적 삶의 회복에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이렇듯 비워내고 채워가는, 생명체에서만 배어나는 삶의 지린 냄새, 그것이 뻘의 냄새다. 뻘의 냄새는 민초들의 땀 냄새다. 땀이란 지칠 줄 모르는 그들의 생명력인 것이다. 이런 토속적 삶의 건강성과 민중적 생명력의 질펀한 는적거림이 바로 송수권 문학의 근본정신이기도 하다. 다음의 시 역시 그런 시인의 삶에 관한 개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너는 서해 뻘을 적시는 노을 속에/서 본 적이 있는가/망망 뻘밭 속을 헤집고 바지락을 캐는 여인들/한 쪽 귀로는 내소사의 범종 소리를 듣고/한 쪽 귀로는 선운사의 쇠북 소리를 듣는다/만 권의 책을 쌓아 올렸다는 채석강 절벽/파도는 다시 그 만 권의 책을 풀어 흘려/뻘밭 위에 책장을 한 장씩 넘긴다/이곳에서 황혼이야말로 대역사(大役事)를 이루는 시간/가슴 뜨거운 불꽃을 사방으로 던져/내소사 대웅보전의 넉살문 연꽃 몇 송이도 활짝 만개한다/회나무 가지를 치고 오르는 청동까치 한 마리도/만다라와 같은 불립문자로 탄다/곰소의 뻘강을 건너 소금을 져나르다 머슴 등허리가 되었다는/저 소요산 질마재도 마지막 술빛으로 익는다/쉬어라 쉬어라 잠시 잠깐/해는 수평선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 「大役事」전문
“자연은 한권의 큰 책”이라고 한다. 화자는 지금 그런 책 만권을 쌓아 올렸다는 채석강 절벽 앞에서 여인네들이 온몸으로 써 내리는 뻘내음 나는 삶의 책을 읽고 있다. 화자는 시의 첫머리에, “너는 서해 뻘을 적시는 노을 속에 서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물론 이 물음은 독자에게 묻는 것이지만, 삶에 지친 화자 자신에게 던지는 것일 수도 있다. 뻘밭이 햇살에 제 등허리를 모두 드러내 보일 때는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사리의 일곱, 여덟 물때다. 이때쯤에는 벌써 해가 기울고, 되짚어 밀려드는 밀물에 쫓기어 “망망 뻘밭 속을 헤집으며 바지락을 캐는 여인들”의 손놀림은 더욱 황망해질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바다가 펼쳐놓은 질퍽한 갯벌 위에, 기록되고 읽혀지는 여인네들의 삶은 시인의 상상 속에서 신성한 행위로 형상화되어 내소사 대웅보전의 넉살문 연꽃으로 만개되기도 하고, 거룩한 경전으로 기록되어 그들에게 전해진다. 그들의 고난에 찬 생의 애착은 그렇게 만권의 서책에 기록되어, 연꽃보다 아름답고, 경전보다 거룩해지는 것이다. 이제 여인들은 지난한 삶 가운데서도 지하의 생명과 땅위의 생명을 불러 모우는 범종소리와 쇠북소리를 듣게 된다. 이 소리는 희망과 위로의 노래다. 그렇기에 해(太陽)도 눈을 감고 “쉬어라 쉬어라 잠시 잠깐”만이라도 하며, 여인네들의 등을 다독이는 것이다. 이렇게 송수권의 시는 뻘내음에 발을 담그고 민중적인 생명력의 세계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자욱하다/진창이 된 저 삶들, 물이 썬 다음 저 뻘밭들/달빛이 빛나면서 물고랑 하나 가득 채워 흐르면서/아픈 상처를 떠올린다 저 縫合線들,/이 세상 뻘물이 배지 않은 삶은/또 얼마나 싱거운 것이랴/큰 소리가 큰 그늘을 이루듯/곰소항의 젓갈맛 속에는 내소사의 범종 소리가 스며 있다/밤배를 타고 뻘강을 건너온 사람들,/소금을 뿌리고 왕새우를 굽는 철판에서도/그 오그라붙는 왕새우 수염 속에서도/물비린 소리는 살아서/자욱하다//
-「곰소항」전문
위의 시는 갯벌에 사는 사람들의 원초적 생에 대한 포용력을 노래한 것이다. 뻘을 먹고 사는 생명체가 내뿜는 물비린내는 젓갈 맛이다. 젓갈 맛은 바로 뻘 냄새다. 그리고 이 뻘 냄새는 바다가 비워낸 뻘창을 휘젓는 “진창이 된 저 삶들”의 땀 냄새다. 이런 삶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능성(Seinsknnen)’을 기획하고 그것에 따라 사는 하이데커나 카뮈의 실존과도 상통(相通)한다. 그래서 그들의 땀은 “뻘밭으로 상징되는, 상처로 가득 찬 생명 현상과, 그 질긴 생명력에 대한 외경심”으로 환치된다. 이러한 경외심에 함께 발을 묻은 시인은 밀물이 다시 그들이 휘저어놓은 뻘밭을 덮어가듯 진창이 된 삶을 꿰매는 수많은 봉합선을 찾아낸다. 봉합선은 시인이 발견한 자비로운 대 자연이다. 자욱한 물비린내가 상처 난 민초들의 삶을 달빛으로, 우뢰소리로, 차고 넘치는 물고랑으로 봉합하여 그들의 뻘물이 밴 삶에 생명의 복음으로 동화된다.
“칠칠한 그믐밤마다 새조개들 입을 벌려/고막녀(女)들과 하늘 어디로 날아간다는 전설이/ 뻘처럼 깊은 서산 갯마을/한낮엔 굴을 따고/밤엔 무시로 밀낙지국과 무젖을 먹는 아낙들”(「서산 갯마을」). 그래서 치유 받은 그들의 삶은 전설이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밀물이 쳐내듯” 그렇게 분명하게 치유하는 삶이 있기에 ‘달빛’과 ‘범종소리’로 관조되는 ‘생명력’ 가득한 삶은 구원을 얻는다. 하지만, 민초들의 현실은 자고 나면 되풀이되는 고난한 삶이다.
“이 질퍽한 뻘 내음 누가 아나요/아카시아 맑은 향이 아니라 밤꽃 흐드러진/페르몬 냄새 그보다는 뭉클한/이 질퍽한 뻘 내음 누가 아나요”(「뻘물」). 삶의 지형학적 공간으로서 총체적 생명현상을 구현하던 시인의 뻘에 대한 사유는 여기서 다시 리비도적 상상력을 동원해 좀 더 구체적인 생명성을 획득한다. 즉, 삶이라는 포괄적 범위를 육화시킨 인간의 육애성(肉愛性)을 이 갯벌에서 찾은 것이다. 도시 여인의 아카시향수(香水)가 아니라, 밤꽃처럼 비린 남성의 뭉클한 육욕의 내음이 바로 생명을 품은 민초들의 땀 냄새요 뻘 냄새다. 땀과 뻘의 비린 냄새가 연상시키는 ‘살 냄새’는 단순히 에로스적 사랑에 국한되지 않고 생명 충동이 물큰거린 민초들의 삶으로 형상화 된다. 그리고 그런 삶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내린다.
이런 생명력만이 인생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송수권의 시적 인식은 전혀 새롭지가 않다. 토속적 삶의 건강성과 민중적 생명력의 질펀한 는적거림이 바로 송수권 문학의 근본정신이기 때문이다. 지형학적 환경에서 ’물둑정신’으로 뭉쳐진 민초들의 ‘삶의 포용과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으로 분출되는 뻘(땀)냄새는 내소사의 범종을 울리고 경전이 되어 구원으로 승화된다. 그래서, 알몸으로 “밤배를 타고 뻘강을 건너온” 원형적인 민초들의 삶은 “생명탐구 대상으로서의 생명 그 자체”로, ‘생의 포용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지칠 줄 모르고 매순간 정화되며 끊임없이 소생하는 것이다.
Ⅲ. 남도의 정신 혹은, 정서 - 곡즉전(曲卽全)의 삶, 그늘
연구자는 위에서 거론한 송수권 시의 상징물 외에, 이것들이 어우러지고 곰삭아서 형성된 ‘그늘’이라는 상징물을 더한다. ‘그늘’은 송수권의 시에서 황토, 대, 뻘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상징물로 ‘그늘’에 함의된 상징성은, 지형학적으로 외침과 침탈에 시달리면서도 이러한 삶을 곰삭혀서, 부족한 듯 부족함이 없고, 쓸모없는 듯 쓸모없는 것이 아닌, 자연의 순환과 변화에 순응하며 사는 남도인의 곡즉전(曲卽全)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러는 송수권의 시적 근원을 곡선에서 찾는 이도 있다. 곡즉전의 정서는 한국적 미의 섬세한 울림과 성찰에서 비롯된다. 특히 눙치는 전라도의 토속어를 기반으로 보성지방을 아우르는 서편제와, 남원지방을 아우르는 동편제로 발달한 남도의 판소리자락은 송수권 문학에서 ‘곡선의 상법과 소리의 상법’에 해당하는 소리 이미지와도 직결된다. 시인의 이러한 개념은 빠르게만 치닫는 현대인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 정신으로 자리매김 한다.
천고에 몇 번 쯤은 학이 비껴 날았을 듯한/ 저 능선들,/날아가다 지쳐 스러졌을 그 학 무덤들 같은 능선들,/오늘은 시끄럽게 시끄럽게 그 능선들의 떼 울음이/창해에 끓어 넘친다//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부분
한 폭, 산수화 같은 시다. 우리의 산과 강의 모습만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학이나, 무덤의 그림자까지도 구름이 비끼는 듯 보이는 풍광에다 울음의 소리상법을 더해 조화를 이룸으로써 자연의 아름다움과 숨결을 더 한다. 이런 큰 울림의 힘은 우리나라 전통서정시의 한(恨)을 초극한 송수권의 시적 모티프에 있다. “연연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오래 남은 추스름 끝에 비로소 강이 열리는 것”(「지리산 뻐꾹새」)과 같은 “맺힘과 풀림(解恨)에 대한 미학”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제망매가」의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인의 사상이며, 아우의 무덤 앞에 비워둔 잔을 아우가 살아 돌아와 채워주기를 기다리는 기다림이다.
그 삶은 “성급함이 아닌 느림이며, 속도가 아닌 춤이”다. 이 춤에는 슬픔, 추억, 들숨이 있고, 삶의 시간과 희망의 여백이 함께 생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의 개념이 생성되고, 시인의 상상력은 풍요를 더한다. ‘실컷 울고 난 후의 오랜 추스름’, 그 여백과 긴장의 곰삭은 그늘은, ‘남해의 작은 섬들을 밀어올리는 힘’이고, ‘세석평전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한(恨)’이다. 시인은 이런 힘을 “그 그늘 속에 중생을 먹여 기르는”(『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서문) ‘남도의 정서(대, 뻘, 황토)’요, 정중동의 우리 ‘산수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송수권을 일컬어 의식상이나 외형상으로도 곡선의 힘과 미에 사로잡혀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캄캄한 대숲 오래된 집 부뚜막엔 언제나 왱병 한 개가 놓여 있습지요 왱병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가전비법으로 전해져 오는 식초 눈이 살아 있어 들척지근 혀끝이 오그라붙기도 하지요 남도 사람들은 이 맛을 두고 왱병이 운다고 합니다. 봄바람 불어 한 번 가을바람 불어 또 한 번 그래서 앵병을 아예 왱병이라고 부르는데 그 병모가지만 보아도 눈이 절로 감겨오고 황새목처럼 목이 찔룩거려옵니다
(......)
그래서 남도 사람 소리는 왱병 모가지 비트는 소리로 통성이 되고 수리성도 됩니다 또 이것을 시김새 소리라고도 합지요 시김새 붙은 소리는 왱병속에서 왔기에 소리 중에서도 땅을 밟는 뱃소리 하다못해 한바탕 바가지로 설움을 떠내는 큰 소리꾼이 되고 명창도 되는 것입지요. -「왱병」부문
왱병(앵병)은 남도의 탯말이다. 부뚜막에서 발효시키는 식초병으로, 주로 정종병에다 막걸리를 담아 식초 눈을 첨가하여 발효시키는 가양식초(家釀醋)다. 이 식초의 눈은 미생물이기 때문에, 병 입구는 공기가 통하도록 솔잎 등으로 헐하게 막아 부뚜막 온기로 오랜 시간 발효시켜내야 한다. 만약, 부주의로 입구를 꼭 틀어막거나, 햇볕에 노출되거나, 상온(常溫)에서 고온이나 저온이면 이 식초의 눈은 바로 죽어버린다. 이를 남도 사람들은 “식초가 잠을 쒰다”고 하는데, 그러면 사초(死醋)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뚜막의 발효온도, 막걸리의 맛과 농도, 식초병을 관리하는 안주인의 정성에 따라 남도는 집집마다 식초의 맛이 다르다.
그래서, 남도사람들은 “그 집 식초 맛을 보면 안주인의 인품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깊은 정서와 맛을 지닌 가양식초로, 남도의 자양분이 풍부한 뻘을 마음껏 먹고 자라, 그 맛이 차지고 단 주꾸미나 전어, 박태(서대) 등을 회무침해 놓으면, 새큼달큰(들척지근)한 감칠맛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송수권은, 남도인은 죽을 때도 이 회 맛을 못 잊어 두 손으로 허공을 내저으며 “왱병 모가지 비트는 시늉을 하다 죽어간다”고 한다.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꼬막 정식을 시켰지요/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그런데도 남도 시인 이 맛을 두고 그늘이/있다나 어쩐다나/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있는 삶, 그늘이 있는 사람/그게 진짜 곰삭은 삶이래요// -「퉁」 부분
곰삭은 맛은 왱병의 식초처럼 고개를 치켜들지 않는다. 빙초산처럼 눈을 찡그리게 하는 맛도 아니다. 혀에 남아 오랜 여운을 남기는 맛이다. 그런 곰삭은 맛이 그늘 있는 맛이며, 그런 그늘 있는 맛이 기다림과 여백이 있는 맛이다. 그렇게 오래 숙성된 맛과 같은 삶을 송수권은 ‘그늘의 삶’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늘’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깊고도 여운이 남는 맛을 ‘개미’있는 맛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그늘’이란 말을 발효나 숙성을 거친 ‘곰삭다’에서 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 역시 시인의 유비에서 비롯된 시어(詩語)로, 개미 있는 소리를 그늘진 소리, 읽을수록 개미 있는 시를 그늘 있는 시, 품새가 넉넉한 사람을 그늘 있는 사람, 그리고 판소리의 시김새가 붙은 소리를 득음의 경지에 든 그늘의 소리로 수리성(통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울 시인에게, 시를 써도 그늘 있는 시를 쓰라고 ‘퉁지발’을 놓는 것이 그의 시「퉁」이다.
좋은 시인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 아니 소리에 그늘을 가지고 있다. 그 그늘 속에 중생을 먹여 기른다. 내소사의 범종 소리가 두텁게 그늘을 깔고 개펄을 뒤집어 쓴 선한 사람들을 그 산그늘로 모이게 하듯이.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서문
시인의 그늘은 자연이 인간에게 드리우는 그늘이며, 그것은 한여름의 나무그늘처럼 서늘한 치유의 공간이다. 그런 그늘은 중생을 거느리고 먹이며, 위로하고 구원시킴으로써 종교로까지 확장된다. 종교적 차원의 ‘그늘’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을 향한 연민의 정신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유리창’처럼 서늘한 시가 아니라/‘화사花蛇’처럼 징그러운 육에의 몸부림//밖에서는 장지문을 사각사각 눈발이 스치는데/시린 가슴으로 전어회를 먹는/”(「전어회」) 현실로 귀의한다. 자식을 여윈 정지용이 「유리창」에 그린 곡진한 삶은, 송수권에게 와서는 췌장암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며 마른 복어국을 찾는 아버지의 “징그러운” ‘음식환상’으로 치환된다.
“여자도 낙지발처럼 엥기는 여자가 좋고/그대가 어쩌고 쿡쿡 찌르는 여자가 좋고/하여튼 뻘물이 튀지 않는 꽹과리 장구 소리보단/땅을 메다치는 징소리가 좋아요//”(「뻘물」). 콧대만 높은 여자보다 육감적인 여자가 좋고, 가볍고 허튼소리보다 영혼을 울리는 은근하고 곰삭은 소리로 마른땅을 먹먹하게 휘젓고 가는, 징소리 같은 울림이 송수권이 말하는 남도인의 곡진한 삶이요 울림의 정서다.
어따마시, 우리 그 그늘 속에서/송풍정 보리밥 한 술 어떤가?/정년을 하고 아직도 다리심이 남아 억울하다는/김선생을 불러낸다/서석대나 바람머리 재가 좋아서가 아니라/촘촘한 이파리들이 하늘 가리개로/부드러운 햇빛과 바람을 여과시켜주는 그늘이/좋은 것이다/ (......) 그늘과 끈- 살아가면서/어린날 소고삐를 바투 잡듯이 놓지/않는 일은 얼마나 덧정 나는 일인가/어이, 어따 마시 내일은 주말인데/송풍정松風亭 보리밥 한 술 어떤가? -「덧정」부분
한여름 정년을 넘긴 남정네들의 피서가 그려지는 시다. “어이, 어따 마시......”에서 ‘어이’는 남도인의 호칭어다. “어따 만시”는 ‘거시기’처럼, 어따(아따) ‘이러저러하더라도’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조금은 계면쩍은 부탁이 있을 때 저어하며 건네는 남도인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그래서 시인의 말에는 먼저 여유와 배려가 묻어난다. 시인은 초여름 긴긴 해에 꼭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고 한다. 무등산 바람머리 재를 넘어오는 산들바람에 살랑거리는 칠백년 묵은 느티나무 노거수의 푸르고 촘촘한 이파리, ‘부드러운 햇빛과 바람을 여과시켜주는’ 그 그늘이 좋아서라고 한다. 먹는 것보다 “해묵은 김치 같은 정을 나누어줄 수 있”는 덧정 나는 정서를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만상을 쓸어 잠재우는 황혼의 범종소리......//한 능선을 넘어 어리버리 잠깐을 서서/에라, 모르겠다/허리 한번 펴고/또 한 산의 능선을 뒷짐 지고 서서 보니/한 산의 능선이 또 한 산의 능선을 가리고 섯다//어쩌랴, 내친 걸음/또 한 산의 능선을 휘감아 돌아가서/강물도 저만큼 흐르고 한눈파는 사이//가응- 가응-//천년 후에도 어리버리 기어서/하품하고/종소리,/너 혼자 울어라//
-「종소리」전문
“자연은 애를 써서 직선을 피해간다. 그 곡선을 해머나 망치로 두들겨 펴서 직선을 만드는 행위는 확실히 범죄자적 행위다. 이 범죄행위의 심각성이 오늘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화자는 자연을 따르는 무심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능선을 서두르지 않고 뒷짐을 지고 서서 관망한다. “시인은 의식상이나 외형상으로도 곡선의 힘과 미에 사로잡혀 있”음이다. 화자는 그리, 겹겹이 가린 산 능선을 ‘어리버리 기어서 넘어가는’ 범종소리처럼, “휘감아 돌아가”는 ‘곡즉전’의 여백과 여유를 누린다. 곡즉전은 “곡선이야말로 완전하다는 말로 이는 빠른 것이 아니라 느림이며, 속도가 아니라 춤”이다. “곡선으로 갈 때 슬픔이 있고 눈물이 보인다. 여유가 있고 추억이 보이며 머물고 싶은 휴식 공간이 있다. 그러나 직선에서는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눈부신 질주와 속도만 있고 분노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슬픔이나 한을 민족의 슬픔이나 한의 춤사위로 승화시켜, 소소하고 퇴영적인 분위기를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으로 반전시킴으로써, 한(恨)에 국한될뻘 한 시인의 서정성은 비로소 힘을 얻는다. 다시 말해서 퇴영적인 한을 역동적인 한으로 표출해낸 것이 송수권의 시라고 보면 된다.
이런 남도정서의 원류는 ‘광나장창(광주, 나주 ,장성, 창평)’의 수많은 풍류객들로 대표되며, 대개는 눌재 박상(朴祥)의 제자들이었음을 허균은 식소록(識小錄)에 전한다. 이들의 문화를 모정(茅亭)문화, 또는 계산풍류로 일컫는 바, 이는 안동권역이 퇴계 이황의 영향아래 제재다사를 배출하여 ‘안동문화권’으로 정착한 사실과도 비교할 수 있다. 그래서 후학들은, “안동의 도학이요, 호남의 풍류”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서적 유산은 슬로터다이크의 말처럼,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학적으로 선별(Selektion)되어 ‘길들여진 것’으로서, 송수권은 이런 남도인의 ‘은근함과 유유자적 에둘러갈 줄 아는 지혜로운 삶’을 또 하나 ‘그늘’이라는 상징물로 그려낸 것이다.
Ⅳ. 나가며
지금까지 남도의 대표적 시인인 송수권의 시에 함의된 남도 정서와 그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물질적 바탕인 황토, 대, 뻘, 그리고 그늘이 지닌 상징적 의미들을 살펴보았다. 먼저 황토, 대, 뻘은 남도의 특징적인 자연환경과 풍광을 구성하는 사물이다. 그것은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역사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그것들은 우선 다양하고 풍부한 물산의 산출을 보장해 줌으로써, 남도 지역에서 다채롭고 풍요로운 문화가 싹틀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 물질적 풍요로움과 지형학적 특성으로 인해 남도사람들은 오랫동안 지배계급과 왜구의 가혹한 수탈과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남도의 지리적 자연적 환경은, 그 위에서 전개되어온 역사와 함께 남도 사람들의 삶과 의식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황토, 대, 뻘과 같은 구체적인 사물들을 남도의 정서와 정신을 이루는 물질적 바탕으로 제시할 수 있다.
송수권은 자신의 시에서 황토, 대, 뻘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시켰다. 이를 좇아 이 논문에서는 황토는 신화적 측면에서, 대는 역사․문화적 측면에서, 그리고 뻘은 지형학적 측면에서 각기 독특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 ‘황토’는 남도인의 ‘삶의 정화와 치유능력’을, ‘대〔竹〕’는 ‘강인한 저항정신과 유려한 성품’을, ‘뻘’은 ‘생에 대한 포용력과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을 각각 상징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상징물들의 의미와 두루 관련되거나 포용하여 남도인의 삶으로 육화된 ‘그늘’은 남도 사람들의 ‘은근함과 서두르지 않고 유유자적 에둘러가는 지혜로운 삶’(혹은 남도의 미학)의 의미를 내포한다할 것이다. 따라서 송수권의 문학에서 이런 의미의 상징물들이 함의한 남도인의 정서(기질)는 동학농민전쟁을 시발점으로, 광주학생의거,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동력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문학은 정신의 계시로, 무료한 일상은 문학에 의해서 힘을 얻고 인간의 삶은 이러한 문학적 삶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송수권의 문학은 그의 정신적인 것을 소유하며, 그것을 인간화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맺힘과 풀림(解恨)에 대한 정신적인 미학의 소유는 한국문학의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상으로, 그가 태어나고 자라서 묻힌 남도에 깊이 뿌리를 두었지만, 시간적으로는 근현대사를 넘어 통일된 민족의 시원으로, 공간적으로는 남도를 넘어 한반도 전체와 민족의 발원지 대륙으로까지 확장되어 간다. 이는 그의 시가 남도의 정서와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단순히 남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 한국인의 보편적 정신으로까지 확장되고 확대될 수 있는 자질을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남도정서와 정신의 물질적 바탕을 추출하고 그 상징적 의미를 분석한 이 논문은 미약하지만 이런 확장된 논의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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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Study of the Sentiment of Southern People Connoted in the Poetry of Song Soo-kwon
Cheon, Chang-Woo
This is a significant study on the symbols of southern sentiment, 'bamboo', 'mud flat', and 'red clay', used by Soo-kwon Song, the representative rural poet of southern province. So this study aims to find the specific meanings connoted in the three symbols that were used by Song and academically organize them.
Song said that the sentiment of the southern province can be summarized as the spirit of the three symbols mentioned above. Therefore, a significant study on the meaning of the three symbols will includes Song's ideas about literature that he pursued his whole life and, though limitedly, the sentiment of southern people.
To this end, on the basis of preceding studies, this study chose the research method of finding the meanings of symbols through Song's literary works, lectures, and books. As a result, it found that 'bamboo', 'mud flat', and 'red clay' respectively signifies 'the strong pioneering spirit and flexible characteristics', 'persistence that embraces life and untiring vitality', and 'purification of life and the capacity to regenerate'. Along with the meanings of the three symbols, by adding the feeling of 'shade' that involves the life of 'subtlety and the idea, to bend is to be whole' that were mentioned frequently as idealogical symbols, this study tried to broadly examine the poet's sentiment.
This was an effort to clarify and organize what has only been discussed as symbolic concepts in previous studies and literary critiques. By doing so, it is expected to expand horizons to understand the sentiment of southern people and the literature of Soo-kwon Song.
▣ Key words: rural poet Soo-kwon Song, bamboo, mud flat, red clay, pioneering spirit, vitality, capacity to regenerate, shade, sentiment of southern people.
이 논문은 2017년 0월 0일 투고되어 2017년 0월 0일 심사 완료하였으며, 2017년 0월 0일 게재 확정되었음. |
저자 인적 사항
이름: 천창우
소속: 순천대학교
연락처: 010-3601-4939
e-mail: cheunbul@hanmail.net
주소: 전남 광양시 광양읍 익신길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