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앞에는 아름다운 서정을 두고 뒤에는 굽힐 줄 모르는 의지를 두고 끝내 그것을 일치시키는 시인으로 불리는 도종환 시인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시 「어떤 마을」이, 고등학교 문학, 국어교과서에 「흔들리며 피는 꽃」 등 여러 편의 시와 산문이 실려 있어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으며, 신동엽 창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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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올해의 예술상(문학부문), 현대 충북예술상(문학부문), 거창평화인권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06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펴낸 시집으로 『고두미마을에서』, 『접시꽃 당신』,『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해인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모과』,『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등이 있고, 동화『바다유리』『나무야 안녕』을 펴냈다.
접시꽃 당신(시감상)/
시인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도종환의 시들은 슬픔의 법도를 잃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자신의 삶의 무거움을 새로이 깨달으며,
자신의 애통함이 이러할진대 더 어려운 처지 의 이웃들은 어떠할까 하는 구체적인 연대감과 목숨있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한 각성 속에 서 있다.
나아가 슬픔을 감당해 내는 도종환의 태도는 참으로 진실하고 결백하며 또 그런 만큼이나 사사스러움 없이 의연한 것이서서,
이 방면의 근래의 어떤 시들과도 비교될 수 없는 진정성을 획득하고 있다.
시감상
1.시를 읽고 난 후의 느낌은 ?
2.화자는 ?
3.듣는 이는?
4.화자와 듣는 이의 관계는 ?
5.듣는 이는 어떤 상태에 있는가 ?
6.그것을 알 수 있는 구절을 시 속에서 찾아 보아라.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마음 놓고 약 한번 써 보기를 주저하며
7.그렇다면 나는 어떤 처지에 있나 ?
병든 아내를 바라 보고 있는 처지, 병든 아내를 간호하고 있는 처지
#.그렇다. 서서히 생명이 빠져 나가는 아픈 아내의 곁에서 그녀를 안타까이 바라보는 남편이 아내에게 이야기하듯, 또는 혼잣말처럼 조용히 자신의 심정을
말 하 고 있는 것이다.
8.자! 그런데 너무 기니까 이 시를 장면의 변화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1행(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 13행(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14행(마음 놓고 약 한 번) ~ 46행(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47행(옥수수 잎을 때리는) ~ 50행(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9.중간 부분을 다시 화자의 태도 변화에 따라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14행(마음 놓고 약 한 번) ~ 21행(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22행(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 46행(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10.부부는 그 이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정답게 살았을 것이다
11.아내가 병든 후의 현실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
암담하고 절망적으로 변했다.
12.그것을 알 수 있는 구절은 ?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 구름입니다/처음에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주체 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13.나는 변화된 현실을 나중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
겸허하고 수용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면서 자기 앞에 닥친 불행한 현실을 추스려 나가 고자 한다.
14.화자가 개인적인 불행 앞에서 끝까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겸허하고 희생적인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때문일까 ?
둘러보면 우리 주위엔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언제나 많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 하나라도 주고 가는 삶을 살고 싶고, 또 아내를 사랑하는 그 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