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Eucharist)
"감사를 드린다"는 뜻의 헬라어에서 나온 말로서, "주의 만찬" 혹은 "거룩
한 교제"(Holy Communion)를 가리킨다. 신약에서 그런 뜻으로 쓰인 적은 없지
만, 신약 시대 바로 직후부터 이 말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퀘이커나 구세군 등
의 예외는 있지만, 성찬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독교권을 통털어서 예배와
실천의 중심 요소가 되어왔다. 그러나, 성찬의 해석은 늘 논쟁의 주제가 되었
으며,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 각 파들 사이를 분열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성찬에 관한 이론과 그 실행 방법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발전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너무 복잡하여 여기에서 다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종교개혁 당시의
로마 가톨릭의 성찬론의 주된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빵과 포도주의 요소들
은 사제의 성별하는 선언이 있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본체로 기적
적으로 변한다(화체설). (2) 그 기적은 정당하게 안수받은 사제에 의하여 수행
될 때에만 가능하다. (3) 미사 그 자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사죄를 위한 유화
(propitiatory)인 희생제사로 이해된다. 성찬을 존중하고 숭배하는 태도나, 평
신도에게는 잔을 주지 않는 것 등도 이들과 관련되어 있다.
개혁가들은 그리스도가 성찬에 임재하는 방식에 대하여는 서로 이견을 가
지지만, 위의 세 가지 이론을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그 반대는,
그들이 신앙이 은혜의 본성과 관련된 기본적 확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다. 신앙이란, 그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전심으로 확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사가 유화적 희생 제사일 수 없고, 그리스도의 임재가 사제의 행위에
의존할 수도 없으며, 은혜가 주입된 실체일 수도 없는 것이다. 전형적인 개신
교적 대답이 다음과 같은 칼빈의 말 속에 들어있다: "성찬은 하나님의 약속을
효과 있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인으로써 덧붙여진 것이며, 그 자체에 효
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는 것일 뿐이다."
성찬에 관한 개혁가들의 서로 다른 견해는 그들의 독특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쯔빙글리(Zwingli)의 관심은 로마 가톨릭의 희생으로서의 미사
개념과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의 개념을 반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성
찬의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반면, 루터(Luther)는 로마 가톨릭을 극도로
반대하는 칼슈타트(Carlstadt)의 과격한 견해와 쯔빙글리의 "상징적" 해석에 경
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성찬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
를 강조하였다. 문제가 되고 있었던 신학적 이슈는(개인적인 질투의 감정과 정
치적인 문제 때문에 논저이 흐려지긴 했지만) 성찬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임재
의 양상이고, 이 때문에 기독론의 차이가 드러나게 되었다. 칼빈의 입장은 중
재적인 입장으로 이해된다. 그는 그리스도는 성찬의 능력 가운데 신비적으로
임재하시지만, 그 성분들이 기적적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사제의 기적적인 유
화의 개념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성찬에 관한 논의는 개신교 교파들의 연합 움직임과 로마 가톨릭의 문화
개방에 자극을 받아 다시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지만 불행하게도 기독교에 있어서의 의식의 위치에 대한 문제가 쟁점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