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Date 2020. 4. 12
Text Jh 11,21-27
(21)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1.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이웃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온 세상과 함께 기뻐합니다... 어둠과 죽음을 물리치신 그리스도 부활의 희망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대통령께서 보내온 부활절 축하카드 내용입니다. 관례적으로 예전부터 교회 목사들에게 보내온 카드입니다만 코로나19 감염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시국에 큰 위로가 되는 신앙적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성구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집에 가셔서 마중 나온 마르다와의 대화내용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특별히 25-26절,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는 말씀이 요절에 해당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는 부활신앙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부활주일에 여러분과 함께 이 말씀을 중심으로 기독교부활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믿어서 부활의 은혜, 부활의 능력, 부활의 역사가 우리 모두의 삶에 풍성하게 임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2. 첫째.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산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죽으나 사나 난 상관없다.’라든지 ‘죽으나 사나 다 좋다.’라는 말은 반은 같고 반은 다릅니다. 즉 사나 죽으나 상관없다는 것은 결국은 살게 되어있다는 의미에서 상관이 없는 것이지 죽어 끝난다든지 혹은 사라진다든지 하는 면에서는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을 위해 죽어도 좋다는 것은 주님처럼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뜻이지 진짜로 죽어 없어진다든지 지옥에 가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부활 믿음은 죽는다 하더라도 다시 살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망한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병든다 하더라도 병과는 관계없는 새 삶이 내게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 곳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다거나 교회는 하나님이 보우하시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근접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미신이거나 오만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탄의 속임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죽으면 어떡하지? 병 걸리면 어떡하지? 망하면 어떡하지? 하고 근심에 매어 쩔쩔매는 것도 옳은 것이 아닙니다. 망하는 것이나 죽는 것이 진짜로 망하거나 진짜로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거나 쩔쩔매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영생이란 결코 죽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Eternal Life, Endless Life라 합니다. 또한 육신적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 Spi- ritual Life)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으로서, 유한하고, 불완전하며, 잃거나, 상해를 입을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할 수밖에 없고 파멸의 괴로움을 겪게 되며 고통스러운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평안하고 기쁨이 있으며 하늘의 천사들이라 하더라도 빼앗아가거나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같이 한 번 외치십시다. “나는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사는 영생의 사람이다.”
다들 못살던 때의 얘기입니다. 신혼초기 가난한데다 완고한 시어른들을 모시고 사는 분이 계셨습니다. 남편은 교수였고 자신은 화가로 학교에서 강사로 일했지만 당시의 형편은 교수나 예술가들도 배곯지 않으면 다행이었습니다. 쪼들리는 살림에 거기다가 시동생, 시누이들 학비까지 보태며 살아야 하니 힘든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 참겠는데 완고한 시어머니와 아내의 마음을 몰라주는 보수적인 남편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목사님과 상담했습니다. 얘기를 다 들은 목사님이 한 마디를 해줬는데 큰 힘을 얻고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뭐라고 했느냐 하면, ‘순교가 따로 있겠습니까? 시집에서 순교하겠다고 생각하고 생활하세요. 시집에서 관에 누워 나오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여러분, 힘들 때마다 ‘죽으면 부활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힘을 내십시오.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이 옵니다.
3. 부활 믿음의 둘째는, ‘주님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여기에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몇 번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만 우리 성도들은 분명히 알고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살아난 것(막5,35-43)과는 다른 부활입니다. 죽어 장사까지 치렀는데 나흘 만에 다시 무덤에서 걸어 나온 나사로(요11,32-44)같은 부활도 아닙니다. 상여에 담아 메어가고 있던 중에 예수님께서 상여를 멈추고 살려내신 나인이라는 성의 젊은 아들(눅7,11-17)이 다시 산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때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또 다 죽었습니다만 2천 년 전 무덤에서 다시 사신 예수님은 그때 사신 후 오늘까지 또 앞으로도 영원무궁히 살아계시는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예비해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예수님을 찾을 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하는 천사들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산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볼 것이요, 책 한 권 쓰시지 않으셨고, 번듯한 집 한 채 없어 머리 둘 곳도 없으시지만 세상 모든 부의 주인이 되시며, 군사 한 명 없으셨으나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힘을 실제로 가지고 계신 주님을 불러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역사 속의 죽은 위인들 가운데서는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한 크리스챤 학자(해리 리머박사)가 어떤 회교인 관리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그 회교도 관리도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도 그 사실을 믿습니다.’ 다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성경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니, 회교관리도 말하기를 ‘우리도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코란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셨다고 믿습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또 신자 교수님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셨음을 믿습니다.”라고 하니, 그러자 그 회교관리 역시 대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곧. 예언자 모하메드를 통하여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신자 선생님은 강조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예수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회교 관리 역시 또 대꾸하였습니다. ‘우리는 모하메드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은 것을 믿습니다.’ 또 신자교수님이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 부터 스스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모든 그분의 말씀은 실제로 증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제야 회교 관리는 말하길, ‘우리는 죽은 이후의 예언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아주 오랜 옛날 옛적에 반대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원수를 다 갚고 잘 먹고 잘 살다가 다시 죽었대.’ 그런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때 부활하시어서 지금까지도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을 지키시고 가르치시며 도와주고 계신 분입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부활 믿음’입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4. 세 번째로 우리가 믿는 부활 믿음의 내용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 살려낼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잘 아는 말씀이지만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섰는데 시체 썩는 냄새가 났다고 했습니다.(요11,39)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요11,40) 그리고는 무덤을 향해 외쳤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요11,43) 그랬더니 죽어 살 썩는 냄새까지 나던 나사로가 몸을 베로 동인 채 제 걸음으로 걸어서 나왔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에게만 있는 생명력입니다.
1만여 명의 유명인들 손발을 떨리게 하고 있는 범죄자 조주빈이 자신의 범죄행위를 악마의 삶이었다고 한 말이 지금도 머리에 맴돌고 있습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의 행위를 악마의 삶이라고 스스로 표현한 20대 초반의 청년 그 어디에도 악마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저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 그 자체의 모습이었지만 인간이 얼마나 무섭게 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이 무서운 죄성은 오직 주님의 보혈로만 씻을 수 있고 부활의 생명력으로만 치료할 수 있음을 알라는 것이 오늘 부활절의 세 번째 메시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행동을 악마의 삶이라고 할 정도로 회복불능의 죄성도 주님의 부활생명력이 투입되면 살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살아계신 주님의 부활생명력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임하여 V-day가 만들어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