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일 시인의 시차 없이 시 읽기 : #52. 김덕남 시인의 ‘실버 택배’
문 앞에는 택배 물건보다 지문이 먼저 놓인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실버 택배
김덕남
어깨를 짓누르는 수신처가 빽빽하다
빌딩에 잘려버린 달빛을 짊어지고
싸늘한 삼각김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늦봄을 배달하다 꽃그늘에도 허리 숙여
헛디딘 시간들이 지문을 지워간다
불끈 쥔 낡은 주먹을 들었다 다시 놓고
아파트 불빛들이 따로 홀로 벽을 쳐도
숨 한 번 고를 새 없이 삭은 몸을 지피다
입 벌린 밑창을 끌며 발의 설움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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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다림의 미학”이란 말이 많이 쓰이다 보니 “기다림”이 마음속에서 닳기도 전에 “미학”이 먼저 소멸하는 모양새다. ‘택배’는 “미학”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얹혀 생각하기보다 “기다림”과 설렘, 때론 기쁨 혹은 행복과 병치시키는 것이 되레 변화가 빠른 이 시대에 더 실감이 난다.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든 일자리, ‘실버 택배’라는 보통 명사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내포하는데 택배 일을 하는 이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더 기울어질 수는 있지만 동전의 양면 같은 직업이다. 시인은 빛과 어둠의 양면성 속에 어둠 쪽으로 균형의 추를 잠시 이동시켰다.
‘수신처’의 숫자에 비례해서 ‘어깨’의 각은 ‘삼각김밥’의 삼각처럼 짓눌려 기울어지는 것을 시인은 놓치지 않았다. 또 ‘빌딩에 잘려버려서’ 먹다 남은 삼각김밥같이 볼품없는 달빛에 비치는 노인의 백발이 억새처럼 휘어져도 쓰러지지 않음을 보았으리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 봄은 맞이하는 것이지만 나머지 계절은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 봄을 그것도 하마터면 놓칠 뻔한 ‘늦봄’을 시키지도 않은 ‘늦봄’을, 발신처도 없는 ‘늦봄’을, ‘꽃그늘’에 신세 지며 내 집 앞에 배달하는 지워져 가는 노인의 ‘지문’은 개인사의 증거물이므로 지나온 시간에 분명 점철되어 있을 것이다. 또 그가 지나온 시간의 광산 속에서 시인이 채굴한 ‘낡은 주먹’은 ‘실버’보다 값지고 빛나는 “골드”다.
살면서 불빛이 없는 곳마저 지나왔을 ‘삭은 몸’은 우리가 “기다림”을 기다리지 않도록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단숨에 ‘택배’를 안겨준다. 우리는 누군가의 ‘수신처’이며 누군가의 어깨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무게”로 살아갈지언정 엎친 데 덮치지 않게 “수취인 불명”은 되지 말자. 그러면 은빛 “송장送狀”을 붙이듯 ‘낡은 주먹’의 ‘입 벌린 밑창’을 붙여주는 늦봄이 오고 있다는 소문이 아파트에 파다할 것이다.
문 앞에는 택배 물건보다 지문이 먼저 놓인다.
출처 : 시민포커스, 2024.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