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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공학적 이해
김 석 영 명예교수(공과대학 신소재공학부)
본 자료는 필자가 영남대 재직 시 “도자기의 이해”라는 과목으로 인터넷 강의를 하면서 수집하고 작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각 내용에 대한 참고문헌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워 마지막 부분에 본 자료를 준비하는데 인용된 자료와 도자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문헌이나 사이트를 나타내었다. 도자기를 더 잘 알기 위해 필요한 도자기의 정의, 분류, 종류, 명칭, 제조방법 및 변천사를 순서대로 정리 해 보았다.
우리는 막연히 도자기하면 박물관에 있는 오래되었거나 예술적 가치가 있다거나 크리스티(Christie) 또는 소더비(Sotheby) 경매에서 몇 백억에 낙찰되었다는 정보만으로 도자기하면 피상적으로 국보급 문화재 또는 고가의 제품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실생활에 사용되는 많은 제품이 전통적인 도자기 기술을 바탕으로 제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다.
인류가 도자기를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은 서기전 1만년에서 6000년경 사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서기전 6000년~5000년경으로 추측하고 있다. 초기에는 점성이 있으면서 가소성이 있는 천연 점토로 기물 형태를 만들고 불에 구워서 만들었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토기이다.
선사시대에는 낮은 온도에서 굽다가 가마를 사용하게 되면서 높은 소성온도에서 굽기 시작하였다.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구은 토기제품이 만들어지다가 고려시대에 이르러 토기에 유약을 입혀 토기의 소성온도보다 높은 온도로 구워낸 고려청자가, 그 이후 조선에서는 분청사기, 백자가 그 예이다.
현대의 도자기는 천연점토에 장석, 석영, 그리고 첨가제를 혼합하여 성형, 건조, 소성한 제품이다. 우리가 현재 가정에서 사용되는 식기 또는 장식품은 1,300°C이하의 온도에서 구운 도기(陶器)와 1,300∼1,500°C의 고온에서 구운 자기(瓷器 또는 일본식 표기 磁器)로 나눌 수 있으며, 도기와 자기를 통틀어 도자기(陶瓷器)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도기와 자기 및 사기(沙器/砂器)그릇, 질그릇도 포함해서 도자기라고도 한다.
구 분 | 소성온도(℃) | 특 성 | 용 도 |
토기 (Clayware) | 700 ~ 1000 | 천연점토, 유약을 안 바르고 낮은 강도 | 기와, 화분 |
석기 (Stoneware) | 1200 ~ 1300 | 천연 혼합소지, 유약을 사용하고 높은 강도 | 머그잔, 배수관 |
도기 (Pottery) | 1200 ~ 1300 | 천연 혼합소지, 유약을 칠하고 낮은 강도 | 식기, 타일 |
자기 (Porcelain) | 1300 ~ 1450 | 고순도 혼합소지, 유약을 사용하고, 고강도 | 고급식기 |
1) 도자기란?
도자기(陶瓷器, porcelain, ceramics, fine china)는 흙(점토가 주성분인 도자기 원료 또는 소지)을 빚어 높은 온도의 불에서 구워낸 그릇이나 장식물을 말한다. 도자기에 대한 영어 표현도 나라에 따라 또는 분야에 따라 다른데, 포괄적으로 도자기를 포함하여 세라믹 제품(ceramic products)으로 분류한다. Ceramics(세라믹 제품)는 희랍어의 Keramos에서 유래하였고, 원래는 고온에서 열처리를 통해 만들어진 비금속 무기질 고체 제품이라고 정의한다.
여러 가지 세라믹 제품을 중분류하면 표에 나타낸 것과 같이 전통세라믹과 정밀세라믹 제품으로 분류한다. 전통세라믹을 세분류하면 전승도예와 현대도예로 나눌 수 있는데, 현재 우리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래전에 제조된 도자기로 그 기물의 전통제조방법에 따라 현대에 제조한 도자기를 전승도자기라고 한다. 반면에 현대도자기 제품은 전통제조방법이 아닌 산업화된 방법으로 제조 된 것으로 새로운 기술들이 접목되고 대량생산도 가능한 제품이다.
세라믹 제품 중 pottery(도기) 원래 천연점토로 성형하고 소성하여 만든 도자기로 때로는 도기라고 한다. Porcelain(자기)는 천연 고령토(고순도 점토)에 장석, 석영 따위의 고순도 원료를 혼합, 성형, 소성하여 만든 제품이다. 일반적으로 자기는 순도가 높은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높은 소성온도에서 구웠기 때문에 강도가 높고 흰색을 띤다. 반면에 도기는 순도가 낮은 원료의 사용으로 소성온도가 비교적 낮고 기계적 강도도 낮고 색상을 띠는 편이다.
Fine china 또는 china(도자를 총칭)는 중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중국 고령에서 나오는 고령토(소지)로 만든 자기를 말한다. 1600년대 당시 유럽에서 중국의 도자기가 대유행을 하였는데 그 때부터 china가 중국을 지칭하기보다 dinnerware(식기류)=china의 보통명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식탁에서 사용되는 도자기 제품은 전통세라믹 중 산업용 세라믹 제품으로 생활도자기 제품이 주이고, 간혹 도예용 세라믹 중 현대도예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현대 세라믹 제품의 분류
대분류 | 소분류 | 특 징 | 예 | |
전통세라믹 (traditional ceramics) | 도예용 세라믹 | 천연원료 사용 전승기술 소량생산 예술품, 생활용품 | 전승도예 | 토기, 분청사기, 청자. 백자 |
현대도예 | 공예도자 (생활 도예, 그릇) 조형도자 (예술품) 산업도자 (생활도예, 대량 생산 가능) 환경도자 (조각품, 벽화, 설치 도예) | |||
산업용 세라믹 | 천연원료 사용 첨단기술 대량생산 일반요업제품 | 생활도자기 유리 연마재 내화물 시멘트 | 생활용 (식기, 도자기, 다기, 옹기) 건축용 (타일, 위생도기, 벽돌, 기와) 산업용 (절연도기(애자), 화학도기) 완구용 (인형, 노리개, 장식품 등) (생활유리, 건축유리, 공예유리 등) (연마석, 연마지 및 포, 연마분말 등) (내화벽돌, 단열벽돌 등) (콘크리트, 벽돌, 기와, 보도블럭) | |
정밀세라믹 (new ceramics) | 산업용 | 인공합성원료 사용 기술집약적 생산 고기능성 정밀제품 | 전기/전자재료 구조재료 광학재료 화학재료 생체재료 | (반도체, 압전체, 유전체, 절연체, 센서, 자성재료, 초전도재료, 연료전지 등) (내열재료, 내마모재료, 섬유, 기계부품) (광섬유, 광학소자, 렌즈, 적외선센서) (흡착재료, 정화재료, 촉매/담체 등) (인공골, 인공치아, 인공관절 등) |
2) 도자기 제조기술의 발달
인류가 기원전 1만년에서 6000년경에는 지금의 도자기가 아닌 원시상태의 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초기에는 토기를 만들어 불에 굽는 것을 알지 못해 햇볕에 건조하여 사용했었지만, 인류가 불을 사용하면서 기물을 지금보다 훨씬 낮은 온도(약 600℃ 정도)에서 구웠으며 가마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류의 지혜와 기술이 점차 발달함에 따라 도자기 원료를 수비(앙금짓기)하여 사용하면서 성형능을 향상시키고 높은 온도에서 견디는 소지 조성을 찾아내었고, 그리고 가마를 사용하여 화도를 높여 기물을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즉, 소지의 조성에 대한 지식과 가마를 사용하므로 서 다양한 제품의 생산이 가능하였다. 저온에서 구운 연질토기에서 더 높은 온도(약 (1,100~1,200℃) 정도에서 구운 경질토기(석기)까지를 만들 수 있었다.
도기와 석기의 제조 단계까지는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큰 기술의 발전이나 도입 없이 만들 수 있었지만, 이 후 단계인 자기의 제조기술은 쉽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6세기이전부터 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이후 당·송시대 만든 중국풍의 독특한 도자기는 예술적, 기술적 수준이 매우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에는 17세기 초 중국 명나라 말에 경에 처음으로 유럽인들이 중국 자기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이 사건은 유럽 도자기 역사에서 커다란 분수령이 되었다. 중국 청화백자의 우수성에 대한 입소문은 삽시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pop처럼 중국 것이라면 뭐든지 좋다는 ‘시누아즈리(Chinoiserie·중국 취향)’ 바람이 유럽 전역에 불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중국만 보유했던 고온소성 경질자기 제조기술이 우리나라와 월남으로 전파되었는데, 그 기술을 사용하여 10세기 경 고려시대 때 고려청자,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분청사기, 이 후에 이조백자를 만들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그 제조 기술이 일본으로 넘어가 초기 일본의 도자기 가문들이 중국 도자기를 모방한 정교한 채색그림을 그려 넣은 도자기를 생산하였고, 이 제품들을 청나라가 쇄국정책을 하는 동안 유럽에 수출하여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게 된다.
17세기 들어 유럽에서도 처음으로 중국식 도자기제조 기술을 알아내려는 노력으로 독일의 마이센자기와 프랑스의 세브르자기가 유럽의 도자기 산업을 이끌게 되었다. 특히 독일의 뵈트거는 현지 고령토를 이용하여 일본 카키에몬 도자기 모방 자기를 내놓게 되면서 중국도자기의 재료와 기술적 차이는 없어지게 된다.
이후 다른 유럽 국가들도 속속 중국풍의 도자기를 모방하는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 중 네덜란드에서는 유약에 관한 연구를 거듭해 청화백자와 흡사한 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델프트 청화 Delft Blue라는 것이다.
영국은 이들보다 한참 늦은 18세기에 이르러 제대로 된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지만 산업혁명의 발상지답게 빠르게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도자기 시장 및 기술을 이끌게 된다. 영국은 산업혁명과 웨지우드(Wedgwood) 등 몇몇 유명한 도자기 사업가의 노력으로 디자인, 마켓팅, 그리고 도자기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접목시켜 정교하고 균일하게 대량생산이 가능한 도자기 제조공정을 수립하였다. 2000년대 초 영국에서 본차이나의 생산은 파인차이나에서 본차이나로 세계 고급 도자기 시장이 바뀌게 된다.
현대 도자기 제조 기술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통기술에 새로운 기술들이 가미되어 지금의 제조공정이 확립되었다. 예를 들면, 도자기 원료의 성분 분석과 배합, 성형기술, 소결온도와 시간, 유약의 개발과 시유 방법 및 도자기 디자인 등을 아우른 종합기술로서 태어난 것이다.
도자기 제조 조건 및 기술에 따른 도자기의 변천
도자기 제조의 단계별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 기술발달
단계별 요소 | 재료 또는 제조공정 | |
소지 개발 | 하드웨어적 요소 | 소지 원료의 순도, 입도 및 배합 소지 생산의 전문화 및 자동화 설비 |
소프트웨어적 요소 | 소지 배합 성분 조성관련 데이터베이스 소지 생산관련 전문가 또는 전문기업 양성 | |
성형/장식 /디자인 | 하드웨어적 요소 | 도자기 성형방법/도구의 개발 및 자동화 |
소프트웨어적 요소 | 도자기 형상, 문양, 장식의 D/B 구축 독창적인 도자기 디자인관련 전문가 양성 | |
소성기술 개발 | 하드웨어적 요소 | 가마(로)의 디자인 및 현대화/자동화 소성온도, 소성분위기(산화/환원)관련 기술 |
소프트웨어적 요소 | 도자기 형상, 문양, 장식의 D/B 구축 가마의 디자인관련 전문가 양성 | |
유약/시유 기술개발 | 하드웨어적 요소 | 다양한 유약(저화도, 고화도, 결정유 등)의 개발 다양한 안료의 개발 시유 방법/도구의 개발 및 자동화 |
소프트웨어적 요소 | 유약/안료 배합성분의 조성관련 데이터베이스 유약의 색상 및 문양 D/B 구축 독창적인 유약/안료관련 전문가 양성 |
3) 도자기의 분류
도자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자기의 제조 과정을 세분화한 후 각각의 과정을 잘 이해하고 각 과정의 결과가 최종 도자기의 특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 도자기 제조 단계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는 도자기 몸체를 이루는 소지 또는 점토, 기물의 형상을 만드는 성형, 도자기 겉에 발라지는 유약, 그리고 최종적으로 고온에서 굽는 소성 기술에 따라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 전통세라믹 제품의 분류는 다양한데, 명확하게 다음의 분류법으로 구분질 수 없는 경우도 많으며, 두 종류의 도자기가 혼합된 제품도 있어 명확한 분류가 더 어렵다. 일반적인 도자기의 분류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한다. (1) 국가/시대에 따라; (2) 기물의 바탕색에 따라; (3) 기물표면의 문양에 따라; (4) 원료와 소성온도에 따라; (5) 기능에 따라; (6) 용도에 따라 분류.
도자기의 분류 및 예
국가/시대 따라 | 색상 따라 | 문양 따라 | 원료/소성온도 | 기능에 따라 | 용도에 따라 |
고려청자 이조백자 | 홍도 흑도 회청색경질 청자 백자 | 덧무늬토기 민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 토기 석기 도기 자기 | 주병 발 호 화병 화분 | 기와 벽돌 타일 욕조 주방용기 테라코타 |
국보 및 보물의 지정 및 차이
국보와 보물 보물은 유형문화재 중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청장이 지정한다.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한다.
보물(예, 보물 제558호 청자상감운학모란국화문매병)은 유형문화재 중 역사적이거나 미술적, 기술적 가치가 큰 것 중 대표성을 띠는 것이고, 국보(예,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중 각 부문에서 유일한 것이다. 현재 (2022년 3월 기준) 우리나라의 국보 349건, 보물 2253건, 사적 519건, 명승 116건, 천연기념물 464건, 국가무형문화재 149건, 국가민속문화재 303건 등이 있다.
모든 국보에 관한 사무는 문화체육부 소관이며, 개인 소유의 국보라 할지라도, 소유자는 국가의 지시에 따라 관리, 보존할 의무가 있다. 국보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국보 중 국보급 도자기는 삼국시대 도재기마인물상, 고려시대 청자사자유개향로, 그리고 조선시대 분청사기인화문태호, 청화백자매죽문호 등 다수가 국립박물관, 간송미술관, 호림박물관, 성보문화재단, 삼성문화재단, 우학문화재단 등에 소재하고 있고, 각 대학박물관 및 개인소장도 다수 있다,
청자상감운학모란국화문매병
보물 제558호
삼성문화재단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제68호
간송미술문화재단
파인차이나와 본차이나의 차이
파인차이나(fine china)에서 china는 중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말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고령토(소지)로 만든 그릇을 말합니다. 본차이나(bone china)가 영국에서 생산되기 전, 1600년대 유럽에서는 중국의 고온소성 도자기가 대유행을 하였는데, 그 때부터 china는 중국이 아닌 dinnerware(식기류)=china의 보통명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파인차이나는 당시 획기적으로 높은 온도의 가마에 구워진 단단하고 내구성과 백색 광택이 우수하여 유럽에서 유행했었다. 그러나 이 제품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본차이나의 생산으로 파인차이나에서 본차이나로 제품으로 바뀌게 된다.
본차이나는 중국의 파인차이나를 보고 감명을 받은 영국 런던의 토마스 프라이가 1748년 새로운 종류의 소지, 즉 동물의 뼛가루가 들어간 고령토 소지를 이용하여 제조하였기 때문에 bone china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우수한 본차이나 제품은 200년대 초에 기존 제조방법의 단점을 보완하여 오늘날의 우수한 영국의 본차이나가 탄생하게 되었다. 본차이나는 파인차이나 그릇보다 투명도나 기계적 강도가 훨씬 우수한 것이 특징이다.
4) 도자기의 명명법
박물관에 가면 국보나 보물 도자기의 이름이 이해하기 힘든 단어의 조합으로 지어졌는데, 각각의 도자기 이름 자체가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도자기의 이름을 짓는 명명법은 나라별로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아래와 같은 순서로 이름을 짓는다. 순서는 나라 명 또는 시대 명 (생략하기도 함), 도자기의 종류, 장식기법 및 문양/무늬의 종류, 그리고 기물의 형태 및 종류순으로 한다.
박물관에 가면 도자기의 이름은 위의 순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나 일부 순서가 생략되기도 한다. 에를 들면, 복잡한 도자기 이름, 국보 제 116호 “청자상감모란문표주박모양주전자”의 뜻은 우선 청자는 고려청자이기 때문에 고려라는 나라를 생략했고, 장식기법과 문양은 상감에 모란문 그림이 그려졌고, 기물의 형태와 종류는 표주박모양의 주전자이다.
도자기 명명의 원칙에는 4 가지 분류 방법이 있고 그 순서대로 이름을 붙이면 된다.
분류 방법 | 예 | |
1) 종류 | 청자, 백자, 분청사기, 청화백자, 결정유 등 | |
2) 장식 기법 | 안료 | 그림: 철회(철화), 진사(동화), 청화 칠: 철채, 동채, 청채, 퇴화(철백화) |
장식 | 상감, 음각, 양각, 투각, 모깎기, 귀얄 | |
3) 문양 | 매화문, 어문, 국화문, 죽문, 연화문, 포도문 등 | |
4) 형태 | 매병, 편병, 연적, 주자, 대접, 호(壺=항아리) 등 | |
명칭 순서 | ||
1. 종류-장식-문양-형태의 순에 따라 명명한다. 예) 청자 음각 연단문 외형 주자 2. 장식, 문양은 중복이 가능하며, 주된 안료를 앞서 표기한다. 예) 장식 중복; 백자 음각 총청채(總靑彩) 필세(筆洗) 예) 문양 중복; 청자 상감 운학문(雲鶴) 매병 3. 상형해서(자연의 물상을 본뜸)는 본뜬 모양으로 명명한다. 예) 청자 귀형(龜形 = 거북형) 주자 |
청자음각연단문외형주자
음각 총청채 필세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청자 귀형 주자
5) 우리나라의 도자기의 변천사
우리나라의 도자기 역사도 마찬가지로 토기부터 시작되었다. 한반도에서 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5000년경 신석기시대에 끈과 같은 장식을 표면에 붙인 돌대무늬(突帯文)토기가 이후에는 사선무늬를 새긴 빗살무늬 토기가 제작된 것으로 추측한다.
기원전 1000년경에는 무늬를 넣지 않은 민무늬토기가, 기원전후에는 중국으로부터 물레와 가마기술이 전해져 기와와 같은 와질토기가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와질토기의 전래는 삼국시대에서는 회흑색의 토기가 만들어졌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유약을 입혀 저온에서 굽는 녹유(緑釉)도기가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도자기 문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고려시대(918-1392년) 10세기경으로 고려청자는 중국의 절강성 북부의 오대 월요의 영향으로 탄생하였다, 당시에는 청자 제조기술이 중국으로부터 건너왔으나 12세기 중엽에 중국의 청자에 우리 고유의 상감기술이 가미된 고려상감청자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고려청자의 제조기술은 조선 초기에 조형미가 우수하고 색상이 독특한 분청사기로 발전 계승되었으며, 이후 조선 중기 이후에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절제되고 간결한 문양과 색상을 자랑하는 단아한 조선백자로 그 전통이어 가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2세기 중엽에 비취색의 깊은 푸른색을 띄는 아름다운 유색, 흰색과 검은색으로 발색하는 흙을 감입하는 장식법, 즉 상감기법이 가미된 고려청자만의 독창적인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고려청자의 2대 생산지로써 유명한 곳이 남서부에 위치한 강진과 부안이었다. 또 청자 바탕에 철 안료로 문양을 그린 청자철화(산화철로 그린 그림)과 흑유(흑갈색의 유약)등이 사용된 도자기도 만들어졌다. 고려청자의 과학기술적 독창성은 기물바탕의 비색, 상감기법과 진사의 사용이다. 비색은 회청색, 또는 얕은 녹색을 띠는 회색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유약 하층부에 태토가 약간 보이게 된다. 청자 유약에는 무게비로 1.5에서 2%정도의 산화철(FeO)이 함유되어 있으며 아주 적은 양의 산화망간(MnO2, <0,5%) 성분도 혼합되어 푸른색을 나타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의 섬세한 문양과는 달리 자유롭고 대담한 장식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거친 귀얄 붓의 흔적이 무늬처럼 남는 귀얄무늬, 백점토에 담근 덤벙, 특히 충정남도 공주군 반포면 계룡산 주변에서 구운 분청철화가 유명하다. 이러한 분청의 일부는 일본에서 고려다완으로 전해지고 있다. 15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백자가 제작되어, 조선왕조에서 왕의 식기로 경기도 광주일대의 관요에서 제작되었으나 16세기후반부터는 지방에서도 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자기 역사를 보면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우수한 도자기 제조기술을 지속적으로 계승 또는 발전시키지 못하고 한 시대에 전성기를 맞다가 소멸되고 다른 유형의 도자기로 넘어가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도자기 기술의 탄생 및 소멸은 외세의 침입, 어려운 경제사정 및 도공에 대한 처우 및 시대적 요구 등에 따라 부침이 심하였다. 현재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한국의 도자기가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에 비하여 숫자가 현저히 적고 유사한 금액으로 낙찰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우리의 우수한 도자기 제조기술을 지속적으로 계승 또는 발전시키지 못한 것 때문으로 추측된다.
특히 임진왜란으로 인한 조선의 경제적인 피폐화 그리고 우수한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 우리나라의 도자기 산업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까지 암흑기 시대이었다. 1882년에는 조선시대 왕실에 고급 도자기를 공급하던 관요의 폐지 이후로는 고급의 백자 생산이 중단되면서 일반 백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생활 도자기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의 도공 때문에 아리다 자기 등 고급의 경질자기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청나라 말 혼란기를 틈타 유럽시장을 차지하던 중국 도자기를 밀어내고 세계적인 제품이 되었다. 과거 고려청자, 분청사기, 이조백자는 중국과 일본 도자기에 비하여 형상과 색채가 단순하면서 우아한 멋과 기술적 독창성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색상의 유약이나 상회(overglaze) 장식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환원염에 의한 번조, 철 발색제의 유약, 그리고 철, 구리와 코발트로 유약 아래 그림 그리는 하회(underglaze)장식기법과 상감기법으로 제조한 것이 한국도자기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도자기 변천의 시대별 비교
년도 나라 | ~4C | 5C | 6C | 7C | 8C | 9C | 10C | 11C | 12C | 13C | 14C | 15C | 16C | 17~19C | |||||||||||
중 국 | 한대 | 북위, 당대 | 송대 | 원대 | 명대 | 청대 | |||||||||||||||||||
토기 | |||||||||||||||||||||||||
월주요 청자 | |||||||||||||||||||||||||
청 자 | |||||||||||||||||||||||||
백 자 | |||||||||||||||||||||||||
한 국 | 삼국, 통일신라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 | ||||||||||||||||||||||
토 기 | |||||||||||||||||||||||||
청 자 | |||||||||||||||||||||||||
분청사기 | |||||||||||||||||||||||||
백 자 |
우리나라 도자기의 변천
BC50세기 BC10세기 BC4세기 AD2세기 679년 936년 1392년 1592년 1910년 | |||||||||
신석기 | 청동기 | 철기 | 삼국시대 | 통일신라 | 고려시대 | 조선시대 | |||
빗살무늬토기 | 민무늬토기 홍도, 흑도 | 와질토기 적색토기 | 회청색경질토기 (가야,신라토기) | 회유토기 | 청 자 | ||||
분청사기 | |||||||||
백 자 | |||||||||
옹기 |
해방 후 우리나라는 몇몇 기업(한국도자기, 행남사 등)이 현대화된 고급 도자기 생산시설을 갖추고 다양한 생활 도자기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자기 생산기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품에 비하여 떨어지지 않으나 아직도 영국, 미국 또는 일본 제품에 비하여 디자인이나 브랜드 가치가 낮아 세계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국내외적으로 더 이상 가성비가 높은 제품이 아니라 다양한 사용자의 생활환경 및 개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이 요구되어 고급 도자기 시장에서는 외국의 유명 제품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미래에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로 과거에 전통적인 지역의 한정적인 음식이나 생활/소비 패턴을 벗어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요소에 새로운 기술을 적절히 조화시킨 세계화된 제품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국내 주요 현대 도자기제조업체
제조사 | 특 징 |
한국도자기 | 1943년 충북 청부에서 시작하여 1968년 첫 히트 상품인 '황실장미'를 출시하였다. 1974년 영국식 본차이나 제품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여 청와대, 영국왕실, 중동 왕실과 그 외 해외명품관에 납품하여 국내에서 대표적인 식기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
행남사 | 1942년 과거의 우리 도자기술과 문화를 산업적으로 계승/발전시키겠다는 꿈으로 탄생하였다. 1950년대에는 국내 최초 본차이나 제조기술을 자체 개발하였으며, 1960-70년대에는 환원자기에서 산화자기로 전환하는 등 기술혁신에 노력하였다. 2000년대에는 국내외 디자이너와 협업으로 고가의 '디자이너스컬렉션 라인'도 출시하고 있다. |
광주요 | 1963년 경기도 이천에서 한국 문화의 맥을 잊겠다는 철학으로 시작하였다. 조선 왕실 도자기를 굽던 선조들의 장인 정신과 예술미 바탕으로 전통 도자기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동시에 ‘도자 문화의 생활화’를 실현하고 있다. 특히 우리 음식과 어울리는 식기를 선보임으로서 우리의 우수한 식문화 가치를 세계에 전하고 있다. |
젠 한국 | 1991년 인도네시아에서 생산을 시작하여 친환경 천연원료 배합과 100% 무연유의 사용으로 9년 연속 로하스, KS, ISO 9001, 14001 인증을 획득한 친환경 도자기를 생산하고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가 품질을 인정하여 미국 백악관 공식식기 납품업체인 Lenox, 독일 Villeroy & Boch, 미국 Mikasa, 이탈리아 Iittala, 일본 Noritake 등에 납품하고 있다. |
이도 도자기 | 1990년 경기도 여주에서 시작하였으며, 2014년 이도 세라믹 스튜디오를 건립하며 도자기 공예제품의 산업화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이도만의 독창적이고 프리미엄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디자이너, 공예작가, 그리고 전통 도자기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한국공예의 우수성을 알리고 발전시켜 K-Craft의 세계화에 노력하고 있다. |
6) 세계 도자기의 역사 및 발전
도자기는 신석기시대에 최초로 토기를 만들었으며 이집트에서는 BC5000년경에 채색토기가 있었고 동양에서는 중국의 채색토기로부터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도자기 제조에 물레의 사용과 고화도 유약이 개발되면서 고온에서 구워내는 방법으로 발달하였다.
도기와 석기의 제조 단계까지는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큰 기술이 없이도 일찍이 도달할 수 있었지만, 다음 단계에서는 동아시아 지역(중국, 한국, 월남)과 오리엔트 지역(이집트, 서아시아, 이후에는 유럽에 영향을 줌)은 도자기의 사용 분야가 달랐고, 따라서 도자기 제조에 사용되는 소지나 유약의 종류도 달라졌다. 이러한 이유로 두 지역 간 도자기 문화가 양분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동아시아와 오리엔트 지역의 도자기 문화의 차이
지역 | 용도 | 기술발전 |
동아시아 지역 (중국, 한국) | 음식용 그릇. 용기 일상생활 도구 | 고화도 소자 사용 고화도 유약 개발 자기 제조 (청자, 백자) |
오리엔트 지역 (이집트, 서아시아) 이후 유럽 지역 | 장식품 건축자재 | 저화도 도기 제작 저화도 유약 사용 저화도 도기 |
6세기까지는 자기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가진 나라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한 육조시대에 청자와 천목이 제작되었으며 당·송시대에 중국풍의 독특한 도자기인 청자, 백자, 천목류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와 월남도 중국의 영향으로 다른 나라보다 훨씬 앞서서 자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동양의 도자기와 같은 제품을 만들려고 많은 노력하였는데 18세기에 들어서야 독일에서 처음으로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유럽에는 17세기 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유럽의 새로운 교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당시 중국 명나라의 청화백자 그릇들이 들어 왔는데,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그 그릇들은 경이 그 자체였다. 둔탁하고 두터운 석기만 사용하던 그들에게 놀랄 만큼 얇고, 하얀 바탕에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려진 청화백자는 그 어느 보석보다도 값어치 있는 보물이었다.
1602년 암스테르담 항구에서 청화백자 그릇들을 경매에 붙였는데, 이 경매는 유럽인들이 대규모의 중국 자기를 접할 수 있었던 최초의 사건이자 근대 유럽 도자사에서 커다란 분수령이 되었다. 2년 뒤인 1604년 암스테르담에서 경매 시장이 열렸는데, 이번에는 프랑스 왕 앙리 4세, 영국 왕 제임스 1세 등 유럽 왕실의 대리인들과 수많은 귀족들이 경매에서 도자기를 싹쓸이 구매했다. 중국 청화백자에 대한 입소문이 유럽 전역 삽시간에 퍼졌다. 바야흐로 중국 것이라면 뭐든지 좋다는 ‘시누아즈리(Chinoiserie·중국 취향)’ 바람이 유럽 전역에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 도자기는 향신료 이상으로 이득을 남길 수 있는 무역의 중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첫 경매가 있었던 해로부터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아 1년에 10만 점이 넘는 중국 자기를 네덜란드로 실어 날랐다. 이 숫자가 당시 암스테르담 인구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중국 도자기 독점 무역도 중국 대륙 내부의 정세 변화로 커다란 변수가 생기고 만다. 만주족 누르하치가 청(淸·1636〜1912)나라가 명나라(1368〜1644)를 멸망시킨 후 쇄국 정책으로 무역 항구의 문을 걸어 잠갔다.
이후, 네덜란드는 중국 청화백자의 대체 파트너로 일본 자기에 주목하고 일본 규슈의 아리타 자기를 대신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아리타는 임진왜란 때 사가번 영주 나베시마 나오시게(1538~1618)에게 도조(陶祖) 이삼평(출생년 미상~1655)이 일본에 끌려와 1616년(광해군 8년)에 일본 최초의 백자를 만든 이후 일본 도자기 산업의 메카가 된 곳이다. 1647년 공식 기록에 의하면 당시 아리타 사기장 집안은 155가구였고, 이들은 모두 이삼평의 총괄 감독을 받았다.
아리타에서 생산한 도자기는 1651년부터 유럽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는데, 1653년에는 2200개, 1664년에는 4만5000개를 수출하면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와 본격적인 교역활동을 통하여 아리타 도자기 수출이 최대 사업이 된 다음부터는 아리타 옆 조그만 항구 이마리(伊萬里)가 네덜란드에 가장 중요한 도자기 무력항이 되었다. 네덜란드는 이렇게 일본과 도자기 무역을 하면서 동양의 자기를 모방해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18세기 이후 명성을 떨치게 되는 델프트 블루(Delft blue) 도자기 신화의 시작이다.
당시 일본은 명에서 청나라 교체기에 해상노선 봉쇄로 대유럽 자기 수출 막히자 중국의 도자기를 모방해 유럽에 팔기 시작했다. 이 덕에 일본은 도자기의 전성기, 중국은 반대로 암흑기가 도래했다. 1673년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 1661〜1722)는 쇄국정책을 풀고 해상교역금지령을 취소하여 도자기 무역을 재개했으나 19세기 말 청나라가 멸망하며 도자기 기술과 산업도 몰락하였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천년전에 이미 보유했던 고온소성을 통하여 제조된 경질자기 기술이 청나라의 쇄국정책 및 몰락, 그리고 우리나라의 임진왜란으로 동양의 자기 제조 기술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도자기 역사는 시작은 늦었지만 조선에서 건너간 도공들에 의해 중국 도자기를 모방한 정교한 채색그림을 그려 넣은 도자기가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게 된다.
17세기 들어 유럽에서도 처음으로 중국식 도자기제조 기술을 밝혀내게 되는데, 이 방법으로 제조된 독일의 마이센자기와 프랑스의 세브르자기는 유럽의 도자기 산업을 이끌었다. 특히 중국풍 도자기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작센의 아우그스트 1세였다. 그는 독일 마이센(Meissen)에서 뵈트거(Böttger, 1682-1719)에게 중국의 청화백자 개발연구를 독려하였다. 그는 지역 고령토를 이용하여 일본 카키에몬 도자기 모방제품을 생산하면서 중국도자기와 기술적 차이는 없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독일에서, 다음에는 프랑스, 곧이어 이탈리아, 영국 및 오스트리아도 속속 중국풍의 도자기를 모방해서 만드는 대열에 합류한다. 아이러니하게 그들의 모방대상은 이천년 역사의 중국 도자기가 아니라 중국 것을 모방하여 만들기 시작한 일본 제품이었다. 마이센에서 도자기 개발이 성공하자 네덜란드도 이에 자극을 받아 유약에 관한 연구를 거듭해 청화와 흡사한 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델프트 청화 Delft Blue라는 것이다.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영국은 도자기의 개발에 있어서는 마이센과 델프트에 비해 한참 늦게 시작했다. 영국은 한참 늦은 18세기에 이르러 제대로 된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는데, 웨지우드(Wedgwood, 1730–1795)는 1754년부터 5년 동안 휠든과 협력하여 바탕에 산뜻한 무늬를 전사한 크림웨어(Creamware)를 개발했다. 1775년 웨지우드는 청색 바탕 위에 하얀 무늬를 넣은 자스퍼웨어(Jasperware)를 1780경 만들어 유럽 제일의 도자기 제조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이후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많은 도자기 제조사들이 생겼고, 이들이 제조한 도자기가 세계 고급 도자기시장을 석권하게 된다.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하여 영국은 도자기를 늦게 시작했지만 산업혁명과 몇몇 유명한 도자기 사업가의 노력으로 많은 영국 도자기 브랜드 제품(표 참조)이 1세기만에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현재 세계시장에서 영국의 도자기 제품이 고급제품으로 인정받는 데는 웨지우드라는 뛰어난 도자기의 디자인과 귀족 마켓팅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다른 유럽국에서도 유럽인들 스스로 만든 도자기를 판매하기 시작하였는데, 유럽 장인들은 화학적 지식과 새로운 제조공법의 도입으로 도자기 제작기술은 더욱 더 정교하게 발전하였다. 드디어 그 동안 동양의 도자기가 독점해온 유럽의 고급 도자기 시장의 판도가 뒤바뀌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선 후에는 화학 및 기계 산업의 발달로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 도자기업 산업이 번창한 반면 중국과 우리나라는 아닌 여전히 수공업이었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다. 특히 동양의 가내 공업적인 규모와 도자기 원료의 분석과 배합, 유약의 개발, 소성 조건 등의 과학적인 지식보다 오로지 장인의 경험을 고집한 것이 유럽에 고급 도자기 시장을 내주게 된 주요 원인중 하나이다.
국가별 경질 도자기의 제조 년도
년도 나라 | 600 | 700 | 800 | 900 | 1000 | 1100 | 1200 | 1300 | 1400 | 1500 | 1600 | 1700 | 1800 | |||||
중 국 | 당대자기 (618~907) | 송대자기 (960~1279) | 원대자기 (~1368) | 명대자기 (1368~1544) | 청대자기 (1644~ ) | |||||||||||||
한 국 | 고려청자 (900~1300) | 분청사기 (1306~1540) | 조선백자 (1540~1910) | |||||||||||||||
일 본 | 아리타, 이마리, 가키에몬, 히라도자기 | |||||||||||||||||
프랑스 | 파이앙스, 세브르자기 | |||||||||||||||||
독 일 | 마이센자기 | |||||||||||||||||
영 국 | 본 차이나 |
국가별 유명 도자기 제조사
국 가 | 제품명 | 특 징 |
영국 | 웨지우드 Wedgwood | 웨지우드가 1760년에 ‘크림웨어’로 조지 3세의 왕비인 샤로트의 마음을 사로잡아 ‘퀸즈 웨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1773년에는 경질 자기에 가까운 유명한 ‘재스퍼 웨어’를 만들었고, 반투명 흰색에 코발트나 다른 안료를 써서 다양한 색의 바탕이 만들어졌고 그 위에 꽃장식을 하였다. 지금도 영국다운 기형과 문양의 본차이나를 생산하는 영국 최고의 명문이다. |
로열 앨버트 Royal Albert | 1894년 잉글랜드 스테포드셔의 Stoke-on-Trent에 외일드가 설립한 영국도자기의 메카로 일려져 있다. 초기에는 T.C.Wild & Sons였으나 1896년 빅토리아 여왕 손자 Albert 왕자(이후 조지 왕, 1936) 출생기념으로 Albert Crown China를 출시한 후, 1904년 왕실이 사용하기 시작, 1970년 회사명을 Royal Albert로 변경 후, 1972년 Royal Doulton에 합병 | |
로열 덜튼 Royal Doulton | 영국다운 맛을 가진 가마로 유명하며, 소금유약에 연질자기를 생산한 것이 특징이다. 영국 국회의사당을 사이에 두고 템스 강 건너 램베스 지구에서 1815년 존 돌턴이 가마를 설치하고 이 가마는 1854년에서 1861년 사이에 몇 차례 생산기술에 관한 특허를 얻었다. 현재 식기 생산을 중단하고 대형 화학 및 위생용품을 생산하고 있다. | |
로열 크라운 더비 Royal Crown Derby | 1890년에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왕실용품을 대는 어용가마로 지정되어 로열과 크라운이라는 이름을 쓰는 가마가 되었다. 이 가마는 중국보다 일본 이마리 도자기의 디자인을 받아들인 것이 특징이다. | |
로열 우스터 Royal Worcester | 1751년 우스터에서 존 월이 가마 하나로 시작. 1788년 조지 3세가 이 가마를 방문한 것을 기회로 ‘로열 우스터 포슬린 웨어’라는 명칭의 사용을 허가받았다. 처음에 쉬누아즈리를 디자인 제품을 생산하다 로버트 핸콕이 동판전사를 도입하고 또 마지막 유약을 바르기 전에 색채를 칠하는 등 한 걸음 앞선 기법으로 영국의 대표적인 가마의 하나가 되었다. | |
콜포트 Coalport | 1790년 존 로즈가 웨일스 쟈크필드에 있던 가마를 콜포트로 옮긴 후, 1799년에 카플레 가마, 1820년에 난트가우 가마와 스온지 가마를 합병하여 무연장석질 유약을 발명하고 프랑스 세브르계의 다채 식물무늬를 넣은 도자기를 생산하였는데 궁정에서도 사랑을 받아 왕립미술협회에서 금패를 받았다. | |
앤슬리 Aynsley | 스탠퍼드셔에서 탄광을 운영하던 도자기 마니아 존 앤슬리가 중국과 일본의 수입품 도자기를 보고 감탄한 후 1784년경부터 우수한 도공들을 양성하여 영국 귀족들을 만족시키는 제품들을 생산해냈다. 현재 로열 앨버트 박물관에 여러 종류의 작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 |
민턴 Minton | 동판전사(銅版轉寫)로 유명한 토머스 민턴이 1796년 리버풀에 만든 가마다. 1836년에 민턴이 죽자 아들인 허버트는 존 보일트를 동업자로, 그가 은퇴하자 마이클 호린스와 동업했지만 가마의 명칭은 민턴 앤 컴퍼니 그대로였다. | |
덴비 Denby | 1809년 석기 병을 만드는 회사로 영국 더비셔 집에서 시작했다. 영국은 17세기부터 자기가 개발되기 전 석기식기를 독일로부터 수입했는데, 현재는 영국의 대표적인 본차이나, 크림웨어 등을 생산하고 다양한 색유를 사용한다. | |
포트메리온 Portmeirion | 1960년 늦게 시작한 영국의 고급 브랜드로, 국내에는 200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제품. 2009년에 오늘날의 본 차이나 생산 방식을 처음으로 보편화시킨 Spode사(1767년에 설립)를 인수하여 자기 제조업체로서 유명해 졌다. | |
일본 | 노리다케 Noritake | 1904년 나고야 노리다케에 설립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도자기 회사로 1914년에 일본 최초의 디너세트가 여기에서 구워졌다. 순백색의 큰 접시로 2차 세계대전 전에 노리다케는 양식기의 대명사였다. 본사 건물 맨 위층의 도자기 박물관에는 창업 이래의 역사를 말해주는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
독일 | 마이센 Meissen | 유럽 최초로 순백 도자기 제조에 성공한 마이센은 초기 유럽의 도자기 산업을 이끌었다. 뵈트거가 독일지역 고령토를 이용하여 일본 도자기 모방제품을 내놓게 되면서 경질자기의 획기적인 기술 진보를 이루었다. |
레이첸바흐 | 독일의 Thuringia 지방 Reichenbach 마을은 170여 년의 전통을 지닌 독일 도자기 생산지로 이곳 고유의 도자기 페인팅을 레이첸바흐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파올라 나보네와 협업으로 이탈리아의 로맨틱한 감성과 독일의 바로크적 감성의 조화는 테이블 웨어 컬렉션으로 탄생되었다. | |
스페인 | 야드로 Lladro |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야드로 3형제는 도자기 인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야드로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1960년 상반기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한 야드로 브랜드는 1969년에 이미 세계적 유명회사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섬세한 솜씨의 “꽃” 소퓸, 파스텔톤 색조의 도자기 인형이 소장가치를 높이고 있다. |
이탈리아 | 지노리 Ginori | 1735년 카를로 지노리 후작은 당시 유럽에서 애호되고 있던 로코코 양식 대신 신고전주의를 주창하며 지노리 가마를 열었다. 이 가마 제품은 특징은 인페로라고 불리는 띠 문양이다. 근래에 ‘파보네’, ‘인타르시오’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개발이 새로운 방향인데, 전체적으로 쉬누아즈리(중국풍)를 반영하고 있지만 이탈리아풍의 밝음과 세련됨을 지녔다. |
카포디몬테 Capodimonte | 1743년 나폴리 왕 부르봉가의 카를로스 3세가 나폴리에 만든 왕실 집기용 가마다. 왕비인 마리아 아말리아는 마이센 가마의 창시자 아우구스트 2세의 왕녀로 자기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마이센 도공의 도움으로 마이센 도자기와 상당히 비슷한 것을 궁정용품으로 나폴리에서 만들어졌다. | |
미국 | 레녹스 Lenox | 1889년에 문을 연 월터 스콧 레녹스는 처음부터 레녹스의 스타일로 다른 자기들과는 차별성을 두었다. 제조공장보다는 아트스튜디오를 먼저 세워 단순한 제품이 아닌 상아빛의 광택 나는 아트웨어를 선보였다. 현재 아름다운 테이블 웨어, 기프트웨어(특히 인형)로서의 명성이 높다. |
참고문헌
1) 도예이론과 실기, 서길용 저, 신광출판사 (2006)
2) 도자기공학(기초편), 문종수, 최태현, 두양사 (2003)
3) 아름다운 우리도자기, 윤용이 저, 학고재 ((1996)
4) Pottery Analysis: A Source Book, P.M. Rice, U of Chicago Press (1987)
5) https://www.gc.go.kr/museum/contents.do?mId=0203000000
6) 이가진, “청자유를 두껍게 시유한 도자작품의 사례분석 및 제작에 관한 연구”, 석사논문 2012
7) “도자기분야 디자인 기술 수요조사 및 전략연구”, 세라믹기술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