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물러 있는 곳
엄영아
여름이 허니문처럼 좋다. 뜨거운 태양빛이 첫사랑의 달콤함을 기억나게 한다.
Tony Bennett 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노래가 흘러나온다. 세월에 그도 96세로 오늘(7-21-23) 세상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문득 오래전 마음을 두고 온 그곳이 생각난다. 대학 다니는 아들을 만나러 샌프란시스코 쪽을 행해 가던 29년 전. 그 마을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태평양 연안 도로 Pacific Coast Hwy를 따라 북쪽으로 달렸다. 새털구름, 양떼구름이 윤슬로 빛나는 바다위로 높이 떠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이 풍광을 누가 만들었는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바닷가 경관은 대형 화폭이다. 아이들이 뛰놀던 까마득한 옛날이 뭉게구름 위로 신비롭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어바인을 출발해 샌프란시스코 중간쯤 왔을 때 낙조가 물들기 시작됐다. 어둑하기 전에 만난 작은 시골 마을.
모텔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조용하고 한적해 보이는 모텔은 방에 전화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앞쪽은 바다고 뒤쪽은 산이다.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른 문명사회다. 요즘 세상에 이런 모텔이 있다니 놀라웠다. 순수 시골 마을. 방 옆으로 개울물이 소리 내어 흐르며 개울 옆 풀들이 살랑살랑 고개를 흔든다. 풀 섶에 앉아 당장이라도 발을 담그고 싶다.
이곳은 저녁을 먹을 만한 식당이 없다. 5분 정도 운전하고 나가서 근처 마켓에서 소고기 한쪽과 빨강, 초록 피망과 양파를 샀다. 버터를 두르고 고기를 구웠다. 직송재료라서 그런가. 싱싱하여 맛이 좋다. 아들 주려고 가지고 가던 전기 프라이팬이 있어서 다행이다.
밤이 깊어졌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른다. 별들과 반딧불이 지천이다. 조용히 흐르는 개울물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 적막강산(寂寞江山)이란 말이 이곳에 딱 어울린다. 조용한 마을에서 깊은 밤을 맞았다. 별똥별과 풀벌레 소리가 잠들지 않는 청정구역이다.
신선한 새벽을 맞이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운무가 무채색의 산수화를 그린다. 이슬 한 방울, 바람 한 점마저도 신기하다. 두 마리의 갈매기가 높이 더 높이 날아간다. 내가 이 대자연에 시를 쓰지 않는다면 새들이라도, 개천에 있는 송사리 떼라도 시로 읊조릴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주위의 청량함에 마음이 순전해지고 평화가 가득 채워진다.
나는 그날 한줄기의 햇살을 맞으며 생각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해도' 행복하다고. 자연 친화적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마을, 그곳에서 힐링을 경험하고 왔다.
그 뒤로는 바쁘다는 이유로 자동차보다는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를 다녔다. 그때는 South west Airline 비행기 표 값이 저렴했다. 그보다 Pacific Coast Hwy가 꼬불꼬불한 길이라 점점 자신이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마음을 두고 떠나온 한없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그곳에 다시 한 번 가볼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우리 부부는 29년 전 그 하루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았다. 그 모텔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까?
첫댓글 29년 전의 풍경을 세세히 기억하셨어요. '별똥별과 풀벌레 소리가 잠들지 않는 청정구역' 에 가 보고 싶어졌어됴.
수필집 '수를 놓듯, 연서를 쓰듯'을 다 읽었어요. 영어로도 쓰시고 사진도 넣으시고 인상적이었어요.
'니에게 쓰는 반성문'은 엄선생님의 인내심이 잘 드러난 수필로 감동적이었어요. 김치 에세이도 우리 삶에 비교하여 고통과 고난 후의 새로움으로 태어나는 인생과 견주었던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강준님 목사님의 말씀처럼 맑고 깊은 샘에서 솟구처 올라온 생수 같다고 하신 평에 동의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많은 것을 추억이라는 상자에 담아오게 되죠.
저도 엄샘이 머무신 곳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작은 시골동네에서
머문적이 있었어요.
앞에는 바다가 펼쳐있고 뒷산은 작은 호수를 품은 그곳이 너무 좋아 하루를 더 머물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