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쌍계루 (화첩) 1995년
시 -정몽주鄭夢周
이제 백암스님을 만나 시 한수를 청하니
붓잡고 시상에 잠기기를 어려워 하네.
청수는 누각을 세워 그이름을 빛내고
목은은 누각기를썻으니 가치를 더했네.
노을빛이 아득하니 저문산은 붉어오고
달그림자 어른거려 가을물은 맑은데
오랫동안 속세에 시달려온몸
언제 떨치고일어나 함께 오를수 있을까.
백암산 백양사 1995년
대웅전뒤뜰에는 팔정도를상징한 팔각팔층탑이 이채롭다.
또 그곁에 세운 '백양사석가사리탑비명병서
白羊寺釋迦舍利塔碑銘幷書'는 해서체로 된
추사 김정희 글씨의 집자集字로 오늘의 백양사를 있게한
만암 대종사의 노고와 발원을 헤아리게한다.
백양사는 1400여년전 백제시대의 고찰로 유구한 역사와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이 높으며 또한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이 고려말 1337년(우왕 3)에 지었다는
'백암산정토사교루기(白巖山淨土寺橋樓記)'의 일부 내용을 보면,
오직 이 산은 장성군 북쪽 30리에 있는데 그 이름을 백암(白巖)이라 하였으며
암석이 모두 흰 색깔이라서 그렇게 이름 하였다한다.
석벽은 깎아지른 듯 험하고 산봉우리는 중첩하여 맑고 기이하며 웅장한 모습이
실로 이 지역의 명승지가 될 만하므로 신라 때의 어떤 이승(異僧)이 처음으로
절을 짓고 살면서 이름을 백암사(白巖寺)로 하였다.
백양사 운문암 1995년
현제운문암은 백양사조실이신
서옹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신데참선의도량으로 전망이 좋다
중국 송나라 경평 연간(423~424)에 이르러 정토선원(淨土禪院)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그 문도인 중연선사가 이를 이어 전당과 문무, 방장실, 요사 등 80여 칸을 다시 지었다.
중연선사의 문도가 차례로 전해 오다가 일린(一麟)스님이 그 사찰을 주관하여 처음의 법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실린 '백암산정토산교루기'는
백양사의 창건 내용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며 여기서 백양사 창건과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창건은 신라 때 이루어졌고 창건주는 법명은 알 수 없지만,
'이승'이라고 표현된 점으로 보아 상당한 이적행(異蹟行)을 해온 승려일 것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백양사의 창건 때 이름은 '백암사'였으며, 창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토선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또한 창건 이후 중연선사와 일린스님에 의해 백양사의 법맥이 계속 이어져 왔음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정도전이 지은 이 자료의 모든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 것인가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특히 백암사에서 정토선원으로 사찰명이 바뀌는 시기가 중국 남송시대인 5세기 초반이라고
서술한 부분은 시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이 시기는 신라의 불교 공인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이며,
더욱이 그 같은 상태에서 신라 스님이 백제 영토에 들어와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양사의 창건주가 신라 스님이었다는 점 그리고 백암사와 정토선원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임에 분명하다. 극렬한 배불론자였던 정도전의 '백암산정토사교루기'가
백양사 창건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또 이 기록은 이후에도 그대로 전승되어 오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내용이 좀 더 구체화된다.
일반적으로 통하는 백양사의 유래는 백양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고,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보수한 뒤 정토사로 불려졌다.
조선 선조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한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
승가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합니다.
3시가 되면 한 스님이 목탁을 치며 도량을 돕니다(道場釋).
그 목탁소리를 듣고 모든 스님들이 일어납니다. 도량석이 끝나면
아침 종성과 4물(목어, 운판, 법고, 대종)이 울리고 이어서
대웅보전에서 경건하게 새벽예불을 올립니다.
선원에서 정진중인 스님들은 도량석이 끝나면
선원 큰방에서 죽비로 예불을 드리고 바로 참선 정진에 들어갑니다.
예불이 끝나면 강원 스님들은 큰방에서 간경(看經)을 합니다.
아침 공양은 6시에 있습니다. 스님들은 큰방에 순서대로
빙 둘러앉아 각자 자신의 발우로 공양을 합니다.
총림(叢林)의 뜻은 범어 vindhyavana의 번역으로
빈타파나(貧陀婆那)라 음역하며,
단림(檀林)이라고도 번역합니다.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一處住)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특히 선찰(禪刹)의 경우
이름으로 공덕총림(功德叢林)이라고도 합니다.
백양사 연못 1995년
백양사 뜨락에는 나무마다 명찰을달고있는데
연산홍,매실나무,석류,반송,백당나무,동백나무,자목련,눈향나무등이 눈에띄고
특히비자나무는 이곳이 집산지임을 알게하였다백암산 백양사는
천해의 명소로 연꽃이피어나는형국속에서 도 화심에 들어와 앉았다,
일제에의한 '조선사찰31본산사진첩'에서 보여주는 1920년대
백양사가람이 지금껏 변함이없는데 단지 나무가 많이들어서고
산문초입의 초가마을과 밭이 사라졌을따름이다.백양사는
사계절중에서도 만추의풍광이경이롭다거늘 나의첫걸음은
이제시작일뿐,남은날의 기약속에서
다시붓을들고 찾아와야할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