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다수의 광기를 낳습니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의료사고와 관련된 감정서를 작성하면서 소수 의견을 무시하는 등 감정 업무를 방ㅎ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일부 의료분쟁 조정위원을 고발했습니다.(2022.6) 고발에 참여한 송기민 전 감정위원은 적절한 의료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환자가 사망한 것에 대해 소수 의견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감정서에 소수 의견 기재를 요청했으나 소수 의견은 묵살했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소수냐, 다수냐. 이념의 극단적 대립이 극심한 사회일수록 소수 의견은 묵살 당하기 십상입니다. 다수의 암묵적 동의가 팽배한 분위기서 소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수의 비난을 버텨낼 수 있는 뚝심과 함께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확신이 없고서는 소수의 편에 서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수 여론이라 해서 반드시 소수 여론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다수 여론이 옳을 확률은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수 여론이 정의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소수 여론이 올바르고, 정의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외면해선 안 됩니다. 소수 의견을 잘못된 견해로 몰아가는 순간 사회의 다양성은 설자리를 잃고 맙니다.
소수의 편에 선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침묵입니다. 입을 열지 않으면 중간은 가기 때문입니다. 침묵의 대가로 자신에게 미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의에 침묵하면 세상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공범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수 여론만 숭배하는 사회는 언제든 광기로 미쳐갈 수 있습니다. 문화대혁명이 그렇고, 나치즘(Nazism)이 그랬습니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한 사람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무한 자유를 매우 중시했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자신의 사고와ㅏ 말, 행위가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모든 범위에서 절대적이다. 국가의 법률이나 일반적인 도덕적 판단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함부로 속박할 순 없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은 완벽한 자유의 보장입니다. 불법 행위가 아닌 이상 말과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조직, 집단, 사회의 다수 의사와 배치되면 개인의 온전한 자유는 언제라도 속박되기 쉽습니다. 오히려 다른 누군가가 구속하기도 전에 스스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검열해 안전 보장이 수월한 다수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다수의 여론을 앞세우는 사회에서는 ‘나’, ‘너’라는 객체는 보잘 것 없는 대상에 불과합니다. 중요하고 우선시되는 것은 늘 ‘우리’라는 집합체입니다. 나와 너는 ‘우리’를 위해 희생 가능한 개인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나와 너는 ‘우리’라는 다수 여론의 암묵적 핍박 앞에 무기력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기력이 침묵을 낳고, 침묵은 다수의 광기를 낳습니다.
웅변은 은(銀), 침묵은 금(金)이라지만
다수가 만들어낸 말의 감옥일 뿐이다.
세상을 비틀어보는 75가지 질문
Chapter 4. 더 부드럽게, 더 강하게, 마치 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