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1. 03
세상에 이유 없는 변명은 없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몽니‘도 다 이유가 있다. 대선 선대위에서 열심히 하면 “자기 정치한다”고 하고 선대위원장직을 던지고 나오면 “대선 망치려고 작정했느냐”고 한다. 선대위원장직 사퇴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권 없는 당 대표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돼” 그랬단다. 선대위 공보단장이 상임선대위원장인 당 대표에게 ’하극상‘을 하는데 가만있으면 되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서열 정리를 해줘야 할 윤석열 후보가 “그런 게 다 민주주의 아니냐”고 하는데서 더욱 빡쳤다니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과연 이 대표의 이 변명을 마냥 ‘이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가 일으킨 분란이 지금 당과 선대위를 예상 외로 너무 크게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당 대표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바깥으로 돌면서 윤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도 동반하락하고 있다. 신년 들어 발표한 여론조사는 7전7패를 기록했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고공행진을 하던 윤 후보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데는 이 대표의 ‘몽니’가 크게 작용했다. 흥분한 당원들 사이에서는 “이 대표를 좌시할 수 없다”며 응징 여론이 들끓는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아직까지 당내 비판에 꿈쩍을 않고 있다. 선대위원장을 내려놓으면서 당 대표직에 충실하겠다고 했지만 국회 당 대표실만 지키고 있을 뿐 하는 일은 따로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언론에 나와 윤 후보와 선대위를 조롱하고 비난한다. 연말연초 정권 교체를 위해 ’야권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고춧가루를 뿌렸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해도 (안 후보)지지율이 흡수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와 악감정이 있다지만 당 지도부로서 할 소리가 아니다. 또 윤 후보 주변 인사들을 ’윤핵관(윤석열 후보측 핵심관계자)‘이라 하더니 이번에는 그들이 후보 단일화를 추진한다고 ’단일화무새(단일화+앵무새)‘ ’통합무새(통합+무새)라고 비아냥댔다. 이 대표의 내부 총질이 점입가경(漸入佳境) 수준이다.
그는 그렇다면 왜 이런 어이없는 일탈을 서슴지 않을까? 30대 야당 대표로 정치적 미래가 보장됐던 이 대표가 이런 무리수를 두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미 이 대표는 선대위 ‘보이콧’에 따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유명 유튜브인 ‘가로세로연구소’가 선대위 이탈과 동시에 ‘성접대 의혹’을 제기하는 바람에 ‘청년 정치’라는 기대감도 신선도가 떨어졌다. 자신의 변명대로 ‘당 대표 위신’ 때문에 선대위를 ‘보이콧’한 치고는 대가가 너무 크다. 그의 ‘몽니’가 단순히 당 대표 위신 때문만은 아니라는 해석이 그래서 나온다.
▲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와 윤석열 대선후보. / 연합뉴스
그가 지금까지 보인 행동을 보면 그에게 ‘윤석열’은 당 대선후보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정적(政敵)들이나 하는 행동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중요 시점마다 방해를 놓고 있다. 두 차례 선대위 보이콧 모두 대선 후보를 지원해야 할 당 대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2월3일 울산회동으로 무마된 1차 보이콧은 윤 후보가 한창 누리던 컨벤션 효과를 잠식해버렸고 이번에도 후보 지지율에 치명상을 안겼다.
이같은 이 대표 일탈을 당내에서는 지금 정가에 돌고 있는 국민의힘 발(發) 정계개편설(說)과 연관을 시킨다. 그가 지금 선대위 ’보이콧‘을 이어가며 무리수를 두는 것은 이 정계개편설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새로 당 대표를 선출할 것이고 그때 자신이 배제될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표가 아예 윤 후보 당선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야권발 정계개편설은 민주당이 먼저 연기를 피웠다는 것이다. 윤 후보가 대선 승리 후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가 위원장인 새시대준비위원회를 지렛대 삼아 신당을 창당한다는 시나리오로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운을 뗐다. 그는 지난 28일 방송 인터뷰에서 김한길 위원장을 거론하며 “창당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호남 구애 차원에서 “부득이하게 국민의힘에 입당했다“고 한 발언을 호재로 삼은 것이다. 여기에 이 대표가 호응해 거들고 나선 꼴이 됐다.
그러나 이 정도 해석은 이 대표를 너무 얕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권을 둘러싼 당내 세력이 이 대표에게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이 그래서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 6.11 전당대회 때 과거 바른정당과 바른미래당을 함께한 유승민 전 의원계의 집중 지원을 받았다. 지금 이 대표의 뒤에 지난 대선 후보 경선 패배 후 아직 윤 후보 지원 의사를 밝히지 않는 유승민 전 의원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게다가 윤 후보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 홍준표 의원에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이 대표에게는 응원세력이다.
이들은 어찌보면 현재 국민의힘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들이다. 당내 세력이 전무한 윤 후보 입장에서 이들이 흔들면 충분히 흔들릴 수 있다. 그 점을 알고 이 대표와 이 대표 주변 세력들이 윤 후보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대선 승리 여부는 상관없이 당권만은 양보 못한다는 자세로 말이다. ‘정치초년병’ 윤 후보의 고민은 이 지점에 있어 보인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불러서 대선후보까지는 됐지만 선배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여간 고약하지 않다. 하지만 다 덕있는 사람이 외롭지 않아 이웃이 있는 것(德不孤 必有隣)처럼 윤 후보 주변에도 사람은 많다. 마냥 흔든다고 흔들릴 수는 없지만 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도 없다.
이상곤 / 정치 칼럼니스트
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