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고뇌 제11회
그러나 다소 계산착오는 있었습니다. 만약 에서가 이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을 때처럼, 금새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어머니가 황급히 저를 찾아오시더니 어서 도망치라고 합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에서가 저를 죽이겠다며 찾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에서가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였겠지요. 하지만 이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일은 이미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난 다음 자신의 고향으로 도망치라고 합니다. 에서의 화가 풀린 후에 다시 불러오겠다고 합니다. 제가 속인 아버지를
염치도 없이 어찌 만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아버지가 제게 저주를 내리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저는 그냥 이대로
나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만류합니다. 괜찮다면서 한 번만 만나보고 가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떠나기 전 저는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불안에 떠는 저를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모든 것을 체념한 듯했습니다.
어쩌면 일이 언젠가는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제게 당부했었지요.
너는 아브라함의 고향이자 어머니의 고향인 메소포타미아 밧단아람으로 가서, 어머니의 오라버니인 라반을 찾으라. 그리고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할 것, 절대 이곳 가나안 여인이 아닌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당부를 했지요. 그러고는 저주 대신
다시 한 번 뜨거운 축복,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축복이 함께 하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도록,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땅을 차지하는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주셨습니다.
집을 나서는 길, 저는 아버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다시 한 번 만났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를 본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노령은 아니되 제 나이 일흔 일곱. 14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이스마엘이 137년을 살았고, 아브라함이 175년을 살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77세가 그리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 가장으로서 한 집을 이끌어도 손색이 없는 나이인데, 야반도주처럼 자기 집을 나와 낯선
곳으로 가고 있는 제 신세가 처량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 과정이라고 믿었습니다. 축복이 임하는 과정이라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참아야지요. 견뎌야지요.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향하는 제 발걸음은 축복으로 향하는 발걸음이라고 굳게 믿으며 한 걸음씩 내디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