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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명의 명령으로 석가장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기 위해 수상한 인물
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흑의인들의 눈에 왠 소년 한명과 백구 한마리
가 시끄럽게 떠들고 찢으며 자신들의 앞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
다.
왠만한 무림의 고수라고 해도 자신들이 이렇게 버티고 있다면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흑의인들은
자신들의 앞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뛰어가고 있는 소년을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일호! “
냉막한 인상을 풍기는 중년인의 입에서 일호라는 말이 떨어지자 뻥진
표정으로 소년과 백구가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흑의인
들 중에서 사내 한명이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대주님! 부르셨습니까! “
“흐음.. 네 놈이 지금 제 정신인가? “
“예? 흡.. “
무심결에 중년인에게 반문을 하려던 흑의 사내는 다급한 몸동작으로
입을 가로막고는 중년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멍청한 것!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저런 정신 나간 꼬마쟁이 한테
정신을 홀리고 있는 게냐! 거기 네놈들도 마찮가지다. 그렇게 멍청하
게 서 있지들 말고 먼저 나간 조원들과 합류하여 다시 한번 이 일대
를 샅샅이 수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호! “
“예! “
“너 한번만 더 말대꾸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명심해라! “
“대, 대주님! 명심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
“서둘러라! “
일호라 불리는 사내는 중년인의 말을 듣고는 서둘러 먼저 떠난 조원
들과 합류하기 위해 떠나버렸고 다른 흑의인들 역시 자신들에게 불똥
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중년인에게 머리를 굽신거리며 비굴한 모습을 보였을 때와는 다르게
흑의인들은 모두 한결같이 초절정의 경공술을 시전하며 순식간에 시
야에서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고 홀로 남은 중년인은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멍청한 것들을 믿고 어떻게 일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휴우..
빨리 그 쥐새끼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나에게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분명할 텐데.. “
백호와 함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펼치며 평안객잔으로 돌아가던
강운은 곳곳에 살벌한 인상을 풍기며 돌아다니고 있는 흑의인들을
바라보며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이상하네. 저 사람들 한밤중에 뭐하는 거지? “
백호역시 영문을 모르는 일이었기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글쎄.. 꼴을 보니 누군가를 추적 하는 모양인데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 같으니까 그냥 신경 끄자. ]
“그래. 뭔가 사연이 있을꺼야. 귀찮으니까 우리는 그냥 객잔으로 돌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
강운과 백호는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과 조금 덜떨어져 보이는 흑의인
들이 자신들을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
하며 객잔으로 되돌아왔다.
강운이 막 평안객잔 앞에 도착 했을 때 다른 객점들과 마찬가지로 평
안객잔에도 정체 불명의 흑의인들이 들이닥쳐 투숙객들을 조사해 나
가고 있었다.
근래의 모든 객점에 묵고 있는 투숙객들이 사천으로 떠나는 무림인들
이었기에 갑자기 들이닥친 흑의인들이 다짜고짜 조사할 것이 있다며
자신들을 죄인 취급을 하기 시작하자 여기 저기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이보시오! 대체 당신들이 무엇이라고 우리들을 죄인 취급하는 겁니
까? “
“아! 여러분 밤 늦은 시간에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희 일행 중
이 근방에서 변을 당한 일행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 흉수를 찾아내
지 못했기에 이렇게 밤늦은 시간에 실례를 하고 있는 것이니 여러
무림 동도 여러분의 양혜를 구하는 바입니다. “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 것이 아닙니까? “
무력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을 진압할 수 있는 흑의인들이었지만 그들
로서도 큰마음을 먹고 해명을 하고 있었는데 자꾸 인상이 아주 더럽
게 생긴 사내가 꼬투리를 잡아내자 흑의인들 중 조장으로 보이는 인물
이 앞으로 나서며 인상파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양혜를 구한다고 하지 않소이까! “
인상파 사내는 흑의인의 기세에 눌려 잠시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눈만
끔벅 거리며 주위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흑의인들의 날카로운 기세에 주눅 들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불쾌한 표정을 지어대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한 인상파 사내는
용기를 내어 소매를 걷어붙이며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당신들이 우리를 핍!박! 하려는 겁니까?”
인상파 사내를 비롯한 평안객잔 안의 무림인들이 제법 당찬 기세로
자신들에게 맞서오자 선두의 흑의인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조원들
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놈들은 말로는 안 될 놈들 같다. 내가 손 봐 줄 것이니 너희들은 나
서지 말거라!
흑의인은 이제 겨우 3류 무사 정도의 실력정도 밖에 안되는 조무래기
들이 자신들을 향해 대항해 오자 저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후후! 그렇다면? 핍박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떼거지로 덤벼보기
라도 할 모양인데.. 네놈들이 아무리 봐도 수상하구나! 특히 앞에 인
상 더러운 너! 네놈부터 취조에 들어갈 것이니 그리 알거라. “
흑의인은 말을 하면서 내공을 불러 일으켰고 그로인해 중인들은 무형
의 압력을 받아야만 했다. 물론, 흑의인과 같이 온 조원들은 아무런 영
향을 받고 있지 않은 듯 보였지만 말이다.
‘허억.. 저, 저놈 엄청난 고수였구나. 이런.. 괜히 앞에 나서서 설치는
바람에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래도 우리가 수적 우세하니까
한꺼번에 덤벼들면 승산을 있을 거야. ‘
인상파 사내는 옆사람들을 돌아보며 그들 역시 자신과 생각이 비슷하
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외마디 기합성을 질러
대며 흑의인에게 우수를 휘둘러 나갔다.
“이야앗! 네놈이 고수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3명이서 우리 모두를 당해
낼 수 있을 성 싶으냐! “
인상파 사내가 앞으로 나섬과 거의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병
기를 뽑아들며 흑의인들을 덮쳐 나갔다.
“하하하! 불나방 같은 놈들이구나! “
선두의 흑의인은 자신을 향해 덮쳐들고 있는 인상파 사내의 손목을
가볍게 휘어잡고는 앞으로 집어던져 버렸고 마침 인상파 사내를 뒤따
르던 사내들은 무서운 속도로 자신들에게 날아오고 있는 인상파 사내
를 피하지 못하고는 서로 뒤엉키며 쓰러지고 말았다.
“하하하! 정말 오합지졸이로구나! 네놈들 같은 쓰레기들은 수백 명이
몰려온다 해도 상관없겠군! “
오만한 표정으로 쓰러져 있는 사내들을 가소롭게 쳐다보던 흑의인은
넘어져 있는 사내들 외에 달려오던 자세 그대로 어정쩡한 자세로 멈
춰 있는 다른 사람들을 가볍게 노려보아 주자 그들은 머뭇머뭇 거리
며 감히 흑의인에게 다가오지를 못했다.
“네놈들은 거기서 뭣들 하는 것이냐? 자! 덤빌 테면 어서 덤벼 보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먼저 손을 쓸 수밖에 없질 않겠느냐? 하하! “
흑의인은 범인은 색출해 낸다는 생각은 이미 기억속에서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이제는 자신의 앞에 다리를 덜덜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
고 있는 먹잇감들은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
으니 말이다.
그가 막 어떤 결심을 했는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신형을 움직이려
는 순간 어디선가 그를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 대인 어르신! 잠깐만 소인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하여 고개를 돌리는 흑의인의 얼굴에는 의문
의 표정이 가득했다.
겉모습은 초로의 노인이였으나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20대의 청년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건강해 보이는 노인 한명이
자신을 불러세웠던 것이다.
“대인 어르신! 소인 대인어르신께 감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
“너는 웬 놈이냐? “
아직은 흑의인이 노인에 비해 새파랗게 어리다는 것은 누구나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흑의인은 참으로 싸가지 없는 말투로
노인에게 하대를 했다.
“소인 평안 객잔의 주인 채삼보라 합니다. 이렇게 소인이 주제넘게
대인어르신 앞에 나선 것은 대인어르신의 넓은 이해심으로 이들을
용서해 주셨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
흑의인은 삼류 무사들에 이어 이제는 촌 동네에 작은 객점의 주인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나선 것에 대해 몹시 기분이 상했는지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저 쓰레기들과 아는 사이인가? “
“소인은 저분들을 모르옵니다. 저 분들은 저희 객잔에 하루 저녁
투숙을 하시는 분들이시지만 소인은 대인 어르신과 저 분들이 뭔가
오해가 생겨 서로 싸우는 것을 막아보고자 이렇게.. “
채삼보는 일생 일대 가장 큰 용기를 내어 흑의인의 앞을 가로막고
흑의인에게 사정을 했지만 결국에는 끝까지 말을 잊지 못하고 이제는
피부가 따갑게 느껴질 정도의 살기를 내뿜고 있는 흑의인을 발견하고
는 흠칫 놀라서는 뒤로 물러섰다.
흑의인의 살기에 눌려 온 몸을 부들부들 떨던 채삼보는 곧 이어 흑의
인이 가볍게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후.. 이것 참 상황이 웃기게 돌아가는 군.. “
흑의인은 두려움과 의문스럽다는 눈빛을 동시에 보내고 있는 채삼보
를 뚫어질 듯 쳐다보다가 고개를 휘휘 젓고 말았다.
“네놈이 만약 무공을 조금이라도 익히고 있었다면.. 네놈의 제삿날은
바로 오늘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네놈의 말은 충분히 이해했으니
이만 물러서거라. 이놈들은 끌고가서 몇 가지 심문을 해봐야 할 것이
있으니. 더 이상 껴 들었다간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
강압적인 태도로 채삼보에게 위협을 한 흑의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
여 뒤에 서 있는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흑의인의 뒤에 서서 흥미로운 눈빛으로 장내를 감상하고 있던 2명의
흑의인은 이제 끝내야 한다는 조장의 신호를 받고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표정과는 다르게 그들의 움직임은 표홀하기 그지없었다. 순식
간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사람들을 제압하고는 쓰러진 사람들
과 함께 한꺼번에 포박해 버렸던 것이다.
“자! 이만 돌아가자. 더 이상 이런 곳에서 시간을 끌 수는 없다. “
포박된 사람들을 오만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흑의인은 고개를 돌려 아
직도 자신을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여러 점소이들과 채삼보
를 우습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객점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객점을 떠나자 채삼보와 점소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파손된 기물들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이던 중 갑자기 객점 밖이 소란
스러워 졌다는 것을 느끼고는 움직이던 그 모습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너희들은 거기서 어정쩡하게 서 있지 말고 빨리 주방으로 들어가거
라. 처음부터 저런 미친놈들이 그냥 간다는 게 의심스러웠으니까. “
채삼보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점소이들을 모두 주방으로 돌려보낸 후
상황에 따라 자신이 어찌 처신해야 될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
다.
-콰앙!
객점 문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던 채삼보는 마침내 커다란 격타음을 내
며 객점문이 부서져 버리자 눈을 질끔 감고 말았다.
-쿵!쿵!쿵!
처음의 커다란 격타음을 이어 정확히 세 번의 둔탁한 소리가 들린 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채삼보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아니? “
채삼보의 걱정과는 반대로 객점 바닥을 구르고 있는 사람은 얼마 전
에 잡혀간 사람들이 아닌 흑의인 3명이었던 것이다.
“어라? 문이 부서져 버렸네? 우씨! 그러길래 비키라고 할 때 비켰으면
좋았잖아! “
[운아! 그러길래 조금 살살 하라고 했잖아! ]
흑의인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는 것도 무척 놀라운 일이었지만 채삼보
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부서진 문을 통해 투덜거리며 들어오고 있는
강운 때문이었다.
강운은 쓰러져 있는 흑의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채삼보에게로
다가왔다.
“할아버지 미안해.. 내가 문 값은 물어줄 게요. “
“공자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
“뭔데요? “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강운이 그 무시무시한 흑
의인들을 무찔렀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채삼보는 몇 번의 망설임 끝
에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러니까.. 공자님께서 혹시 저 사람들을.. 그러니까.. “
말을 빙빙 돌리며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채삼보를 쳐다보던 강운은
계속 말을 빙빙 돌리고 있는 채삼보가 무척 답답했던지 아직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있는 채삼보의 질문에 먼저 답을 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말은 저기 있는 사람들을 내가 때리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거 맞죠? “
“예? 아.. 예.. “
“훔.. 사실은 저 사람들을 전부 때린 건 아니구요. 그냥 앞에 있는 사
람이 길을 안 비키길래 슬쩍 밀어버렸는데 저렇게 돼 버렸는데.. 객점
문 부서진거는 정말 미안해요. “
채삼보는 강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통해 흑의인들을 무찌른 사
람이 강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어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미안하다고요. 문 값은 내가 물어줄 게요. “
강운은 어벙벙한 모습으로 서 있는 채삼보가 자신이 문을 부셔서 화
가 난줄 알고는 계속 사과를 했다. 아마도 강운 생애에 이토록 사과
를 많이 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일 것이었다.
“아! 아닙니다. 공자님! 사실 저들은 저희 객점에 들어와서 행패를 부
리다가 저희 객점의 투숙객들을 잡아가려는 못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못된 사람들을 공자님께서 막아주셨으니 제가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겠지요. 공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
뒤 늦게 상황 파악을 한 채삼보는 강운에게 연신 감사하다는 말과 함
께 점소이들을 불러 부서진 기물들을 정리하고 밖에 포박된 상태로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을 부축해서 각자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
“아.. 그렇게 된 거였구나. 난 그냥 처음부터 기분 나쁜 말투로 비키라
고 하길래 그냥 살짝 밀고 들어가려던 거였는데.. “
채삼보에게 상황 설명을 들은 강운은 머리를 긁으며 백호를 쳐다봤다.
[운아.. 근데 저 인간들이랑 아까 그 계집이랑 뭔가 상관이 있는 것
같다. 풍기는 기운들이 비슷한 게.. ]
“흠.. 그런가? 그럼 멀리 갔다 버리고 와야겠네? “
“예? 공자님 무슨 말씀이신지? “
백호와 대화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삼보가 질문을 하자 강
운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저기 쓰러져 있는 아저씨들은 아무래도 패거리가 있을 것
같으니까 내가 멀리 갔다 버리고 올 게요. “
강운은 아직도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채삼보를
뒤로 한채 백호와 함께 쓰러져 있는 흑의인들을 질질 끌며 객점 밖으
로 나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