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50, 최종회)
풍속화를 읽어보자
▪️그림속 인물·사물·상황 꼼꼼히 살피면 ‘그 때’가 눈앞에
한 점을 지나는 선분은 무수하다. 어떤 방향의 선분이냐에 따라 그 점의 의미도 달라지는 법이다. 즉 보는 시각에 따라 사물은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예컨대 갑과 을의 재산이 각각 5억이라 해도, 갑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다 까먹어서 지금 5억이 되었고, 을은 무일푼으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노력을 재산을 계속 불려 지금 5억이 되었다면, 그 5억의 의미는 판연히 다를 것이다.
즉, 외면적으로 동일하게 보이는 현상일지라도 그 현상을 어떤 컨텍스트에 놓고 읽느냐에 따라 그 현상의 의미는 사뭇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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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그림을 한 점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선분을 긋느냐에 따라, 즉 어떤 시각에서 보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으레 전문적인 회화사 연구자들이 하는 것처럼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그림의 구성과 색채, 테크닉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제까지 알려진 정통적인 감상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풍속화 감상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읽는 선분은 여럿이라고 했다. 곧,풍속화는 풍속을 그린 그림이니만큼 ‘풍속’이란 선분 위에 그림을 놓고 그 의미를 읽어내고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신윤복의 ‘입맞춤’에 나오는 사내의 정체는?
현재가 시간 속으로 흘러가 버리면 과거가 된다. 과거는 다시 복원할 수 없다. 요즘이야 사진과 영화, TV 등의 이미지 자료가 흘러넘치지만 지난 세기만 해도 우리는 20세기 전반기의 한국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하물며 조선시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무리 좋은 문헌이 있어 이렇게 저렇게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해도 결국은 한 장의 그림만 못한 법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은 결코 헛말이 아니다.
그러니 과거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조선후기 결혼식에 대해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말을 타고 처가로 가는 신랑의 행렬을 그린 김홍도의 풍속화(그림 1, 신행·新行)를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풍속화를 읽는 데는 특별히 좋은 방법이란 없다. 말을 달리며 산을 보는 것처럼 그냥 대충 훑어 지나가지 말고 그림 속 인물과 사물, 상황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컨대 신윤복의 ‘입맞춤’(그림 2)을 보자. 이 그림은 어떤 사내가 젊은 여자를 바싹 끌어당겨 입을 맞추려 하고 있다. 물론 입이 닿지 않았으니 입맞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곧 입을 맞닿으려는 장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한밤중에 여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는 사내의 정체다. 어떤 연구자는 이 사내를 양반이라 하지만 딱히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은 사내가 들고 있는 고리가 달린 막대기다. 이것은 포도청의 포교가 휴대하는 쇠도리깨다.따라서 이 사내가 포도청 포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포도청 포교가 어떤 여인을 만나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
그런데 포도청 포교는 기방을 지배하는 기부(妓夫)가 될 수 있었으니, 그림 위쪽에 서 있는 장옷을 걸친 여성이 기생이라는 것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이 다음부터의 그림 해석은 각각 달라질 수 있고, 개인의 상상력에 매인 것이지만 그 해석과 상상력이 출발하는 지점이 포교와 기방, 기부, 기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풍속화 읽기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범상히 지나치지 말고 보잘 것 없이 보이는 것부터 궁금증을 갖고 차근차근 연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삼아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둘째 아들 정학유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부분을 읽어보자.
“예를 들면 ‘사기’의 자객열전(刺客列傳)을 읽다가 ‘조도제(祖道祭)를 지낸 뒤 길을 떠났다.(旣祖就道)’는 부분을 만나면 ‘조(祖)란 어떤 것인지요?’ 하고 물어보아라.
선생이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라고 하면, 다시 ‘하필 조(祖)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고 물어보고, 선생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 집에 돌아와 사전을 꺼내 ‘조’ 자의 본뜻을 살펴보고, 그것을 토대로 삼아 다른 책에서 널리 ‘조’ 자의 풀이를 조사해서 그 근본을 캐고, 지엽적인 사실까지 모두 알아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 뒤 ‘통전’, ‘통지’, ‘통고’ 등의 책에서 조도제를 지내는 예(禮)까지 조사해 모아서 책으로 엮으면 영원히 전해질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에 한 가지 일도 모르던 네가 그때부터 조도제의 내력을 환히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큰 학자라 해도 조도제에 관한 한 가지 일만은 너와 다툴 수가 없을 것이니, 어찌 크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정약용이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사소한 것이라 여기지 말고 궁금증이 나면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가 될 때까지 조사해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흡족할 정도의 조사와 연구가 끝나면 그 분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정통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는 풍속화
그림도 마찬가지다.사소하고 시시한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같은 부류를 모아보고, 다른 것과 비교해 보고, 그 유래를 따져보고, 또 관련되는 문헌을 찾아보면 어느덧 자신 나름의 주장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또 뜻밖의 수확도 있다.
예컨대 나는 한때 조선시대에 개를 그린 그림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개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있지만 대개 개는 그림의 부차적인 제재로 등장하고 있었다. 등장하는 개가 어떤 종인지를 따져보기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김준근의 개장수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쇠사슬을 잡고 버티는 개의 그림을 발견하고는 환호작약하였다. 문헌을 통해서 나는 ‘개장수’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실제 모습을 본 것은 바로 김준근의 그림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전해지는 옛그림에 등장하는 물고기만 모아서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그것을 조사하면 한국인이 좋아했던, 혹은 즐겨 먹었던 물고기의 종류를 알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옷차림이다.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림을 모두 모아서 그들의 옷차림과 장신구, 모자, 머리 모양을 비교해 보면 당시의 복색과 유행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복식사 연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하지만 더 개척할 부분은 얼마든지 있다. 누구나 도전해 보면 된다. 이처럼 풍속화는 시작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식견 쌓아 주체적 감상자 될 수 있어
‘전문가주의’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물론 한 분야에서 오랜 수련을 쌓아 보통 사람보다 깊은 지식과 식견을 쌓은 사람이다.
하지만 전문가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또 오류가 없는 것도 아니다. 뜻밖에도 전문가는 자신의 영역에 갇힌 나머지 시야가 좁아져서 쉬운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멀쩡한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라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오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과 서적을 통해 정보가 흘러넘치는 세상이다. 그림이라 해서 어찌 꼭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만이 연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식견을 쌓아 스스로 주체적인 감상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신윤복의 풍속화에 대해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란 책을 쓴 이래 조선시대 풍속화 전반에 대해 글을 한 번 써 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 왔다.
우연하게도 서울신문과 인연이 닿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었다. 처음에는 조선시대 풍속화 전반에 대해 보다 폭넓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회의 원고 매수가 정해져 있고,그림을 반드시 2장을 넣어야 하는 탓에 구애가 적지 않았다.또 풍속화 자체가 한정이 있어 전에 했던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도 있었다. 이리저리 보완하고자 했지만 능력이 모자라 흡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재하는 동안 옛 그림을 보면서 늘 즐거웠다. 나의 즐거움이 독자 여러분들에게까지 전해졌으면 더할 수 없는 행복이겠다.
1년 동안 즐겨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