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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앰 댓의 전체 내용 그리고 모든 경전의 내용 그리고 또 초월하려는 모든 수행자의 의문이 바로 아래의 질문과 답 내용과 같은 것일 겁니다.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내가 죽고 나서도 세상은 존재합니다." 이 문제는 일견 아주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당신이 죽고 없는데 대체 누가 있어 "내가 죽어도 세상은 존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만든 세상은 당신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같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있어서 "내가 죽고 나서도 세상은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건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여전히 "내가 죽고 나서도 세상은 존재할 거야.."라는 믿음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상상에 기초한 믿음일 뿐입니다. 어느 수행자 있어 이 문제에 대해서 확고하지 않다면 아래 글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아이 앰 댓 상권 45. 오고 가는 것은 非실재이다.
문: 저는 선생님과 함께 있고 싶어서 왔습니다. 말씀을 듣는 쪽보다는 말입니다. 말로는 표현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침묵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이 전해질 수 있습니다.
M: 처음엔 말이지만 그 다음은 침묵입니다. 침묵을 위해서는 성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문: 제가 침묵 속에 살 수 있습니까?
M: 이기적이지 않은 일은 침묵으로 이끕니다. 왜냐하면 사심이 없이 일할 때는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에 관계없기 때문에 가장 부적합한 수단으로라도 일을 하려 하며 또 그럴 때는 자질이 뛰어나다든지 준비가 잘 되어 있을 필요도 없어요.
성공과 실패는 미지수로 남겨두고 오직 필요한 일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일은 무수한 요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선생의 개인적 노력은 그중 하나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신비로운 것이 사람의 마음과 가슴이 지닌 신비한 힘이니 사람의 의지와 사랑이 협력하게 되면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일어나게 돼요.
문: 일이 가치 있는 것일 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M: 구걸할 필요가 뭐 있겠어요? 그런 것은 허약함과 조심성을 보여줄 뿐입니다. 일을 꾸준히 해나가면 우주가 선생과 함께 일을 하게 돼요. 결국 바른 일을 하는데 대한 개념이 우주로부터 선생에게로 오게 되지요.
결과의 문제는 알지 못한 곳에 맡겨 두고 그냥 필요한 일을 계속해 나가세요. 선생은 긴 인과의 사슬 속에 하나에 불과합니다. 근본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오직 마음속에서 발생할 뿐이에요.
선생이 어떤 일을 위해 진심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그 일은 생기게 되어 있어요. 일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마음의 기능이기 때문이지요.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고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어요.
일이라는 것은 모두 오직 표면에 존재할 뿐이에요. 깊은 곳에서는 완벽한 평화가 있습니다. 선생이 겪는 모든 문제는 스스로가 한정 짓고 자기 자신을 제한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 대해 내가 이런저런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면 모든 갈등이 멈추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욕망에 의해 원인 지어진 것은 오직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속에서 풀리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선생은 자금까지 자신을 시간과 공간 속에 가두어 왔어요. 평생이라는 기간 속에, 그리고 하나의 육신 속에 자신을 구겨 넣음으로 해서 생사와 희비, 희망과 두려움이라는 무수한 인생의 갈등들을 낳는 것이지요. 환상을 없애지 않으면 문제들을 없앨 수가 없어요.
문: 하나의 개인이라면 당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M: 개인 같은 건 없어요. 오직 제한과 한정의 여러 형태들만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 것들을 합쳐 놓은 것을 보고 사람들이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선생은 지금 자신의 직업을 아는 것을 가지고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선생은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알지 못해요. 개인이라는 것은 마치, 주전자 속의 공간이 주전자의 형태와 크기를 지닌 것처럼 보이듯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선생이 지금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그 존재는 선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살피도록 해요.
전력을 다해서 자기가 이름 붙일 수 있고 묘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과 싸워야 해요. 선생은 없는 겁니다. 이것 혹은 저것이라는 입장에서 자신을 보면 안 돼요. 잘 살펴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스스로 만든 비참함으로부터 벗어 날 다른 길이 없어요.
고통이라는 것은 탐구에 대한 요청이에요. 모든 쓰라림은 검토를 요구하고 있어요. 탐구를 게을리 하지 마세요.
문: 활동성이야말로 현실의 핵심입니다. 일하지 않는 데에는 아무런 미덕이 없습니다. 생각뿐 아니라 뭔가 행동이 있어야 해요.
M: 세상 속에서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모든 불필요한 일을 삼가는 것은 훨씬 더 힘든 일입니다.
문: 저 같은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M: 도대체 선생은 스스로에 대해 뭘 압니까? 선생이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진실의 입장에서 일 뿐입니다. 외형상으로 보이는 것은 선생이 아니에요. 선생은 완전함으로부터 한 발도 움직인 바가 없어요.
자기 개선이라는 모든 생각은 인습적이고 말에 불과한 것이에요. 태양이 어둠을 알지 못하듯이 우리들의 본성 역시 본성 아닌 것을 알지 못해요. 다른 것을 앎으로써 그것으로 되는 것은 마음뿐이에요. 그렇지만 마음 역시 본성입니다.
다른 사람, 즉 비자아가 되고서도 자아로서 남아 있는 것이 자아이지요. 나머지 모든 것은 하나의 가정일 뿐입니다. 구름이 결코 태양에 영향을 주지 못하면서도 태양을 가리듯이 가정이라는 것이 진실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가립니다.
진실을 파괴한다는 생각은 생각 자체가 우스운 것이지요. 파괴자는 언제나 파괴되는 것보다 더 진실한 것입니다. 파괴자야말로 궁극의 진리이지요. 모든 분리, 모든 종류의 소외와 격리가 거짓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입니다. 그 사실이야말로 모든 갈등의 궁극적 해결책입니다.
문: 그토록 많은 가르침과 도움이 있는데 왜 저희는 조금도 나아지지를 않습니까?
M: 우리가 우리들 자신이 분리된 개인들이라고 생각하는 한 진리를 파악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진리라는 건 근본적으로 개인의 것이 아니거든요. 우선 우리는 차원도 없고 시간도 없는 관찰의 중심인 관조자로서의 우리들 자신을 알아야 하고, 그다음에는 마음과 물질인 동시에 그 둘을 넘어선 순수한 자각의 광대한 바다를 깨달아야 합니다.
문: 진리의 입장에서는 제가 무엇이든 간에 저는 저 자신이 많은 사람 중의 하나인 작고 분리된 개인이라고 느낍니다.
M: 선생이 한 개인이라고 느끼는 것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환상 때문이에요. 선생은 자기 자신이 어느 점에서 어느 정도의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선생의 인성은 육신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연속이라는 기억이 있기 때문에 선생의 생각과 느낌이 연속해서 존재하고 선생 자신이 지속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는 시간과 공간이 선생 속에 있는 것이지 선생이 그것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은 지각의 양식이지만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은 종이 위에 쓰인 말과 같은 것이지요. 종이는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말들은 약속 사항에 불과한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었어요?
문: 마흔여덟입니다.
M: 지금 선생이 마흔여덟이라고 말하게 하는 게 무엇입니까? "내가 여기 있소"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 뭔가요? 그건 가정에서 생겨난 말의 습관들일 뿐입니다. 마음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자신이 만든 것들이 실재한다고 여기는 거죠.
모든 것이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해요. 정말이지 모든 것이 내 속에 그리고 나에 의해 존재합니다.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다른"이라는 생각 자체가 재난이고 재앙입니다.
문: 인간이라는 상을 만들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을 한정 짓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M: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원인이라는 것도 없어요. 분리된 개인이라는 것은 본래 없어요. 경험적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것이 명백해요. 모든 것의 현재 모습은 전 우주의 현재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문: 하지만 인상이라는 것은 원인을 지니지 않을 수 없습니다.
M: 인상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나요? 기억에 의해 생겨나잖아요. 현재를 미래와 동일시하고 그것을 미래 속으로 투사함으로써 생겨나는 겁니다. 선생 자신을 과거 미래도 없는 순간적인 존재로 생각하도록 하세요. 그리하면 선생의 인상이 해체됩니다.
문: "내가 있음"은 남지 않습니까?
M: "남는다."라는 말은 적용되지 않아요. "내가 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입니다. 존재하기 위해서 기억할 필요는 없어요. 사실상 우리가 뭔가를 체험하려면 그 이전에 먼저 존재감이 있어야만 해요.
지금 선생의 존재는 체험함과 뒤섞여있어요. 선생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온갖 체험의 작용으로부터 존재를 해명해내는 것입니다. 일단 순수한 존재를 알면 경험 속에서도 그것을 분간할 수 있게 되어 더이상 이름과 형태에 의해 오도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한정 짓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성질의 핵심인 셈이지요.
문: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제가 우주적으로 될 수가 있습니까?
M: 선생은 이미 우주적입니다. 보편적이라구요. 이미 그런데 또 그렇게 될 필요는 없고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아요. 단지 스스로가 어떤 특정한 것이라고 상상하길 멈추도록 하세요. 왔다가 가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즉 비실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타난 것은 진리에 의존해서지요. 선생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세계가 선생을 알까요? 자신이 영원한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세요. 그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문: 선생님,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가 매우 아름답게 들립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생활 속에 끌어들일 수 있습니까?
M: 집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데 지금 집으로 가는 길을 묻고 있는 셈입니다. 틀린 생각을 모두 없애야 해요. 그것이 필요한 전부예요. 바른 생각을 모은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상상을 멈추세요.
문: 그건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에 관한 문제입니다.
M: 이해를 하는 게 아니라 오해를 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해방을 바란다면 마음에 의지해선 불가능해요. 선생을 구속한 것이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전적으로 그걸 넘어서세요.
시작이 없는 것은 원인도 없어요. 선생이 자신이 뭔지를 알았다가 그다음에 잊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일단 알면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무지에서 시작이 없고 끝이 있을 뿐입니다. 무지한 존재가 누구인지 탐구해 보세요.
그러면 그 무지란 놈이 꿈처럼 없어져 버릴 테니 말입니다. 세계는 온갖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선생이 조화와 평화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화와 평화는 세계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세계는 혼돈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질서를 발견하려면 내면에서 찾지 않으면 안 돼요. 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은 오직 선생이 태어난 때뿐입니다. 몸이 없으면 세계도 없어요. 그러니 우선 자신이 진정 몸인지를 탐구해 보세요. 그리하면 세계에 대한 이해는 자연히 뒤따라 갑니다.
문: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설득력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세계 속의 것이며 세계의 일부라고 여기고 있는 개인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M: 수많은 사람이 빵을 먹지만 밀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리고 오직 아는 사람만이 그 빵의 품질을 더 낫게 할 수 있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자아를 아는 자. 즉 세계 너머를 본 사람만이 세계를 개선할 수 있어요.
개인들에 대한 그들의 가치는 무한히 크며 오직 그들만이 개인들의 구원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은 세계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만약 선생이 진정으로 세계를 돕고 싶으면 선생이 밖으로 빠져나와야만 합니다.
문: 그러나 사람이 세계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까?
M: 누가 먼저 태어났나요? 선생입니까? 선생이 세계에 대해 우선권을 주는 한 거기에 묶여 있게 됩니다. 일단 모든 의문을 넘어서서 세계가 선생 속에 있는 것이지, 선생이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 점의 의문도 없이 알고 나면 세계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물론 선생의 육신은 여전히 세계 속에 있지만, 선생은 더 이상 거기에 현혹되질 않아요. 모든 경전에서 말하듯 세계가 있기 전에 창조자가 있었던 겁니다. 도대체 누가 창조자를 알겠어요? 오직 창조자 이전에 존재했던 사람, 즉 선생의 진정한 모습, 모든 세계들과 그 세계들의 창조자들의 근원인 그 존재만이 알 수 있는 겁니다.
문: 선생님 말씀은 세계가 선생님 자신의 투사에 의한 것이라는 가정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세계가 자신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세계, 즉 감각과 마음을 통해 주어진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들 각각 모두가 자신이 투사한 하나씩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개인적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십니다.
이런 개인적 세계들은 서로 닿는 법이 거의 없고 "내가 있음"이라는 중심에서 솟고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적 세계들의 뒷면에는 반드시 개인적인 세계들을 그림자로 삼는 공통의 객관적 세계라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모두에게 공통된 그러한 객관적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십니까?
M: 진리라는 것은 주관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마음도 아니고 물질도 아닌 것이며 시간도 공간도 아닙니다. 그러한 부분은 분리된 의식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라는 것은 모든 것이며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며, 전체이며 동시에 부분이며 꽉 차 있는가 하면 텅 비어 있고, 몹시 일관성이 있는가 하면 절대적으로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선생은 그에 대해 말을 할 수 없고 오직 그 속에서 자신을 잃을 수 있을 뿐입니다. 선생이 그 어떤 것에도 실재성을 주지 않게 될 때 비로소 부정될 수 없는 나머지에 이르게 됩니다. 직관지에 대한 모든 말은 일종의 무지의 표현입니다. 모르다가 알게 된다고 상상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진리는 그런 식의 왜곡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생각하는 것조차도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나의 존재를 다른 존재에 빚지고 있습니까? 내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있어요!
문: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지, 세계가 아이 속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는 오래된 것이고 아이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까?
M: 그 아이는 선생의 세계 속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자, 선생이 선생의 세계 속으로 태어난 것입니까, 아니면 선생의 세계가 선생에게 나타난 것입니까? 태어난다는 것은 선생 자신을 중심으로 삼고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선생이 언제 선생 자신을 창조했나요?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이 선생을 창조했나요? 모든 사람이 스스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고 그 무지 속에 갇혀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살고 있는 그 감옥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문: 깨어있는 상태가 자는 동안에 씨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아이가 태어나면서 창조한다는 세계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합니다. 그 씨는 누구에게 담겨있습니까?
M: 생사를 지켜보고 있지만 나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에게 담겨있어요. 오직 그만이 창조의 결과물이며 동시에 창조의 씨앗인 것입니다. 마음으로써 마음 너머의 것을 확인하도록 요구하지 마세요. 직접적 체험이야말로 유일하게 타당한 확인이니까 말입니다.
간단하게 글 하나 덧붙이자면 답을 하는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는 질문자를 의식으로 보고.. 의식으로써 답을 하고 있고, 질문자는 자기 자신을 육신과 마음을 자기자신으로 아는 동일시된 상태에서 질문을 하고 답을 듣고 있습니다. 이 차이를 명확하게 알기 전에는 '아이 앰 댓'의 내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글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신 자신을 형체 없는 깨달은 사람이라고 치고(당신이 깨달음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깨달음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도 계속해서 글을 읽어나간다면 개념은 조금씩 수정될 것이고 결국에는 정확한 개념을 갖게 될 겁니다.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갖게 되었을 때 책의 내용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오면 세상 모든 경전의 내용을 궁리하지 않고도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런 것을 일러서 해오解悟했다고 하며 이 상태에 이르면 남는 것은 수행을 해서 진짜 깨달은 사람이 되는 일만 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