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세 이탕(李宕) - 국당공후 문정공파
오제공(悟齊公)은 월성군(月城君) 이천(李薦; 국당菊堂. ? -1349)의 8대손이며,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 *이달존(李達尊. 吏判公)의 아들이다.
중종 2년(1507) ~선조 17년(1584)까지 동몽교관(童蒙敎官), 강릉 참봉(江陵參奉-정9품), 직장(直長), 평시 서령, 사직서령(司直誓令-종5품)등을 거치고 고향에 낙향하였다.
공(公)이 낙향하여 자리한 곳은 현 막곡 마을 뒤편인 사당골이다.
공에게 아들이 8명이 있으니 모두 현달하였으나 특히 3남 정형이 돋보인다.
장자 퇴재공(退齋公) 정함(廷香+含), 차남 사류재공(四留齋公) 정암(廷香+奄), 3남 지퇴당공 (知退堂公) 정형(廷馨), 4남 선무랑공(宣務郞公) 정담(廷香+覃), 5남 세마공(洗馬公) 정분(廷香+分), 6남 좌랑공(佐郞公) 정온(廷香+溫-수변없음), 7남 석천공(石泉公) 정혐(廷香+慊-수변없음), 8남이 계공랑공(啓功郞功) 정봉(廷香+奉)이다.
공은 사후에 장자 차자 3자, 등 세 아들들의 영광에 힘입어 의정부 영의정 겸 오산 부원군( 議政府領議政慊오산府院君)으로 추증(追贈)되었다.
평택시(송탄) 방혜 마을에 오제공(悟齊公) 휘 탕(宕) 선생의 사당이 서 있고 그의 후손들 중 장자인 정함(廷함)의 후손들이 맥을 이어 받들며 근 400여 년을 살고 있다.
장남 정함(퇴재공)이 관직에 있을시 사당골의 오제공 사당을 장안리로 옮겨 모시게 되었다.
이로써 방혜동의 경주 이씨의 1차적 이동이 있었던 것이다.
퇴재공 정함이 벼슬을 사하고 낙향하여 보니 마을의 지세가 다리미 형국으로 양반이 살기에 안 좋은 곳이라 하며 전 가솔들을 이끌고 현재의 방혜동으로 이주하니 이것이 두 번째 이동이다.
사당 또한 함께 옮겨 모시게 되었다.
현재의 사당은 1960년대에 재 증축한 것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은 정함 퇴재공(退齋公)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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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존(李達尊) - 익재공의 2남 달존(達尊)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
● 29세 이태좌(李台佐) - 상서공후 백사공파
1660(현종 1)~1739(영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국언(國彦), 호는 아곡(鵝谷).
영의정 항복(恒福)의 현손이며 참판 세필(世弼)의 아들이고 영의정 광좌(光佐)의 재종형이며 영의정 종성(宗城)의 아버지이다.
1684년(숙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9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다음 검열·사서·지평을 거쳤고
희빈장씨의 사사(賜死)를 반대하다가 파직된 최석정(崔錫鼎)·이명세(李明世)를 구하려다가 도리어 삭탈관직을 당하고 선산에 유배되었다.
1705년에 풀려나 정언이 되고 사서·부수찬을 거쳐 1706년 2월 경상우도의 암행어사가 되어 민정을 살폈고 이어서 부교리·이조정랑·부수찬·집의·응교를 거쳐 1708년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때에 영서(嶺西) 3읍(춘천·횡성·홍천)과 영동(嶺東) 9읍의 양전개변을 실시하여, 원전대동(元田大同) 2두(斗)를 감하여 1결(結) 1년 소납(所納)을 14두로 정하고 속전대동(續田大同)·삼수량(三手粮)을 전감(全減)하도록 주청하였는데 그의 개혁안은 이듬해 7월에야 시행되었다.
그 뒤 이조참의·대사성·대사간·승지·강화유수를 거쳐 1716년 공조판서에 이르렀을 때 윤선거(尹宣擧) 문제를 논하다가 노론(老論) 일색인 대간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곧 경기도관찰사에 기용되었다.
1721년(경종 1) 다시 강화유수로 나갔다가 형조판서·예조판서·호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722년 비국당상(備局堂上. 비변사(備邊司)의 당상관)에 보임되니 북방의 국경강화에 대한 조태억(趙泰億)의 내수외양(內修外攘)을 공박하고, 자강지도(自强之道)로서 오로지 왕의 일심노력·억사절재(抑奢節財)·근정수덕(勤政修德)· 인재양성·민심단결 뿐이라고 강조하였고 조세(租稅)·한재(旱災)·조창(漕倉. 조운창(漕運倉)을 이름)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1725년 임인옥사로 삭직당했으나 1727년 정미환국으로 다시 호조판서·지경연사(知經筵事)·병조판서·이조판서를 거쳐 1728년 우의정에 이르고 이듬해에 좌의정·판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1736년에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