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맑스는 "종교는 아편" 이라고 했다. 그의 시선으로 보면 난 왜 45년 이상 아편에 취해 있을까?
그런데 칼이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와 같은 신 중심 종교로.. 인간 중심인 불교를 지칭하는 게 아니다. |
이런 얘기가 있다.
12연기법은 부처님이 되신 법이요,
4성제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친 법이다.
불교란 부처님 가르침인 종교로, 부처가 되려는 종교다.
그런데 12연기법은 부처님이 된 법이라 하니.. 우리는 12연기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처님되는 길은 쉽지 않으니.. 부처님이 되신 석가세존은 처음 가르침을 포기하려했다.
그때 범천이 내려와 전하기를 간청하니.. 마음을 돌렸고.. 12연기법을 그 당시 수행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순화한 게 4성제인 것이다.
해서 처음 세상에 전한 다섯 사문을 향한 초전법문에는 12연기법이 아닌 4성제와 8정도가 담겨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 열심히 수행한 제자들이 나오면서 12연기법도 설하셨기에.. 12연기법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4성제는 12연기법을 바탕으로 한 법이니 12연기법을 담고 있다.
곧 고제는 12연기법 유전문의 역관, 집제는 순관, 멸제는 환멸문의 역관, 도제는 환멸문의 순관이 기초가 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4성제는 4성제대로, 12연기법은 12연기법 대로 전해 내려오니..
<법화경>을 보면 당시 상좌부 불교를 소3승이라 하여 성문승, 연각승(벽지불), 작은 보살승이 나오는데.. 성문승은 4성제를 주로 공부하는 승려, 연각승은 12연기법을 공부하는 승려로 구분하였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배웠기에 4성제와 12연기법은 각기 다른 법으로 알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12연기법과 4성제가 같은 법이라고 하는 것은..
불법은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가르침으로 12연기법이나 4성제를 통해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알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4성제 수행인 8정도를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먼저 8정도 시작인 정견이란 바르게 편견 없이 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바르게 편견 없이 볼 수 있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느냐 말이다.
아니, 그 정도로 알아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
부처란 무아를 이해하고, 몸으로 깨친게 된다.
고로 8정도의 바른 정견이란 나와 대상이 무상하며 무아임을 이해하고 그렇게 보는 것을 말한다.
다시 생각해 보자.
무상하고 무아임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