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1] 어느 박자기사님의 회상: 마지막 잔치에 울려 퍼진 박달재
1998년 4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웹 서비스 출장연주 개발자로 하모니밴드를 막 시작하려던 때, 제 생애 잊지 못할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성의 어느 지인이 한 달 전 예약한 회갑연을 일주일 앞두고 돌연 취소하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집안 사정이라기에 조심스레 사연을 물었더니, 아버님이 암 투병 중이신데 병원에서도 이제 포기했다는 비보였습니다.
가족회의 결과는 냉담했습니다. "죽을 사람 집에 두고 어떻게 잔치를 하느냐", "동네 사람들 욕먹을 일이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합니다. 운명을 앞둔 부모를 두고 소란스러운 행사를 벌이지 말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이었죠.
수화기 너머로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동안, 저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제 부모님을 떠올렸습니다. 생전에 즐겁게 웃으시던 사진 한 장, 영상 하나 남기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습니다.
"잔치라는 게 참 어렵겠네요. 구설수도 걱정되시겠고요. 그런데, 아버님 생전에 가족들과 어울리시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기록해두신 게 있나요?"
"없어요... 그럴 경황이..."
"그럼 가족회의를 다시 한번만 해보세요. 이건 잔치가 아니라 '가족 고별 행사'입니다. 나중에 자손들이 아버님을 그리워할 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도록, 생전의 마지막 모습을 정성껏 기록해 두시라는 뜻입니다."
밴드는 취소된 것으로 알겠노라며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행사를 하루 앞두고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동네 어른들을 이해시키고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상황을 잘 아는 제가 꼭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부탁이었습니다.
5월 1일, 들꽃이 흐드러진 논밭 길을 따라 도착한 안성의 작은 연못가 '빛고은가든'. 동네 어르신 마흔여덟 분을 모시고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헌수가 시작되자마자 잔치마당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큰아들 내외가 절을 올리고는 머리를 박은 채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어나세요, 그만하고 일어나세요"라고 몇 번을 권하고서야 겨우 몸을 일으킨 큰아들에게 마이크가 쥐어졌습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부르는 '울고 넘는 박달재'. 슬픔을 가득 담은 연주 위로 동네 분들의 박수가 더해졌습니다.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절을 올리며 눈물 범벅이 된 채 노래를 불렀습니다.
백미는 아버님의 순서였습니다. 내빈께 인사하기 위해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신 아버님은, 이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입술만 달싹이며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그러더니 당신도 노래 한 곡을 하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셨지요. 그 모습에 자식들이 우르르 달려가 아버님을 감싸 안고 통곡했습니다.
부모의 아픔에 눈물 흘리는 자녀가 있다면, 그들은 분명 효자입니다. 그때 분위기를 반전시킨 건 투박한 동네 어른들이었습니다.
"자! 자! 이제 그만 울고 놀자! 좋은 날 불러놓고 왜 울어! 박자 기사님, 디스코 합시다!"
'박자 기사님'. 생전 처음 듣는 밴드 호칭이었지만, 그날만큼은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들렸습니다. 동네 분들은 가족들의 슬픔을 달래주려 자리를 뜨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대신 신나게 놀아주셨습니다. 그렇게 짧고도 긴 고별 행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한 달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님은 행사 2주 뒤에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고, 삼우제 때 온 가족이 모여 그날의 비디오를 보며 다시 한 번 많이 울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행사를 권유해준 제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오셨지요.
채실장입니다.
오늘 우리 카페를 둘러보다 보니, 참 반갑게도 반년 만에 소중한 새 회원 한 분이 늘었군요..
반년 만에 새 식구를 맞이하며 꺼내 본 어느 '박자기사'의 기억
반년 만에 새 식구를 맞이하며 꺼내 본 어느 '박자기사'의 기억 반갑습니다.
지금은 그분의 이름도 얼굴도 흐릿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코끝이 찡해옵니다.
가능하다면 그날의 비디오 테이프를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채실짱] 네이버 카페로 초대합니다.
https://naver.me/F05pTiyz
From 채실짱
삶의 마지막 무대를 함께했던 그날의 기억은,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일깨워주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Tipster— 개인 사유나 인용을 바탕으로 AI와 협업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첫댓글 다시 잃어도 코끝이 찡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