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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르치는 은자들 - 피터 프랜스 Hermits
은둔은 도피인가 초월인가 아니면 삶에의 또 다른 열정인가.
유교와 도교의 방식은 다르나 목표는 하나
- 인간을 완성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
자신감과 마음의 평정을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받아들임
도덕경에 담긴 가르침의 정수(精髓)
-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내세우기보다는 물러서고, 뭔가 추구하기 보다는 은둔하며,
행동하기 보다는 무위(無爲)함으로써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체득한 영악함을 털어내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기를 그만두고,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가장 높은 덕은 물과 같다.
물은 겸손의 상징이다. 그것은 언제나 낮은 곳을 찾는다.
그것은 ‘인간들이 혐오하는 곳에 머물지만’
살아 있는 모든 생물체에 유익하고 꼭 필요하다.
‘그것은 모든 생물체에 이롭되 그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더구나 물은 무위의 원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부드럽고 양보를 하되 바위까지도 깎아 낼 수 있다.
‘이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사랑스런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굳고 단단한 것들을 공격하는 데 물보다 더 훌륭한 것도 없다.’
은둔은 모든 가면과 위선을 벗기는 일이다.
은둔은 절대로 허위를 참아주지 않는다.
명백한 확언이나 침묵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숲의 고요에 의해 조롱받고 심판 받는다.
모든 죄악은 바로 나의 거짓된 자아.
말하자면 나 자신의 이기주의적인 욕망에서만 존재하는
거짓된 자아가 삶의 근본적인 본체라고 가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나는 이 거짓된 자아를 장식하고
그것의 무가치함을 대단한 무엇인가로 포장하기 위해
쾌락과 경험, 권력, 명예, 지식, 사랑을 축적하느라
나의 삶을 소진해 버린다.
심리학은 인간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다른 사람과의 친밀한 교제가 필요한 사교적 동물로 본다.
범죄자들은 모두 주위 사람들에게 대단한 애착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으로 이해된다.
행동과학자의 말: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하도록 유전적으로 입력되어 있다.
은자들은 사람들 틈에 끼여 사는 우리들을 위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의 순위를 재조정해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독한 삶에서 얻은 과실까지 명백히 보여 줄 수 있다.
중국의 도덕경, 그리스의 호메로스적 문화 →
소크라테스 견유학파, 초기기독교도, Desert Fathers 황야의 교부들,
아토스산의 은자, 러시아 옵티나의 스키티(skete),
헨리 데이빗 소로우-빛은 동양에서 Ex Oriente Lux,
인도 힌두철학 Ramakrishna에 의해 부활-모든 사상은 똑 같다,
샤를 드 푸코 Charles de Foucauld - 사하라 오지의 은자 투아레그족,
Thomas Merton -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도사
1. 개인의 출현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인간은 정치적 동물
(공동체 이루어 사는 것이 인간의 본성-공동선)
신화: 프로메테우스(불과 기술-공동체 이뤄 사는 법)와 에피메테우스 형제
-제우스 헤르메스 모든 인간에게 수치감과 정의감 준다-공동체
그리스 사회: shame culture(대중의 존경)○, guilt culture(양심의 가책)×
최고선=공적인 명예 timi
초기 그리스 종교-공동체적 행위 →
개인적 종교 움직임:오르페우스 제식(절제와 순화, 신성 지킴)-금욕적 형제애
디오니소스 숭배사상 - 디오니소스 티탄족 헤라명령 찢어서 가마솥에 삶아 먹음 제우스의번개 재→인간족속 창조→먹은자와 먹힌자 - soma(육체), sema(신성)
피타고라스가 오르페우스교로 개종
핀다로스(시인)-아르고스의 아리스토데모스 인용:
돈이 인간을 만들어. 사람이 재산을 잃으면 친구를 잃는 법이지.
<소크라테스>:
들판과 나무는 나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시장-내가 원하지 않는 물건들이 이렇게 많다니! - 금욕생활 강화
소유와 여론에 무관심 + 치열한 사교성 →
사회적 승인× 개인의 양심○ 대중의 박수갈채× 자기만족○
현명한 사람이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확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축소하는 존재이다.
아무 것도 원하는 게 없다는 것은 신을 닮은 것이고,
가능한 한 적게 원한다는 것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오.
또한 신의 본성은 완벽이니,
신의 본성에 가장 가까이 서는 것은 완벽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이다.
<견유학파>
안티스테네스에게 소크라테스가 한 말:
망토에 난 구멍으로 자네의 허영심이 들여다보이는 군.
헤라클레스-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금욕주의(호메로스) →
견유학파-안일을 피해 피할 수 있는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젊은 헤라클레스 황무지의 두 여인:
아레테(고생의 대가 없이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선한 것을 절대 내리지 않는다.) 카키아(악)
12공업-미덕에 이르는 자신의 길 완성하기 위해-
안일한 삶의 유혹 속에서도 고난의 길을 택한 견유학파 철학의 기둥
페르시아 왕 퀴로스-
문명화된 안일함보다 고난의 삶을 선호하는 것을 국가적 교육의 원칙
문화 nomos 보다는 자연 physis 선호 - 견유학파:은자를 위한 철학의 길 마련
문명-경제적 정치적 안정 확보-도덕적 고결함 잃는 대가
핀다로스:‘관습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왕’
견유학파-개인주의자.
자연은 꾸준하고 안정적(헤로도투스 인용).
본성은 부자연스러움 걷어내고 남는 개인의 핵심.
더 이상 약분할 수 없는 최소치로 살아가는 삶이 자연에 따르는 것
디오게네스
외투(두겹 잠) 작은 가방(음식) 지팡이(허약 병 지탱하던 것)-견유학파의 상징
미쳐버린 소크라테스(Platon)
책을 빌리려는 제자에게 ‘자네는 정말 어리석은 친구로군.
만약 자네가 무화과를 원한다면 그림으로 그려진 무화과로는 만족하지 못할 걸.
그런데 자네는 미덕의 실천을 무시한 채 미덕에 대해 쓴 사람들만 공부하려드는군.’
사람들이 거지에게는 돈을 주면서 철학자에게는 않은 이유-
언젠가 자신이 거지로 전락할 수는 있지만 철학자는 결코 될 수 없기 때문
인도 만다니스 : 알렉산더=무장한 철학자(지혜사랑)
그리스인은 천성보다 관습을 더 높이 사는 점이 잘못
크라테스 - 디오게네스의 제자
강압에 의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기꺼운 마음으로 하는 것보다 나쁜데,
바로 그만큼 법이 철학보다 못한 것이다.
페레그리누스-다시 태어난 소크라테스:견유학파적인 기독교도
막시무스, 성 그레고리우스
2. 황야의 교부들
성 안토니(이집트) 금욕주의자 크노시스주의자(태초에 마음이 있었다)
↔ 기독교도 은자 abbas 師父 고독한 생활을 통해 영적 성숙을 얻는다.
혼자 침묵으로 남는 것은 번잡한 삶에 밀려난 신비한 힘들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다.
아바스 모세: 돌아가서 그대의 독방 안에 머물러라.
그 독방이 그대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리니.
아바스 루키우스: 만약 사람들 틈에 끼어서 처신을 잘 할 줄 모른다면
당신은 은둔에서도 자신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오.
마음을 군중 속에 둔 채 몸만 혼자 사는 것보다는 군중 속에 끼어 살면서
정신적으로 은둔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더 훌륭하다.
자신의 배와 혀를 통제할 수 있고 이방인의 삶을 살수 있다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아바스 피스토스: 침묵을 지키며 당신이 참여할 자격이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되새기는 거요. 그게 이방인으로 사는 방법이오.
아바스 시소에스: 입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내는 마당에
어떻게 감히 가슴을 통제할 수 있겠소?
아바스 디아도쿠스: 공중목욕탕의 문을 열어 놓으면 목욕탕 본래의 미덕 잃는다.
침묵은 현명한 사고의 어머니이다.
아바스 팜보: 만약 그가 나의 침묵으로 신앙심이 고취되지 않는다면
내가 말을 한다해도 신앙심이 높아지지 않을 걸세.
아바스 이사이아스: 침묵은 보물을 쌓아올리는 반면
말은 언제나 재물을 흩어지게 하기 때문
블라디미르 솔로비예프: 러시아 신비주의자
만약 육신의 억압을 선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육체적 고행이면 무엇이든 미덕으로 받아들이는,
아주 기묘한 종류의 그릇된 고행을 실천하게 된다.
자학이라는 그릇된 고행은 비록 처음 시작할 때는 나쁜 목적을 가지지 않았다하더라도
조금 나아가다 보면 쉽게 악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것은 서서히 진행되는 자살행위 아니면 기묘한 관능으로 빠진다.
아바스 마카리우스: 금욕적인 수행에 대해 거만한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수도원에가 고행을 통해 몸소 가르쳐줌
구원받기를 원하거든 죽은 사람이 되게나.
세상 사람들의 불공평함과 칭송에 끄떡 않는 사람
아바스 포멘: 연기가 꿀벌을 쫓아버리면
꿀벌의 노동이 이뤄낸 달콤한 것들이 망가지듯,
육체적 안녕은 인간의 영혼에서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쫓아버려
그 두려움에서 나올 훌륭한 행동들을 잃게 한다.
빵을 실컷 먹는다면 그대는 영혼을 겸허하게 만들 수 없소.
실컷 먹는 것을 자제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은 의존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풍족한 식사는 자칫 거만이라는 환상을 낳을 수 있다.
만약 집착 없는 소유가 가능하다면
소유는 결코 영적 성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닐 것이다.
소유욕-세상에 강하게 연결된 끈-치유: 가난---순수한 가난
절식과 다른 금욕적 실천들은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자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순종은 언제나 겸양을 낳는다.
3. 숲속의 은자들
육체를 돌보는 일에는 인생에서 꽃을 가장 활짝 피우는 시절을 바치고,
영혼을 영원히 구원하는 일에는 노쇠한 육체의 마지막 몇 년 만을 바친다.
육체는, 부유한 사람의 잔치에 나선 양,
넘치는 컵과 화려한 접시로 매일매일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도 영혼은 신의 집 문턱으로부터
신성한 말씀의 부스러기라도 줍는 일도 거의 없다.<암브로즈>
.러시아 정교회의 starets(교회의 영적 지도자) 아토스산 러시아의 산림
신성함이란 자석과 같다. 성 안토니
종교란 배우는 것이 아니고 감화되는 것이므로
가르침을 통해서 보다는 직접적이고 인간적인 접촉에 의해서다.
은둔은 속세를 영원히 등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예) 라도네츠의 성 세르기우스(러시아 최고의 성자)
.스키티 skete (공주수도단지 - 은자들의 느슨한 공동체)
.옵티나 수도원 - 위대한 3명의 스타레츠(레오니드, 마카리우스, 암브로즈)
레오니드
만약 자네의 가슴 속이 使徒들처럼 소박하다면,
자네는 자신의 인간적 결점을 숨기지 않을 것이고
경건한 척 꾸미지 않을 테고 위선을 모른 채 삶을 살 것이다.
이런 삶의 길은 간단하고 쉽게 보일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많은 사람에 의해 이해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가장 짧은 길이며, 가장 쉬운 길이다.
만약 어린아이처럼 될 수 없다면
자네는 하느님의 왕국으로 들어 갈 수 없네.
마카리우스
사람은 숲에서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양식을 발견한다.
이 숲은 ‘황야’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
마태복음 6장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오.’
영적 성숙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자 영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는 것은
겸양이다.
‘지금 당신의 등을 부러져라 누르고 있는 그 십자가의 나무는
당신 가슴의 땅에서 자란 것이다.’
‘추락을 발견하는 곳이면 어디든 그 보다 앞서
자만심이 있었다고 자신해도 좋다.’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겸양을 얻었다고 자랑해서는 안되오.
겸양이 부족한 곳에는 반드시 자만심이 버티고 있소.
빛이 부족한 곳을 어둠이 지배하듯.
「가족에 둘러싸여 세상을 살다 보면
당신은 아마 소유물을 모두 남에게 주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중용의 길을 찾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지키도록 애써야 하오.
절대로 이 세상을 등지지 말고,
이 세상이 당신의 마음을 빼앗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당신은 아이들을 위해서 재산을 조심스럽게 간직해야 하오.
어떠한 종류든 잉여분은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화재로 집을 잃어버린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당신의 충동은 옳은 것이오.
그러나 그런 충동도 이성으로 부드럽게 가꿀 때만 선한 것으로 남을 것이오.
그리고 당신의 도움은 합리적인 한도 안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작은 돈이라도 깊은 동정심을 갖고 주어야 하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비록 가진 것을 다 준다 해도
당신은 그들이 처한 극도의 비참함을 모두 해소시켜줄 수는 없을 것이오.
당신에게도 돌봐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들이 안락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신이나 당신 가족 모두 사치를 멀리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낭비에 대한 유혹을 경계해야 하오.
게다가 순간순간의 충동에 따라 행동한다면
당신은 훗날 자식들이 필요한 것을 가지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하게 될 테고 뒤늦게 그런 행동을 후회하게 될 거요.」
「가르치는 직을 찾은 건 참으로 훌륭한 일이오.
그것은 신이 당신에게 허락한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면서
스스로도 재능을 배가하는 일입니다.
어떤 가르침에서든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신에게 의지하세요(절제와 겸양).
당신이 사회에 대해 어딘가 어설프다는 점과
가르치는 아이들로부터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신에게 삶을 사는 요령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자칫 이론에만 몰두하게 될지도 모르는 성향에 대한 균형추로서 유익할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고 이제 막 위대한 비상을 위해 날개를 펴려 하고 있습니다.
삶 그 자체가 어떤 것이 그르고 어떤 것이 옳은 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르쳐주지요.
당신이 저지르는 실수들은 당신을 겸손하게 만들고
안목과 판별력을 넓히는 것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칭찬을 겁낼 이유는 전혀 없소.
단지 그 칭찬으로 인해 만족감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면 되는 거지.
우리의 다짐은 그 외의 다른 일은 못하더라도 그것만은 꼭 하기를 바라는
어떤 엄격한 주인에게 지고 있는 빚이 아니라오.
하느님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는 우리가 자유롭기를 바라고 있어요.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결심을 실행에 옮길 수 없을 때는
당신 자신을 미천한 채무자로 여기며 회개를 하는 게 좋아요.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이 흥분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서약을 지켰다는 자만심과 자기만족보다 훨씬 유익할 거예요.
(흡연자에게) 지금 그대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유행에 묶여 있는 노예이다.
(불면증 환자에게) 유일한 치료법은 괴로운 생각들을 송두리째 뽑아
의식적으로 그 모든 것을 신의 손에 넣어주는 겁니다.
신이 정직한 노동의 대가로 보내는 결실에 만족하라.
암브로즈
허영심과 자만심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장치는 겸양이다.
조용한 사람이라고 모두 겸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모두가 조용하다.
생각이 우리에게 밀려오고 안 오고는 우리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오.
그렇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우리에게 달려 있소.
결혼권장 - 처녀와 총각들에겐 자기도취를 다스릴 무기가 아무 것도 없다.
돈 - 해악은 돈이 아니라
어리석은 탐욕과 인색함 혹은 사악한 쓰임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아마 부당한 나태에서도 비롯될 것입니다.
진보는 삶의 안락함에서만 이뤄졌다.
도덕적 성취는 인류전반이 아니라 신앙인 개개인에 의해 이뤄질 일이다.
톨스토이, 또스또옙스키 만남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
그것은 위대한 사상이다. 그 별은 동쪽에서부터 빛을 발할 것이다.
장식적 은자들 - 영국 귀족이 은자 고용
4. Walden 호숫가에서, Henry David Thoreau
도교와 같은 지점 향함. 예이츠‘이니스프리호섬’에 영감 줌
저서 Walden - 생태문학의 고전, 19세기의 경전
저서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의 영향 -
간디 톨스토이 임어당(가장 중국적)에게 영향 줌
나체주의자 주장: 그는 자신의 육체를 다른 사람과 태양,
심지어 자기 자신의 시야로부터 숨기기를 강요하는 도덕률에 도전할 용기를 가졌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의 꿈을 애써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꿈은 우리가 말을 배우기도 전에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매사추세츠 콩코드 태생
Ralph Waldo Emerson (콩코드의 현자 시인 수필가)이 영향 줌
에머슨-초월론자 transcendentalist,
콜리지의 에세이 + 스베덴 보리의 신비주의 + 워즈워드의 자연시
사물들이 안장에 앉아서 그리고 인간을 타네.-물질문명 경고 산업혁명(19세기)
17세기말 로크 ‘인간오성론’ - 아기마음 백지상태 →
칸트 헤겔 선험론 - 콜리지 에세이 ‘반성을 위한 조언들’
에머슨 집에서 모임 위대한 사회적 실험의 시대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 매사추세츠 브룩팜
(Brook farm 1841-47 조지 리플리가 조직하고 이끔)
초월론자의 농업공동체 정착, 글을 쓸 수 없어 떠남
에머슨: 작가는 땅을 파지 않을 것 - 힘든 작업은 학문의 부실 가져온다.
‘어리석은 일관성은 피라미 같은 정치인과 철학자와 성직자의 존경을 받는 마음
좁은 도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일관성을 지켜서는 위대한 영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신 자신을 고집하라. 절대로 모방하지 말라’ 독립독행
‘현명한 사람이 나타나면 국가가 소멸하고,
덕성의 출현은 국가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 인상주의적, 직관적, 비전
소로우 숲으로 간 이유:
‘삶을 신중하게 살고 싶고, 오로지 삶의 가장 핵심적인 것만을 마주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내가 삶을 헛살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루에 단 몇 순간이라도 우리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스스로에게 철저히 진실해 질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위안이다.’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자신의 집을 짓는 것만큼 소박하고 자연스런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훌륭한 삶이란 자유 시간을 최대화하고 고역을 최소화 하도록 조직해야
근대-사치와 안락함-대가 지불 노예화-자유 시간 희생
‘악덕은 싹부터 자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강낭콩에 관한 한, 타고난 피타고라스학파(먹지 않을 것이란 뜻)
흙과 매일 접촉함으로써 영적으로 충만해질 뿐만 아니라
고대와 근대의 역사가 은밀히 만나는 공상의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 살아간다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일이 결코 고난이 아니라 오락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람은 꼭 이마의 땀을 통해서만 돈을 벌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만난 유일한 노상강도는 바로 국가였다.
원하지도 않은 보호를 해준답시고 세금을 물리고,
그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세금을 강탈해 간다.
국가가 선언한 자유를 내가 주장하고 나섰더니
이번에는 나를 유치장에 가두어 버렸다.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만든 제도는 혐오한다.’
‘시민불복종 자신의 양심에 복종하는 것이 시민의 명백한 의무이다.’
‘정의롭지 못한 법들이 존재한다.
법에 저항하는 것이 악인 것은 정부 자체의 결함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옳고 바른 사람이 있다면
이미 그 한 사람만으로도 다수가 된다.’
‘국가가 각 개인을 보다 높고 독립적인 힘으로 인식하고,
국가의 힘과 권위는 각 개인에게서 나온다는 원칙에 의거해
개인을 대접할 수 있게 되기 전에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계몽된 국가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에머슨의 추도사 - ‘그의 영혼은 고귀한 사회를 위한 것이었다.
지식이 있고 미덕이 있으며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그는 안식처를 발견할 것이다.’
‘노인은 스승이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은 잃는 것만큼 수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옛날보다 덜 젊을 뿐이다.’
‘내 이웃들이 옳다고 부르는 대부분의 일을 나는 그르다고 믿는다.’
‘사치와 안락함은 필요불가결한 것도 아닐뿐더러
인류의 고결함을 크게 해치는 요소이다.’
‘문명의 발달이 인간에게 이롭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돈을 더 들이지 않고도 보다 훌륭한 주거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은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그 사람의 개성의 영향을 받아 차츰 우리 자신과 하나가 되어간다.
새 옷이 필요한 행사들을 경계하도록...
왕과 여왕은 말쑥한 옷을 걸치고 있는 목마이다.’
‘고독, 이를테면 혼자 있는 것은 현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루에 몇 순간만이라도 자기 방으로 물러나
스스로에게 철저히 진솔해 질 수 있다면 그건 너무도 큰 위안이다.’
‘자연에 파묻혀 살면서 여전히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우울함이 깃들 수 없다.’
‘폭풍우가 몰아친다 해도 그것은 건강하고 순수한 사랑의 귀에는
바람의 음악일 뿐이다.’
‘오늘 나의 강낭콩에는 물을 주고 나에겐 집안에 머물게 한 부드러운 비는
나를 우울하게 하기는커녕 고맙기만 하다.’
‘생각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외롭다.’
‘은자의 특징 하나는 사교적인 사람에겐 주어지지 않은 명석함으로
사회와 멀찍이 거리를 두고서 세상을 보는 경향이다.’-피터 프랜스
‘대체로 사회는 너무나 값싸다.’
‘나는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숲에서 살 때 가장 많은 방문객을 받았다.
수적으로야 당연히 적었지만 시시한 일로 나를 찾은 사람이 적었다는 뜻이다.’
‘인간과 자연 모두와 깊은 정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은 하나의 법칙인 것 같다.’
‘지성이 결실을 맺도록 하는 것은,
말하자면 상상력을 낳도록 하는 것은 영혼과 자연의 결혼이다.’
감상의 허위 pathetic fallacy: 무생물도 감성을 가졌다는 생각 or 표현법
‘나는 선 못지않게 야성을 사랑한다.’ - 자연과 살면서 야성 누그러짐
낚시-자신에 대한 존경심↓ 후회가 듦
탐험× 인간은 자연을 결코 충분히 가질 수 없는 법
<삶의 철학>
그는 인류를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모든 이데올로기에 반대했다.
모든 개선은 개인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결코 강요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에서였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기실현을 통하여 모범을 보임으로써 타인을 고무하는 것뿐이다.
그 의도가 제 아무리 건전하다 하더라도
모든 사회는 그 구성원들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나무 막대기들이 서로를 받침대에 곧추 설 수 있는 것은
그것들 중에서 오직 하나뿐인 법이다.
‘나는 신문에서 기억할 만한 뉴스를 결코 읽지 못했다.
만약 당신이 하나의 원칙을 잘 알고 있다면
그 원칙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예와 응용에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아마 그가 다른 鼓手의 두드림을 듣기 때문 일 것이다.
그가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춰 step을 밟도록 내버려두라.
그 음악이 정확하든 아니면 너무 멀리서 밀려오든 상관 말고.’
(종교) 인간의 삶에서 본질적이고 도덕적이며 영적인 요소들은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인식
‘교회의 우두머리들은 체질적으로 마을에서 가장 비겁한 겁쟁이들이거든’
‘빛은 동양에서’
페이비언주의 Fabianism - 점진적 사회 개량으로 생산 수단 공공소유 목표 사회주의 이념
← 로마장군 Fabius 지구전술로 Hannibal 격파
1884 런던, 끈덕지게 시기가 도래할 것을 기다리고, 때가 오면 과감히 돌진한다.
유니테리언 Unitarian - 삼위일체를 부정 반대 하느님 신성만 인정 교파
5. 빛은 동양에서
‘빛은 동양에서’ - 동양에서는 은자들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런 존재였다.
라마크리슈나
배가 물에 머물러야지 물이 배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렇듯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이 세상에 살 수는 있지만
이 세상이 그의 안에 살아서는 안 된다.
힌두교도의 삶 ‘우파니샤드’ ①브라마차르야(초심자기간)②그리하스타(가장의 단계)
③바나프라스타(숲속거주자 금욕주의자)④산야사(체념의 삶 준비)-산야신
구루(힌두교종교스승)-인생의 마지막 길은 반드시 홀로 걸어야 한다:
라마크리슈나-인도의 위대한 리시(영감을 받은 현자),
칼리여신 숭배자(모순의 집합체 만물의 어머니이자 파괴자)
구도자들이 종국적인 실재(reality)에 다가가는 방법 두 가지
(분별-브라만이 아닌 것이면 모조리 거부-부처,
귀의-모든 것이 브라만이다-라마크리슈나 현상 뒤에 숨어 있는 실재 인정)
‘형님은 내가 돈 몇 푼 주고 강을 건너는 것을 보았지요?
그렇게 고행을 해서 얻은 게 고작 그것입니까?’
종교란 모두 진실하다. 수많은 종교란 같은 목표를 향하는 다양한 길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의 병폐-영성의 부족
Naga파-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는 종교적 걸인
윤리를 위한 유일하고 진정한 토대는 존재의 하나 됨과 인류 연대에 대한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유일한 길은 종교적 경험뿐이고
우리 내면의 신성은 금욕을 통해서 가장 잘 접촉할 수 있으며
안전한 영적 여행을 위해서는 영적 지도자의 동행이 필요하다.
막스 뮐러:(힌두교) 인간의 타고난 재능을 가장 발전시켰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심오하게 생각하고
그런 문제에 대한 값진 해결책을 찾은 사람들이 어느 땅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인도라고 대답할 겁니다.
유대인의 사상만을 섭취해온 우리가
내면의 삶을 보다 완벽하고 보다 너그럽게 보다 보편적으로 살기 위해서
또 우리 삶을 신성하고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느 문화를 배워야하느냐고 묻는다면 또 다시 나는 인도라고 대답할 겁니다.
힌두교의 핵심- 신의 본질은 하나의 신비이고 앞으로도 신비로 남을 것이며,
또 지혜란 이런 사실을 인식하는데서 비롯된다.
경전들은 신을 가리킬 수는 있어도 명백히 밝힐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여정에 올라야 하지만 자신의 세속성에 의해 방해 받는다.
선한 사람은 신이 내린 아름다움을 명상하는 일에 늘 몰두한다.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육체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주 조금이라도 환상을 가져야 한다.
신을 발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오직 한 길을,
그리고 오직 한 사람의 지도자를 따라야만 한다.
한 인간의 아집도 진정한 스승의 손에 맡겨진다면 세 번의 울음만으로 무너진다.
하지만 스승이 미숙한 존재라면 스승이나 제자나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황소개구리-물뱀-코브라
영적 발전을 가장 심각하게 방해하는 것은 허영과 자아에 대한 관심이다.
영적 감수성을 개발해야만 영적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 신에 대한 사랑이 영글지 못했다면 영적 가르침을 결코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신도 스스로 내려오기 전에 우리들의 가슴에 사랑과 경의, 신앙심과 동경을 보낸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지 않는 한 당신은 광명을 받지 못할 것이다.
진정 이해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침묵이다.
신의 의지에 귀의하는 것과 독립독행의 차이: 새끼원숭이와 새끼고양이
새끼원숭이는 자신의 힘으로 어미에게 붙어 있다.
꽃 주위를 기웃거리는 꿀벌처럼,
사람도 원칙이나 주의를 놓고 다투는 한 진정한 신앙의 꿀을 맛보지 못한다.
영혼도 한번 신성을 얻고 나면 어떤 무리에 끼어 살더라도
악마적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물-우유 or 버터
진정한 성자는 친구와 적의 차이를 모른다. - 성자 악한 제자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로 왜 신을 괴롭혀야 해? -
신을 사랑하는 자, 신을 이론적으로 아는 자, 호랑이
종교의 성장과 영속성을 위해서는
의식과 행사들이 꼭 필요하다. - 벼의 껍질이 필요하듯
끊임없이 신을 생각하는 누군가는 신의 본질을 안다.
신은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와 성격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나의 종교는 옳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이 옳은지 그른지 진실인지 거짓인지 나는 잘 모른다.
인간이란 신을 깨닫지 않고는 신의 진정한 본질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자-나렌트라 나트무트(비베카 난다)
-서양인(영,미)이 스승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인도인
6. 샤를 드 푸코 사하라의 불꽃
신의 부름을 따르자면,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여행을 할 것이 아니라
고독 속에서 숨겨진 삶을 살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얼마간의 여행은
내가 혼자 살고 있는 이 땅에 박혀있는 영들의 요구에 따라 나에게 필요하기도 하다.
나는 이 둘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구세주는 아무도 그보다 더 낮아질 수 없을 만큼 더없이 낮은 곳에 계신다.
예루살렘 - 바아 돌로로사(고난의 길) 트라피스트(수도원생활)
보잘 것 없지만 그런 소유물들이 나에게 준 가장 큰 기쁨이라면
그것들을 더 이상 소유하지 않게 된 기쁨일 거야.
철저한 모욕에 자신을 굴복시킴으로써
예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나타냈고
그 후 그의 삶을 따르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을 예수와 동일시하는데 도움이 되는
굴욕의 지경으로까지 자신을 낮추었다.
‘기다리게나. 나무도 그늘을 드리워 사람을 쉬게 하려면
어느 정도 자라야 하는 법이야.’
누에에서 나비로, 이런 행복한 변화가 이뤄지는 것은 바로 사막에서다.
사막은 결실을 맺기를 원하는 영혼이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곳이지.
또 그런 영혼에는 이런 침묵과 은둔이 필요한 법이야.
‘흑판에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면 먼저 그 흑판을 지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늘 흑판을 지우느라 바쁘다.’
사하라-투아레그족(투아레그 사회는 전통적으로 귀족·성직자·가신·장인 등으로
계층화되어 있는 봉건적인 사회이다.)
사회속의 은둔 little brothers and sisters of Christ - 수도원적 삶×
세상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믿음에 따라 살고자 노력
세상의 방해에 맞서 벽이라는 보호를 필요로 하는 추상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벽을 허물고 서로간의 이해를 일구어 내겠다.
은둔의 소명 - 자기문화에서 분리 필요성
7. 토머스 머튼, 모순의 바다
은둔은 모든 가면과 위선을 벗기는 일이다.
은둔은 절대로 허위를 참아 주지 않는다.
<The Seven Storey Mountain> <Elected Silence>
직관은 진흙투성이 지성이고, 신비주의는 하나의 도피처이다.
트라피스트의 삶
성 제임스-선행이 따르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이다.
겟세마네 수도‘원 -요나의 입장-카말돌리스로 가고 싶어 함(은둔)
우리는 타락하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보다 복잡하게 세상에 개입한다.
우리가 처한 위험은 훨씬 더 절망적이다.
아마 우리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을 것이다.
일과 놀이는 사람들이 하루 24시간 동안 결코 본연의 모습으로 남지 못하도록 한다.
은둔의 소명을 받은 사람은 자신은 고립되어 있으며
정신세계가 고상하다는 환상을 갖도록 부름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우라는 부름을 받는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는 점에서 모두 은자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물러난다는 것은
그들을 향한 사랑의 한 특별한 형태가 될 수 있다.
신화와 허구들을 조용히, 그리고 겸손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인간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우리 인간이 허구, 특히 정치 및 선동적인 날조에 개입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과 신에 절망했다는 사실을 무언중에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침묵이 있어야 한다. 말씀이 행해지기 전과 후의 침묵 속에서
신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말로는 절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이든 고독 없이는 성숙이 이루어질 수 없다.
나의 깊은 자아는 결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다.
은둔은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
평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사막으로 달아났다.
사막으로 들어 간 이유가 비범해 지기 위해서라면
이 세상을 그대로 짊어지고 사막으로 들어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고독을 추구하고 세상을 버리는 이유
침묵과 사방의 벽, 이 속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그것은 경계하는 상태가 아니라
완벽하게 마음을 풀어 놓고 감수성을 열어 놓은 상태가 된다.
침묵과 사방의 벽은 온몸이 살갗으로 진리를 듣고
존재의 모든 부분으로 진리를 흡수하도록 한다.
황혼녘에 촛불을 켰다.
드디어 방랑하던 기분은 사라지고 여정을 끝냈다는 홀가분함이 밀려온다.
내 생애 처음으로 진정으로 방랑과 탐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은둔의 삶은 오직 내면의 경험에 의해서 판단될 수 있을 뿐,
외적 환경에 의해서는 절대로 평가 받을 수 없다.
은자적 삶의 극적 효과를 드러내는 장식을 철저히 피해야 한다.
빗소리는 나를 거듭 일깨운다. 이 세상은 엔지니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리듬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점을.
개인의 자유란 자기도취에 빠져 홀로 살기 위해
단순히 사회적 금제와 의무를 벗어 던지는 것으로는
절대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아와 그 자아가
자유를 추구하는 능력을 부패시킨다.
인간이란 그 자신으로 남기를 지나치게 고집하면
하나의 환영을 인격화하는 위험을 안게 된다.
나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 있지요. 그래서 은자는 레지스탕스로도 불리죠.
오늘날 은자는 최소한의 물질로 사는 삶의 평범한 가치를
깨닫고 경험하기 위해 존재한다.
명상가는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은 문제에 관여할 것이다.
하지만 분석하지 않고 이들 문제의 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뿌리에 닿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은둔할 수 있는 능력-깊은 자아의 회복 그리고 뒤틀려 버린 진정성의 회복에 달려있다.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이 세상의 반응을 관찰하고,
이 세상에 대해 말하는 ‘나’는 신과 결합되어 있는 진정한 ‘나’는 아니다.
기껏해야 대부분이 죽을 때까지 발견하지 못하는
그 신비스럽고 불가해한 ‘자아’의 옷이요 가면이요 변장일 뿐이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결코 끝이 없을 투쟁을 벌이느라 서로 반목하는 불온한 도시 -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도피
진정한 단 하나의 기쁨은
우리 자신의 이기심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본질과 우리 마음속에 살며 노래하는
생명과 사랑을 통하여 하나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 모두는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본연의 모습 그대로 남을 때
신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모든 창조물은 하나의 관념적인 형태와 일치할 때가 아니라
각각 타고난 본래의 모습으로 남을 때 완전해진다.
달리는 사슴에게서는 영이 보인다.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신성하고 신비스런 그 ‘사슴다움’말이다.-세상의 실체
은자들의 전통-이집트 성 안토니, 팔라마스의 성 그레고리-
이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통찰을 얻은 뒤 그것을 사람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