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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하계 중국 청도 여행 >
청도(淸道)에서 청도(靑島) 가기
1. 일시 : 2016년 7월 19(화) ∼ 7월 21(목) - 2박 3일
2. 장소 : 중국 칭따오
3. 참가자 : 청도중고등학교 교사 일부
4. 여행 형식 : 자유 여행
① 출발 : 19일 10시 30분 KAL (청도 융화팅 호텔)
② 도착 : 21일 13시 30분 KAL (경원 홀리데이 호텔)
③ 교통수단: 중형버스(25인승)
5. 2016년 07월 19일 7시 30분 집합
대구 월드컵 경기장 (김해까지 소요 시간 1시간 10분) : 10명
박용필 : 이수근, 신교명, 김병수, 한연희.
이우탁 : 박주희, 서상희, 김영주, 이윤주.
청도 : (김해까지 소요 시간 1시간) 2명 – 7시 40분
– 박소영. 한경호. (이윤주, 한연희)
1차 집합장소 : 청도 새마을 고속휴게소 화장실 앞 : 7시 50분
< 왕복 교통비 – Daum 지도 기준 >
주유비 : 20,000원 * 3대 = 60,000원 * 왕복 = 120,000원
통행료 10,800 *2=21,600+7,900=29,500원 * 왕복 = 60,000원
주차비(주중 – 7,000원*3일) 21000원*3대 = 63,000원
계 183,000원
7. 방 배정 : 이우탁, 이수근 / 김병수, 신교명 / 한경호, 박용필.
김영주, 서상희 / 박주희, 한연희 / 박소영, 이윤주.
8. 칭다오 개관
칭다오(청도, 靑島)는 1898년 독일의 조계지가 되며 독일의 문화를 흡수, 개항한 곳으로 현재도 중국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 중 하나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의 통치를 받았으며 1922년 중국 정부에 회수되었다. 도시 곳곳에 독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데, 1903년 설립된 맥주 공장에서 독일의 뛰어난 제조기술, 노산의 맑은 물로 만들기 시작한 칭다오의 맥주는 이곳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가 되었다.
또한, 유럽식 건물과 분위기가 구 시가지에 그대로 남아있으며 100여 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모습이 관광객의 발길을 이끈다.
3면이 바다인 칭다오, 날씨는 한국과 대체로 비슷하며 사계절이 뚜렷하다. 대체로 서울보다는 조금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고 여름은 고온다습하며 겨울은 긴 편.
시차 :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한국이 1시일 때 칭다오는 12시.
전압 : 220v. 플러그 모양은 다르지만 호환이 가능하니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치안 : 치안이 좋고 위험하지 않은 곳이지만, 늦은 시간의 길거리는 조심하자.
< 9에서 11까지는 해외여행 시 꼭 필요한 정보이니 필요할 때 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9. 기내 반입 가능 물품
- 생활도구류 수저, 포크, 손톱깎이, 긴 우산, 감자 칼, 병따개, 와인따개, 족집게, 손톱가위, 바늘 등
- 액체 류, 위생용품, 욕실 용품, 의약품류, 화장품, 염색약, 퍼머 약, 치약, 콘택트렌즈용품, 소염제, 내복약 외용연고, 100ml 이하의 액체 류.
* 단 100ml 이하의 액체 류는 내용물이 100ml 이하여도 용기의 용량이 100ml 이상인 경우 반입금지 (예시 : 150ml 용기에 75ml의 액체가 들어 있으면 반입금지)는 반드시 투명한 지퍼 백 1개에 한하여 반입할 수 있다.
- 건전지 및 개인용 휴대 전자장비 휴대용 건전지, 시계, 계산기, 카메라, 캠코더, 휴대폰, 노트북, 컴퓨터, MP3, 휴대폰 배터리 등
10. 기내 반입금지 물품
- 인화성 물질 성냥, 라이터, 부탄가스 등. 휘발유, 페인트 등 인화성 액체, 70% 이상의 알코올성 음료, 무기류 등.
* 단, 소형 안전성냥 및 휴대용 라이터는 각 1개에 한해 기내 반입 가능
11. 여행준비물
1. 여행자료(서류)
여권, 항공권, 한국 돈, 현지화폐, 신용카드, 시티은행직불카드, 여행자 보험증, 수첩, 가이드북, 필기도구, 카메라, 갤럭시 탭(아이패드), 휴대폰(로밍), 충전기, 복대
★ 해외여행 시 여권이 가장 중요하니 보관에 유의하시고, 그럴 리가 없겠지만 여권 분실에 대비하여 여권의 사진 있는 면을 복사하여 여권과 다른 장소에 보관하시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저장해두시기 바라며, 여권용 사진 2매도 준비해 주십시오.
2. 가방, 의류
가방(Carrier), 배낭커버, 배낭(小) 또는 보조가방, 긴팔셔츠(남방,T), 반팔셔츠(남방,T), 긴 바지, 반바지, 잠옷, 런닝셔츠, 팬티, 양말, 방수바람막이(비옷 대용), 모자(여름), 수영복, 마스크, 신발(트레킹화, 스포츠샌들, 슬리퍼), 선글라스.
3. 위생용품
칫솔, 치약, 수건, 비누, 샴푸, 로션, 선크림, 면도기, 빗, 휴지, 물티슈, 손톱깎이, 평소 복용하는 약, 비상약품(진통제, 소화제, 감기약, 지사제(止瀉劑), 일회용 밴드, 모기 퇴치제, 소독약, 연고)
4. 식품
볶음고추장, 볶음김치, 깻잎 통조림, 햇반, 컵라면, 즉석국, 소주(페트병), 개인용 수저, 포크, 여행용 쿠커, 김, 마른안주, 커피믹스, 녹차티백
5. 기타 (있으면 유용한 물품)
맥가이버 칼, 손목시계, 작은 자물쇠, 비닐봉지(지퍼백), 우산, 빨랫줄, 만능어댑터(콘센트), 가벼운 선물(인형, 액세서리, 열쇠고리, 엽서...)
6. 여행준비물 TIP과 짐 꾸리기 요령
★큰 배낭(캐리어) : 렌터카 여행이나 패키지여행이 아니라면, 가방이 지퍼를 열었을 때 완전히 펼쳐지는 여행용 가방이 적당하다. 그리고 짊어지고 있는 순간에도 도난의 위험이 있으므로, 주머니가 많은 것보다는 끈이 많이 달린 배낭이 적당하다.
★작은 배낭 : 작은 배낭이 있으면 가벼운 소지품과 간식, 음료수, 지도 등을 넣고 다니기에 편리하다.
★복대 : 허리에 두르고 옷을 입으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준비하여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될 여권, 항공권, 여행 경비, 신용카드, 교통 패스 등을 넣어둔다. 내용물은 비닐에 싸두어 젖지 않도록 한다.
★옷 : 짐의 부피를 가장 많이 좌우하는 것이 옷이다. 여행지의 기후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아본 후 최소한의 옷을 준비하고, 유스호스텔이나 캠핑장, 호텔 등에 마련된 코인세탁기를 이용한다. 세제는 현지에서도 구입할 수 있지만 포장 단위가 크므로, 몇 회분 분량을 필름 통 등에 담아 가져가는 것도 괜찮다.
★신발 : 걷기에 편한 것이 기본, 새것보다는 길들인 헌 신발이 더 편안하며, 가볍고 바닥이 두툼한 운동화가 많이 걸어도 발이 편해서 가장 좋다. 여름에는 스포츠 샌들도 편리하다.
★비상약 : 감기약과 진통제, 소화제, 설사약, 1회용 밴드, 피부 연고제 등 기초 상비약을 준비한다.
★필기도구 : 여행 일정을 적거나 가계부를 적는다면 지출을 계획적으로 할 수 있고, 다음 여행을 계획할 때도 유용한 기초 자료가 된다.
★비상식량 : 튜브에 든 볶음고추장을 조금만 가져간다. 식비를 아끼려면 라면과 즉석 식품을 적당히 챙겨가는 것도 좋다.
★가이드북과 지도 : 배낭여행에 꼭 필요한 품목 중 하나. 최근에 나온 것으로 준비한다.
7. 여행 가방 싸기 요령
먼저 부피가 가장 큰 옷가지를 넣은 후 가방의 남는 모서리에 속옷이나 양말, 신발 등을 넣는다. 세면도구와 속옷류, 신발은 서로 섞이지 않도록 입구를 봉할 수 있는 비닐봉지에 따로 싸서 가방 가장자리의 빈 부분에 넣는다. 또 가볍고 부피가 나가는 것을 밑에 넣고, 무거운 것을 위에 넣으면 배낭을 어깨에 맸을 때 덜 무겁게 느껴진다. 배낭의 경우 바깥쪽에 주머니가 많이 달린 것이 많은데, 중요한 물건은 외부에서 손대기 쉬운 주머니에 넣지 않도록 한다.
< 7월 19일 – 여행 첫날 >
7월 초, 청도중고등학교 전교조 회원들이 학교 옆 식당에 모여 2016년 임원 선출을 하다가 회비가 너무 많이 적립되어 있어 갑자기 회비 까먹기 중국 칭다오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일시는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으로 결정하고 여행 경비는 회비에서 1인당 20만 원씩 보조하기로 했다. 원 회원이었던 한연희 선생까지 참석해 남녀 각 6명, 총 12명에 제자인 장기원 군(君)이 통역 및 가이드를 맡기로 해 전체 인원이 13명의 적당한 여행단이 구성되었다. 회의 10분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상상도 하지 않은,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결정이었다. 인생은 이런 돌발적 면이 있어 흥미로운 것이다.
8시 30분경에 김해공항에 모여 발권 절차에 짐까지 보내고 여권과 지문과 얼굴 사진을 등록해 출국과 입국 시 자동여권심사를 할 수 있게 했다. 여권 만료 때까지 유효하다고 하니 참 유용한 제도라 하겠다. 원래 비행기는 저가 항공인 에어부산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대한항공으로 바뀌어 조금 편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 항공 정보를 보니 우리가 탄 비행기는 B737-800 기종이고, 김해에서 칭다오까지 거리는 772㎞이다. 비행시간은 1시간 25분이며 시차는 1시간 빼야 했다. 비행기는 약 750㎞/hr의 속도로 고도 9,750m 상공을 날고 있었다.
< 1시간의 짧은 비행이기에 올 때와 갈 때 모두 간단한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에어부산 기내식은 아마 이것보다 못하겠지. >
7월 말에 접어든 날씨는 벌써 섭씨 30°를 넘기고 있었고 마침 장마까지 겹쳐 푹푹 찌는 더위는 에어컨 없이는 못 살 정도였다. 비행기는 김해에서 인천을 향해 가서 인천 근방에서 산둥반도로 방향을 꺾어 날아갔다. 올 때는 서해(西海) 중간 지역에서 김해 쪽으로 방향을 꺾는 것과는 달랐다. 우리나라 내륙의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곳곳에 파헤쳐진 공사장의 누런 흙바닥이 선명히 보였고 넓은 곳은 거의 보이지 않고 산의 푸른 지역에 바로 붙어 아파트를 짓는 공사장이 정말 많았다. 고도 1,000m의 하늘은 그 정도로 맑았다.
<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서해의 중국 측 수역의 녹조류. 이것보다 큰 것도 눈에 띄었고 이것보다 작은 것도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많이 번진 듯하다. >
서해를 거의 다 건넜을 무렵 녹색의 긴 띠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배인가 했더니 거대한 녹조였다. 바다마저도 이제 부영양화 현상이 일어나 저렇게 오염된 것을 보니 참 걱정이다. 한국 도착 이틀 후 TV에서 이에 대한 보도가 나왔는데 해변에 떠내려 온 이 녹조가 칭다오 해변을 뒤덮은 장면과 이를 몸에 칭칭 감고 즐거워하는 중국 해수욕객 모습이었다. 다행히 독성에 관한 신고는 아직은 없다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나라 강이나 호수에서 발견되는 녹차 라테 같은 작은 알갱이 녹조가 아니라 긴 말(藻)처럼 생긴 녹조였다.
칭다오의 루틴 공항에 접근했을 때 고맙게도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구름은 고도 800m부터 580m 정도에 진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아래로 내려오니 그냥 흐린 날씨였다. 우리가 흔히 보는 구름의 높이를 대략이나마 알 수 있었다. 입국 절차 후 공항 밖으로 나와 오지 않는 중형버스를 기다리는데 날씨는 덥고 습도가 높지만, 바닷가인지라 바람이 계속 불어와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다만 견디기 힘든 것은 공항 밖에 나오니 입이 달린 애새끼들은 전부 담배를 꼬나물고 지껄이고 있어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공항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공항 안은 에어컨 가동을 않는지 더워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우리가 칭다오에서 이틀간 사용할 차량은 원래 25인승 버스였다. 그러나 40분을 기다렸는데 온 차량은 12인승 벤이었다. 통로에 캐리어를 배치하고서야 겨우 13명이 다 탈 수 있었다. 게다가 운전기사는 여행객을 운송해 본 적이 없는지 5.4 광장에 가자고 했더니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핸드폰으로 내비게이터를 켠다. 칭다오의 랜드 마크인 5.4 광장을 모르다니, 이 사람은 운전기사가 아니다. 게다가 차 안에서 담배를 피다가 계속 핸드폰으로 통화하거나 아니면 우리 가이드와 이야기를 해서 시끄러워 죽겠다.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차까지 밀리기 시작했다. 우리 차선도 밀려 꼼짝 못 하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바로 유턴하려고 끼어드는 용감한 차도 있고 서 있는 차량 사이로 사람들은 무단 횡단을 하고… 그런 무질서와 인간적 자유로움이 넘치는 거리를 보고서야 나는 좁은 반도(半島)에서 되잖은 법에 억눌려 살아온 좁은 자아를 버릴 수 있었다. 아! 내가 대륙에 왔구나. 오는 차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나의 길만 바라보고 가는 것, 그것이 차도이든 횡단보도의 빨간불이든 상관치 않는 대범함. 나도 대륙의 인간적이며 나의 편리에 충실한 법에 순종하리라.
중국의 교통체계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사거리(十字路)에서 직진과 좌회전 동시 신호가 들어 왔을 때, 맞은편 차선도 같은 시간대에 직진, 좌회전 동시 신호가 들어온다. 나의 직진과 반대차선의 좌회전, 그리고 나의 좌회전과 반대차선의 직진 차량은 서로 교차해서 가야하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모든 차가 부딪히고 난리가 날 텐데 중국에서는 운행차량이 제법 많은데도 경적을 울리는 차들도 많지 않고 어쨌든 잘도 피해서 간다. 차가 엄청 밀릴 때 위와 같은 신호체계의 사거리 중앙에서 양방향의 직진과 좌회전 차량이 엉키게 되면 네 방향의 차들이 꼼짝도 못 하게 된다. 이런 경우 한국 같으면 일단 경적을 길게 한번 울린다. 그러다가 짧고 강하게 몇 번을 울려 본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평상시 가슴에 담아두기만 하고 쓸 수 없었던 수많은 욕들을 연습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궁극에는 차에서 내려 교통정리를 하려는 사람이 나타나 자체 해결한다. 절대 그 상황에서 피동적으로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모든 운전자가 아무 일 없이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30분쯤 지나면 교통순경이 와서 차를 1대씩 순서대로 빼준다. 순경 도착 후 다시 30분이 지나서야 엉킨 차들이 풀려 제 길을 갈 수 있다. 나는 중국인들이 한 시간 기다리는 동안 뭘 하는지 궁금하다.
< 5.4 광장의 모습. 앞의 조형물은 횃불 모양으로 "오월의 바람"이라는 조각품. 5.4 운동이 중국공산당 창당의 시초, 즉 선봉이라는 의미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5.4 운동은 베이징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지만 산둥 성 칭다오의 반환과 관련이 있어 여기 5.4 광장을 둔 것 같다. 왼쪽은 바로 바다이다. >
워낙 역사적 볼거리나 수려한 자연경관이 없던 이번 여행이었기에 그래도 먹고 자고 온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적 의미가 있는 5.4 광장에 대해 잠시 인용할까 한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연합국 편으로 참전한 중국은 승전국으로서의 기대감과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파리 강화 회의에 참가하였다. 하지만 패전국 독일이 산둥 성에서 누리던 특권이 반환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열강의 승인 아래 일본에 넘어가고, 심지어는 베이징 정부에서도 이미 거기에 동의한 바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베이징 대학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학생 3,000여 명이 5월 7일 예정되어 있던 시위를 앞당겨 1919년 5월 4일에 시행하였다(5 · 4 사건). 그들은 21개 조의 취소, 칭다오의 반환, 친일 3관료의 파면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시위대는 친일 관료 차오루린(曺汝霖. 당시 교통부장관)의 집에 방화하고 장쭝샹(章宗祥. 주일공사)을 구타하는 등 폭행으로 치달아, 학생 수십 명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은 연합 조직을 결성하여 시위를 전국 각지로 확산시켰다. 중국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탄압하고 베이징에 계엄령을 선포하였지만, 베이징에서는 학생의 가두 강연이 더욱 활발해졌고, 학생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인 대중 운동으로 발전되자, 베이징 정부는 이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6월 10일에 3관료를 파면하고, 뒤이어 6월 28일 파리 강화 회의의 중국 대표단이 독일과의 강화 조약에 조인을 거부하였던 것이다.
이 운동은 도시에만 한정되기는 하였으나 전국적인 규모의 대중적 반일(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점과 학생뿐 아니라 상인, 노동자 및 일반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점에서 중국 민족주의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되었다. 여기에서 나타난 민중, 특히 노동자의 정치적 역할에 주목한 지식인들이 노동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2년 후인 1921년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시각은, 5·4 운동의 역사적 지위를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 동아시아사. 저자 천재교육에서 )
그러나 우린 이와 같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5.4 광장에 무엇을 배우고 느끼기 위해 찾아 간 것이 아니라 5.4 광장 옆에 있는 “취안쥐더”이라는 북경오리 전문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간 것이기에 광장 중심의 붉은 횃불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열심히 “취안쥐더” 이층에 올라갔더니 이미 점심시간이 끝난 브레이킹 타임이란다. 지금까지 멀쩡하던 배에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날씨가 무덥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까이 있다는 만두집에 가기로 했다.
< 5.4 광장에서 10분 거리라는데 20분 이상 걸은 것 같다. 오는 도중 대륙인의 교통을 배우고 체득하며 도착한 곳이 “대청화 교자”라는 전문 만두집. 한국인이 많이 오는지 간판 아래 우리글로도 적어두었다. >
< “대청화 교자” 화장실에 적힌 문구. 앞을 향한 한 번의 작은 걸음은 문명을 향한 한 번의 큰 걸음이란 뜻인데,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라는 우리의 화장실 명문장도 중국에 수출하고 싶어졌다. 이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꺼내어 셔터를 누르는 순간 플래시가 터뜨리자 내 바로 옆의 소변보던 두 사내는 깜짝 놀라 앞으로 일대보(一大步)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중국 문명에 크게 이바지하고 말았다. >
< 대하(大蝦) 만두. 육즙이 주르르. 그리고 소고기 만두도 주문했는데 먹느라 바빠 사진을 못 찍었다. 칭다오 맥주 중 “순생”이란 제품으로 맛이 깔끔하여 여성들의 입맛에 맞다. >
< 껍질은 바싹하고 속은 부드러운 탕수육. 달아서 아이들이 좋아 하겠다. >
< 매운 고추가 들어간 오징어다리 볶음과 계란 수제비인데 수제비가 죽(粥)인 듯 새알이 겨우 느껴질 정도로 작아 너무 맛있다. >
< 조개 찜인데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이다. 칭다오 특산이 바지락이라 열심히 찾아 먹었다. >
“대청화 교자”에서는 맥주까지 주문해서 마셨는데 계산이 708위안이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니 134,500원으로 1인당 54.5위안, 즉 10,355원이다. 백종원 씨가 칭다오에 와 음식을 먹고 대단히 싸다고 한 TV프로를 보았는데 정말 싸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먹었으면 1인당 3만 원은 되지 않을까?
< 신호산 공원 빙글빙글 도는 회전 전망대. 입장료가 2,500원 정도. >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경치. 좌측 붉은 건물이 독일 대사의 영빈관. 우리로 보면 조선총독부 건물이랄까? 입장료가 20위안이니까 3,800원 정도 >
< 거의 저녁나절인데도 불이 켜지지 않은 아파트들. 전력이 부족한 것인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
타이둥 야시장에 가서 요기도 하고 구경도 하기로 했다. 가는 도중 아파트와 모든 건물이 매우 어둡다. 우리 같으면 벌써 불을 켤 시간인데 거리와 건물이 어두워 조금 을씨년스러웠다.
< 타이둥 야시장의 여러 가지 꼬치들. 청경채 같은 채소와 부추도 꼬치에 꽂아 구워 주었다. 돼지고기나 양고기는 물론이거니와 어묵, 버섯, 생두부, 튀긴 두부, 햄, 닭발, 떡, 소시지, 빵 등등 꽂아서 구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음식이 되는 모양이다. 가끔은 뭔지도 모를 재료들이 초등학교 앞 불량 식품 같은 색깔을 하고선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
< 왼쪽 것은 바다 고둥인데 껍데기만 크고 알맹이는 우리나라의 민물 고둥만 했다. 여긴 튀김 종류 파는 곳. >
< 빨간 고추기름에 튀겨낸 새우도 있었지만, 우리가 선택한 것은 가장 무난한 오른쪽 꼬치. 여름이라 소금을 많이 뿌렸는지 짜고 향신료가 들어가 거북한 맛이다. 가격은 꼬치 하나에 1위안 우리 돈으로 190원이라 아무리 먹어도 가격 부담이 없다. >
< 테이블 오른쪽, 가장할 필요가 없음에도 습관적으로 물병으로 가장한 참소주. 칭다오 생맥주에 간하여 노천에 앉아 한잔하다 보면 수근 선생의 입가에도 평시에 보기 어려운 염화시중의 미소가 떠오르는 법이다.>
꼬치고기 집에서 13명이 각종의 꼬치에 생맥주까지 시켜먹었는데도 200 위안밖에 안 된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수입된 “설레임”이란 음료를 팔기에 몇 개 샀더니 그게 100 위안이다.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흥미로운 것도 없어 일찍 야시장 구경은 끝을 냈다. 차가 있는 곳에 가는 동안 어느 틈엔가 여선생들은 노점에 파는 모자를 하나씩 사서 쓰고 있다. 5,000원 정도라는데 가격에 대비해 품질과 디자인이 보기에 좋다.
마사지를 받기 위해 “청죽원”이란 곳에 갔는데 예약손님이 많아 여선생들과 남선생 두 명만 전신 마사지를 받으러 가고 나머지는 85°카페로 갔다. 전신 마사지는 60위안으로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니까 상당히 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들으니 여선생들이 얼마나 신음소릴 내는지 송신(竦身)하더라는 것이다. 내일은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밤 10시도 넘어 호텔에서 왜 안 오느냐고 전화가 와서 더 놀지도 못하고 호텔로 출발했는데 가는 중간마다 한글 간판이 보였다. 내일도 숙소는 오늘과는 다르지만, 근처라고 하니 한국 음식이 필요하면 이리 오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하고 나니 옆방에서 한잔 더하자고 연락이 왔다. 김병수 선생의 기압 차이로 터지기 직전이었던 김치를 안주하여 가볍게 한잔 후 간단히 씻고 정신없이 잠들었다. 가장 인솔하기 어려운 여행단이 선생들이라던데, 그것도 남녀가 딱 반반인 교사 여행단이 아무 갈등 없이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은 우리가 너무 오래 같이 생활해 이미 가족이 되어 버려서가 아닐까?
7월 19일(화) 경비 결산 ( 환율 계산 : 1위안 190원 )
점심 – 만두집 708 위안
신호산 공원 입장료 165 위안
영빈관 입장료 260 위안
꼬치고기 200 위안
빵 100 위안
설레임 100 위안
자동차 임대 1,400 위안
기사 식대 50 위안
계 : 2,983 위안 (한국 돈 566,770원 / 13명=43,600원)
< 7월 20일 – 여행 이틀째 >
< 우리가 첫날 숙박한 4성급 호텔인 옹화정 연부. 크게 아쉬움은 없었지만 조식의 가짓수가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화장실에 비치된 화장지는 엄청 두꺼워 비데는 없었지만, 결코 불결한 경험을 하지 않으리라는 견고한 믿음을 주었다. >
호텔 조식(朝食)도 여행의 기쁨 중 하나이므로 기대를 하고 갔더니 그저 그렇게 밍밍한 정도이다. 망고 주스는 식혜 맛이 났다. 된장국 비슷한 것은 너무 짜서 입에 대었다가 포기했다. 어떤 음식은 중국 음식 특유의 향이 너무 강해서 거부감이 왔다. 4성급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몇 성급과 음식 맛은 상관성이 크게 없었다. 커피는 커피믹스 뿐이어서 호텔에서 그런 걸 보지 못한 나는 내가 못 찾았나 하고 생각했다. 짐을 싸서 바로 오늘 숙박할 5성급의 “Holiday inn”에 체크인하고 나왔다.
바깥 날씨는 화창하다. 화창하단 말은 다른 계절에 어울리는 말이지 여름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얼마나 더울지 몰라 가장 가벼운 옷차림을 했다. 물론 중국 사람보다 더 가벼운 옷차림을 우리는 할 수 없다. 그들은 반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앉아 있다가 좀 더 더우면 일단 배(腹)를 깐다. 관찰컨대 배가 좀 나온 사람이 배를 까지 배가 없는 사람은 깔 배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덜 더운지 배를 까지 않는다. 그러다가 더 더우면 이제 러닝셔츠를 벗는다. 집이나 가게 앞에서 그렇게 하고 앉아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차림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돌아다닌다.
원래 어제 맥주 박물관 구경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일정이 늦어져 오늘 아침에 방문하기로 했다. 듣기에 입장료를 내면 맥주 2잔은 무료로 제공된다고 하니 해장술이 예약된 셈이다. 맥주 박물관 입장료는 1인당 60위안, 우리 돈으로 11,400원이니 중국의 다른 물가에 비교한다면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다. 오늘 차량은 다행히 18인승에 다른 운전기사다.
< 칭다오 비주(啤酒) 박물관 주변의 풍경. 칭다오 맥주를 중심으로 맥주거리가 형성되어 밤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고 한다. 맥주 안주로 주로 해산물을 많이 팔고 있었다. >
< 맥주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기념촬영. 꼴에 남자라고 여선생들을 안에 앉히고 바깥에서 보호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기야 여선생들이 호강하는 셈이다. 이런 공주 대접을 받아 본 것이 언제였음을 기억이나 해낼까?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7층인데 모든 창문마다 화분이 보여 매우 놀랐다. 중국인들도 화초를 매우 좋아하는구나. >
< 맥주박물관 전경. A관과 B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
< 첫 번째 제공되는 생맥주를 기다리는 모습.>
드디어 발효를 막 마친 첫 번째 맥주와 짭짤한 땅콩이 제공되었는데 이 맥주는 이 박물관에서만 제공되지 바깥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느낌상 그런지 지금까지 마신 생맥주 중 가장 맛있다고 할 만큼 호프 향이 강하고 신선하다. 어제 만두집에서 마신 물은 그 맛이 정말 형편없었는데 이 맥주의 맛은 이렇게 신선하니 같은 칭다오의 물맛이 어찌 이리 차이가 날까? 하긴, 같은 칭다오에 살더라도 신선하고 향기로운 여자도 있고 비린내 나는 형편없는 여자도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구나. 현명한 사람은 인생에서 미루어 짐작해 아는 것이 이리도 많다. ㅋ ㅋ ㅋ
< A관에 전시된 칭다오 비주의 과거 선전포스터. “삼국지연의” 도원결의에 사용된 술이 칭다오 비주였을 줄이야! 대단히 재치 넘치는 발상이다. 소설에 장비의 집 뒤뜰 복숭아밭에서 결의했다는데 술은 아마 제일 큰형인 유비의 어머니가 준비해 주었겠지. 그렇다면 유비의 어머니가 칭다오 비주의 원조 욕쟁이 할머니? 포스터 한 장으로 추리할 수 있는 역사적 상상(想像)이 참 재미나다. >
< 현재 칭다오 비주의 생산 품목별 전시. 둘째 줄 가운데 있는 것이 가장 널리 팔리는 칭다오 비주이고, 제일 아래 가운데 있는 것이 “순생”이라 해서 그 다음 잘 나가는 것이다. >
< 두 번째 제공된 맥주. 이건 일반 병에 넣어 파는 것 같았는데 첫 잔에 취한 여선생들이 많아 나는 여러 잔을 마셔야 했다. 여기서는 맥주를 사는 사람은 적고 전부 맥주 안주인 땅콩을 사기 시작했다. 맥주는 공항에서도 팔기 때문에 가격이나 운반을 고려한다면 공항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한다. >
1903년부터 칭다오 비주를 생산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어언 113년이나 되었다. 이들은 침략국인 독일의 맥주 만드는 기술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켜 그들만의 브랜드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으니 잃은 만큼 얻을 것이 생긴 셈이다. 그렇다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이나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사자성어를 쓸 일은 아닌 것 같다. 물질적 풍요에 앞서 빈곤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정신과 자존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보면 위안부로 팔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다. 민족적 자존 없이 물질적 보상만 따져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는 인간은 민족의 히로뽕이며, 자신이 정신적 창녀다. 정치적 이야기가 나오니 또 흥분하고 말았다. 아마 오늘 밤, ☆☆하려나 보다. (☆표에 들어갈 단어를 추리해 보시오.)
< 어제 못 먹은 북경 오리를 먹기 위해 다시 5.4 광장에 왔더니 구름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고층건물은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칭다오는 인구 800만의 대도시로 한국의 서울에 비견할 정도의 대도시지만 바다를 끼고 있어 그런지 아니면 지금이 여름철이어서 그런지 미세먼지는 없는 것 같았다. 사진의 중앙에 빨간 것은 연(鳶)인데 파는 사람은 두 손으로 조종하고 있었다. 소리가 아주 크게 나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는 성공한 듯했지만, 연날리기에 많은 기술이 필요할 듯해 아무도 사지 않고 구경만 했다. 그리고 사진의 여기저기 떠다니는 무지개색은 비눗방울이다. >
5.4 광장 옆 “취안쥐더(진취덕)”이란 북경오리 전문점에 들어가 오리 2마리에 볶음밥과 국수, 만두와 매운맛 나는 그린 빈(green bean), 그리고 죽순버섯 볶음과 생맥주를 시켰다. 여기서도 파와 오이가 모자라 보충해 달라 하니 추가로 1접시 5원의 돈을 더 받는다. 전문점이라 조금 기대했건만, 음식은 한마디로 별로였다. 국수는 맛이 밋밋했고 만두는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강했다. 북경오리 역시 그리 특별한 맛이나 바싹한 촉감을 못 내어 그저 그런 정도의 맛으로 한국의 북경오리만 못하였다. 그저 중국에 왔으니 기념 삼아 한번 먹어본다는 정도.
< 왼쪽의 손질된 오리들이 오른쪽 화덕에 들어가 아래처럼 노릇노릇한 껍질로 조리되면 우린 이놈을 북경오리라 부른다. >
< 왁자지껄하고 떠들며 먹었더니 나올 때 옆 테이블 늙은 중국인들이 불쾌하다는 듯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같잖은 인간들. 외국에 나가 중국인들의 무례(無禮)를 한번 보면 우리가 얼마나 조용히 먹었는지 알 것이다. 나는 대만의 본토 중국인이 많이 들어온 식당에서 대화를 위해 메가폰이 필요하다고 느낀 사람이다. >
< 1인당 65위안, 한국 돈 12,350원으로 환희의 춤을 추며 나오도록 먹었으니 지나가는 중국인이 깜놀해서 쳐다보고 있다. 정말 중국은 음식 값 하나만은 니나노다. >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사발 마시고 나니 커피란 놈이 배뇨작용을 왕성하게 해서인지 아랫배가 단단해졌다. 근처 은행에서 볼일을 보려 여선생 둘과 갔더니 너무 친절하게 경비 아저씨가 무슨 볼일로 오셨는지를 물어본다. 서 선생의 자연스러운 손 씻는 시늉을 본 후 이층을 가리킨다. 그렇다. 만약 나에게 물었다면 나는 영어로 대답했을 것이다. 측소(厠所)란 말이 화장실이란 것을 처음 중국여행을 오던 90년대 필수회화로 배운 바 있지만, 갑자기 물으면 영어 toilet과 rest room 중 어느 것을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경비 아저씨가 영어를 알면 다행이되 모르면 영어를 아는 똑똑한 여사원을 불러서야 남의 영업장 화장실을 얻어 사용하게 되는 꼴불견을 겪게 되는 것이다. 서 선생의 대처가 아주 자연스러워 조국에 누(累)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국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대기 중이든 차를 타고 드디어 “여성 천국, 남성 지옥”의 “찌모루 시장”으로 갔다. “찌모루 시장”은 진짜 아닌 진짜 같은 짝퉁을 파는 시장인데 값이 정해진 게 아니라 흥정을 통해 값이 결정되는, 치열한 삶의 전장(戰場)이라 할 만한 시장이다. 가격은 결국 손님의 자기 만족가(滿足價)이어서 손님이 경제적 여유 있는 사람이면 흥정은 짧게 끝나고 여유가 없거나 흥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면 흥정은 끝없이 길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상인이 손해 보는 법은 없으니 누가 흥정을 잘하여 최소한의 이문을 상인에게 주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대개 부르는 값의 40%를 준다고 정하고 그 가격에서 조금도 양보를 하지 않는 것이 요령이란다.
이 점에서 본다면 박소영 선생의 가방은 흥정이 짧았고 이우탁 선생은 흥정이 길었다. 그러나 박소영 선생이 가방 가격에 스스로 만족했기에 손해를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물건이 마음에 들고 이만한 물건이라면 이 가격에 사도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가방은 잘 산 것이다. 이우탁 선생의 경우, 두 개에 400위안 달라는 망원경 2개를 깎다가, 깎다가 결국에 주인은 100위안을 달라고 하고 이 선생은 90위안을 주겠다고 하고 계속 버티다가 결국 95위안으로 낙찰을 보았는데 이 경우 이 선생은 5위안을 더 주었기에 불만이 조금 있는 것이다. 그러나 5위안을 깎았기에 이도 성공한 흥정이라 하겠다. 모두가 나름 성공한 물건을 사는데 박용필 선생은 자기가 여행 오면서 아내가 모처럼 큰마음 먹고 사준 메이커 있는 95,000원짜리 샌들과 꼭 같이 생긴 샌들이 50위안(10,000원)의 가격표를 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넋을 놓고 분(憤)해했다. 나는 흑진주가 사고 싶었지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 찌모루 시장, 나는 2층까지 올라 가보고 말았는데 지하도 있다고 하니 엄청 상점이 많음을 알겠다. >
< 찌모루 시장 앞 공터의 아이스크림 집에서 5명의 남선생이 쉬는 중, 아이스크림을 주문받으러 아가씨가 왔을 때 5개를 시키려다가 혹 맛이 없으면 어쩌누 싶어 망고 아이스크림 2개만 시켰더니 이 만큼이 하나다. 2개를 5명이 먹고도 남았다. 게다가 아가씨가 서비스로 망고를 더 썰어와 주었다. 5개를 시켰으면 동내 잔치할 뻔했다. 무엇이든 조금 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 전부 만족한 표정이다. 특히 김병수 선생은 여선생들이 쇼핑할 때 신 선생과 뒷골목 꼬치 집을 찾아 오가피주 비슷한 것을 두 병 마셔 벌써 해롱거리고 있다. >
제법 시간도 되었기에 저녁을 하기 위해 해신광장 지하 쇼핑몰로 가기로 했다. 듣기에 그곳에 가면 괜찮은 음식점이 즐비하다고 했다. 들어가니 상당히 고가의 명품을 파는 상점들이 있었는데 여선생들의 관심은 자기가 산 짝퉁이나 사려고 한 짝퉁이 여기 진품매장에서는 얼마나 하는지에 있었고 시계점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맞다, 맞더라.”를 연발 외치는 것이었다. 아마 짝퉁 매장 주인의 말이 맞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하로 내려가니 빵집과 아이스크림 집, 그리고 스시 집이 있었다. 스시를 먹기로 하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갑자기 너무 비싸다며 나가자는 것이었다. 아이, 쪽 팔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왔더니 가이드인 장군(君)이 67절(折)이라면서 비싼 것이 아니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냐고 했더니, 우리의 경우 20% 할인, 30% 할인이라고 적지만 여기서는 할인 금액은 자기가 받을 만큼을 적는다는 것이었다. 즉 67절은 67%만 받겠다는 것으로 우리 식으로는 33% 할인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즉 10,000원 정가라면 6,700원을 받겠다는 것이니 엄청 싼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갔더니 여종업원이 빙긋이 웃는다. 비웃는 것은 아닌 듯하고 가던 손님이 다시 왔으니 반갑다는 것이리라고 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을 하였다. 아이, 쪽 팔려.
그래서 한 테이블에 4명이 앉아 스시 2인분(18조각)과 우동 2그릇, 맥주 2병을 주문했더니 상당히 푸짐하여 먹을 만하였다. 스시는 정통 일본식이 아니었지 횟감이 싱싱해서 괜찮았고 우동도 일본식이어서 중국 특유의 향이 빠져 먹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저녁 식대는 1인당 56위안이니 환산하면 10,640원, 그래도 스시집인데 참 저렴하다. 먹는 것이 저렴하더라도 사람은 저렴하면 안 되는데, 식사 때마다 위안화를 원화로 환산이나 하는 짓이 중국 와서 사람이 아주 잘아진 것 같다.
식사 후 마사지 집인 “청죽원”으로 갔다. 청죽원은 주로 남자 마사지사가 안마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가격은 우리나라의 1/4수준 정도로 쌌다. 즉 전신 마사지 1시간에 60위안이니 11,400원 정도. 내가 한국에서 간판에 “타이 마사지 1시간 4만 원”이라 적힌 적을 보았기 때문에 대강 비슷할 것이다. 여선생들은 주로 전신 마사지를 받았고 나와 남선생 둘은 발 마사지와 귀 청소를 선택했다. 나는 캄보디아에서 전신 마사지는 받아보았기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발 마시지도 한 시간 60위안, 귀 청소는 15위안이었다.
< 청죽원 가격표 >
한 시간 동안 발 마사지를 한다고 하니 한쪽 발에 30분씩이다. 일단, 물통에 발을 담그고 어깨와 허리 안마를 조금 하더니 발의 각질이 붓자 칼 비슷한 것으로 뒤꿈치 각질을 제거해 주었다. 나중에 가격표를 보니 각질 제거도 15위안이라 적혀 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모양으로 애들이 기본적인 우리말은 알고 있었다. 아주 열심히 마사지한 후 자리를 옮겨 귀 청소를 했다. 귓속이 정말 깨끗해졌는지 한국에 돌아와 솜으로 된 귀이개를 넣어 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무도 팁 주는 이가 없어 괜히 혼자 팁을 주면 동료들이 뻘쭘할까 눈치만 보다가 팁을 못 주고 말았다. 10위안이면 되었을 텐데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못 주고 말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팁 못 준 것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서비스로 해준 각질 제거도 15위안이었는데 말이다.
밖에 나오니 여동생인 한 선생이 “선생님은 어디 하셨어요?”라 물었다. “발 귀했지.”라고 했는데 경상도 사람이다가 보니 ‘귀’를 ‘귀’라고 하지 못하고 ‘기’라고 발음하고 말았다. 말하고 보니 조금 어색한 듯해 덧붙인 것이 “발 귀는 처음 해봤다.”라고 했더니 모든 남녀선생이 더욱 웃기 시작했다. 전신 마사지는 지난 2011년 2월에 여행한 캄보디아에서 처음 경험했는데 사실 발 귀는 오늘 처음 경험했다고 하고, 해보니까 너무나 좋아서 앞으로 자주 발 귀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예 넘어간다. 이런 하찮은 것으로 이렇게 웃음을 주다니 나도 정말 “귀발한” 인간이다. 이것이 마지막 밤을 웃음으로 장식한 “한경호 발 귀 사건”이다.(또 하나 “귀발”한 것은 위의 문장들에서 “발 귀”라고 띄어쓰기를 했음에도 “발귀”라고 보이도록 한 치밀함. - 여기서는 나타나지 않음)
< 사진은 주로 박소영 선생이 찍었는데 여선생들의 경우 서비스로 뽀샵 처리까지 해주었다. 틈만 나면 화보 사진을 찍어 대는데 정말 여자들의 심리는 남자와는 엄청 달랐다. 특히 서상희 선생은 허리를 15°를 뒤튼 자세에서 몸은 앞을 보고 얼굴은 다시 15°를 틀어서 요염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15°의 법칙이 만들어져 그다음부터 여선생들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15°씩 비튼다고 허리가 휠 지경에 이르렀다. >
< 20일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호텔 앞 “한향복 감자탕”집에 거의 11시가 다 되어 들렸다. >
감자탕 집에서 감자탕과 해물탕을 안주로 해 맥주 몇 병에 가지고 간 마지막 참소주로 간을 해서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정문제로 전교조를 탈퇴한 한 선생이 다시 가입의 의사를 밝혔다. 다음에 광동 성 여행을 갈 때는 이주호 선생도 다시 넣기로 노력하자고 했다. 계산도 전부 남은 잔돈을 이리저리 모아 하였는데 역시 취기가 조금 돌아야 모든 일은 부드럽게 처리가 되는 것 같다. 내 방은 1123호였는데 모 여선생이 여선생 중에 내 방에 가려면 자기에게 허락을 얻고 가라고 했다. 그 이유가 한경호 선생은 발 귀했기 때문이란다. 이러다가 새 별명이 생기겠다.
7월 20일(수) 경비 결산 ( 환율 계산 : 1위안 190원 )
맥주박물관 입장료 780 (1인 : 60위안 – 11,400원)
점심(오리) 844 (1인 : 65위안 – 12,350원)
저녁 (스시) 725 (1인 : 56위안 – 10,640원)
운전사 식대 100
커피 275
자동차 임대 900
계 : 3,624 위안 (한국 돈 688,560원 / 13명=53,000원)
< 7월 21일 – 여행 끝날 >
오늘 비행기 출발이 13시 30분이라 호텔에서 시간 여유가 많다. 게다가 11시 30분에 호텔에서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있단다. 그러나 할 일이 없어 일찍 일어나 2층 식당으로 갔더니 역시 5성급답게 음식의 가짓수도 많고 다양하다. 아무리 다양한들 평시 음식 욕심은 없는지라 대강 먹고 방으로 돌아와 짐 정리에 카톡도 하면서, 포털을 열어 그동안 주식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살폈다. 다행히 750 정도 벌어 두었다. 칭다오는 방마다 와이파이 공유기가 있어 별다른 시설 없이도 카톡이나 인터넷이 가능했다. 신교명 선생은 아침 운동 겸해 북경 올림픽 개최 시 칭다오가 요트 경기장이었던 곳을 찾아가 게으른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칭다오에서 북경 올림픽이 열렸을 때 요트경기가 열린 곳. 칭다오 올림픽 조형물과 문화 공원이라 적혀 있다. >
< 올림픽 성화 모양의 조형물. 중국 사람들은 공산주의와 상관없이 옛날부터 붉은 색을 좋아한다. 그리고 재물을 뜻하는 금색도 좋아해 어지간한 데는 다 붉거나 금색이다.>
< 아침에 노점 번개시장. 여기도 낮에는 기온이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30°를 오르내린다. 물론 산둥반도의 바닷가가 되어 해양성 기후이다. 눅눅하긴 해도 바람이 쉴 새 없이 부니까 우리나라보다는 견디기가 낫겠지만 시원한 아침에 시장 보러 온 사람이 많다. >
< 신선한 돼지고기가 걸려 있다. 자유여행을 간다면, 현지에서 가스레인지와 프라이팬을 구매해 저런 신선한 고기를 구워 먹고 볶아 먹고 삶아 먹을 수 있다. 해산물도 마찬가지이며, 양념이야 고춧가루, 고추장, 소금 정도만 준비하면 마늘이나 양파, 파 풋고추 등이야 현지 시장에서 살 수 있다. >
테러범들이 많이 설치는 바람에 공항의 검색이 옛날보다 철저하다. 공항 면세점에 들어와 사람마다 칭다오 캔을 1박스 30개 들이도 사고, 순생 캔을 1박스 20개 들이도 샀다. 담배 부탁을 받은 이도 있어 면세 담배를 몇 보루 사기도 했다. 그런데 매점에서 칭다오 맥주 6개 들이가 20위안인데 냉장고에 냉장된 칭다오 맥주 1캔도 20위안이었다. 판매하는 아가씨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지 냉장된 걸 내니까 6개 들이를 가리키며 값이 같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덥다.
1시간 남짓 비행 동안 갈 때와 꼭 같은 제공된 햄버거 비슷한 빵조각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캔 마시니 어느덧 착륙을 알린다. 사흘간의 허황되고 비현실적 시간을 끝내고 김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조국의 현실은 이렇게 각박하다고 각성이나 시키듯 햇살은 피부에 따가울 정도로 쨍쨍하다. 화살처럼 내리꽂는 조국의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어젯밤부터 세웠던 밀양 돼지국밥, 밀양 내일동 냉면, 청도새마을 휴게소 육개장 등의 화려하던 쫑파티 계획은 영화가 끝나버린 극장 안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청도새마을 휴게소에서 잠시 모인 후 바짝 건조(乾燥)된 우리는 바로 헤어지고 말았다. 아직 시차 적응도 못 했는데…
< 중국 칭다오 여행 경비 결산 >
7월 19일(화) 경비 결산 ( 환율 계산 : 1위안 190원 )
점심 – 만두집 708 위안
신호산 공원 입장료 165 위안
영빈관 입장료 260 위안
꼬치고기 200 위안
빵 100 위안
설레임 100 위안
자동차 임대 1,400 위안
기사 식대 50 위안
계 : 2,983 위안 (한국 돈 566,770원 / 13명=43,600원)
7월 20일(수) 경비 결산
맥주박물관 입장료 780 (1인 : 60위안 – 11,400원)
점심(오리) 844 (1인 : 65위안 – 12,350원)
저녁 (스시) 725 (1인 : 56위안 – 10,640원)
운전사 식대 100
커피 275
자동차 임대 900
계 : 3,624 위안 (한국 돈 688,560원 / 13명=53,000원)
자동차 임대 1,400+900 = 2,300위안(437,000원 / 2일 = 218,500원/13 (1인 하루 16,800원)
총계 6,750*190 = 1,282,500원 /13=98,700원
추가경비 : 비자 1인당 40,000원* 13=520,000원
공항 주차료 및 자동차 운임 대당 50,000*3=150,000원
추가 총액 520,000+150,000 = 670,000/13= 51,600
여행경비 98,700+51,600=150,300원
지원금 200,000원+170,000+150,000=520,000원 < 끝 >
2016. 08. 03 쓰기를 마치다.
첫댓글 길되 지루하지 않고 잼나게 서술하셨네요. 감사하고 넘 잘 읽었습니다. 근디 아쉽게도 사진은 안보이네유 ㅋㅋ
사진 실린것 봤습니다. 좋네욧 ㅎㅎ
이렇게 많은 자료를 모으시다니
진짜 훌륭합니당
역시 세르반테스는 뭔가 달라도 다르네요
다음 여행은 언제가남요??????
여행 잘 다녀오셨군요,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대학생때 칭따오 가보고 기억을 까맣게 잊었는데.. 조금 기억이 날똥말똥 하게 도와주는 글입니다. (까맣게 에서 날똥말똥하게..)
글을 어찌나 잘쓰시는지
선생님들과 함께 여행 다녀온 것 같습니다.사랑하는 선생님들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