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벧전 5:5-6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천양지차(天壤之差)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 차이라는 뜻인데 교만과 겸손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1. 겸손해야 하는 이유
첫째,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5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말씀에서 ‘허리를 동이라’는 노예가 주인을 시중들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라며 직접 가르쳐 주신 축도문이 있습니다.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 6:25).
25절을 보면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은혜”는 히브리어로 “헨”으로 ‘아랫사람을 향해 상체를 구부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상체를 구부리면서까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한 일만 아니라 고난도 은혜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라는 말씀처럼 고난도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위로와 소망도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살후 2:16)라는 말씀을 보면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하며 굳건한 믿음을 유지하게 합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시편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84:11)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적에게서 우리를 보호해주시니 은혜요, “은혜와 영화”를 주시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시니 은혜입니다.
겸손하라, 너희를 높이시리라
본문을 보면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5절),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6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높여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높임 받기를 원하고 영광을 받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교회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교만한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 29:23)라는 말씀처럼 영예는 마음이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괜한 공명심(功名心)에 똑똑하고 잘난 척이라도 하고 싶어서 나서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는 높아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높아지는 이유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6절),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높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자를 높여주는 이유는 높은 자리에 올려놓아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높임을 받고자 한다면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셉과 다니엘이 왕 다음 가는 총리가 된 것도 하나님이 높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을 위해 불철주야(不撤晝夜) 헌신했던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에게 크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된 것도 하나님이 그를 높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에 10:2-3).
높임을 받는 것은 겸손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높임을 받고자 한다면 지금 있는 그곳에서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시기 때문이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5절).
기도원 매점에서 일하는 여직원과 한 중년의 여자 손님간에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손님 : 얘! 너 왜 그리 불친절하니? 이런 데 있는 애가 왜 그렇게 사랑이 없어?
직원 : 사랑이 아무한테나 있는 줄 아세요? 아줌마는 상관하지 마세요.
손님 : 뭐라고? 아줌마? 너 얻다 대고 아줌마래.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전도사님이야, 전도사님.
직원 : 전도사님이시면 말씀을 곱게 하세요.
손님 : 아니, 뭐가 어째? 세상에 기가 막혀. 너 교회 알지? 거기 목사님 몰라? 내가 바로 그 밑에 있는 사람이야!
이처럼 사람은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손에 쥐게되면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권력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왕족귀족, 유능한 소년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성전의 기구도 모두 탈취해 갔습니다. 그리고 난 후 바벨론에 금 신상을 세워 놓고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사드락메삭아벳느고가 이를 거절하자 풀무불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이같은 행태를 하나님이 더는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33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단 4:32-33).
유다 왕 웃시야가 강성해지자 교만해졌습니다. 제사장만 할 수 있는 분향을 자기가 하려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역대하 26:21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라고 했습니다. 죽은 후에는 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곁에 장사 되었습니다.
연쇄 살인범이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교도소에 들어가면 죄수들이 연쇄 살인범이 두려워 황제처럼 떠받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결국은 그 댓가를 치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라는 말씀에서 ‘대적하다’는 군대를 배치할 때 사용하는 군사 용어로 ‘파멸하다’는 뜻입니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이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다가 파멸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 에브라임이 성직을 받지 않으려고 거짓으로 미친체 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성직을 받지 않으려고 도망을 갔다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할 수 없이 성직을 받았습니다. 사람에게 추앙받고 칭찬받다가 교만에 빠질까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목사장로권사집사는 계급이나 권력이 아니라 섬기라고 하나님이 주신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성도와 이웃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재물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겔 28:5).
두로 왕이 교만에 빠진 이유를 하나님이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라는 말씀을 보면 두로 왕이 “재물”로 인해 교만에 빠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은 사람을 돕고 섬기라고 하나님이 잠시 맡긴 것입니다(눅 19:12-13). 그런데도 자기가 벌었다며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부자가 소출이 풍성해지자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라며 먹고 놀 생각에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명품 옷명품 가방고급승용차를 구입하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2:16-21).
바울도 디모데에게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라고 했습니다.
교만이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권력능력학력같은 자신의 능력과 세상 것을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재물로 인해 마음이 교만해 질 때 하나님이 우리의 대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부자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도록 재물을 허리에 동이고 사람을 돕고 영혼을 구원하는 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2. 겸손한 사람이 되는 방법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후 12:7-9).
7절을 보면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의 몸에 있는 가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가시를 주신 이유는 “자만하지 않게”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시는 자신을 괴롭히는 가족친구동료일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속을 썩이는 자식이 가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시를 보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이유는 교만한 마음을 낮추는 데 가시가 제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시는 피하는게 상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암 5:19)라는 말씀처럼 가시를 피해 도망가봤자 그와 똑같거나 그보다 더한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시를 허락하셨을 때는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욥 22:29)라는 말씀처럼 자기의 교만함을 인정하고 낮아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시는 십자가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가시로 인해 괴롭다면 “교만했노라”라고 솔직하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가시는 사라질 것입니다.
▮결론
권력을 가졌다면 권력을, 재물이 있다면 재물을 허리에 동이고 사람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또한 마음을 굽히고 낮은 자세로 사람을 섬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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