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의 호남 기행-섬진강을 따라서 (8)
녹차수도, 보배로운 고을 보성
100만여 평의 산자락에 봄의 꽃 철쭉이 어우러지는 보성 웅치면 일림산(667.5m)은 천상화원이다. 보성강(126km)은 이곳 중턱 선녀샘에서 발원한다. 솟아나온 맑은 물줄기가 한동안 숲길에서 졸졸거리다, 신나게 뛰어내리니 용추폭포다. 산을 벗어나 이웃 사자산, 제암산의 물길이 식구가 되고, 장흥 장평면에 이른다.
여기서 장흥 가지산 동쪽기슭에서 온 장평천과 작은 지천들을 보탠다. 그리고 동쪽 길을 잡아 다시 보성군으로 들어가면 저수지가 기다린다. 이 보성강저수지는 수력발전과 간척지의 농경을 위한 댐이다.
일제강점기(1936~1937)에 윗동네 겸백면 용산리의 물길을 막고, 아랫동네 득량면에 발전소를 세웠다. 강물이 2.5km의 터널을 지나 얻을득(得) 양식량(粮)의 땅, 득량으로 떨어지는 낙차를 이용한 유역변경식이다. 83.65m의 높이에서 쏜살같이 떨어져 3,120KW의 전기, 양어장의 고기, 예당들의 쌀이 되니 1석 3조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곳 득량면에 특별한 인물을 기리는 장소가 두 곳 있다.
한 곳은 군두(軍頭), 군머리에 있는 최대성(1553~1597)장군 사당 충절사다. 최대성은 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한산대첩을 비롯, 남해 곳곳의 해전에 참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597년 보성 안치에서 적군을 대파하고 달아나는 왜장을 끝까지 추격하다, 암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이 후 장군과 두 아들이 함께 순절한 이곳을 군두라 부르게 되고 사우가 세워졌다.
또 한 곳은 김구(1876~1949) 선생 은거지다. 1898년 5월경이다. 김두호라는 청년이 득량면 쇠실 마을에서 45일여를 기거했는데, 이 분이 바로 민족의 지도자로 숭앙받는 백범 김구다. 명성황후 시해를 응징코자 왜군장교를 살해하고 옥고를 치르던 중, 1898년 3월 7일 인천감옥을 탈옥하여 이곳 쇠실로 왔다. 그리고 종친 김광언의 집에 머물며 광언, 덕언, 사중 등과 시대를 논하고, 중국역사가 아닌 우리 역사를 공부하며 민족정기를 일깨웠다.
이렇듯 최대성 장군과 김구 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득량면은 식량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일깨우는 양식을 얻는 곳이다.
이곳 앞바다는 득량만이다. 봄날이면 물결치는 보리와 흐드러지는 유채꽃의 예당들, 공룡화석의 득량면 비봉, 율포해수욕장의 이웃 회천면은 그 해안이 아름답고 해산물의 보고이다.
보성의 다른 이름은 녹차수도다. 해무가 밀려오면 구름 위의 나라가 되는 이곳 회천면 봇재 일대는 국내 최대의 녹차밭이 있다.
회천면은 보성과 장흥의 경계다. 여기 회령리 도강 마을은 소리꾼 송계 정응민(1896~1964)의 출생지로 송계초당과 예적비가 있다. 또 보성읍 대야리 강산마을은 서편제의 시조이며 정응민의 스승인 박유전(1835-1906) 출생지다. 이렇듯 보성은 민중의 삶이 촉촉이 묻어나는 판소리의 고장이다.
이 서편제의 특징은 활달하고 우렁찬 동편제와 대조적으로, 가창의 성색이 부드러우며 구성지고 애절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다시 보성강저수지가 있는 겸백면으로 간다. 이곳에서 전기를 만든 보성강은 율어면으로 들어가 율어천을 받아들인다. 율어면은 6,25 때 빨치산의 해방구였다고 한다. 동쪽 고개 주릿재를 넘으면 ‘남도여관, 소화교, 현부자집’ 등이 있는 벌교이니, 이 일대는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이다. 이곳 벌교에서 또 꼭 들려봐야 할 곳은 채동선 음악당이다. 또 그리 멀지않은 곳에 부용산 공원이 있고 그의 묘가 있다.
다시 보성강이 있는 율어로 와 복내면을 지나 문덕면에 들어서면 주암호다. 여기 화순, 보성, 승주로 갈리는 용암삼거리에 주암호조각공원이 있다. 또 독립문 조형물이 우뚝 선 서재필 기념관도 있다. 보성 문덕의 외가에서 태어난 서재필은 갑신정변에 참여한 개혁가다. 독립신문 발행, 독립문을 세운 한국 근대사의 주역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화순 북면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도 여기 문덕에서 주암호가 된다. 주암호를 내려다보는 천봉산(609m)에서 내려온 지천이 죽산천이다. 이 죽산천 벚꽃 길을 거슬러 오르면 티벳박물관과 대원사가 있다. 서양화가 조규일의 백민미술관, 똥물을 마시며 득음을 한 조상현의 판소리 연구소도 있다. 한 번쯤 발품을 팔면 길은 곧 지혜의 곳간이 되고, 생의 여유가 된다.
주암호에 머물던 보성강은 그런 마음으로 순천시 주암면의 주암다목적댐 수문을 나와 다시 북동쪽 곡성을 향해 흘러간다.
벌교읍의 태백산맥 문학관
맛깔스런 음식점을 들려
소화가 살던 집을 지나
현부자집도 둘러 보고
벌교 읍내로 나와 일제강점기 집도 보고
남도여관에 가면
운 좋으면 안주인의 노랫가락 듣습니다
첫댓글 섬진강을 따라서
녹차의 고을 보성에 까지 왔네요~
1997년경~ 단 한번 둘러본 기억이 새롭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길에서 삶의 의욕을 느낍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