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32142602 문예창작과 안선영
그해 벌어진 일들은 서연의 가족을 당황스럽게 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흘러갔다. 7월, 외할머니가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9월, 짧은 투병 끝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룬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의 아빠가 이마를 다쳤다. 다행히 짧은 찰과상이었으나, 심약한 가족들이 놀란 가슴을 달래야했다. 그 다음에는 키우는 강아지가 수술을 해야 했고, 냉장고가 고장났다.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상에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그것들은 점차 익숙해져갔다.
마지막으로 병실에서 할머니를 봤을 때 그녀는 직감했다. 수술은 성공했지만, 할머니는 좀체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밥을 몇 숟갈 뜨지 못하셨다. 모처럼 이모가 만들어간 저염식 반찬도 소용없었다. 먹은 것을 다 토했고, 서연은 그 모습을 화장실 문 너머에서 지켜봐야했다. 할머니 눈빛에 생기가 돌지 않았다. 그녀는 막연하게 할머니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암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가 병원에 계실 때까지 서연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이런 일이 있을수록, 남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없었다. 어쩌면 췌장암의 생존율을 검색해본 탓인지도 몰랐다. 그저 할머니가 고통스럽지 않길 바랬다. 혹시나 잘못되더라도,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시길 바랬다.
그래도 갑작스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그녀를 두렵게 했다. 아무렇지 않게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다가도, 전화가 울리면 마음이 덜컥 가라앉았다. 수술이 가능하다고 얘기를 들었어도, 서연은 불안했다. 할머니는 고령의 나이었고, 수술을 견딜 체력이 되지 않았다. 반쯤은 절망적이고, 또 나머지 반쯤은 희망적인 상태로 여름이 지나갔다. 할머니는 아픈데 이렇게 일상을 보내도 되는가에 대한 죄책감 또한 그녀를 짓눌렀다.
가을 어느 날 저녁, 서연은 전화 대신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야간 교양 수업시간 중이었다. 엄마는 자세한 설명없이 경황없어 보이는 메시지를 보냈다. ‘일산 국립 암센타, 권OO 환자 O형 피 구함.’ 서연은 무슨 소리냐며,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몇 팩이나 필요한지 말을 해달라고 했다. 그 다음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없었다. 소위 멘탈 붕괴 상태에 빠진 상태로 정신없이 SNS에 글을 올렸다. 도저히 수업을 들을 수 없어서 교실을 뛰쳐나왔다. 차가운 밤바람을 맞아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피를 구하면 살 수 있을까. 할머니 상태는 좋지 않았다. 췌장에서 흘러나온 분비물이 동맥을 녹여서,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반쯤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피를 구하러 다니는 것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었다. 동기들, 선배들, 후배들, 친구들, 친구들의 친구들, 얼굴 모르는 많은 이들이 따뜻한 위로를 남기며, 그들의 피를 건네주겠다 약속했다. 개중에는 하던 일을 제치면서까지 헌혈의 집에 가준 이들도 있었다.
서연은 그때 처음 알았다. 피가 없어서 죽어가는 이들이 많구나. 살릴 수 있는데 수혈이 부족해서, 수술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O형 피는 절대적으로 모자라서, 전국적으로 피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할머니를 비참하게 돌아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생각보다 많은 피가 모였다. 지정 헌혈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수혈을 받을 수 없다는 말에 병원에 연락을 했다. 남은 피는 다른 분들을 위해 즉각 써달라고 했다. 중환자실에는 할머니 말고도 6명의 환자가 더 있었고, 그들 모두 O형 피가 모자랐다.
정신없이 상황을 해결하려 애썼다. 집에 도착하니 서연의 가족들은 말이 없었다. 할머니의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말을 나누었다. ‘출혈이 그렇게 계속되면, 말 다했지......’ 이과인 동생이 한마디 했고, 한동안 침묵이 계속됐다. 다들 지쳐있었고, 어느 정도 얼빠진 얼굴을 했지만 생각보다 담담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새벽 1시, 부산스러운 소리에 서연은 잠을 깼다. 엄마가 떨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삼촌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아냐, 석준아. 괜찮아. 그래도 임종을 지켜봐야지.’ 그리고 나서 부모님은 급하게 짐을 챙겼다. 서연은 자신도 가봐야 하는게 아니냐 물었으나, 곧 제지당했다. 바로 전 날 저녁, 엄마는 할머니의 좋은 모습만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도 했다. 상태가 많이 안좋냐고 되물으니, ‘그냥 잠자는 것 같으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피는 구했지만 할머니는 끝내 가셨다. 서연은 다소 허망했고, 장례식을 치루는 내내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거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가족들은 수술이 잘되었다며 요양할 시설을 알아보고 있었다. 흘러가는 상황들이 하나의 거대한 연극같았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서연에게 할머니는 부모님이었고, 친구였고, 든든한 도피처였다. 아버지에게 크게 혼나고 집에서 도망 나온 날에도 말없이 안아주었다. 말없이 용돈을 찔러넣어주기도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할머니 특유의 ‘밥 먹었어?’ 하는 울림이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 집에 가서, 같이 밥을 먹고 요리를 해드리고 차를 마셔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필시 후회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서연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도, 도움을 받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다. 견딜 수 있는 선에서 혼자 고통을 처리하는 것이 익숙했다. 묵묵히 견디는 것이 미덕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불행은 대개 연이어서 오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사람은 홀로 견딜 수 없어진다. 어른의 슬픔은 어른이 되었어도, 감당하기 힘들다. 단지 고통을 견디는 한계치가 높아진 것뿐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남겨진다는 것은 무섭구나.’
장례식장에는 서연이 처음 보는 이들이 와주었다. 서연의 부모님이 아는 사람들, 이모들이 아는 사람들, 혈육들, 낯선 이들이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간다. 한마디씩 남겨주는 위로가 그녀 가족의 슬픔을 지탱한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고인을 추억하는 말과 살아갈 이야기를 남긴다. 다들 각자의 사연을 품었다. 하나씩 닳고, 부서져 보았던 사람들이다.
장례식장에서는 다 똑같은 사람이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든, 한번 고꾸라져본 사람이든, 평상시에는 불평불만을 하게 만드는 사장도, 원수나 다름없는 여자도 겸허해지고, 가장 아래의 자리로 내려온다. 생각보다 바쁘고 정신없는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그리 어둡지 않다. 그저 가끔씩 ‘먹고 살기 바빠서, 이럴 때 얼굴 한번 보네‘ 라는 말이 슬프게 와닿는다.
서연은 상복을 입은 내내 슬퍼하고, 후회했다. 그녀는 닳고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삶이 남았다는 것을 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을 반복해야 하는 것도 알았다. 가만히 앉아 삶을 바라보는 법도 알았다. 그저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 그 막연한 삶이 두렵고 막막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리고 가치 없는 것들에 몰두하여 타인을 바로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두었던 자신에 대해 후회했다.
그럼에도 서연은 생이 황홀하기를 바랬다. 떠나간 사람들은 망자의 자리로 가게 된다. 떠나간 이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생애 춤을 추다 그들 곁에 가게 될 것이다. 남겨진 자들의 연대란 참으로 슬프고, 아름답다. 서연은 황무지에 꽃을 심고, 자라지 못한 것들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다. 할머니는 아무도 오지 않을 쓸쓸한 장례식을 치루지 않았다. 언젠가 후회가 잦아드는 날들이 오고, 현재로서 살아가는 날들이 다시 오길. 생애 부끄럼 없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수필 _ 장례식 32142602 안선영.hwp
첫댓글 글이 사실적으로 다가오면서도 잘 읽혔습니다. 장례식에 대한 시선에서 많은 고민이 느껴졌습니다. 삶에 대한 성찰이 돋보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근 과 단톡에서 접했던 일이라 더 먹먹하게 글을 읽은 것 같아요. 할머니에 대한 마음, 살아 계실 때 함께 한 것이 많아 덜 후회된다는 말들이 공감됐습니다. 조문객을 각자의 사연을 품은, 하나씩 닳고, 부서져 보았던 사람들이라 표현한 문장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