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조는 토론 처음부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영상으로 배우는 철학....우리는 영상의 하나인 영화를 보고
철학적인 눈으로 철학적 주제를 뽑아내어서 그것에 대하여 논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희 모두는 철학에 대하여 깊게 공부한 적도 없었고,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였습니다.
철학을 논해야하는 자가 철학을 잘 모르니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철학이고, 무엇을 우리가 논할 주제로 정할 것인지
토론의 시작부터 끝까지 많이 어려워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고민과 고민 끝에
영화 '데드맨워킹' 속 여러 scene과 줄거리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 인권
상기의 주제를
뽑아내었고, 이에 대하여 자유롭게 토론하기로 하였습니다.
1. 인간의 삶과 죽음
영화 '데드맨워킹' 에서는 사형수 '매튜 폰스렛'의 죽음과 그 과정을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습니다. 매튜 이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위해서 본인 매튜는 물론, 헬렌 수녀와 변호사, 피해자의 가족들, 그 외 시민들, 여론 등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영화의 막바지에서는, 시종 영악하고 자존심 강한 모습을 보여주던 매튜가 죽음을 앞두고서 회한의 눈물과 반성을 하고(이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매튜를 죽일 듯 싫어하던 피해자의 가족이 매튜가 죽은 후에는 한결 부드러워진 모습으로 그의 묘소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과연 인간의 삶과 죽음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을 이렇게 변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인간의 삶과 죽음이 단순히 숨이 멎고 안멎고의 의미는 아닌 듯 합니다.
인간 개인에게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두 말할 필요없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조는 건강하게 오래 사시다 자연사로 돌아가시는 노인분들은 죽음에게서 이런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주목하였습니다. 단순히 죽음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저희 조는 우선, 인간의 삶에 대해 먼저 논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삶과 죽음을 따로 떼서 생각할 수는 없으니 삶에 대해 정의 내릴 수만 있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논의 끝에 결국 "인간의 삶은, 곱게 죽어가기 위한 과정이다" 라는 다소 특이한 철학적 정의를 내렸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생물학적으로 유한일 수 밖에 없고 결국 죽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인데, 그 속에서 우리가 발버둥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란 어떤 미사어구를 동원해서 표현하더라도 결국은 좀더 나은 삶, 즉 곱게 죽어가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면 개인에게 있어 죽음의 의미란 삶을 잘 정리한 마침표가 되기도 하고, 마침표를 찍지 못한 미완성의 문장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매튜는 곱게 죽어가는 모습이 아니였기에,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여 선생님께 혼나는 학생처럼 회한과 함께 죽음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개인의 죽음은 그 의미가 그 개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잔잔한 수면 위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듯 타인에게 그 개인의 죽음은 잔잔하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매튜의 삶과 죽음 전후 매튜 주변의 등장인물들의 감정적 변화와 행동의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저희 조는 이러한 인간의 죽음의 본질적 특성을 타인과 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인간의 사회적 습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하였습니다.
2. 인권
뒤늦은 질문이지만,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영악하고 악독한 매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이 영화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인권, 그것도 사회 말단의 잔혹한 범죄자를 등장시키면서 이런 최하 계층의 인간에게도 인권이 주어져있다는 것을 부각시킵니다. 그러면서 관람자들에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인권에 대해 돌아보길 주문합니다.
우리는 인권에 대해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는 천부적 권리...모든 사회, 계층, 문화의 전인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소중하고 평등한 권리...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저희 조는 이러한 기본적 인권은 사회나 그 어떤 공권력, 권력 주체에 의해서도 침해받을 수 없는 절대적권리임에 동의하였습니다. 매튜의 죽음 과정에서 있었던 인권의 침해에 모두 부정적인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인권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저희는 인권을 사람들이 죽음으로써 이루어낸 피의 결정체라고 평가해보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위해서 피의 투쟁을 해왔습니다. 그 옛날 봉건시대부터, 시민사회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우리가 지금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서 누리고 있다는 느낌조차 없는 이 인권을 위해서 정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피를 쏟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너무나 쉽게 누리고 있는 자유만 해도 이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쏟으며 투쟁하였습니까? 지금도 지구 구석 어딘가에선 인간의 인권을 위해서 누군가가 피를 흘리고 있고, 앞으로도 인간의 절대적인 권리 인권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릴 것입니다. 이런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저희는 매튜가 인권이 많이 개선된 오늘날에도, 사회 하층 계급에서는 인권 침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피로써 문제제기or투쟁하였다고 평가해봅니다.
법철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 에서 우리가 누리는 권리를 알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우리는 매튜의 죽음에서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의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