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찬녕(贊寧)이 지은 《송고승전》의 〈당신라국황룡사사문 원효〉편에는 당시 원효의 행동거지를 이렇게 썼다.
“無何發言狂悖, 示跡乖疎. 同居士入酒肆倡家, 若誌公持金刀鐵錫. 或製疏以講雜華, 或撫琴以樂祠宇, 或閭閻寓宿, 或山水坐禪, 任意隨機, 都無定檢”
여기에 원효는 얼마 안 되어 말하는 것이 사납고, 함부로 하였으며, 행적을 나타냄이 어그러지고 거칠었으니, 거사들과 함께 주막이나 기생집에 드나들었고, 지공(誌公) 법사처럼 금속으로 된 칼이나, 쇠로 된 석장(錫杖)을 가지고 있으면서, 혹은 소(疏)를 지어 잡화[화엄경]를 강론하기도 하고, 혹은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사당에서 즐기기도 하였으며, 혹은 여염집에 기숙하기도 하고, 혹은 산이나 강가에서 좌선(坐禪)하기도 하였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 일정한 법식이 없었다 하였다.
이는 종잡을 수 없는 기이한 행동거지로 찬술자인 찬녕마저도 찬술(纂述)에 중심을 잡지 못하였다는 표현이다. 《삼국유사》〈원효불기〉에서도, 기이한 행동은 이와 다를 바 없었다.
“曉旣失戒生聰, 已後易俗服, 自號小姓居士, 偶得優人舞弄大瓠, 其狀瑰奇, 因其形製爲道具, 以華嚴經一切無㝵人, 一道出生死, 仍作歌流于世”
원전에 의하면, 원효는 이미 계(戒)를 잃어 총(聰)을 낳은 후로는 속인(俗人)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고 이름하였고, 그는 우연히 광대들이 가지고 노는 큰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이 괴상했다. 이로써 원효는 그 모양을 따라서 도구(道具)를 만들어 <화엄경(華嚴經)> 속에 말한,“일체(一切)의 무애인(無㝵人)은 한결 같이 죽고 사는 것을 벗어난다.”는 문구(文句)를 따서 이름을 무애(無㝵)라 하고, 계속하여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 하였다.
원효 성사의 저잣거리 무애춤[無㝵舞] 가상도(○내 춤추는 원효)
이는 앞의《송고승전》 기록과 표현양식은 서로 다르다 할 수 있으나, 그 속에 담긴 근본만은 걸림 없다는 뜻으로, 이른바 여기서 원효의 무애(無㝵) 사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는 곧 이어지는 동《삼국유사》의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원효의 화쟁 사상을 다음과 같이 엿볼 수 있다.
“嘗持此 千村萬落且歌且舞, 化詠而歸, 使桑樞瓮牖玃猴之輩, 皆識佛陁之號, 咸作南無 之稱, 曉之化大矣哉”
이를테면, 어느 날 이 도구를 가지고 수많은 마을에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교화(敎化)시키고 읊다가 돌아왔다. 이 때문에 허술한 문틀만 있는 가난한 사람과 산골의 무지몽매한 이들도 모두가 부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부르게 하였으니 원효(元曉)의 교화는 참으로 컸다. 이는 곧 원효의 기이한 노래가 민중들에게는 걸림 없는 무애가(無㝵歌)가 되고, 그의 그침 없는 행동은 곧 무애무(無㝵舞)가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원효의 걸림 없는 무애 행은 곧 가난하게 살아가는 하층계급의 민중들과 무지렁이에 이르기까지 부처의 이름을 익혔다는 것으로, 이는 저잣거리 민중 속에 신라불교의 대승(大乘) 사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원효가 거리를 다니며 부른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겠는가. 내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니“ 」노래는 그가 세상 앞에서 자신이 파계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노래하였다면, 무애가(無㝵歌)는 자신의 소명(召命)을 실천하는 또 다른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무애가는 당시 귀족들에게 인간 취급을 못받고 살아가는 민중과 무지렁이들이 한 인간으로 살아 숨 쉬술 수 기회를 준 것으로 '살아 있다는 나'를 만나게 한 노래요 춤(舞)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원효 대사와 어울려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몇 년 지나면 도둑놈이 도둑질 안하고 스님이 되겠다고 하고, 살생하던 사람이 살생을 안 하게 되고, 깡패가 깡패 짖을 멈추고, 술꾼이 술에 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인연을 따라 천백억 가지로 화현하는 모습입니다.
이를테면 요석공주와 인연은로 스스로 승려로서 계(戒)를 어기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굴레라면, 무애가는 스스로 속복(俗服)으로 바꿔 입고“소성거사”라 자칭하면서 저잣거리 민중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로써 신라 불교를 활기 넘치는 불교로 만들어 과감히 저잣거리로 끌여들였다. 이것이 원효의 일심(一心)이요, 무애(無㝵)요, 화쟁(和諍) 사상이다.
일심(一心)은 불이(不二)이다. 더러움과 깨끗함이 없는 경지이다. 파도와 바다가 하나듯 근원은 하나이다. 무애(無碍)는 이론과 현실의 충돌이 전혀 없는 경지이고 몸과 정신적으로 언제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를 뜻합니다. 화쟁(和諍)은 대립과 모순이 있다면 이를 조화하고 극복해서 하나의 세계로 나가려는 사상이다. 이 모두 활발발(活潑潑)하게 살이 있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할 있는 일이다.
원효는 무애무(無碍舞)를 추며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상(相)을 깨는 길을 보여줬다. 대부분의 사람이 도무지 꿈에서 깨어나 본 적이 없이 살아가거나, 설령 꿈에서 깨어나 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다시 꿈속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깨어있어야 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살아있는 “지금, 여기”에 깨어있으라고 강조 하셨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건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내가 마음껏 숨 쉬고 듣고 말하는 세상은 내가 세상에서 주인공일 때이다. 귀족이니 천민이니 구별하지 않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때 나는 세상의 주인이 된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더불어 질 살사는 세상을 꿈꾸며 이를 실천한 선각자가 원효(元曉)이다.
출처 : 삼국유사, 경산뉴스, 불교신문, 법륜 스님 글 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