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 스님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년 시절에는 혈기가 미정(未定)하므로 색(色; 여자)을 경계하고, 장성해서는 혈기가 왕성하니 싸움을 경계하고,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퇴했으므로 탐심(貪心)을 경계하라.”
이때 탐심은 기욕(嗜欲)을 말하는데, 《장자》에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기욕이 많은 사람은 천리(天理)와는 먼 것이고, 기욕이 적은 사람은 도(道)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낙욕(樂欲)은 기욕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다. 기욕은 감정에서 일어나지만, 낙욕은 이지(理智)에 속하는 것으로 발원(發願)이나 입지(立志)를 의미한다. 기욕이 없다 해서 낙욕(樂欲)까지 없다면 모든 성인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다.
혹자는 내게 다음과 같이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이 가장 욕심이 많다는 말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다. 세상 욕심이 적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낙욕성(樂欲性)이 없는 사람은 천치, 바보다. 그러므로 둘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내 경우를 보면 선고(先考: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열일곱 살부터 독립운동을 하셨다. 그래서인지 틈만 나면 내게 정치관을 심어 주려고 하셨다. 이런 까닭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일에 호기심이 많았다.
내가 열일곱 또는 열여덟 살쯤 되었을 때로 기억난다. 하루는 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 소강절은 소인입니까, 군자입니까?”
아버지께서 대답하셨다.
“송나라의 6군자(六君子) 중 한 분이시다.”
내가 또 여쭈었다.
“그렇다면 그의 학설이 거짓말은 아니겠지요?”
그러면서 소강절의 저서《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서 사업을 5종(五種)으로 분류한 것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작아도 차라리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커다란 소 궁둥이는 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가다가 멈추더라도 공자의 불세지사업(不世之事業)을 따르겠습니다.”
소강절은 《황극경세서》에서 시대의 조류를 황(皇)·제(帝)·왕(王)·패(霸)·이적(夷狄)·금수(禽獸)로 나누었다.
그리고 사업의 종류를 5가지로 얘기하면 다음과 같다.
오패(五霸)를 백세(百世)의 사업
삼왕(三王)을 천세(千世)의 사업
오제(五帝)를 만세(萬世)의 사업
삼황(三皇)을 억세(億世)의 사업
공자(孔子)를 불세(不世)의 사업
공자의 사업은 계왕성 개래학(繼往聖 開來學; 과거 성인聖人을 계승하고 미래의 학자를 개시함)하는 교육 사업이므로 영원불멸의 사업이 된 것이다. 공자가 정치를 못한 것은 그 시대로 보아 불행한 일이지만 정치를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불세(不世)의 교육 사업을 펼치게 된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께서도 나의 결심을 막지 못하셨다. 나의 낙욕성은 어느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탐심, 즉 기욕(嗜欲)과 낙욕(樂欲)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탐심이 많은 지도자는 권력을 통해 제 욕심만을 채우므로 백성들이 곤고(困苦)해진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는데, 천리에서 벗어난 지도자가 어찌 민심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