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바람은 훈풍입니다. 고드름 같은 얼음이 붙어 다니던 겨울바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가슴에 달린 옷깃을 살짝 풀고 맞이하고 싶은 훈풍이 종일 이어졌습니다. 지인께서 몸이 불편하다는 소식을 듣고 야음에 다녀왔습니다. 우정 와 주어 감사하다는 뜻으로 문밖으로 나와 맞아주시더니 저녁이라도 함께 들자며 지인이 살고 계신 아파트 주변식당으로 나서주었습니다. 말려도 소용없었습니다. 가끔 오래전부터 다니던 식당이라 봄동을 무쳐내고 다시마줄기와 초장도 만들어 주고 넉넉하게 마음 멋을 부리며 식탁을 채워 주신 주모에게 감사드리며 알뜰하게 저녁상을 먹은 후 물리고 잠시 앉아 준비해 갖고 간 약보따리를 풀어 전했습니다. 제가 가끔 지인이 앓고 있는 증세를 경험할 때 복용하여 효험을 본 기억이 있어 준비한 것입니다. 야음의 긴 통로를 걸어 지인의 아파트까지 가는 사이 춘풍이 참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느낌이 좋으니 걸음걸이도 느긋했습니다. 그런 사이 상대적으로 선자령 벌판에 우뚝 서 있던 풍력발전기 모습이 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모질고 거친 바람은 팔랑개비를 쉴틈을 주지 않고 흔들어 대는 바람은 바로 높새바람이랍니다. 지금 제 가슴 앞에서 아른거리는 춘풍과 선자령 바람을 비교하며 우열의 다 틈으로 봄바람에 풍덩 빠져버렸습니다. 봄바람이 좋은 이유는 바람이 산들거리기 때문입니다. 산들거리며 다가왔다가 산들산들하며 멀어져 가기를 반복하는 바람의 맴맴이 이토록 좋은지를 미처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 자신에게 묻습니다. 힘이 넘칠 때는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힘의 소비처를 찾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재충전하여 사용해 왔지만 이젠 그런 에너지가 고갈된 황혼의 시기에서는 모든 것이 다소곳해지려는 본능에 물들어가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신체의 내외감각도 그러한 환경으로 순치된 결과일 것입니다. 거칠면 섬찟하고 부드러우면 은근하게 감싸려는 감정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오늘도 그러한 경우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프다는 지인을 만나러 가기 위하여 공원에 붙어 있는 지하역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기계의 운반석에서 내리면 약 10m의 직선통로가 나오고 끝지점에 역 실내 개찰구 광장으로 진입하는 양여닫이 문이 4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1,2호 문은 개찰구로 접근하기 편하고 3 호문은 직선으로 걸어 나가 반대 건너 구역으로 넘어가 편합니다. 그리고 4 호문은 우측에 설치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화장실로 가기 편하게 설치된 각각 동선을 고려하여 설계된 결과물입니다. 그래 힘이 많은 청춘과 중년들의 사용에 지체 주지 않기 위하여 늘 2번 출구를 사용하는 편입니다. 오늘도 2번 좌측 여닫이 문을 밀고 광장으로 들어서서 서너 발자국을 남기려는 순간 좌측에서 30대 중반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왼쪽에서 별안간 획돌아 접근하는 바람에 충돌, 참 혼비백산 했습니다. 사과라도 하고 갔으면 평정심을 찾았을 텐데.. 순간적으로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마음이 뒤틀리면 마음이 험해지고 나오는 말도 거칠어지기 마련입니다.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 이봐! 였습니다. 톤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로 도망치듯 사라졌습니다. 그 사실을 본 주변인들이 나를 역성들면 나무라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래도 본척만척하며 사라지는 것을 보며 문득 전동차가 들어 올 시간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동차에 오른 후 두 서너 정거장을 지나친 후 겨우 평상심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당한 봉변에 대해 쉽게 잊으려면 그 사람의 처지를 특별한 일로 봉인하면 됩니다. 아마 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돌발적으로 있었겠지?? 때로는 자기 암시가 필요할 경우가 많은 것이 바로 삶의 시간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바람과 기운은 정말 싫습니다. 이번에 겪은 일은 1월 초하루 찾았던 선자령 바람보다 더 싫습니다. 지금은 풀어졌지만 그 당시 감정으로 노래 한 곡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제가 서유석이라는 가수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는 같은 서울 태생이며 생일이 같은 1월 8일이란 것이 출발점입니다. 나이 차이는 서유석 씨 께서 다섯 살 연상이십니다. 그리고 해방둥이시지요. 저는 6.25 동란둥이고요. 한국역사 중에 환희심과 비극으로 극명하게 갈리기도 합니다. 음악으로는 강렬하게 다가 온 그림자라는 노래를 통해 익히고 애창곡으로 선택한 곡도 다수 있지만 강렬하게 처음 다가 온 곡은 그림자라는 노래입니다. 지금도 가사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1978. 10월 25일 유니버설레코드에서 발매한 정기앨범입니다. 그림자는 김상옥 씨가 작사하고 서유석 씨가 작곡한 노래입니다. 1977년 방송된 mbc라디오 드라마 대공수사 실화극 그림자의 주제곡으로 선정되어 드라마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서유석 씨의 정기앨범으로 발매된 것입니다.
그림자 내 모습은 거리를 헤맨다
그림자 내 영혼은 허공에 흩어지네
어두움이 내리는 길목에 서성이며
불 켜진 창들을 바라보면서
아 외로운 나 달랠 길 없네
그림자 내 이름은 하얀 그림자
가사 끝 소절에 하얀 그림자란 단어를 읽으며 당시 개인적으로 그림자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림자 하면 검은색인데 대공실화극은 스파이들과 관련된 드라마로서 스파이는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하얀 그림자로 표현해 낸 작사가의 기지가 돋보였습니다. 실존하되 실존하지 않는 하얀 그림자, 당시 드라마를 이끌었던 성우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쟁쟁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얀 그림자~~ 어쩌면 우리들의 삶도 종극에 가서는 하얀색으로 변화는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새삼 의미 있는 단어라 생각하며 조용히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젊은 사내에게 당한 봉변을 기억하며 시편 복음을암송해 보았습니다.
시편 91:12.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 그가 내 이름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