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쁜 행정실장과 나
오늘은 딱딱한 업무이야기는 미루고 가벼운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합니다.
제목을 봐서는 여자 행정실장과 제가 무슨 썸을 타는 관계 이야기가 아닌가 하시겠지만 그런건 아니구요..
모 탈렌트처럼 생긴 젊고 예쁜 행정실장이 우리학교에 부임했습니다(나이에 비해 승진이 빨랐던 것 같습니다)
숙직실에는 이불이 한 채 있지만 너무 오래돼서 마치 넉마처럼 너덜거렸습니다. 집에서 사용하던 이불을 가져오긴 했지만 겨울이불이었고 여름이 되니 얇은 이불이 필요했습니다. 실장에게 “숙직실에 여름용 이불이 없는데 사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랬었느냐? 내가 미리 챙겨야 하는데 숙직실 이불까지 챙겨 볼 수가 없었다”면서 흔쾌히 여름이불 한 채를 구입해 주었습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겨울이불을 덮다가 걷어 차면서 자다가 감기도 걸리고 심지어 아침에 배앓이도 하고 했었는데 모처럼 얇고 시원한 이불을 덮고자니 잠이 솔솔 잘 오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뿐하게 개운해져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저는 너무 감사한 마음에 행정실장에게 “실장님이 사주신 예쁜 새 이불에서 잠을자니 숙면을 취하게 되네요.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로 인사를 대신 했습니다
* 저는 평소 학교 교직원들과 가끔 문자를 합니다. 당직업무 수행상 지시사항에 대한 복명, 업무와 관련해서 물어볼 내용이 있을 때 또는 보안사항 위반이 있으니 신경써 달라는 등
그런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며칠뒤 주말에 행정실장 부부가 학교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한두번 인사를 한 적이 있는 남편의 태도가 180도 변해서 나를 외면하면서 본척도 않고 쌩~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내앞을 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바쁜 모양이네, 또는 잠시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네..” 하는 식으로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후 더 수수께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실장이 나에게 반찬하라면서 이것저것 부식까지 사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남편과 함께 와서요.. 나는 놀라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하면서 갸웃했습니다. 머릿속에서 퍼즐을 맞춰보고.. 아차! 했습니다. 나도 눈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결론은 남편이 내가 실장에게 보낸 문자를 보고 단단히 오해를 했던 것 같았습니다. 동양에서 이불의 의미는 특별합니다. 신부가 결혼할 때 남편과 평생 덮을 이불을 준비해 가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만도 했습니다. 나는 70대 초반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10년은 더 젊게 보니 더 그런일이 생겼나 봅니다. 가상의 문답은 이렇습니다
남편 : “그 남자에게(당직기사) 왜 이불을 사줬느냐?”
실장 : “행정실장이 해야 할 일이다”
남편 : “다른 물건은 이해하겠는데 이불까지 사줘야 하느냐? 학교에 남자직원도 있을테데 왜 당신이 사줬느냐? 당직기사에게 돈을 주고 직접 사라고 하면 될 것 아니냐?”
고 따져 물었을 것이고 부부 싸음을 했던 것 같았습니다.
내가 보낸 문자내용에는 고맙다는 인사외 의심받을 아무런 내용도 없었습니다만 설마 남편이 아내의 문자를 본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실장이 예쁘게 생겼으니 남편이 평소 감시를 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후 실장이 나에게 부식까지 사주면서 더 잘해준 것은 본의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실장 본연의 업무라며 남편에게 보란 듯이 오버해서 행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말하자면 어깃장?을 친다고나 할까요?
판단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오해를 풀고 실장의 난처한 입장을 원만히 해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문자를 끊을까? 그것은 더욱 큰 오해 소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자를 하던 사람이 의심을 받으니 끊었다? 그러면 더 의심스러운 관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뾰족히 내가 나서서 할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일이 없는 듯 여느때와 똑같이 실장에게 업무에 대해 문자로 복명을 했는데 대신 보낼 때는 혹시 오해살 내용이 없는지 두번 세번 더 검토를 한뒤 보냈습니다. 그후 몇주가 지난뒤 실장 부부가 학교에 또 오게 되었는데 남편의 확연히 웃음띤 얼굴을 대하게 됐습니다. 남편이 아마도 다른 학교의 경우도 확인해 봤겠지요..
나는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고 그동안 말못할 고민을 안고 혼자만 속앓이를 하고 괴로워 했을 실장이 매우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실장은 자존심 때문에 나에게 아무런 말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후 실장은 내가 문자를 보내면 남편에게 의심받을까봐 한번 보고난후 바로 삭제를 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하면.. 실장은 얼마전에 내가 문자로 답한 내용을 또 묻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먼저 답한 내용을 문자에서 찾아보면 될 일인데도..
* 지금은 다른 학교로 전근가신 예쁜 실장님께.. 잘 계시지요? 지금도 그 이불을 보면 문자사건이 생각납니다. 실장님이 문자 삭제한다는 것을 만약 남편이 알게되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더 의심받을 것인데.. 당당히 정석대로 나갔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이야기지만 아무리 남편이 의심한다 하더라도 어깃장 치느라고 부식까지 챙겨주시다니요.. 고맙게 먹었지만.. 그때는 실장님이 그렇게 마음 괴로워 했을 줄은 미쳐 몰랐습니다. 미안했고요.. 항상 건강하세요..
저는 친했던 선생님들이 다른 학교로 전근간후 안부 문자를 보낸 일이 있지만 그후 예쁜 실장님에게는 단 한번도 문자를 보낸적이 없습니다. 끝
첫댓글 선생님 전직 하셔야겠습니다.
소설 한 편 쓰면 베스트 셀러 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화고요.. 예쁜 행정실장이 근무하는 학교도 알고 있고.. 우연히 라도 보고 싶지만.. 저만의 애틋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군요..
소설 같은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