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치고개 석종모루 소법리 춘천 고탄리
도마치 고개 ,이태석 (79세), 제주가 고향
조상이 전봉준과 동학혁명 했다고 한다
그 앞의 역사는 중종때 기묘사화에 얽혀 조상이 고부에서 제주로 유배 되었다고~~
그런데 6.25전쟁전에 제주도 4•3사건때 아버지가 역도가 되어 연좌제 법으로 아무것도 할 수없었다는 노인은 눈물이 난다
거침없이 잘못된 역사라며 미•소의 강대국 이기주의에 그리고 이승만대통령의 욕심이 전쟁을 만들었다고 강변하신다
차라리 공산주의가 되더라도 전쟁은 없었어야 하고 4•3사건도 없으면 제주도가 아니 본인이 잘 살았다고 하신다
이보다는 더 못할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도마치 고개에서 식당을 하고 계신다!"
65년도에 이곳에 들어왔는데 광덕리 가다가 뼈밭골에 중공군이 수 없이 죽어있었다고~~
도마치봉일대는 74년까지 화전을 했고 75년도에 45만원씩 주고 모두 내 쫒았다고~
유해는 당시에 먹고살기 바쁜데 신경쓸 겨를도 없고 있어도 그저 지나쳤다고 한다
제주도에 살때는 좀 배웠거나 못사는 사람은 모두 좌익이 되었단다
제주도에 근무하던 군대중 1개 중대가 한라산으로 올라 모두 반란군이 되었다는 ~
한맺힌 분들의 골은 너무나 깊다
좀 못살아도 우리끼리 이해하고 살면 된다는 조금 위험한 생각의 할아버지~~
태백산맥등 조금 좌 편향적인 책을 많이 읽고 실제 피해 당사자다 보니~~
입씨름을 좀 하고 점심을 석종모루에 갔다가 할아버지 집에서 먹었다~~~
"우린 할아버지를 이해해야 하니까~~!"
박종억 참전용사님 (88세)조선 경비대 출신
5사 36연대로 1 .4후퇴시 사창리에서 경계
중공군이 내려오는데 정말 엄청난 숫자가 총도없이 총구 앞으로 왔다고 한다
거의 눈 앞까지 왔을때 방아쇠를 당겨 촛대봉 앞에서 중공군 300여명 사살했다
그러다 후퇴하는데 옆 전우가 "야, 종억아 해서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니 피가 흐르고~
석정모루에는 많은 중공군이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집이 생기고 도로가 생기고~
소법리에도 많이 죽었다고 한다
제령리 다리에는 전후에 미군들이 2사도 오고 40사도 오고 했는데 여자들이 따라 다녔다
그러다 다리에서 물이 넘치는데 차량이 전복되어 여자들은 다 죽었다
정봉설( 85세) 학도병으로 참전
사실 학도병으로 전투가 된 곳이 포항하고 가평이다
6.25전부터 가평 38도선 인근은 뒤숭숭했다 바닥빨갱이가 많이 설쳐대고 군경은 별로 힘고 못쓰고 그래서 학생들이 함께했다
처음전투때는 뭔지도 모르고 인민군이 쓸고 내려갔다
6사단이 있었지만 있으나마나였다
그러다 자체 청방이 만들어지고 그 곳에서 활동하다 노무자 비슷하게 일했다
1.4후퇴시 36연대 황엽 중령이 이곳에 있었다
북한강이 얼어서 후퇴가 가능했다
안그랬으면 다 죽었을 것이다
소법리 남종 다리 밑에 시신이 많았지난 지형 변화 / 도로 가 만들어져 어딘지도 모른다
이곳은 광덕리에서 춘천 지암리에서 넘어와 만나는 곳으로 그 당시에 군린은 모두 도망 치고 장비만 갈가에 쌓여 비행기 폭격으로 호수가 생겼다
시체가 많았는데 논이 다 되어 흔적도 없다
000(78) 제령리가 고향이다
사실 너무 비참해 말도 못하겠다
군인이 많이 죽은게 아니고 민간인이 더 죽었다고 하면 이해가 되겠나~~~?!
가평 지역은 회색분자들이 들끓는 곳이었다
우리 동네도 120여가구 되었는데 한 20가구 빼고는 모두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뭘 알고 그렇게 된것이 아니고 뭔지도 모르고 그리고 일부는 강제로 가입되어 전쟁이 나자 동네 사람간에 피바람 불었다
"군인이나 경찰도 아닌 청방이니 학도병들이 다짜고짜 다 죽였다~~"
"전쟁이 났다고 하는데 동네에서 사라진 형님들이 대거 인민군과 함께 나타나 놀랐다"
가평은 마을마다 조금씩 사상이 다르다
노루목에서는 공무원 경찰 군인 부자인 사람들 가족이 죽었다고 한다
"영혼비"가 서 있다
이재린(83) 춘천 고탄리 노인회장
동란때는 피난을 나가다 남춘천에서 중공군에 포위되어 붙잡혀 철길을 맨발로 걸림어 다님
도망쳐 집으로 왔더니 다 불타버림
51년 봄에 송암리 삿갓봉(575)에 2개 중대 전멸 했다
575고지까지 밥을 해서 지고 올라감
우리 군인들이 올라가 대공포판 펴기도 전에 비행기가 와서 오폭으로 다 죽었다
시체를 갔다가 학교 마당(지금 마을회관)에 다 펼쳐 놓음, 중대장이 울고불고 함
그리고 다 실어감
그러다 6사단이 사창리에 들어감
덩치가 커서 노무자로 참여 원산 밑에 금성까지 실탄지고 군수품 날르고~~
노무사단에는 노인들이 지게지고 많이 참여 하고 있었음
미군들 실탄지고 다님, 휴전 당시 오성산에 철조망 지고 올라가는데 중공군이 박격포 쏘고 기관총 사격하여 죽다살아 옴
전원진(84), 고탄리가 고향이다
덩치가 작아 붙들려 가지 않음
표소령이 6.25전 월북, 지암리쪽으로 넘어감
밤에 넘어가는데 훈련한다고 가다 보니 38선을 넘어버렸다고 하더라~~
많은 인원이 어쩔수 없이 북으로 따라 감
당시는 총도 제대로 없어 나무를 깍아서 목총 들고 훈련도 하곤 했다
소양강 넘어로 피난했음. 보름만에 인민군이 다 차지해서 돌아옴
귀신다리(소양1교) 밑에 시체가 엄청 있는 것 실제 목격 했음 남. 썩는 냄새가 진동함
동란때는 양평 포위 되어 다시 들어옴 결국 한번도 피난을 못하고 농사지어 삶
51년 5월에 중공군이 밀리면서 밤에 불빛이
노출되어 미군이 비행기로 공격, 말과 중공군 군인들이 다 죽음
시체 묻은 곳을 나중에 다 캐 갖어 갔다고 함
말은 주민들이 먹고 원기를 회복, 병이 치료?
중공군이 열병을 옮겨와 동네에 한참 환자가 많아 여럿이 죽어 나감